◆대한민국이 배출한 최고의 타짜는 '곤이'?
대한민국 최고 타짜가 누구냐고 하면 많은 분들이 만화와 영화 '타짜'에 등장하는 '김곤'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좋은 시나리오와 캐릭터, 배우 조승우의 실감나는 연기가 더해져 많은 이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기 때문입니다.
포커 스포츠에도 영화 '타짜'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 온라인 포커 붐을 일으킨 장본인인 'WSOP 2003' 메인 이벤트 우승자 크리스 머니메이커가 가장 대표적인데요. 그는 39달러짜리 온라인 예선을 통과한 뒤 쟁쟁한 톱 프로들을 물리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 250만 달러의 상금을 거머쥐며 '에브리맨(Everyman, 보통 사람)' 신화를 썼습니다. 고작 5만 원 정도의 돈을 투자해 30억 원 가까운 거액으로 만든 것이죠.
◆한국이 배출한 최고 포커 스타, 조셉 청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는 조셉 청(Joseph Cheong, 한국명 정상현)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셉 청은 'WSOP 2010' 메인 이벤트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끝에 최종 3위에 올라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하며 'WSOP' 누적 상금만 700만 달러를 넘겨 역대 상금 순위 30위권 내에 진입했습니다.
조셉 청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6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명문대학인 UC 샌디에이고를 졸업했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그는 심리학과 수학을 복수전공했는데요. 두 전공 모두 그가 포커 플레이어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온라인 포커 시작부터 성공가도…WSOP 2010서 스타덤
20대 초반, 조셉 청은 당시 미국서 붐이던 온라인 포커에 뛰어들었습니다. '서바임(subiime)'이라는 아이디로 100만 달러에 달하는 누적 수익을 달성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조셉 청은 'WSOP'와의 인터뷰를 통해 "3달러나 5달러짜리 온라인 대회에 참가하는 것부터 포커를 시작했는데 계속 이기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가볍게 시작한 포커를 통해 큰 성과를 올린 조셉 청은 학업을 마친 뒤 본격적인 포커 프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첫 출전한 'WSOP'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조셉 청은 이듬해인 2010년 'WSOP 2010' 메인 이벤트에서 파이널 테이블에 진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ESPN을 통해 방송된 하이라이트 중계를 통해 조셉 청의 플레이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됐는데요. 조셉 청은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내는 뛰어난 리딩 능력과 공격적인 베팅으로 같은 테이블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에게 끊임 없이 압박을 가했습니다.
◆역대급 불운 극복하고 파이널 테이블 진출
조셉 청은 해당 토너먼트에서 이탈리아인프로 필리포 칸디오에게 당한 '배드비트(Bad Beat, 포커에서 역전패 정도의 의미)'로 '불운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최강의 시작 핸드인 에이스 2장(AA, Pocket Acis)을 들고 칸디오와 헤즈업에 돌입한 조셉 청은 플랍(Flop, 첫 3장의 공유 카드가 공개된 상황)에서 7 원 페어가 된 칸디오에게 앞서 나갔습니다.
조셉 청은 자신의 베팅에 칸디오가 체크-레이즈(Check-Raise)로 응수하자 상대의 심리를 자극하려는 듯한 제스쳐 멘트에 이어 올인을 선언합니다. 당시 조셉 청은 30명이 채 남지 않은 토너먼트에서 중간 집계 칩 순위 1위인 '칩 리더'였던 상황입니다. 플랍 상황에서 조셉 청의 승리 가능성은 87%에 달했는데, 이 핸드를 조셉 청이 그대로 이겼다면 압도적인 1위 자리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조셉 청을 외면했고, 칸디오는 남은 두 장의 공유 카드의 연속적인 도움 끝에 스트레이트를 완성했습니다. 극적인 역전승으로 탈락 위기를 모면함과 동시에 '칩 리더' 자리를 조셉 청으로부터 빼앗습니다. 칸디오는 조셉 청과의 이 드라마틱한 핸드에서 승리한 뒤 격렬한 자축 세리머니를 펼쳤는데요. 두 선수 모두 해당 핸드 하나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한 플레이로 파이널 테이블 '칩 리더' 등극
조셉 청은 불운을 극복하고 파이널 테이블 진출에 성공합니다. 필리포 칸디오도 조셉 청에게서 얻은 칩을 바탕으로 함께 파이널 테이블에 진출했는데요. 조셉 청은 파이널 테이블에 진출할 최종 9인이 가려진 뒤 칸디오와 함께 주먹을 부딪히며 서로를 축하하는 쿨한 모습(조셉 청은 이후 자신을 탈락시킨 선수의 우승을 응원하기도 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조셉 청은 다른 스포츠에서의 최종 결승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파이널 테이블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조셉 청은 칩 순위 3위로 파이널 테이블에 진출했지만 1, 2위와의 격차가 커 불리한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베팅으로 상대를 압박해나가며 칩 순위 1위까지 올랐습니다.
조셉 청은 결국 마지막 3명이 남을 때까지 칩 순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셉 청은 2위와는 엇비슷했지만 3위와의 격차가 큰 상황이었습니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잠시 접고 3위가 탈락하기를 기다리기만 해도 1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더 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위(554만 달러)와 3위(413만 달러)의 상금 차이가 140만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죠.
◆세계에서 가장 큰 판을 날린 사나이
하지만 조셉 청은 100만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끊임없는 공격 일변도 전략을 유지합니다. 당시 1위를 다투던 조나단 두하멀을 상대로 큰 베팅을 이어간 것이죠. 조셉 청은 'A7'이라는 다소 애매한 핸드를 들고 '포켓 퀸즈(QQ)'의 조나단 두하멀과 베팅을 주고 받은 끝에 결국 모든 칩을 걸었는데요. 이 핸드는 역대 'WSOP' 메인 이벤 중 가장 많은 칩이 걸린 핸드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조셉 청은 5장의 공유 카드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최대 장점이기도 한 공격성에 발목이 잡혀 칩의 대부분을 잃었고, 이후 힘없이 탈락, 3위에 머물고 맙니다. 조셉 청이 10년 전 그 상황에서 조금만 침착성을 발휘하며 때를 기다렸다면, 역사상 최초의 한국계 'WSOP' 메인 이벤트 우승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랬다면 한국에서도 포커 붐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죠.
아무튼 가장 큰 무대에서 우승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지만 조셉 청은 이후에도 포커 플레이어로서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유의 공격적인 모습은 유지한 채로 말이죠. 지난해까지 'WSOP'에서도 10만 달러 이상의 상금을 획득한 대회가 5차례에 달할 정도로 꾸준히 입상하고 있으며 아시아와 유럽 등 타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도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Never Won One? Finally Got One!
'네버 원 원(Never Won One)'은 '우승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변수가 많고 운적인 요소가 많이 따르는 포커 토너먼트 특성상 실력이 뛰어난 프로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조셉 청 또한 화려한 데뷔에 이어 꾸준한 실적을 올리면서도 유독 'WSOP' 토너먼트 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조셉 청은 지난 6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SOP 2019' 더블스택 노 리밋 홀덤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네버 원 원' 리스트 탈퇴에 성공합니다. 조셉 청은 6214명이 참가한 이 대회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하고 68만7782 달러의 상금을 추가, 'WSOP' 누적 상금 700만 달러 돌파에 성공합니다.
10년 동안 기다려온 우승이기에 특별한 감정이 들 법도 하지만 조셉 청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다음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고 하네요. 조셉 청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