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의문
강해는 말로만 듣고 영화 속에서나 보던 전쟁과는 달리 잔혹한 전투를 직접 보자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일반인이 아무리 강심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살인을 본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살인에 대한 당위성과 면책성을 가진 군인들조차 전투 후의 외상 후 스트레스는 죽는 순간까지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권이라든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의식이 적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하지만 뇌에 가해지는 데미지가 전혀 없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몬스터 사냥이고 몬스터를 가축 그 이상으로 여기지도 않았기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지만 강해가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현대의 사람들은 길거리의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들을 죽이는 것만 해도 거부감이 들 것이었는데 오크 같은 인간형 몬스터의 경우는 더욱 더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성과 영지민을 위협하는 적이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강해는 오크들의 학살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영주님.”
“그래. 전부 쓸어버리라고 해. 그리고….”
강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크들의 마을의 위치가 꽤나 천혜의 요지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인구를 품을 수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 마을이나 요새 세울 수 있을까?”
이미 몬스터 토벌 이후를 생각하는 강해에 엘리세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고서는 역시나 영주님이라는 생각을 하며 존경 어린 눈빛을 한 채로 대답을 했다.
“영주님의 혜안이 대단하십니다.”
확신이 없는 강해에 비해서 엘리세는 오크 마을이 꽤나 좋은 입지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어에 최적지이기도 하며 물과 식량을 얻기 좋은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오크들이 대규모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고 주변의 다른 몬스터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있던 것이었다.
“하하하하!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이제야 굴러들어 오는구나! 영주님께서 지켜보신다!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 버려라!”
그렇게 후방으로 도망을 가던 오크들이 만난 것은 라이칸드의 기병군단이었다.
보통이었다면 이 정도라면 자신이 나설 것도 없었지만 강해의 친정이었기에 자신의 무력을 자랑하기 위해 참여를 했다.
우웅!
자신의 키보다 큰 2미터가 넘어가는 대검에 푸른 빛줄기가 생겨났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그 푸른 빛줄기는 굳이 필요도 없는 과도한 것이었지만 라이칸드는 자신의 영주에게 자랑하기 위해 뽑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부웅!
그렇게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주변의 거대한 거목들과 함께 오크들의 몸이 썰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검강의 현란함은 하늘 위에서 몬스터 토벌을 구경 중이던 강해의 두 눈에도 금방 들어왔다.
“응? 저건 뭐지?”
강해는 오크 마을의 뒤 쪽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면서 수십의 나무들이 사방으로 쓰러져 버리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리세는 라이칸드가 검강을 뿜어내며 영주님께 자신 좀 봐 달라고 투정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와! 엄청나네. 이 목소리는…. 라이칸드인가? 그리고 혹시 저거 오러 블레이드?”
강해는 소설 같은 것에서 보듯이 검강으로 보이는 빛이 번쩍이면서 걸리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모습과 함께 웃음소리가 자신이 알고 있던 라이칸드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그렇게 돈 쳐 발랐는데.’
강해는 트리플 S급의 영웅을 얻기 위해 수백만 원이 넘게 사용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소드 마스터인 라이칸드 뿐만 아니라 레인저인 헤로스와 지금 옆에 있는 마법사 엘리세도 트리플 S급의 영웅이었다.
이 세 사람의 위력만 해도 가공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성의 다른 영웅들이 그다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킹덤 언더 워를 하고 있을 때 만약 병력들이 원정을 떠난 상태가 아니라 성에 있었다면 강해의 성은 불에 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강해의 전력은 막강한 상태였기에 고작 일만 정도나 될까 싶은 오크 마을은 한나절도 안 돼서 전멸했다.
저벅! 저벅!
강해가 오크의 마을에 발걸음을 했을 때 불길은 이미 잡혀 있는 상태였고 오크들의 시체는 한 쪽으로 치워져 있는 상태였다.
주변의 핏자국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다지 참혹한 광경들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해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다.
‘분명 전투는 끝났을 텐데….’
강해가 심각한 표정인 것은 다름 아닌 자원 박스 때문이었다.
킹덤 언더 워에서 몬스터 사냥을 끝내고 나면 몬스터 등급에 따라 자원 박스의 종류와 수량이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는 자원 박스는커녕 다른 아이템도 하나도 들어온 것이 없었다.
“여기 혹시 오크들의 식량 창고나 자원 창고 같은 거 없나?”
“있기는 있습니다만 상당히 조잡합니다.”
조잡하다는 헤로스의 말에 상관없다면서 오크들의 식량 창고를 갔다가 인상만 구긴 강해였다.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있는 것은 둘째 치고 식량이라고 있는 것이 몬스터들의 사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이성은 있는 것인지 땅바닥에 그냥 쌓아 둔 것이 아니라 줄로 해서 허공 위에 매달아 두고는 있었다.
그것을 영지민들에게 준다고 했다가 먹기는커녕 아니 먹고 전염병이나 안 돌면 다행일 정도였다.
“전부 태워 버려.”
“알겠습니다.”
그나마 오크 전사들이 사용한 무기들은 조잡한 돌도끼나 청동제 검, 아니면 창 등 운 좋게 철제 무기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제련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다지 쓸 만한 것들도 없었다.
“후우! 그나마 쓸 만한 것은 집터인가? 아니 냄새나서 전부 다 태워 버리거나 밀어 버리고 성을 세워야겠네. 저기 한번 애들 시켜서 여기 목책이나 성 조금만 쌓아 봐.”
성이 쌓이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겠답시고 한 말이었지만 무려 영주의 명령이었다.
이내 병력들이 오크들의 집을 허물어 버리고 쓸 만한 목재를 이용해서 목책을 쌓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부한 목재들과 오만에 달하는 병력들로 인해 이내 목책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곧바로 성으로 돌아가기도 늦은 시간이었으니 하룻밤을 보낼 주둔지는 필요했고 영주가 이곳에 전진 기지 겸 성을 쌓기를 원하니 대충이나마 영주의 명령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갑자기 요새를 쌓는 일에 동원된 병사들이었지만 강해는 목책이 쌓아지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거 킹덤 언던 워 속이 맞긴 맞는 거야? 뭔가 이상한데? 혹시 게임 속의 세계가 아닌 건 아닐까?’
강해는 자신의 옆에 걷고 있던 헤로스를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 혹시 주변에 성 찾았어?”
지시를 내린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질문을 하는지 강해 스스로도 민망하기는 했지만 헤로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을 했다.
“죄송합니다만 하나도 발견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주변에 몬스터들만이 상당히 많을뿐더러 영주님께서 찾으라고 하셨던 유적지 및 자원지 일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근처에 다른 유저의 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전 필드에 랜덤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유적지와 자원 채집을 위한 자원지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곳 킹덤 언더 워의 세계가 아닐 수도 있다.’
그제야 강해는 자신이 게임 속의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계로 차원 이동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 좀 더 조사를 해 봐. 그리고 성이 쌓인다면 본성의 주민들과 병력들을 일부 분산시켜야겠어.”
“알겠습니다. 영주님.”
강해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서 오크들의 마을을 둘러보다가 숲 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강해의 옆으로 친위대의 기사들이 따라다니고 있었기에 큰 위험이 벌어질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강해는 깊은 생각을 하다가 조금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생각이 점점 길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발길 닿는 곳으로 계속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해의 생각을 방해 할 수 없었던 기사들로서는 그저 자신들의 영주를 따라가며 주변을 경계할 뿐이었다.
아니 사실 기사들도 주둔지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에 조금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강해의 옆에 서 있는 엘리세의 존재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대마법사인 엘리세라면 설령 오우거들이 몰려온다고 해도 영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주둔지에서 조금 멀리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말을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영주의 걸음걸이 정도였기에 그리 멀리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강해가 계속 이 세계가 자신이 알던 킹덤 언더 워의 세계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인지, 지금의 정보로는 결론나지 않을 생각만 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엘리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흐음! 영주님! 누군가 저희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하죠?”
“응? 누구?”
강해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점점 해가 져가면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자신의 옆으로는 친위대의 기사들과 엘리세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주인 강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다들 강해가 무척이나 중요한 생각에 잠겨 있고 방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엘리세는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존재가 있는 것에 대해 강해에게 물어야 했다.
“숲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자가 있습니다.”
“아! 잡아.”
강해는 자신들이 아닌 숨어 있는 자가 있다는 것에 이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힌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엘리세에게 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강해의 허락이 있으니 엘리세는 거침이 없었다.
“얼음의 화살이여! 아이스 에로우!”
쩌쩌적!
엘리세의 몸 주위에서 8개의 얼음 화살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나무의 울창한 잎 속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크윽!”
신음 소리와 함께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강해를 호위하던 친위대의 기사들도 놀랐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것에 강해의 놀람은 컸다.
“엘리세. 어?”
강해가 엘리세를 바라보았지만 자신의 옆에 있던 엘리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사라졌던 엘리세는 곧바로 강해 자신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쿵!
“크윽!”
“반항을 할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아. 비록 마법사긴 하지만 어기간한 기사들보다 근접전에서도 강하거든.”
엘리세는 자신이 사로잡은 정체불명의 존재의 머리를 땅바닥에 박아 넣은 채로 강해를 싱긋 미소를 지은 채로 바라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과격하네.’
강해는 자신 앞에서는 수줍은 듯이 행동하면서도 하는 행동은 라이칸드보다 더 과격스러운 듯한 엘리세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보다 강해는 이내 처음으로 이 세계의 주민과 조우를 했다는 것에 엘리세가 제압 중인 존재를 바라보았다.
“네놈은 뭐냐?”
“크윽!”
강해의 질문에 대답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강해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인지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엘리세는 땅바닥에 처박은 정체불명의 존재를 손으로 들어 올려서는 허공에서 복부에 무릎을 박아 넣었다.
“커억!”
“영주님께서 질문을 하시잖느냐!”
이건 마법사인지 아니면 무투가인지 모를 엘리세의 공격에 강해는 놀란 듯이 바라보다가 숲 사이로 비춰 들어오는 달빛에 정체불명의 존재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응? 여자? 어! 엘프?”
강해는 그 정체불명의 존재가 엘리세와 같은 길다란 귀를 한 엘프임을 알아보고서는 상당히 놀라야만 했다.
“어머! 그러네요. 저랑 같은 종족이었네. 이거 미안한걸.”
엘리세도 상대가 엘프임을 알아보고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했지만 목소리에서는 전혀 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엘프의 예쁜 외모에 강해의 얼굴에 홍조가 들자 지금 죽여 버릴까를 고민할 지경이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