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실무적인 부분까지 상세하게 진행될 필요는 없었다.
커다란 줄기를 지정해 주고 실시하라는 지시를 내려주면 실무진들에 의해 진행이 된다.
그것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그것은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고 보다 개선되어지며 진행이 될 것이기에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기존보다 더 좋아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상황일 터였다.
아무튼 각 영웅들은 강해의 지시에 의욕적으로 영지의 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강해는 딱히 할 일이 있지 않았다.
강해가 내린 지시 자체가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고 몇 달은커녕 몇 년 이상은 걸릴 일들도 상당했다.
물론 식량 문제가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임을 강해도 알게 되었다. 일단은 얼마간의 식량을 확보하고 있었고 틈틈이 소원의 샘물에 가서 각종 자원들을 확보했다. 그것 말고는 강해에게도 뚜렷하게 식량을 확보할 수단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
순식간에 식량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바로 현질이었는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골드를 식량 자원으로 구입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정 위기 상황이면 사용하겠지만 딱히….”
강해는 초보자 가이드인 이케아와의 대화를 통해서 골드 구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해의 가장 큰 무기는 현재 현금으로 바꾼 골드와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는 각종 캐쉬 아이템들이었다.
물론 강해가 가진 캐쉬 아이템들이 무한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당히 많이 쌓여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다 소모가 되어 버릴 터였다.
“일단 올해 수확할 농작물들에 대해서 50% 생산량 증가를 걸자.”
강해의 마법(?)이 발휘되고 밀과 보리의 이삭들이 더욱 더 영글어지면서 커지기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버려진 땅은 오랜 시간 자연 상태였기 때문인지 상당히 비옥한 땅이었다.
거기에다가 기온도 온난하여 곡식들이 자라기에 좋았고 그 덕분에 안 그래도 풍년인 상태에서 강해의 캐쉬 아이템인 50% 생산량 증가를 걸어 버렸기에 대풍작도 기대해 볼 만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100만이 넘어가는 인구의 식량 소모를 감당하기란 어려웠지만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강해 나름대로 영지를 위한 일을 하고 난 뒤에 강해는 의욕적으로 다음 일을 계획했다.
“평민들이 입는 옷을 준비해 오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암행 순찰할 거니까. 화려한 거 말고 딱 평민들이 입고 다니는 그런 걸로 준비해 오세요.”
강해는 왕들과 영주의 로망인 암행 순찰을 하려는 것이었다.
‘심심해서 도저히 가만히 못 있겠다.’
며칠 바짝 일을 하고 나니 정말이지 강해 자신이 할 일이 없었다.
아니 있어도 간 크게 강해에게 일을 시키는 존재는 없었다.
차라리 주변에 다른 영지나 다른 왕국이라도 있었다면 외교적인 문제는 오직 강해만이 할 수 있기에 일거리가 생겼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별 다른 일이 없는 것이었다.
특히나 현대인인 강해에게 있어서 TV도 없고 게임도 없는 이 세계는 정말이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가만히 누워서는 시간만 때우는 것도 고역이었기에 강해는 일거리를 안 주면 자신이라도 일거리를 만들겠다고 생각을 했다.
“영지민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보다 영지를 위한 정책을 세울 수 있는 법. 듣는 것만으로는 직접 보고 체험을 하는 것만 못하지 않겠습니까.”
“오오! 역시 영주님의 혜안이 대단하십니다.”
신하들은 강해의 행동에 대단히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귀하신 영주님이 천하디천한 평민의 옷을 입고 그들의 삶을 직접 돌아다본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충격인 것이었다.
병사나 기사들도 사실상 도구나 다를 바 없이 다루는 세계의 가치관을 가진 상태에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르메니아 대륙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강해의 암행 순찰이 시작되었다.
“설마 다 따라 오려고?”
“예! 영주님.”
강해가 몰래 암행 순찰을 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강해의 안전을 위한 경호는 또 다른 문제였다.
친위대 기사 1개 단인 50명이 평민 복장이기는 하지만 화려한 검을 들고서는 강해를 따라오려는 것이었다.
강해는 아주 복작복작 몰려가는 것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강해도 위험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기에 일부 경호원을 대동하기는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 인원에 거기에다가 남몰래 숨어서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까지 하면 엄청나게 몰려가겠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암행은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였다.
“한 놈만 따라와! 이게 뭔 암행이야! 지금 나하고 장난해? 내가 우습게 보여!”
“아…아닙니다. 영주님.”
결국 폭발해 버린 강해 때문에 친위대 기사들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결국 기사 단장만 강해의 옆에 섰다.
“…….”
자신의 지시대로 한 명만 자신을 경호하게 되기는 했지만 기사 단장의 우락부락한 몸은 ‘나 보통 놈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모시는 분은 더 보통 분이 아니시다.’라고 경고를 하는 듯 했다.
“하아! 몸 제일 왜소한 애로 나 따라 오라고 해. 안 그럼 시종 한 명만 데리고 간다.”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온몸이 근육 덩어리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장비들을 다 착용하면 20kg이 가볍게 넘어가는데 그 무게를 버텨 내고 장시간 격렬한 전투를 치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근력과 체력을 필요로 했다.
비록 친위대 기사들이 영웅급들은 안 되지만 상당히 높은 등급의 병사들이었기에 어지간한 몬스터들 정도는 혼자서 요리를 해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그나마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몸매의 친위대 기사를 끌고서는 암행 순찰을 나설 수 있었다.
물론 강해도 모르게 수많은 기사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경호를 하게 될 터였지만 강해도 딱히 그들을 말릴 생각까지는 없었다.
“자! 일단 영지민들의 생활을 보려면 시장으로 가야겠지. 안내해.”
“알겠습니다. 영주님.”
강해의 성이라고는 하지만 이 거대한 성의 곳곳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강해는 호위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평민들의 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자가 많이 부족하다던데 그래도 꽤나 활발하네.”
“다 영주님의 덕분이십니다.”
“영주님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지.”
현실화되면서 어느 정도의 기반 산업들이 동시에 생긴 덕분에다가 성 자체의 레벨도 높아서 식량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상당히 활발한 상태였다.
그렇게 활발한 모습들에 강해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그래도 꽤나 성을 잘 발전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긴 현질 안 했으면 아직도 15레벨 정도나 될까 말까였을 텐데 말이야.’
지금 강해의 성의 레벨은 25레벨이었다.
킹덤 언더 워에서의 최대 성 레벨이 30이었기에 25만 되더라도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번성함은 어지간한 왕국의 수도 이상일 정도였다.
당연히 영주민들 각자가 자신들만의 생업들이 설정되어 있었고 그런 생업들 대로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상당 부분은 영지에 속한 농노이거나 영지 내의 노예들이었다.
아니 실상의 대다수는 영지에 묶인 노예들인 경우가 대다수 일터였다.
물론 강해는 그런 노예가 있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노예 제도가 없는 현대에서 살아왔기에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노예들로서는 한순간에 평민으로 풀린다면 당장의 잠자리와 식량을 얻지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할 터였다.
아직은 모르지만 강해도 오래지 않아 그런 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강해는 자신의 영지민들이 대부분 평민들이고 현대처럼 열심히 먹고 살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사과 사세요! 사과! 신선한 사과입니다!”
“천이 정말 좋아요! 부드러운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세요!”
시장의 좌판에 각종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 물건들을 구경하며 흥정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강해도 그 속에 끼어들어서는 구경을 시작했다.
당연히 영주 성에서 보던 것들과는 질적인 차이가 확연했지만 적어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에서 심심함은 어느덧 날아가 버렸다.
어차피 딱히 영지민들의 생활을 관찰한다는 것은 핑계였고 자신의 심심함을 풀게 하는 것이 목적인 강해였다.
“이야! 신선해 보이는 게 맛있어 보이네요.”
“아이고! 총….”
강해가 신선한 과일을 보며 입맛을 다시자 과일을 팔던 아낙네는 강해를 총각이라고 부르며 판매 수완을 발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그 아낙네는 흠짓 놀라며 얼굴이 창백해져 버렸다.
강해의 뒤에 있는 남자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 없는 외침을 시전 중인 것이었다.
―영주님. 영주님이라고!―
암행이 목적이지만 행여라도 아낙네가 강해에게 큰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당을 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 이거 얼마죠?”
당연히 강해는 자신의 뒤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알지 못하고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낙네에게 물었다.
“아! 예! 영….”
아낙네는 창백한 표정으로 영주님이라고 부르려고 했다가 이내 바로 뒤의 친위대 기사의 더욱 험악해진 표정에 고개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보고서는 울상을 지었다.
그녀도 대충 강해가 평민 복장을 하고 있는 것에 영주님께서 황공하게도 민정 시찰을 나올 것이라는 것을 눈치를 채기는 했다.
화려한 영주님 복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평민들이나 입을 복장이라면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거기에 더해 감히 영주를 사칭할 정도로 간 큰 존재는 생각도 할 수 없었기에 눈앞의 청년이 영주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도 가질 수 없었다.
그녀는 나름 똑똑했기에 지금 자신이 해야 할 행동들이 어떤 것인지 눈치채고 급히 대답을 했다.
잘못하면 다음 날의 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자신이 가면 자신들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무리 영주님이 자신들을 위해 준다고는 하지만 그 넘을 수 없는 벽은 거대하기만 했다.
“음! 어디 아프세요?”
강해는 창백하게 질려 있는 아낙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설마 자신이 영주임을 알아차렸다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아…아닙니다! 사과 말씀이시지요? 그러니까 50실….”
그녀는 감히 영주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번쩍하고는 들었다.
자기도 먹고 살아야 했지만 그것이 목숨 값보다 귀한 것은 아닐 터였다.
“그냥 드세요.”
결국 울상인 채로 그냥 가져가라고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아쉬운 그녀였다.
“예? 아니요. 당연히 사야지요. 얼마라고요?”
당연히 강해로서는 자신의 영지민을 삥 뜯게 되는 상황이 달가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영지 내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사과의 가격을 치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돈을 받고 목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그녀는 한사코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반짝!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아름다운 빛을 보았다.
“아이고! 내가 청년이 너무나 보기 좋아서 그러는 거니, 하나 가져가서 먹어요. 뭐 이런 거 가지고 계산을 하나요? 다 좋은 게 좋은 거지요.”
“예?”
강해는 갑자기 표정이 밝아진 아낙네가 건네주는 가장 크고 때깔도 좋은 사과를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그러고서는 감동을 받는 강해였다.
“우와! 인정이 넘치네.”
“이게 다 영주… 아니 도련님 덕분이십니다.”
친위대 기사의 아부에 강해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다 자신이 정치를 잘 하니 영지민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인정이 넘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뭐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하하하!”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강해는 공짜로 받아서 더욱 더 맛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맛있는 사과인지 기분 좋게 사과를 깨물어 먹었다.
그리고 과일을 팔던 아낙네는 친위대 기사가 강해 몰래 던진 금화에 입이 더욱 더 벌어졌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