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내의 모든 존재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단 한 명의 존재가 바로 영주였다.
상대가 귀족이건 평민이건 노예건 그것은 상관이 없었다.
영주가 죽으라고 명령하면 그냥 죽어야만 했다.
적어도 강해는 영지의 영주민들에게 그런 절대적인 존재로 비춰지고 있었다.
도망을 간다고 해서 도망을 갈 수도 없는 것이었고 영지를 버리고 다른 영지로 도망을 가더라도 영주를 모욕한 자는 그 영지에서도 받아 주지도 않았다.
아니 강해의 그동안의 행동을 본다면 자신들이 도망간 영지를 군대로 쓸어버리고서는 자신들을 끌고 와 버릴 터였다.
아직 강해의 영지가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모르는 영지민들로서는 킹덤 언더 워에서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의 모든 성이 강해의 약탈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덜덜덜!
그 사실을 아는 칸빈으로서는 자신의 앞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강해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죄….”
“입 닥쳐.”
말을 하려다가 강해의 명령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서는 그대로 무릎 꿇고 강해의 처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자신들의 믿는 뒷배가 온다고 해도 상대가 될 리가 없는 존재였다.
아니 영주인 강해를 보자마자 격렬하게 부정을 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엎드려 강해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내 강해의 입이 열렸다.
“살고 싶어?”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살 길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 있는 칸빈이었다.
아니 자신의 조직원들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조금은 있는 칸빈이었다.
어차피 영주를 속인 상황에서 자신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살고 싶습니다. 영주님.”
“흐음! 솔직해서 좋네. 맥주 맛이 좋아서 운이 좋은 줄 알아.”
정말이지 사소하지만 맛있는 맥주에 인내심을 발휘하는 강해였다.
아니 사실 강해라고 해서 사람을 죽여 봤을 리는 없었다.
게임과는 달리 눈앞에 있는 사람 같은 이들을 자신이 죽이라고 명령을 내릴 만큼 아직은 간이 큰 강해가 아니었다.
‘명령을 내리면 정말 죽일 테니까.’
강해는 헬프만을 힐끔 쳐다보았다.
죽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칸빈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강해는 자신의 얼굴조차 마주보지 못한 채로 머리를 땅에 박고 있다시피 한 칸빈파를 향해 말을 했다.
“니들 말고 다른 조직 애들 어디 있는지 알지? 우리 조직이 전부 접수해야겠으니까 말해.”
강해는 이 기회에 자신의 성의 모든 어둠의 조직들을 일망타진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니들 뒷배 봐 준 개새끼 누군지 말해.”
이들은 안 죽이더라도 그 자는 강해도 용서 할 수 없었다.
거짓말 따위는 소용없었다.
숨길 수도 없었다.
그들 간에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결국 그렇게 하나하나 자신이 알고 있는 조직들과 함께 자신과 연줄이 있던 경비대장의 이름까지 토해내는 칸빈이었다.
정말이지 재수가 없었지만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모든 것을 말하고 나자 왠지 모르게 개운해졌다.
“들었지? 잡아 와. 아! 죽이지는 말고.”
“예! 영주님!”
강해가 잡아오라는 말에 헬프만은 곧바로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 주변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던 친위대 기사들을 동원해서 각 영지 내의 어둠의 조직들을 일망타진하러 떠났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는 헬프만이 떠났다고 해서 칸빈파가 안도를 할 수는 없었다.
평민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다들 기사급들인 덩치들이 여전히 강해의 명령에 몸에서 머리를 뽑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강해는 그렇게 긴장으로 인해 온몸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조직 폭력배들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니들은 이제 뭐하고 싶냐?”
강해 자신에게 들켰으니 앞으로 남들 등 쳐먹으며 살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칸빈파의 조직원들은 강해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을 하지 않는 칸빈파에 강해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하아! 내 말이 아주 개똥으로 들리지? 대답도 안 하네. 내가 살려 준다고 그러니까 이제 겁 낼 필요도 없나 보지?”
“아닙니다! 영주님!”
“그렇습니다. 영주님! 절대 아닙니다!”
기사들의 살기도 살기였지만 강해의 말이 주는 압박감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악을 쓰다시피 대답을 하는 칸빈파의 조직원들에 강해는 그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가 자신의 잔이 비워졌다는 것에 한마디 했다.
“일단 맥주 한 잔 하고…음! 안주도 조금 만들어 와 봐.”
강해의 말에 또다시 이해를 못하다가 강해가 헛기침을 하는 것에 번개같이 맥주를 가져오는 종업원이었다.
당연히 요리사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해독!’
강해는 자신의 앞에 대령한 맥주잔에 자신의 왼손에 키워져 있는 반지를 살짝 가져다 대었다.
‘마법이 좋긴 좋아.’
독이 있는 음식이나 음료를 해독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반지였다.
그것이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먹고 마실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영주가 잘못되면 자신들 모두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독을 탈 생각 따위는 꿈도 못 꾸는 칸빈파였다.
일단 영주가 자신들을 살려는 주겠다는 말을 했으니 바짝 엎드려서는 영주님의 지금 기분을 맞춰 줘야만 했다.
“응? 이건 뭐지?”
이번 것은 방금 전의 흑맥주와는 조금 다른 색의 맥주였다.
“바…방금 딴 호…호프입니다. 마…만드는 것이 까…까다로워 마…많이 만드는 것은 아…아니지만 마음에 드실 겁니다. 영주님.”
귀한 손님이나 길드장인 칸빈이나 아주 어쩌다가 마시려고 만들어 놓은 고급 맥주를 가져온 것이었다.
자신들이 살려면 영주의 기분을 무조건 좋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칸빈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자…잘했다.’
칸빈은 까마득한 막내의 행동에 잘했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자신도 아껴 먹을 만큼 최상급의 맥주였으니 영주님도 마음에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호오! 그래?”
강해는 맥주의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에 입 안에서 침이 고이면서 한 모급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꿀꺽!
목울대가 요동을 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혀를 타고 느껴지는 쓰디쓴 맛과 함께 깊이가 있는 강렬한 풍미가 강해의 뇌를 강타했다.
“크으윽!”
“여…영주님! 괜찮으십니까?”
강해가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기사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강해에게 다가오면서 주점의 바닥에 엎드려 있는 칸빈파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영주님이 잘못되면 그냥 죽이지는 않겠다는 기세였다.
당연히 칸빈도 영주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듯이 몸을 비트는 강해는 잠시 후….
“우와아! 이거 죽이네!”
그 말과 함께 기사 하나가 칸빈의 목을 붙잡는 것에 급히 외쳤다.
“아니! 죽이라는 것이 아니고! 스톱! 멈춰!”
“커억! 컥!”
단 일초만 늦었어도 목뼈가 부러져 버렸을 칸빈을 살린 강해는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칸빈을 쳐다보았다가 아쉬운 듯이 비어 버린 맥주잔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샷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만큼 강해에게는 충격적인 맛이었다.
‘어떻게 만든 거지? 이거? 100% 보리하고 호프로만 만든 맥주도 많이 마셔 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제조법이 궁금할 지경인 강해의 모습에 용기를 낸 종업원이 말을 했다.
“한 잔 더 가져다 드릴까요?”
움찔!
강해는 그것이 뇌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불쾌해지는 강해의 표정이 굳어갔고 그런 강해의 모습에 다시금 주변의 분위기가 차디차지기 시작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진 분위기에 강해는 칸빈파를 바라보았다.
‘죽이기는 아까워. 그럼 이 맛 좋은 맥주를 못 마시는 거잖아. 그렇다고 그냥 용서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강해는 순전히 맥주 때문에 죽이거나 감옥에 쳐 넣고 싶다는 생각은 멀리하고서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순간 떠오른 좋은 생각에 입을 열었다.
“감히 본 영주의 구역에서 영지민들을 괴롭힌 네놈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고….”
영지 내에서 영주의 말은 곧 법이었다.
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영주의 결정이 그 법보다 우선일 정도였으니 지금 강해의 판결은 사실상 그들에 대한 처벌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칸빈파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며 강해의 처벌을 기다렸다.
“그렇다고 죽이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그것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다.”
꿀꺽!
다행히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안도가 되는 칸빈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놈들의 행동이 쓰레기 짓임은 분명하다. 인정하느냐?”
“인정합니다. 영주님. 부디 선처를….”
인정 안 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인정한다는 말에 강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판결을 했다.
“좋다! 네놈들이 쓰레기 짓을 한 것이기는 하나 너희들도 나의 영지민. 이 모든 것은 나의 다스림이 부족한 것도 있을 터이니 마지막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감사하옵니다!”
“감사합니다!”
영주의 관대함에 긴장마저 풀리는지 눈물마저 흘리는 칸빈파의 조직원들이었다.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서 살아났으니 그 심정은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너희들은 앞으로 지금까지 쓰레기 짓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영지 내의 모든 쓰레기를 처리하라.”
“예?”
칸빈파는 강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무엄하게도 강해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쓰레기를 처리하라는 것이 자신들과 같은 조직 폭력배들을 자신들이 직접 상대를 하란 것인지 아니면 길거리의 진짜 쓰레기를 치우라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 대부분은 앞의 조직 폭력배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 하라는 것으로 이해한 상태였다.
문제는 그런 일은 자신들보다 강해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이나 병사들이 더 잘 할 터였기에 왜 자신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지 이해 못한 것이었다.
“쓰레기 치우라고 쓰레기. 오늘 보니까 길거리에 쓰레기랑 오물들이 꽤나 많던데 그거 치워. 아! 일당은 챙겨 줄 테니까 먹고 사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그래. 청소부. 니들 직업은 이제 청소부다. 정년까지 청소부로 살라고.”
“…….”
강해의 말에 칸빈파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무엇인지 마침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중세의 도시들은 그다지 깨끗한 편이 아니었다.
현대처럼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가 된 것도 아니었고 공중도덕이라는 관념 자체가 희박했기에 길거리들은 그다지 깨끗한 모습이 아닌 것이었다.
강해의 영지도 전문적으로 청소를 하는 청소부들이 없었기에 강해는 이 기회에 사회의 쓰레기들을 모아서 쓰레기를 청소하며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물론 노예들에게 시키면 될 일이었지만 노예가 있는지도 몰랐고 있다는 것을 알면 폐지를 할 강해였기에 조금 힘들고 궂은일을 할 이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강해의 영지에 청소부가 생기면서 강해는 자신의 결정에 나름 만족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헬프만에 의해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은 채로 잡혀 온 다른 조직 폭력배들을 보고서는 한 마디 말을 했다.
“흐음! 니들도 맥주 잘 만드냐?”
그 날 강해는 칸빈으로부터 맥주통을 한 가득 챙겨서는 영주성으로 복귀를 할 수 있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