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버려진 땅
“이…이런 수가.”
“몬스터 숲의 너머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몬스터 숲의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올 수 없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사실 몬스터 숲의 건너편에 도착을 했던 이들이 있기는 했었다.
아르메니아 대륙의 수많은 역사 속에서 영웅들은 존재했고 위대한 탐험가들도 있었으며 마왕을 무찔렀던 용사들도 존재했었다.
그런 그들이 몬스터 숲을 넘어가지 않았을 리는 없었고 그들에 의해 몬스터 숲의 너머에 대해서 희미하게나마 전해져 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이었던 영웅 아킬은 두 눈은 풀리고 머리는 산발을 했으며 자신의 애병은 반으로 부러진 채로 돌아와 외쳤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그 몬스터의 숲 너머를 보고 온 자들이 미쳤다고 여겼다.
뛰어난 영웅들이고 탐험가들이며 용사들이었던 그들이 미쳐 버릴 정도로 위험한 곳.
그렇게 몬스터 숲은 더욱 더 공포스러우면서도 신비한 곳이 되어 버렸고 결국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
버려진 땅.
그곳이 바로 라그나로크로 불리며 지옥으로 가는 입구가 있다고 믿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또다시 아르메니아인들이 몬스터 숲의 너머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거대한 성이 존재했다니.”
원터는 자신들의 왕국의 수도보다 더한 성세를 자랑하는 성의 위용에 경악을 했다.
그런 원터 뿐만 아니라 아멜라 공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듯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제국의 황도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성이었다.
“꽤나 늦군.”
헤로스는 숲을 벗어나자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인마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잠시 후에 다가온 기사단에 헤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이칸드님께서는?”
“헤로스님께 인사드립니다. 라이칸드님은 영주님의 명령으로 잠시 성을 비우셨습니다.”
영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에 헤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칸드나 엘리세에게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그들은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헤로스는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쳇! 자랑하려고 했더니만 아쉽군요.’
은근히 세 존재들 간에는 경쟁심이 있었다.
힐끔!
기사단을 이끌고 있던 수석 기사는 아멜라 공주 일행을 신기한 듯이 힐끔거리며 바라보고서는 이내 헤로스에게 말을 했다.
“영주님께서 즉시 오시라고 하십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들은?”
헤로스는 이내 기사들이 무기를 들어 올려서는 아멜라 일행과 검은 복면을 쓴 추적자들에게 들이미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무표정으로 변하였다.
자신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자는 없었기에 그들의 행동이 영주님의 의지라고 느낀 것이었다.
영주님이 당장 그들을 죽여 버린다고 해도 헤로스는 딱히 별 다른 감흥도 없었다.
“무슨?”
“우…우리는 적이 아닙니다!”
원터는 싸늘하게 자신들을 바라보며 무기를 겨누는 기사들의 모습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 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분명한 기사단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 기사들 하나하나의 기도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서는 긴장을 해야만 했다.
헤로스라는 남자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워낙에 실력 차가 컸기에 직접적으로 실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의 경우는 왕국 내에서도 손꼽았던 자신과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런 이들이 한둘도 아니고 수백 명은 넘어 보였으니 이 미지의 왕국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는 영지에 불과했지만 원터나 다른 아르메니아인들의 눈에는 하나의 왕국이나 제국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그런 이들이 갑작스럽게 자신들에게 적의를 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헤로스의 레인저들에게 붙잡혔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나쁜 대우를 받지는 않았다.
그들은 몬스터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 주었고 먹을 것이라든지 휴식도 충분할 정도로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비록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기에 조금씩 안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주라는 자에게 자신을 안내하려고 한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영주와 대화만 잘된다면 살 길이 열릴 뿐만 아니라 잘만 한다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이 자들을 모두 감옥으로 끌고 가라!”
“이보시오! 영…주님을 뵙게 해 주시오! 우리는 헤론 왕국에서 왔습니다.”
원터는 눈앞의 기사에게 애원을 하듯이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원터의 말에 기사들의 얼굴에서 적의가 분노로 변해 버렸다.
퍼억!
“크윽!”
원터는 자신의 가슴을 내지르는 발길질에 땅바닥으로 몸을 굴러야만 했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하는 순간 자신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직감에 피하지 않았다.
“이 미친놈이 감히 니까짓 것들이 영주님을 뵙겠다고? 정말이지 기가 차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꼴에 기사인 것 같기는 한데 고작 그 정도로 존엄하신 영주님을 뵙겠다니.”
원터는 그런 기사들의 말에 이해는 갔다.
‘제길! 이런 작자들 수백을 부릴 정도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군.’
상대는 영주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원터는 이 성의 왕이라고 여겼다.
당연히 왕이라는 존재가 외지인이 보고 싶다고 마음대로 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당장 자신이 모시던 선왕을 향해 어떤 이름 모를 기사가 찾아와 뵙겠다고 하면 지금의 이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 터였다.
원터는 창백하게 질려 있는 아멜라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정체를 밝힌다면 어쩌면 영주라는 자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밝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있어서 아멜라 공주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런 공주를 정체도 모를 왕국의 왕에게 빼앗기거나 농락당하고 죽음을 당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렇게 그들은 기사들에게 끌려가 지하 감옥에 갇혀야만 했다.
“조용히 있어라. 괜한 소란 피우면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지하 감옥의 간수의 으름장과 함께 두터운 철문이 닫히고 통로의 벽에 걸린 횃불 하나만이 희미하게 지하 동굴의 넓은 곳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단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원터경.”
살아남은 기사들과 아멜라 공주의 말에 원터는 이를 악물며 방법을 찾으려고 했지만 별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외성으로 들어오기 전 눈은 가려졌고 기사들에 의해 빈틈없는 경계를 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무기는 전부 빼앗긴 상황이었고 설령 무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많은 군대를 상대로는 가망도 없었다.
“일단 이 성의 영주를 만나야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은 이 성의 영주를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원터였고 그런 원터의 말에 다들 동의를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만난다는 겁니까?”
아멜라 공주의 질문에 원터는 높은 사람들의 생각을 떠올리며 말을 했다.
“관심이 가질만한 것을 내 놔야겠지요. 그 영주라는 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을….”
원터 자신이 모셨던 선왕이나 다른 고위 귀족들의 습성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원터 자신도 기사이면서 고위 귀족이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이대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 단 한 번쯤은 우리를 만나고자 할 겁니다. 그때 흥미를 느끼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곳에서 나갈 수 없겠지요.”
“히익! 싫어! 그런 건!”
아멜라 공주는 온통 어두컴컴한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아멜라 공주의 비명에 다른 기사들도 침울하니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전장에서 죽었으면 죽었지 이런 감옥에서 평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걱정 마십시오. 분명 그 남자나 이곳의 기사들이 우리를 보았던 그 눈빛이라면 그들도 우리처럼 몬스터 숲 너머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이용한다면 이들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의 이것은 우리를 심리적으로 약하게 해서 우리로부터 정보를 빼 내가려는 의도일 겁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말 실수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터는 분명 단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자신들도 이 성의 사람들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이들도 자신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그렇게 미지에 대한 것은 보통은 공포로 다가오지만 권력자들에게는 그런 공포보다는 먼저 궁금증으로 변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쉽게 자신들의 모든 것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 이렇게 압박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정 안 된다면 공주를 넘기는 수밖에 없겠지. 이 정도의 성을 가진 왕이라면 헤론 왕국의 왕위에 대해서도 흥미를 보일 터.’
왕가의 핏줄은 이제 오직 아멜라 공주뿐이었다.
그녀가 남자라면 좋았을지도 몰랐지만 그녀는 공주였고 결국 왕가의 피를 잇기 위해서는 다른 권력 가문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권력 가문이 지금의 왕권을 찬탈하려고 하는 이보다 강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원터는 추적자들을 따돌리고 난 뒤에 자신이 생각했던 자에게로 갈 생각이었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지만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제는 그 누가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설령 이 성의 영주라는 자가 오늘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중늙은이라고 할지라도 아멜라 공주를 넘길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직 자신의 복수만 할 수 있다면 과거의 선왕의 유지조차도 이제는 외면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오래지 않아 분명 우리를 부를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린다면 반드시 기회는 오게 될 것입니다.”
원터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다들 조금은 안심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그들은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크크크큭!”
“누구냐?”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오싹한 웃음소리에 원터는 누구냐며 외쳤지만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절그렁!
그리고 들려오는 철이 부딪치는 소리에 아멜라 공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까아악! 사…사람이!”
양팔이 벽에 걸린 족쇄에 묶여져 있는 온몸이 피투성이의 남자였다.
“크크큭! 정말이지 오랜만이군. 이 뇌옥에 들어온 자들이 말이야.”
“너…너는 누구냐?”
원터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했던 말을 모두 들었을 자에 경계를 하며 노려보았다.
“나? 크크큭! 알아서 뭐하게? 어차피 니 놈들이나 나나 모두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을 건데 말이야. 크크큭!”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에 원터는 몸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냐니. 니 놈들 이 성의 영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가 보군. 좋아 알려주지. 그자의 잔인함을 말이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의 음산한 목소리가 아멜라 공주와 원터들의 귀로 파고들어왔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