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라 공주와 원터는 다시 감옥에 갇혔다. 이튿날에도 강해는 전날의 숙취 때문에 아멜라 공주를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 콩나물 국밥 먹고 싶다.”
마법을 사용하면 숙취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강해는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다며 전속 요리사의 머리를 쥐어뜯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영주님께서 콩나물 국밥을 먹고 싶어 하신다. 만들어라.”
“…….”
콩나물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콩나물 국밥을 알 리가 없었지만 요리사는 강해가 먹고 싶은 것을 만들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콩나물이 뭔지 콩나물 국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목숨을 걸고 강해에게 물어야만 했다.
“제 경험이 일천하여 영주님께서 원하시는 콩나물 국밥을 알지 못하오니 영주님께서 알려 주시면 있는 힘껏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지 목숨을 건 행동이었지만 다행히 강해는 그런 요리사를 칭찬했다.
“아! 정말 만들어 줄려고요? 헤! 아! 콩나물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콩이 자라면 뿌리가 나오잖아요, 싹이 나오기 전의 딱 그 상태. 거기에다가 음 노란 콩… 그래. 그 노란색 콩이 뿌리가 자란 상태가 콩나물인데 그 콩 이름은 잘 모르겠네. 아무튼 다시마? 아 그런 게 없겠지. 그러니까 생선 대가리 말린 것하고 다시마? 그걸 구할 수 있으려나? 미역 비슷한 바다에서 나는 해초인데 아무튼 그거하고 무하고 양파도 넣었었나? 그리고 멸치라고 작은 생선 말린 걸 넣고 아! 대파도 넣었지? 아무튼 그걸 잘 삶아서 육수를 만들어요.”
“예! 영주님.”
요리사는 강해가 알려 주는 것을 열심히 적으며 연신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 다음에 육수를 끊이면서 아까 말한 콩나물을 넣고 끓여요. 그런 뒤에 매운 맛이 나는 고춧가루를 넣고, 쌀. 알려나? 그 쌀로 밥을 해서…. 밥 하는 법은 쌀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 쌀 위로 손을 얹어서, 물을 손등보다 조금 더 찰 만큼 넣고 불에 삶으면 꼬들꼬들한 밥이…. 아 배고프다.”
그렇게 강해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콩나물 국밥을 만드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동안 양식 아닌 양식으로 입이 질려 있었으니 콩나물 국밥이 아니라 밥에 김치만 나와도 만족할 상태였다.
그렇게 강해는 일단 한번 만들어 보라며 자신의 요리사를 격려했고 요리사는 강해가 알려 준 대로 열과 성을 다해서 콩나물 국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뭐 처음부터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이러다 보면 괜찮은 요리가 나오겠지.’
강해는 앞으로 평생을 이곳에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 적어도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은 마음껏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게 콩나물 국밥을 기다리며 기분 좋아지고 있을 때 어제의 아멜라 공주를 떠올리는 강해였다.
“흐음! 어찌한다.”
강해의 결정이 필요한 문제이기에 그 누구도 강해에게 아멜라 공주와 원터들에 대한 대책을 물어보는 이는 없었다.
그냥 그대로 감옥에 가둬 놓고 굶겨 죽인다고 해도 강해의 신하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터였다.
“아! 그 암살자라고 하던 놈들도 잡아 왔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영주님.”
강해는 한쪽 말만 듣고는 모른다는 생각에 암살자라는 이들을 데려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미 헤로스가 아멜라 공주들을 사로잡아 영지로 보고를 올렸을 때부터 이런 사항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곧바로 감옥에 집어넣어 버린 것도 강해였고 아멜라 공주와 원터들이 갇힌 지하 감옥에 먼저 들어가 연기를 했던 카르케도 강해였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 집 안방 나가듯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었고 별다른 제지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해를 보호하기 위해 실력자들이 은밀히 따르느라 고생을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강해가 그런 행동을 할 필요도 없이 명령만 내렸다면 얼마든지 강해가 얻었던 정보들을 얻어낼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고문이라든지 지독한 고문이라든지 아주 지독한 고문으로 말이다.
‘그냥 해 보고 싶었어.’
하지만 단지 해 보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릴 넘치는 탈주극을 벌인 것이었다.
그렇게 강해가 얻어온 고급 정보(?)들을 전해 받은 정보부 부장의 침도 못 바를 정도로 휘둘러진 혓바닥에 강해도 흡족해졌다.
“하긴 내가 안 해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니거든.”
“그렇구 말고요. 영주님 아니셨으면 그런 고급 정보를 얻는 것이 가당키나 했겠습니까?”
“하하하! 아니 뭐 그럴 정도까지야!”
강해는 자신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을 하면서 헤로스가 붙잡아온 암살자 무리들과 대면을 했다.
이들한테까지도 연기를 하며 고급 정보를 얻을 수고를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검은 두건들은 이미 다 벗겨진 상태였고 우악스러운 기사들의 손에 끌려나온 암살자들에 강해는 살짝 혀를 찼다.
“얼굴이 저게 뭐야? 감옥에 넣으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들겨 패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죄송합니다.”
이미 한차례 만져 주기라도 한 것인지 엉망이 된 모습들에 강해는 얼굴을 찡그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암살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영…영주님. 위험하십니다.”
강해가 비록 묶여 있다고는 하지만 암살자들의 옆으로 다가가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기사들이었다.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어차피 이자들이 나를 암살하러 온 것도 아니고 이들이 왜 그 아멜라 공주였나? 그 여자를 암살하려는지 그것도 사연을 들어 봐야 아는 법이잖아.”
강해의 말에 암살자들의 리더인 게런은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자신의 목을 무언가가 훑고 지나가는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자신이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면 그대로 자신이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목이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보통이라면 당신들이 나쁜 놈들이겠지만 말이야. 사실 그렇거든. 누가 나쁜 놈인지 아닌지는 양쪽 말을 다 들어 보고 난 뒤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법이지. 그러니 당신들이 조금 비겁한 짓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악당이라고 볼 수는 없는 법이잖아.”
강해는 게런의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 주고서는 다른 암살자들도 마찬가지로 풀어 주었다.
“좋아. 한번 해명해 봐.”
그렇게 풀어주고 나서 강해는 그들 바로 앞에 주저앉아 게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강해가 멍석을 깔아 주었다고는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임무 완수는 완전히 물 넘어간 듯싶었고 더구나 이곳은 몬스터 숲 너머로 자신들의 주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더욱이 주변의 살벌한 존재들을 보고 있자면 자신들의 주인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까지 될 정도였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난 당신들하고 별 상관도 없고 나한테 피해만 입히지 않는다면 굳이 건들 생각도 없으니까 말이야. 다만 아무래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거야. 이쪽이 저쪽 너머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
강해는 자신이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게런을 바라보았다.
“저…정말 돌아갈 수 없는 겁니까?”
“어! 돌아갈 거면 죽어서 가야 할 거다.”
단호한 강해의 말에 게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유해 보이는 편이었지만 주변의 신하들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주인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듯이 조금의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는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주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응? 아! 그래?”
강해는 콩나물 국밥이 다 되었다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걸음을 옮기지 않고 다시 게런을 바라보았다.
암살자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강해의 눈에는 순박한 시골 아저씨 같아 보이기만 했다.
물론 암살자의 분위기를 풍기기만 해도 당장에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었기에 게런은 최대한 강해 앞에서 저자세로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흐음! 뭐 사실 나한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이봐! 그 아멜라 공주하고 원터였나? 그 기사들도 데리고 와라. 같이 식사를 할 것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불만이 있더라도 강해가 하겠다면 하는 것이었기에 다른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강해의 오른쪽으로는 아멜라 공주들이 그리고 왼쪽에는 아멜라 공주를 암살하려고 했던 암살자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카르케님?”
아멜라 공주는 화려한 식당으로 끌려와서는 가장 상석에 어제 밤 식사를 같이 했던 강해가 앉아 있는 것에 망연자실했다.
정신을 차린 원터로부터 듣기는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가 이렇게 되자 극심한 배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믿었건만 자신이 이런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왈칵 눈물이 솟구쳐 나왔다.
“…….”
강해는 자신을 노려보며 펑펑 눈물을 흘리는 아멜라 공주을 보고서는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이 생각하더라도 나쁜 놈이나 할 것 같은 행동에 강해는 헛기침과 함께 아멜라 공주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
너무 성의 없는 사과에 아멜라 공주도 기가 막혔지만 그런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아멜라 공주는 외쳤다.
“그럼 저희들을 돌려보내 주세요.”
“안 돼.”
강해는 당연히 안 된다며 거부했다.
“왜요?”
당돌하기까지 한 그녀의 말에 강해는 머뭇거렸지만 다른 이들은 감히 강해의 말에 말대답을 하는 그녀를 그냥 봐주지 않았다.
“일국의 공주라고 해서 예우를 갖춰 주었더니 감히 어디서 그 버릇없는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거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과 함께 싸늘한 표정의 여인이 걸어 들어왔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영주님.”
“어! 엘리세.”
강해에게는 봄바람 같은 그녀였지만 강해 이외의 존재에게는 얼음 마녀라고까지 불리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였으니 아멜라 공주의 당돌함을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당장 그녀의 등장으로 강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숨 막힐 듯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기가 질려 버린 것이었다.
“자자! 밥 먹는데 분위기가 그리 좋진 않네. 뭐 어제의 일은 일단 사과하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아마 고문을 하겠다고 설치는 친구들이 많아서 말이야.”
강해의 말에 그들은 찬기가 풀풀 나는 엘리세의 눈빛을 외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영주님. 번거롭지 않게 저에게 맡겨 주시면 저들의 기억을 모조리 뽑아낼 수 있습니다만.”
“마법으로?”
“예!”
강해는 엘리세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혹시 부작용은?”
“있지만 뭐 상관없지 않을까요?”
엘리세는 환하게 웃으며 부작용은 있다고 말하니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백치가 되어 버리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다들 얼굴이 창백해져 버릴 터였다.
“뭐 그럴 필요 있나? 사실 궁금하기는 하지만 꼭 알 필요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영주님. 에르카샤가 이번에 식량이 조금 부족할 것 같다고 하던데 말이죠.”
강해는 그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 부족이었다.
‘결국 약탈을 해야 하는 수밖에 없는가?’
강해는 긴장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멜라 공주를 보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해가 이들을 통해 확인하려는 것이 바로 그들의 군사력이었기에 군사력이 자신보다 약하다면 킹덤 언더 워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차별 약탈을 감행하려던 것이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