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몬스터 숲을 넘어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에는 힘들었다.
킹덤 언더 워처럼 그냥 ‘어택 땅’을 찍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냥 컴퓨터 게임처럼 데이터가 사라지고 그 데이터를 클릭 몇 번으로 보충해 내는 것이라면 강해도 아무런 부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었을 터였다.
물론 자신의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강해이기에 공격을 해 온다면 그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상대방을 짓밟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상황에서 그런 움직임으로 자신의 것이 부서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쉽게 결정을 내리기에는 어려웠다.
“라이칸드.”
“예! 영주님! 하명하십시오!”
누구보다 강해 보이는 강해 자신의 영웅이었다.
킹덤 언더 워에서도 영웅은 죽는 경우가 없었기에 병사들은 죽더라도 영웅들은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 된다면 영웅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었다.
‘따뜻하다.’
강해는 라이칸드의 단단한 팔뚝을 만져 보았다.
자신의 그런 행동에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미동 없이 순순히 자신의 몸을 내 주는 충직한 신하였다.
물론 라이칸드에 엘리세가 ‘감히 영주님을 ….’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강해는 라이칸드의 몸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에 그가 단순히 데이터만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라이칸드. 만일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지?”
라이칸드는 이제 고작 20대의 젊디젊은 자신의 영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영주님께서 잘못된 판단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저는 영주님의 곁을 지킬 것입니다. 저는 영주님의 검이자 방패입니다.”
강해는 자신이 그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검과 방패가 되겠다는 라이칸드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대는 나의 동료이자 믿을 수 있는 친구이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다. 그런 하찮은 도구가 아니야.”
“여…영주님.”
라이칸드는 강해의 말에 또다시 감격하여 울컥울컥하는 가슴을 부여잡고 더욱 더 강해에 대한 충성심을 불태웠다.
이대로 지옥의 발록이라도 잡아오라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기세였다.
강해는 전쟁으로 많은 피해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전쟁이 아니라면 가만히 앉아서 굶주려 죽게 될 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사력을 다해서 식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인구를 유지할 수 없었다.
외성 밖의 농경지는 대단한 풍년을 이루고 있었지만 식량의 절대량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지금 당장이야 버틸 수 있겠지만 아무런 대비책도 세워 놓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 상상하기 싫은 일들이 벌어지게 될 터였다.
강해가 제왕학이나 경영학 같은 것을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짐작을 하고 있었다.
“병력 훈련을 철저하게 시키도록.”
“옛!”
병력 훈련은 훈련관 영웅인 니르갈의 권한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칸드에게도 병력 훈련을 지시한다는 것은 조만간 전쟁을 개시하겠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라이칸드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지만 자신들의 주인인 강해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멍청이들은 영주님께서 약해지셨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단호하고 강인하신 분이시다.’
라이칸드는 자신이 강해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정신적으로나 그 그릇으로서는 한참 부족하다고 여겼다.
자신을 가득 담고도 부족해서 자신과 같은 급의 신하들마저도 다 담아 낼 수 있는 강해야 말로 진정한 제왕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강해가 이 대륙의 모든 것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라이칸드만이 아니었다.
‘공주라. 잘만 이용하면 저 숲의 너머에 교두보를 만들 수 있겠지. 어차피 몬스터들 따위야 쓸어버리면 되는 일이고 말이야.’
강해의 영웅들 대부분이 모종의 계획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강해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해야 만이 불협화음 없이 움직일 것이었지만 그런 강해가 선택할 선택지를 늘리는 것은 신하들인 자신들의 임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헤로스는 헥사의 너머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고 엘리세는 강해 몰래 아멜라 공주와 원터들을 통해 그들의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나중에 혹여라도 강해가 다른 인간들의 왕국으로 넘어갈 때를 대비하는 것이었다.
물론 강해가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다들 깔끔하게 포기한 채로 이곳에서 그냥 옹기종기 모여 살 생각이었다.
“전쟁도 상관없고 평화도 나쁘지는 않아. 영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영웅들이 그렇게 조금은 속 편하게 강해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강해가 알았다면 속 터져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주의 일이었기에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게임처럼 손쉽게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강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 영지의 살림을 담당하는 에르카샤가 그의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소식을 가져왔다.
“영주님. 영주님께서 준비하라고 하신 축제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응? 아! 축제 준비가 다 되었다고요?”
축제라는 것이 놀고먹고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상당한 물자를 소모하는 행위였다.
물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상당했다.
일단 영지민들 간의 화합과 동질성 재고 및 불평불만 제거 등 무형적 이익이 극대화되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강해가 소원의 샘물에서 소원을 빌어 식량과 자원을 보충하고 부족한 자원을 인벤토리 안의 자원 상자로 보충해 준다고는 해도, 그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기란 어려웠다.
그렇기에 강해는 외부와의 접촉을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나 약탈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킹덤 언더 워처럼 이 세계로 와서도 끊임없이 전쟁만을 반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미안한 마음 때문에 강해는 영지민들에게 하루 정도는 축제를 즐기게 해주려는 것이었다.
“좋아! 그럼 일주일 뒤에 축제를 시작해. 부족한 물자는 말하고. 아직 자원 박스가 남아 있기도 하고 소원의 샘물로 보충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건 임시방편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에르카샤가 물러나고 강해는 이제 자신의 전용 공간이 다 된 영주성의 테라스 난간에 앉아 영주성 밖을 바라보았다.
활기차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물론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그 내부에서는 슬픔도 있을 것이고 아픔도 있을 것이었다.
강해가 이 거대한 성의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다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끔찍한 상황을 만들 수는 없지. 내 걸 지키려면 싸워야 하는 법이니까.’
강해는 마주 보기 싫은 현실에서 도망가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알고 있다고 그것을 실행 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가혹한 결정을 내려야 자신의 성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축제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서야 강해의 레이저 부대는 마침내 몬스터 숲을 관통해 나갈 수 있었다.
“숲이 끝났습니다.”
“후우! 생각보다 지독한 곳이군. 거의 17~19 등급의 몬스터들까지 다수 보이다니.”
강해의 군대도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아무리 강해가 가진 궁병 클래스 중에 최상급의 병사들이라고 해도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트리플 S급의 영웅인 헤로스가 도와주었다고는 하지만 간간히 성으로 돌아가야 했고 몬스터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나마 궁병 클래스라고 하더라도 기사급의 병사들이었던 덕분에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무사히 영주님이 주신 임무를 완수했으니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이제는 보병과 기병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니까. 그래도 아직 임무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니 긴장을 풀지 마라. 이 너머의 왕국들의 허실을 파악해야 한다.”
레인저 부대는 숲을 관통해 나가서 각 조별로 주변의 성이나 마을로 파고들어가 그들의 전력과 식량 상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몬스터 숲의 진격로는 보병 클라스와 기병 클라스의 상위 병사들이 차근차근 몬스터들을 진격로 밖으로 밀어내며 만들고 있었다.
병사들도 성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필사적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부족한 식량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침공이 필수적이었다.
상대방이 식량을 순순히 내 줄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기에 힘으로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악당과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헤론 왕국 쪽으로 이동을 한다.”
“알겠습니다.”
레인저 부대의 부대장인 하센은 자신들이 붙잡았던 아멜라 공주와 추적자들에게서 얻었던 정보들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레인저들은 몬스터 숲 너머로 펼쳐진 초원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몬스터 숲으로부터 가끔씩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의 위협 때문에 몬스터 숲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인간들의 성이나 마을은 상당히 멀리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대륙인들은 몬스터 숲의 몬스터들의 습격을 빠르게 포착하기 위해 몬스터 숲이 끝나는 위치에서부터 자신들의 실질적인 영역까지를 전부 불태워 초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강해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기에 신하들 사이에서도 주전파와 교역파로 나누어져서는 설전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강해의 영지가 필요로 하는 식량의 양은 일개 중세 국가급이 감당할 정도를 넘는다는 것이다.
교역으로 확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십만 톤을 넘어 수백만 톤급의 식량을 구입한다는 것은 강해의 영지에서도 불가능했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다른 국가들이 그 정도의 식량 유출을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그 정도를 획득하려면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어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미 우리에게는 약하기는 하지만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아멜라 공주의 왕국을 되찾아 준다.
그것은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대단한 명분이었다.
처음에 강해는 내키지 않아했지만 원터와 아멜라 공주의 계속된 요청으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 일에는 주전파의 일원인 엘리샤가 있었지만 아멜라 공주와 원터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당장 그런 설득이 먹히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왕국으로 돌아갈 방법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백성들의 고난은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고 오직 복수와 자신들의 왕좌를 되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백성의 고생과 상관없이 복수를 위한 전쟁을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환영했다.
그렇기에 주전파의 주장에 더욱 힘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강해도 조금씩 전쟁 쪽으로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전쟁은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려는 이유로 벌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멸망하기 전까지 전쟁은 결코 멈추지 않게 될 것이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