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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1화

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1화
[데일리게임]
“사제의 해독 마법조차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하네. 결국 카누바라크에는 사냥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딱지가 붙어 버렸지. 그러니 갑옷은 포기하도록 하게. 금속제 판금갑옷도 나름대로 쓸 만할 거야.”

그러나 카르고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잡아 오겠습니다. 그러면 갑옷을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스트라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허허.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게. 아케니아 혈족 유일의 전사라면 우선 몸을 사려야 하지 않겠나? 전사의 혈통을 이어 나가려면 말일세.”

“잡아 올 자신이 있습니다.”

말을 마친 카르고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스트라비가 계속해서 만류했지만 카르고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

“허참. 정말로 위험하다니까 그러네.”

“괜찮습니다. 대신 잡아 온다면 갑옷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하지만 카누바라크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네. 아무리 강한 동료들을 구하더라도…….”

“동료 따윈 필요 없습니다. 아만족 전사는 성인식의 통과 의례를 퀘르바임 사냥으로 치릅니다. 반드시 혼자서 잡아 와야 하지요. 제아무리 오래 묵어 강한 녀석이라도 퀘르바임 종류라면 잡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스트라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집이 몬스터 심줄보다도 더 질기군. 어쨌거나 잡아 온다면 만들어 주기는 하겠네. 뭐 사냥에 성공하면 무기와 갑옷 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카누바라크의 레어에 있는 장비를 몽땅 털어 온다면 갑부가 될 테니 말일세.”

흥분을 감추지 못한 카르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무기를 부탁드립니다. 도끼 두 자루가 완성되는 대로 가서 잡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정도 걸릴 걸세. 그나저나 괜찮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슴을 탕탕 치는 카르고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역력히 배어 있었다.

무기 주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세실리아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물론 그녀가 카누바라크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다. ‘모험가들이 절대로 노려서는 안 되는 사냥감’이라는 책의 첫 장에 당당히 기재된 몬스터가 바로 카누바라크였다.

넋이 나간 듯 비틀비틀 걷던 세실리아가 조심스럽게 카르고를 불렀다.

“저, 정말 카누바라크를 사냥하실 건가요?”

카르고가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놈의 껍질이라면 훌륭한 갑옷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잡을 가능성이 있나요?”

그 말에 카르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날 못 믿나?”

“그, 그건 아니지만…….”

“난 너를 동료로 인정했다. 그러니 끝까지 믿어라.”

말을 마친 카르고가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여관으로 돌아간 세실리아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군. 그 악명 높은 카누바라크를 사냥하러 가다니…….’

지금껏 수백 명이 넘는 모험가를 집어삼킨 존재가 바로 카누바라크였다. 그들 중에는 명성 높은 전사가 이끄는 수준 높은 파티가 수두룩했다. 심지어 최고의 직업으로 구성된 최정예 파티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카누바라크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 남김없이 레어에 장비를 헌납하고 카누바라크의 뱃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단둘이서 사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세실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미친 짓이야.’

마음 같아서는 카르고를 내버려 두고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 같은 풋내기 마법사가 어디 가서 쓸 만한 파티의 동료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게다가 아직까지 세상에 물들지 않은 탓인지 세실리아는 동료인 카르고를 배신할 마음을 먹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결심을 굳히고 몸을 일으켰다.

‘안 되겠어. 함께 사냥을 할 동료들을 한번 구해 봐야겠어. 카르고 님이 워낙 노련한 전사이니까 어쩌면 사람이 모일지도 몰라.’

그녀는 급히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제4장

보스 몬스터 카누바라크를 사냥하라

세실리아가 향한 곳은 시장 앞에 마련된 공터였다. 그곳에는 무수한 공고판이 질서정연하게 널려 있었다. 일정액의 돈을 내면 몬스터 사냥을 함께할 동료를 구하는 공고를 내걸 수 있다. 세실리아는 돈을 지불하고 공고 한 장을 내걸 공간을 임대했다.

‘가급적 동료들을 많이 모아야 해. 특히 해독 마법을 걸어 줄 사제는 반드시 필요하지.’

공고의 내용은 간단했다.

<아펜디아 분지에 서식하는 네임드 몬스터 카누바라크를 함께 사냥할 동료를 구합니다. 현재 파티 구성원은 노련하고 뛰어난 실력의 아만족 전사 하나와 1클래스의 마법사입니다. 모집 인원은 해독 마법이 가능한 사제와 궁수, 그리고 마법사입니다.>

공고를 내걸고 난 세실리아가 살짝 고민했다. 원래대로라면 공고 아래에 연락처를 기재해야 한다. 묵고 있는 여관의 호실을 적어 둔다면 의향이 있는 모험가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연락처를 기재하지 않고 그냥 여관으로 돌아갔다. 라빈으로부터 들은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번거로운 것이 싫다면 연락처를 기재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러면 공고를 읽어 본 모험가들 중에서 생각이 있는 자가 공고 아래에 자신이 묵고 있는 숙소의 호실을 기재하지. 그러면 찾아가서 면접을 보면 돼. 동료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세실리아에게 반해 있던 라빈은 자신이 체득한 경험을 모조리 알려 주었다. 아직까지 카르고와 상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실리아는 연락처를 기재하지 않았다. 우선 자신이 먼저 면접을 보고 난 뒤 카르고에게 소개할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알지 못했다. 카누바라크 정도의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려는 파티는 이런 공고판을 사용하지 않고 실력자만을 골라내 소문나지 않도록 은밀히 만나서 계획을 논의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잠시 후 공고 앞에 바글바글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세실리아가 내건 공고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공고내용을 읽고 실소를 짓고 있었다.

“미친 것들. 죽고 싶어 환장했군. 뭐? 카누바라크를 잡아?”

“아만족 전사? 뛰어나고 노련해? 아마도 일하는 데 뛰어나고 노련하겠지.”

“살다 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공고도 다 보는군. 틀림없이 웃자고 붙인 걸 거야.”

공고를 읽은 모험가들은 폭소를 터뜨린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대부분 장난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아만족의 뛰어나고 노련한 전사와 1클래스 햇병아리 마법사라……. 카누바라크는커녕 오칸 한 마리 힘겹게 잡는 것이 고작이겠군.”

“아마 오칸도 힘들지 않을까? 보나마나 아만족은 몬스터 앞에서 겁에 질려 벌벌 떨 테고 그 모습을 보고 오칸이 불쌍해서 죽이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어쩌면 가능하겠군.”

“보나마나 장난으로 붙인 거야. 장난치고는 공고 값이 비싸긴 하지만 뭐, 몬스터 사냥에 성공해 돈이 썩어 나는 녀석인가 보지. 자기가 묵고 있는 여관의 호실조차 붙이지 않은 것 보면 몰라?”

모험가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공고를 손가락질했다. 공고 아래 연락처를 기재하는 모험가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하나같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공고 아래에 묵고 있는 여관의 이름과 호수를 써넣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세실리아는 여관으로 돌아가 낮잠을 잤다. 동료를 구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는지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서너 시간을 자고 난 세실리아는 재빨리 옷을 입었다.

“빨리 공고판으로 가 봐야겠어. 연락처가 즐비하게 붙어 있겠지? 그나저나 고민이로군. 내가 과연 새로운 동료들의 실력을 측정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세실리아가 여관을 나섰다. 시장 앞 공터로 향하는 그녀의 가슴은 기대감으로 부풀고 있었다.

공터로 접근하자 공고 앞에 모여 북적거리는 모험가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많은 모험가들이 그녀가 내건 공고 앞에 모여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세실리아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모험가들이 내 공고에 관심을 가져서 다행이야. 부디 강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연락처를 알아보기 위해 재빨리 공고로 다가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어머, 세실리아 아니니?”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세실리아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아! 포르나 언니 아니에요?”

그녀의 얼굴에 반색의 빛이 번져 갔다. 새하얀 사제복을 걸친 이십 대 중반의 붉은 머리 여인은 세실리아가 아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하나였다. 얼굴에 점점이 주근깨가 박힌 여인 포르나는 세실리아가 초급 마법 학교에 다닐 당시 시장에서 만난 여인이었다.

마법 학교 인근 신전에서 사제 수업을 받던 포르나는 세실리아와 마찬가지로 평민 출신이었다. 신전에서 물품 구매를 담당하던 그녀는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학비를 버는 세실리아를 딱하게 여겨 종종 그녀의 좌판을 이용해 주며 안면을 익혔다. 그러다가 세실리아가 모험가의 길을 선택한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다가 6개월 만에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그러니 세실리아의 얼굴에 반색의 빛이 깃들 법도 했다.

그녀가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포르나를 포옹했다.

“반가워요, 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포르나가 웃는 낯으로 세실리아의 등을 두드렸다.

“물론이지. 너는 어떻게 지냈니?”

“저야 뭐 잘 지냈죠.”

그때 활달한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누구야, 포르나? 우와, 대단한 미인인걸. 동료들에게 소개 좀 시켜 줘야지.”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사내가 포르나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서너 명의 사내들이 그녀의 뒤에 버티고 섰다.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장비를 걸친 경험 많아 보이는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을 본 세실리아의 눈이 커졌다.

“언니도 모험가의 길을 선택하셨어요?”

포르나가 씁쓸히 웃으며 어깨에 얹힌 사내의 손을 털어냈다.

“그렇게 됐어. 신전에 더 머물 수가 없게 되어서 말이야. 당분간 파티를 따라다니며 수행하기로 했어. 그나저나 인사해. 내 동료인 세아트야.”

세아트라 불린 전사가 빙그레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미인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차림새를 보니 마법사이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세실리아가 예쁘게 웃으며 세아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네, 그래요.”

“잘되었네요. 안 그래도 마법사를 구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실례지만 몇 클래스십니까?”

순간 세실리아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그녀의 수준은 최하인 1클래스, 그것도 마스터가 아닌 엑스퍼트였다.

마법사의 수준을 평가하는 단위인 클래스는 1클래스에서 9클래스까지가 존재한다. 각 클래스의 마법사들도 비기너(초급), 유저(중급), 엑스퍼트(숙련), 마스터(상급), 이렇게 4단계로 구분한다. 통상적으로 3클래스 이상 되어야 제 몫을 해낼 수 있으며 6클래스가 넘으면 전사 없이 홀로 필드에서 사냥할 수 있는 대마법사로 인정받는다.

그러니 세실리아의 입이 쉽사리 떨어질 리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클래스를 속이는 것은 철저한 금기사항이다. 새로운 파티원을 구할 경우 거의 예외 없이 확인 작업을 거치는데 거기서 거짓말이 드러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당장 파티에서 내쫓기는 것은 물론 거짓말을 한 마법사의 이름이 공고판에 내걸리는 것이다.

한 번 이름이 내걸리면 마법사는 영원히 동료를 구할 수 없게 된다. 그 어떤 파티에서도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 세실리아가 쥐꼬리만 한 음성으로 자신의 수준을 털어놓았다.

“이, 일 클래스의 엑스퍼트예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아트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세실리아의 미모에 호감을 보이던 눈빛이 돌변한 것이다. 그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포르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셨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포르나, 우린 여관에 가 있을 테니 나중에 오도록 해. 오랜만에 친구와 만났으니 반가울 테지.”

다른 모험가들도 안면을 싹 바꾼 채 여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냉정한 모습에는 세실리아를 무시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들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세실리아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포르나를 남겨 둔 채 무정하게 걸음을 옮겼다.

“미, 미안해, 세실리아. 내 동료들이 무척 피곤했나 봐. 네가 이해해 줘.”

그러나 세실리아가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라빈의 파티에 들어가기 전 그녀는 이런 상황을 벌써 여러 번 겪어본 경험이 있다. 포르나의 동료들은 행여나 세실리아가 동료로 받아 달라고 달라붙을까 봐 냉정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1클래스의 중급이라면 사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김정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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