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딘이 숨이 가빠지는 괴물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괴물은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도대체 왜. 네가 왜 나를? 우리는 동료 아니었던가? 적어도 그 지옥 속에서는.”
그러나 괴물의 말은 입속에서만 맴돌았을 뿐 아이딘에게 한마디도 전달되지 않았다.
“어서 말해! 누구냐니까?”
아이딘이 괴물의 어깨를 더욱 강하게 흔들자 괴물의 손가락이 아이딘을 가리킨다. 이어서 다시 한 번 자신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멍한 눈으로 아이딘을 쳐다본다.
원망, 분노, 고통이 어우러진 듯한 그의 멍한 눈동자가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다. 그 모습에 아이딘도 더 이상 윽박지를 수 없었다. 그리고 괴물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가는 것을 느낀다.
아이딘을 바라보던 괴물의 눈의 초점이 점점 흐려지더니 눈물 한 방울이 슬며시 흘러내렸다. 아이딘은 숨이 끊어진 괴물을 땅바닥에 조심스럽게 누였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괴물의 옷을 뒤집어 가슴을 살펴본다. 상처 위쪽에 새겨진 검은 십자가가 아이딘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자신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문양과 동일한 무늬와 크기였다.
아이딘은 괴물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십자가와 괴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화가 났다.
기억을 되찾을 수 있던 단서 하나가 바로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 분노는 또다시 그의 본능 깊이 있는 무엇인가를 끄집어냈다. 아이딘은 한 손으로 괴물의 어깨를 잡은 채 권총으로 괴물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퍽!
또다시 권총을 내리쳤다. 그리고 또다시…….
괴물의 머리가 일그러지고 아이딘의 권총은 피범벅이 되었지만 아이딘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알 수 없는 복잡한 과거를 지우기라도 하듯 괴물의 머리를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아이딘 역시 괴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피칠갑의 모습이다.
덥석.
누군가가 아이딘의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순간 아이딘은 감각이 마비된 듯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 존재를 강하게 떼어 내려는 순간.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빠른 심장의 고동이 아이딘의 등 뒤로부터 느껴졌다. 그리고 물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딘…… 그만해.”
예리엘이었다.
알 수 없는 분노에 가득 차 폭주하던 아이딘은 그녀가 그렇게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딘의 어깨에서부터 스르르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예리엘이 서서히 진정되는 아이딘을 행여 놓칠세라 등 뒤로부터 있는 힘껏 꽉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아이딘이 조심스럽게 예리엘의 팔을 풀어 내린다.
“이제 괜찮아, 예리엘.”
“괜찮아, 아이딘?”
예리엘이 울먹이듯이 말했다. 아이딘은 대답 없이 머리만 끄덕인다.
순간 예리엘의 눈에도 괴물의 어깨에 있는 검은 십자가와 숫자가 들어왔다.
‘아.’
예리엘은 순간 울컥했다. 저 검은 십자가들은 4년 전 자신의 친오빠 아이딘을 죽였던 괴물들에게 있었던 그것과 동일했다. 저 검은 십자가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까지 왔는데 여기서 다시 이렇게 오빠를 죽인 괴물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순간 예리엘의 다리에 힘이 풀려 힘없이 주저앉는 듯싶었지만 아이딘이 무너지는 예리엘을 가볍게 받쳐 들었다.
뒤늦게 도착한 잭슨과 호퍼가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딘, 어떻게 된 거야?”
“…….”
아이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리엘도 괜찮아?”
“어…… 괜찮아.”
예리엘이 호퍼와 잭슨을 의식한 듯 아이딘에게서 떨어진다.
“아이딘 너. 코피…….”
아이딘이 손등으로 코를 닦는다. 손등에 피가 흥건히 묻어났다.
“괜찮겠어? 어디 크게 다친 데는 없고?”
잭슨이 걱정하며 묻는다. 호퍼는 괴물이 정말 죽었는지 발로 툭툭 차 보고 아이딘의 떨어진 권총을 잘 챙겨 둔다.
저 멀리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차량 3대가 보였다. 언제나 사건이 끝나면 제일 먼저 달려오기로 소문난 루디안 경비대였다. 그들은 오늘도 역시 기대에 부응하듯 모든 것이 정리된 후 당당히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알트마이어의 연구소는 닉스 연방국들 중 가장 면적이 넓은 네바다의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네바다는 대재앙 이전에는 사막지역이었으나 이후 기후변화에 따른 많은 강수량으로 가장 복구율이 빠른 곳 중에 하나였다. 특히 닉스 연방 설립 이전 건설된 대규모의 댐은 이곳 네바다를 닉스 연방 최고의 곡창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 댐에서 발전되는 풍부한 전력은 두말할 것 없었다. 또한 닉스 연방 통일의 기틀을 닦은 지역이라는 데서 사람들의 자부심도 매우 컸다.
한편에 중앙 도시(수도)인 헤이번과의 고속화도로가 건설되어 있어 비교적 교통 또한 편리한 지역이었다. 그 외에 대재앙 이후에도 파괴되지 않았던 생화학연구소와 여러 연구단지가 존재했기에 닉스 연방의 건국의 아버지인 닉스 또한 이곳에서 많은 활동을 했었다. 따라서 알트마이어가 자신의 연구를 지속해 나가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알트마이어는 간만에 바깥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연구소를 벗어나 산책로를 거닐었다. 그의 뒤에는 신변을 호위하는 중무장한 두 명이 따라붙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알트마이어의 뒤로 따라붙었다. 군인 두 명이 기척을 느끼기 무섭게 사격 자세를 취하며 등을 돌렸다.
“접니다.”
알트마이어를 쫓아온 이는 렉셀이었다. 군인들이 경계 자세를 풀고 얼른 거수경례를 취했다. 렉셀이 고개를 끄덕여 상급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후 알트마이어의 뒤로 가서 정중히 목례했다.
“보고 드립니다. 이틀 전, 하바로프에서 실험체 관련 보고가 있었습니다.”
알트마이어가 걸음을 멈추고서 입을 열었다.
“보고하게.”
“변형 실험체들 중 하나가 하바로프 서쪽 끝의 한 마을에서 발견되어 사살되었다 합니다.”
“하바로프. 이제 그곳까지 녀석들이 영역을 넓힌 것인가?”
하바로프는 이곳 네바다에서 근 5천 킬로미터를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거리이다.
“걸어서 거기까지 갔다면 정말 대단하군. 렉셀, 이제 예상대로 수색 범위는 닉스 연방 전역이겠군.”
“네, 이미 지시하신 대로 조치해 두었습니다.”
“그 녀석이 나타났다면 여러모로 피해가 적지 않았겠군?”
“그게…….”
렉셀이 난처한 기색으로 우물거리자 알트마이어가 그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나?”
“민간인 십여 명 외에 피해는 일절 없었답니다.”
“뭐? 그럴 리가…… 분명 변형 실험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분명 경비대와 교전 이전에 놈이 죽어 있어서.”
“뭐라고? 어떻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놈을 해치웠다고 합니다.”
알트마이어는 의아스러웠다. 마을 사람들이 그 녀석을 죽였다니? 말도 안 된다. 그 녀석들은 인간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실험체. 그리고 변형 실험체. 2038년, 사실 그 이전부터 시작된 인체 강화 연구에 대한 결과물이다.
일찍이 대서양 연맹은 문베이스(달기지) 건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주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내는 데 그 목표를 두었다. 그러나 대재앙 이후 변화된 지구환경과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질병에 대한 면역성이 극도로 떨어진 인간을 강화시켜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변모되어 그 맥을 그대로 이어 왔다.
대재앙 이전 대서양 연맹의 의장국인 미국 출신의 알트마이어 박사는 생체공학의 일인자로 이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2039년 인체 강화 연구를 위한 신기술 연구를 하던 중 의문의 폭발사고와 대규모 실험체의 유출까지 일어나면서 연구소가 폐쇄되고 자신조차 연구소장 자리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그 후 1년간 와신상담한 결과 알트마이어 연구소라는 새로운 연구소의 설립과 더불어 다시금 인체 강화 연구를 지속하게 되었지만 그때의 일은 알트마이어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한 그 뼈아픈 기억의 중심이 되고 있는 실험체들이 아직도 끊임없이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분명 변형 실험체였다는 거지?”
“네. 분명 놈의 몸에 표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알트마이어는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39형 실험체. 그중에 일부 실험체들은 지금 어느 정도 안정화된 41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강력했다. 다만 그 능력은 육체적 능력에 한정되어 있었을 뿐 부작용으로 지적능력은 인간 이하의 지능으로 퇴보되고 말았다.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그저 인간의 몸을 한 괴인들만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그러나 그중 극히 일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 녀석들은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고 있다 끝내 탈출하고 만다.
녀석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연구는 보다 진척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체 강화 연구는 종착지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도 없는 한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런 한탄도 이미 오랜 일. 알트마이어는 지금의 연구에 집중했고 성과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애당초 몇 개의 변형 실험체가 있었고 지금 살아 있는 변형 실험체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트마이어가 연구소 폭발 이후 만난 실험체는 대부분 이미 숨이 끊어진 실험체들뿐이었다.
다른 실험체들과 달리 그 녀석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저항했다. 설사 제압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알트마이어 역시 그 강렬한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저항의 흔적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중무장한 1개 소대의 인원 전체가 모두 피떡으로 변한 참혹한 광경도 실제 목격했다. 그런 변형 실험체를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잡았다는 것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분명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껴졌다.
“좀 더 정보를 파악해 보게. 그리고 그 실험체는 가급적 빨리 운송해 오도록.”
“알겠습니다.”
렉셀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바삐 행정실로 이동했다. 실험체를 알트마이어의 지시대로 빠르게 이송하려면 별도의 조치가 필요했다.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이동이 된다면 실험체가 도대체 언제 올 것인지 예측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멍청한 수송대 녀석들.”
렉셀은 혼잣말을 했다. 옆에 있던 행정장교가 혹시나 자신을 야단치는 게 아닐까 하며 바짝 긴장한다. 렉셀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바짝 긴장한 장교에게 지시한다.
“이번 실험체 운송은 TDS(Tofu Delivery System)에게 맡기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TDS는 넥스 연방 전역을 커버하는 유일한 택배회사이다. 두부 배달 시스템이라는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튀는 회사명이긴 하지만 닉스 연방 전역을 넘어서 루체 왕국까지 배달이 가능한 엄청난 배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 중인 적대 국가까지 배송이 가능할 정도라니. 어이가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TDS는 그걸 가능케 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렉셀은 이전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내키지는 않지만 TDS를 이용하기로 했다. 저번처럼 다 썩어 버린 고깃덩어리가 도착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 *
괴물의 습격 이후 아이딘은 경비대에 불려 다니느라 이틀 내내 아침저녁으로 시달렸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엔 아예 경비대 건물에 종일 붙잡혀 있었다.
그들은 집요하게 아이딘에게 사건의 경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이전부터 마을에 이상한 괴물들이 종종 출현했던 터라 큰 문제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이 괴물 말고라도 방사능에 피폭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킨 야생동물의 뮤턴트나 넋을 잃은 인간의 마을 습격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은 꼭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비대에서는 그런 괴물의 출현과 퇴치보다는 오히려 갑자기 마을에 눌러앉아 살게 된 아이딘의 신분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렇기에 아이딘은 명확한 답변을 해 주기가 어려웠다.
‘건스미스 원샷의 견습 장인’, ‘그리고 이곳저곳 떠돌다 얼마 전에 이 마을에 온 떠돌이’.
그 두 가지가 아이딘이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전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렸으니 아무리 물어봐도 더 나올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또한 연방이 설립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명쾌한 신원확인 절차는 확보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루체 왕국과의 전쟁과 함께 군인들에 대한 신체 정보가 기록되어 마무리된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따라서 적어도 닉스 연방의 탈영병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입증이 되었지만 그 외에는 그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도, 길도 없었다.
그렇다고 경비대의 입장에서 무작정 아이딘을 놓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고 하바로프는 루체 왕국과 서로의 목에 총을 겨누고 있는 최전선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딘을 쉽게 풀어 줄 수가 없었다.
강성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