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자벨도, 그리고 미쉘도 데려갈까?”
“페이 언니도?”
“음, 너무 좋아.”
잭슨은 아주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신이 났다.
독수리의 눈물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그들 모두에게 오늘은 무척 재미있는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알트마이어는 아침부터 두통이 밀려왔다. 오늘 오전에 통령 대리이자 과학부 부장, 국방부 부장인 에바가 연구소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예기치 못한 방문이 그리 많지 않지만 매번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단코 에바 부장과의 미팅이 알트마이어 자신에게 부담이 될 것은 없었다. 적어도 원리와 원칙을 추구하는 과학자로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비상식적인 행동-다른 사람들이 명백히 판단했을 때에도-에 대해서 비교적 이해해 주는 측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폭발 사고 이후에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 준 것 역시 그녀였기 때문에 적어도 그녀에게 일말의 의리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동석자인 국방부의 최고 군사책임자인 중앙군 총사령관 기가스 사령관에게 있었다.
사실 그와의 관계가 처음부터 그렇게 껄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대재앙 이전부터 근 20여 년 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 비밀국 출신인 기가스와 자신이 근무했던 고등국방기술연구소에 신출내기 정보장교와 연구원으로 처음 만난 이후 적지 않은 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서양 연합의 결성 초기에는 둘 다 모두 우주군으로 발령받아 기가스와 책상을 맞대고 1년간 근무한 적도 있었다.
그런 연유로 사적인 모임의 저녁식사까지 여러 번 가진 만큼 충분히 친해질 수 있는 계기 또한 여러 번 있었으나 기가스 특유의-첩보업무 특성상- 비밀스러움과 차가움이 서로를 가깝게 하지는 못했다.
대재앙 이후 그가 생존해 있음을 알았을 때는 내심 무척 기뻤다. 관계가 좋건 나쁘건 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드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후 그와 여러 일들이 엮이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그리 유쾌한 일들만은 아니었다.
특히 전임 사령관인 랄프 프린츠를 밀어내고 자신이 사령관에 올랐던 과정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조용한 외모와 달리 음험함과 사악함이 똘똘 뭉쳐져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런 그와 자신이 엮여 있다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부담감이었다.
렉셀이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나타난다. 아마 지난주 연방 최고회의에서 결정된 특전부대의 증원 건 때문일 것이다.
“박사님. 이제 43형 중간체가 전장에 투입되는 것입니까?”
“그렇겠지.”
“드디어 43형도 실전이군요.”
강화 인간은 현재까지 4개의 타입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최초의 연구 결과 나타난 실험체로 구분되는 39형, 40형과 중간체인 41형과 41-S형 4개 타입이었다. 각 타입과 강화 결과에 따라 각각의 능력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현재 강화 인간 특전부대 메탈리퍼를 구성하는 타입은 41형이다. 보통 인간의 2.5배 정도의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으나 부작용으로 극단의 이기심과 호전성, 전투성을 갖고 있어 감정의 통제가 어려운 부작용이 있다. 보통 강화 전의 기억은 대부분 상실하며 강화 과정에 안정성을 확보하여 70% 이상의 성공률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창설된 부대는 90% 이상이 41형이고 10%는 43형으로 구성될 것 같습니다. 대장은 아마 주위곤이라고 박사님도 잘 아시는 사람입니다.”
알트마이어는 주위곤이라는 말에 잠깐 기억을 되새겼다.
알트마이어가 기억컨대 그는 꽤나 유능한 장교였었다. 그렇지만 루체 왕국과의 1차 전쟁 때 적의 역공작에 말려 수백 명의 부하들을 아군의 총탄에 몰살시켜 1차 전쟁 패배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전쟁 패배에 따른 희생양이 필요했기에 군 상부층에서는 그의 즉각적인 총살을 지시했었다. 그러나 기가스 사령관의 지시로 사면을 대가로 강화 실험의 실험체가 되고 마침내 강화 실험을 이겨내고 43형 강화 인간이 되었다.
그뿐이었다면 알트마이어도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주위곤은 그 외에도 기존의 실험체와는 다른 신체적 배경과 특수성을 갖고 있었다.
삐삑삑.
요란한 인터폰 소리가 알트마이어의 생각의 연속을 끊어 낸다. 예상보다 빨리 에바 부장과 기가스 사령관이 도착했다는 연락이다. 렉셀이 먼저 부랴부랴 연구실을 나선다. 알트마이어도 몇 개의 자료를 주섬주섬 챙겨서 자리를 벗어난다.
* * *
통령 대리, 에바 로젠펠트는 30대 중반의 나이이나 20대의 앳된 외모의 소유자였다. 에바는 로봇공학과 대규모 엔지니어링 기술로 대재앙 이후에 단절된 기계, 전자기술 복원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준 탁월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닉스 연방의 기술 발전에 토대를 닦았으며 그 결과 과학부 부장과 국방부 부장의 요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는 현재 부재중인 닉스 통령의 대리로 닉스 연방을 이끌어 가는 상황이었다.
회의실에는 에바를 비롯해 기가스 사령관을 포함한 군 장성 세 명과 알트마이어와 렉셀 그리고 수석연구원 세 명이 참석했다.
“박사님. 연구는 조금 더 진전이 있었나요?”
에바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회의실의 정적을 깼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형식상의 인사말도 생략한 채 시작하는 회의는 늘 어색하기만 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더욱 빠르게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알트마이어의 매번 같은 답변에도 불구하고 에바는 감정의 기복 없이 차분히 말을 잇는다.
“박사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 주세요.”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이다. 알트마이어는 문득 그녀가 웃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닉스 통령의 부재 이후로는 말이다.
알트마이어는 닉스 통령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에바의 앞에 있기가 더욱 부담스러워진다.
지금부터 3년 전 알트마이어는 인체 강화 연구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에바의 별장을 찾았다. 그때는 지금같이 인체 강화 연구가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전에 있었던 신기술 연구소 폭발사건으로 인해 실험체들이 탈출했고 잔혹한 연구과정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닉스 통령이 연구 중단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에바는 그런 명령을 어겨 가면서까지 알트마이어의 연구를 지속시키는 중이었다.
기억하기도 싫은 그날은 모두가 우연으로 점철된 하루였다. 실험체를 별장까지 가져간 것도, 실험체가 폭주한 것도, 닉스 통령이 에바를 찾아온 것도, 경비 병력이 외부에 있었던 것도, 현장에 있던 랄프 프린츠의 부관의 총이 고장 난 것도 모두 우연이었다. 단 한 가지 필연적이었던 것은 그날 닉스 통령이 에바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것이다.
랄프 프린츠의 부관을 난도질하고 에바로 달려드는 실험체를 닉스 통령이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외곽에 있던 경비대원들이 실내에 들어섰지만 이미 때는 한발 늦었다. 닉스의 가슴은 실험체에게 난도질당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많은 출혈과 뇌진탕으로 그 후 닉스는 깨어나지 못하고 3년째 혼수상태이다. 이 일에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느끼기에 알트마이어는 그리 뻔뻔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나요?”
“네. 실험대상이 부족하기는 합니다만.”
“그렇군요. 그 부분은 사령관님이 처리해 주시겠죠.”
옆자리에 앉은 기가스 사령관이 말없이 고개를 까딱인다.
“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에바에게 렉셀이 서류뭉치를 몇 개 건네준다. 에바는 굳이 설명이 없더라도 저 서류만 대충 훑어봐도 연구 경과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곳에 굳이 찾아오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연구소 지하병동에 위치한 닉스를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닉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녀도 매번 이렇게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에바가 자리를 떠난 후에도 회의는 계속되었다.
“박사님. 제가 부탁드린 연구는 진도가 많이 나갔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스켈레톤 프로젝트는 거의 실용단계가 되었습니다.”
회의실 전면에 사람들이 걸어오는 영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점차적으로 늘어나더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이상했다. 마치 넋이 빠진 사람처럼 총기 없는 멍한 눈을 한 채 앞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알트마이어 박사님.”
“…….”
“저것들을 얼마나 컨트롤할 수 있는 것입니까?”
“능력만 있다면 이론적으로 무한대까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재 41-S형의 경우 20명, 43형의 경우 50명 정도까지 컨트롤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훈련에 따라 점차 늘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럼 강화 인간들만이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시아 연합 출신의 정신 능력자들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령관님도 아시다시피 연합 출신 실험체들의 인체 강화 작업 중 발견된 결과이지 않습니까?”
대재앙 이전 아시아 연합과 대서양 연맹은 우주 선점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아시아 연합은 인간 본연의 정신적 능력을 강화시킨 사이킥 연구-초능력 연구-가 중심이었고 대서양 연맹은 지금의 알트마이어가 지속하고 있는 바이오닉 연구-인체 강화 연구-가 중심이었다.
“그럼 그런 정신 능력자들을 더 데려오면 성과가 더 나지 않겠소?”
“그렇긴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 능력자들은…….”
알트마이어는 말끝을 흐렸다.
대재앙과 함께 인구가 5분의 1로 줄어든 상황에서 80억 명의 인구 중에 천만 분의 일의 확률에 가까웠던 그들의 존재가 아직까지 생존했을 것이라는 것은 확률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뛰어난 능력자들 대부분은 아시아 연합의 우주 스테이션 천궁 7호의 추락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알트마이어가 말끝을 흐린 이유는 우주 스테이션 천궁 7호 추락 이면에 기가스가 속해 있었던 미국 국방 비밀국의 음모가 있다는 설이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이었고, 그 당시 국방 비밀국의 국장이었던 기가스 또한 이 사실을 모를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기가스도 아는 듯 모르는 듯 애매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애매한 태도,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속내, 그리고 뭔가 꿍꿍이가 있을 듯한 음험함이 더해져 알게 모르게 알트마이어를 압박하고 있다.
“주위곤을 보내 주신 덕분에 더욱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주위곤은 사형을 면하는 대가로 인체 강화 연구에 투입된 고급 장교였다. 주위곤의 형은 대재앙 이전부터 아시아 연합에서 꽤나 알려진 우주비행사였고 주위곤 역시 우주비행사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아시아 연합은 우주비행사의 선발에 육체적 능력 외에 정신적 능력을 무엇보다 우선시했다. 주위곤 역시 이런 정신 능력의 자질을 인정받고 어느 정도 트레이닝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특별한 인간을 강화 실험체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 이상의 것이다.
한편으로 알트하이머는 이런 주위곤을 실험체로 쓰게 된 것이 모두 기가스의 음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기가스의 모습에서 일말의 공포감마저도 피어났다.
“인체 강화 연구의 완전체는 언제쯤 나올 것 같습니까?”
“…….”
“박사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많은 실험체들을 보낼 테니 분발해 주길 바랍니다. 보다 강력한 강화 인간만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알트마이어는 같은 목적을 가졌으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기가스의 조용한 윽박지름에 숨이 막혀 올 지경이다.
기가스의 생각은 그저 변화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진화해 나가자는 자신의 생각과는 왠지 같은 듯 다른 양상이다. 그에게 강화 인간은 단지 쓸모 있는 병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인체 강화 연구의 결과물을 기가스 사령관 이 사람은 진정 모르는 것일까?’
알트마이어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 연구의 목적을 닉스 통령에게도 비밀로 한 에바였다. 기가스 사령관에게 당연히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정확한 확신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알트마이어가 먼저 사실을 기가스 사령관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기가스라는 이 사람에게는 더욱 그랬다.
어쩌면 그는 이 연구의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이전에 의도한 대로 모든 사항들이 움직였던 것처럼.
복잡한 생각 속에 알트마이어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기가스를 대했다.
렉셀이 인체 강화 연구 외에 잡다한 군사기술 몇 가지를 설명했다. 보고에 꽤나 공을 들이는 것이 기가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게 너무나 역력했다.
저런 쓸데없는 요식행위가 없어도 후임 연구소 소장 자리는 그의 것임이 분명했다. 1년 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쥴리아 랑베르가 살아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여하튼 알트마이어는 아직 그에게 이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결단코 자신의 부귀영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연구는 계속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연구의 지속만이 자신이 저질러 온 수많은 죄악에 따른 최소한의 면죄부가 될 수 있었다.
강성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