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수고하셨습니다. 합격 여부는 추후 공지를 해 드릴 테니 기다리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이제 막 면접을 보았지만 면접이 끝나는 순간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어느덧 느낌이라는 것이 왔다.
“또 떨어졌구나.”
강일은 의욕도 사라져 버린 현실에 무덤덤해져 갔다.
얼마나 많은 이력서를 쓰고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적성검사와 직무 수행 검사 등을 풀었는지 모른다.
거기까지 운 좋게 통과를 하면 실무진 면접과 경영진 면접이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린다.
띵동!
“왔다.”
강일은 항상 그러했듯이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다려졌다.
―25일까지 학자금 대출 이자를 납입하시…….
강일은 휴대폰을 꺼 버렸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만 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빚을 갚기는커녕 생활비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그냥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남들 하는 대로 남들만큼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그리도 어려운 줄은 강일도 몰랐다.
다들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강일 자신도 그렇게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 믿음 때문에 강일은 더욱 상처를 받았다.
나 자신은 왜 남들만큼도 못 하는가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강일을 괴롭혔다.
“하아! 신이시여. 제발!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가 뭘 그리도 잘못을 했습니까? 그리도 죽을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강일은 한강이 마주 보이는 곳에 앉아 기도를 했다.
지금까지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신이라도 믿고 싶을 정도로 절박했다.
강일은 욕심이 없었다.
아니, 욕심을 낼 수도 없었다.
이미 절벽 위에 올라선 상태였고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누구도 붙잡아 주지 않고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절망감만이 강일을 뒤흔들고 있었다.
“기회를 주세요.”
강일은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붙잡고야 말겠다고 빌었다.
“오! 그래? 뭐든지 하겠다고?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기회를 주지. 암! 주고말고.”
“예? 누구?”
강일은 자신에게 기회를 준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를 들었다.
“누구긴 누구야. 너에게 기회를 줄 천사지.”
강일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도망을 치려고 했다.
“어딜 가!”
“갚을게요! 갚는다고요!”
강일은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는 덩치에 바둥거렸지만 도망을 갈 길이 없었다.
“그래! 갚아야지. 암! 갚고말고. 그럼 우리 돈 쓰고 안 갚으려고 했어?”
사채업자들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돈을 받아내는 양아치들이었다.
강일이 빌렸던 신용금고의 채권이 어떻게 이자들의 손에 들어간 것인지는 몰랐다.
종이 한 장을 내보이며 돈을 갚아야 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법적으로 갚아야 한다는 말에 강일은 절망했다.
이미 몇 차례 이들과 만난 적이 있던 강일이었다.
늪에 빠진 것처럼 점점 깊숙이 빠져드는 절망에 강일은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도 이러고 싶지는 않아. 인생 구만리 같은 젊은 자네한테 우리가 악감정이 있겠어? 그래도 사람이 받은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냐, 그거지.”
“갚을게요. 갚는다고요.”
강일은 이를 악물며 그 말만을 했다.
사실 그들을 상대로 그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채업자들은 잔뜩 주눅이 든 강일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지? 기회 준다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말했잖아.”
“예? 아니, 그게.”
강일은 사채업자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기회를 준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분명 그 기회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졌다.
‘범죄? 마약이나 뭐 그런 건가?’
절대 착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분명 기회라는 것이 불법적인 행위일 터였다.
그렇기에 강일은 바짝 긴장을 해야만 했다.
정신 차리지 못하면 강일 자신의 인생은 한없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것이었다.
‘아니, 이미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걸지도 모르지.’
강일은 씁쓰레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이 이상으로 떨어지면 절대 평범함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걱정 마. 불법적인 일은 아니니까. 아! 불법인가? 큭! 뭐 아무튼 니 얼굴이 좀 반반해서 운이 좋은 줄 알아.”
“무슨 말씀이세요?”
사채업자는 강일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강일은 외모는 그럭저럭 봐 줄 만했다.
키도 180이 조금 넘었고 얼굴도 곱상하게 생긴 편이었다.
조금만 더 잘생겼다면 연예인으로 나가도 괜찮았을 듯한 외모였다.
하지만 그 조금만 더라는 것이 생각보다는 엄청난 간극을 의미했다.
“취직시켜 줄게. 하루 20만 원. 한 달 600에 인센티브까지, 잘만 하면 천만 원을 벌 수 있어.”
“…….”
강일은 바보가 아니었다.
20대의 어린 나이에 어디서 뭘해서 한 달에 천만 원이라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너 학자금도 있지? 눈 딱 감고 세네 달만 하면 그거 다 갚고 새 출발할 수 있다. 기회 한 번만 달라고 했지? 한 번뿐이다.”
“…….”
강일은 사채업자의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이성이 외치고 있었지만 이미 흔들린 눈동자에 강일의 몸은 반응하고 있었다.
“잘 생각했어. 위험한 일 아니야. 뭐 조금 더러울 수도 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즐거운 일일 수도 있는 일이거든.”
강일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채업자들을 따라갔다.
단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그토록 외쳤던 것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설마 사채업자들이 내민 기회일 줄은 몰랐지만 그 기회가 일단은 자신에게 주어졌다.
왠지 그 기회를 받지 않는다면 영원히 강일 자신에게 기회란 주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그렇게 사채업자들을 따라 간 강일은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유흥가에 도착했다.
사채업자들은 유흥가에서도 조금 들어간 구석진 건물로 강일을 대리고 들어갔다.
―언니와바.
촌스러운 이름이었지만 강일은 그곳이 여성 전용 바임을 알았다.
‘여자들한테 술 파는 건가?’
술집 여자들처럼 자신도 이런 곳에서 호스트바 같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반반하게 생긴 자신이라 그나마 이런 일거리가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 전용 술집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사채업자하고 뭔가 이야기를 하더니 강일을 쳐다보았다.
“그래. 키는 됐고 외모도 이 정도면 괜찮고. 문제는…….”
남자는 강일에게 다가가서는 강일의 허리띠를 붙잡았다.
“왜 이러세요?”
강일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남자는 손을 바지 속으로 집어넣어서는 강일의 그곳을 움켜쥐었다.
“헉!”
“음! 좋아.”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사채업자에게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무언가를 건네었다.
아마도 돈인 듯싶었다.
“너 따라 와.”
남자는 마치 강일이 물건인 듯이 다루었다.
강일은 사채업자들의 손에 떠밀려 남자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도망을 가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일은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는 이곳이 지독한 늪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빠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그런 늪.
하지만 그럼에도 강일은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그 늪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 가지만 말한다. 절대 그녀들을 화나게 하지 마라. 나머지는 천천히 배우면 될 거다. 마침 조련해 주실 분이 계시니까 말이야.”
강일은 남자의 얼굴에서 섬뜩한 미소가 지어졌다는 것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들어가.”
“아.”
설마 첫날부터 손님을 받을 줄은 예상도 못했다.
강일은 남자의 손에 떠밀려 방 안으로 들어갔고 그 방 안에 눈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는 뚱뚱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호호호! 떨지 마렴. 오늘 이 누나가 황홀하게 해 줄 테니까.”
강일은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남자가 했던 말이 이상스럽게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아! 저…… 저기!”
뚱뚱한 중년 여인은 강일에게 다가와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호오! 정말 처음이구나. 호호호!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이 누나만 믿으렴.”
누나라기보다는 이모뻘이었지만 강일은 마치 거미줄에 묶인 먹잇감처럼 꼼짝달싹도 못한 채로 유린당해야만 했다.
“호호호! 수고했어. 이건 용돈이니까 맛있는 거 사 먹고.”
강일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30만 원을 보며 등이 시큰하게 아파오는 통증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피가 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닦지 않았다.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뚱뚱한 중년 여인이 나가고 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퇴폐적인 가게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강일을 힐끔 볼 뿐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이만 가도 된다. 내일 8시까지 늦지 말고 와라. 행여 도망갈 생각은 버려.”
남자는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고 강일도 더 이상은 이런 곳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밖으로 나갔다.
“오! 이제 나오네.”
“재미 좀 봤어? 크큭!”
강일은 대꾸할 힘도 없다는 듯이 사채업자들을 지나치려고 했다.
“웃차! 오! 돈 많이 받았네. 이건 오늘 이자.”
강일은 뚱뚱한 중년여인에게 받은 돈 30만 원조차 빼앗아 가는 사채업자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지나쳤다.
“내일 보자! 오늘 수고했다! 큭!”
“…….”
강일은 아무런 말도 없이 걸었다.
길을 걷는 도중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쳤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강일에 다들 인상만을 찡그릴 뿐이었다.
계속 그렇게 정처 없이 걸은 강일의 눈앞에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이 보였다.
강일은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 들어가서는 호주머니를 뒤져보았다.
구깃구깃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손에 쥐어졌다.
“소주 값이나 맥주 값도 많이 올랐구나.”
천 원 한 장으로는 소주도 맥주도 살 수 없었다.
강일은 웃음이 나왔다.
아픈 상처를 치료할 치료제 하나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가련하고 슬플 지경이었다.
그렇게 진열대를 스치며 둘러보다가 젊은 날의 선택이라고 적힌 박카스 문구를 보고서는 박카스 한 병을 골랐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요.”
강일은 천 원짜리 한 장을 카운터에 던져 주고서는 그대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강이 보이는 둔치에 다가가서는 박카스 병을 까서는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그냥 목이 말랐다.
너무나도 말라서 무언가 갈증을 풀어 줄 것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목이 마르다.”
강일은 박카스를 다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목이 미치도록 마른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갑자기 왜 이런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냥 목이 말랐다.
“하아! 하아! 물! 물!”
강일은 눈앞의 한강을 보며 물을 마시기 위해 다가갔다.
이 넓고 넓은 한강 물이라면 자신의 갈증을 풀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강일은 한강 속으로 사라졌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