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1. 강의 신 하백(1)
사람은 물에 겁을 먹지 않은 채로 힘을 빼고 있으면 물에 자연히 뜨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살고자 허우적거리는 순간 물은 사람을 집어삼키는 법이었다.
강일도 그랬다.
죽고 싶다는 마음은 몸의 고통에 살고자 하는 발버둥으로 순식간에 변해 버렸다.
후회.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 살려……. 어푸! 살려…… 줘.”
절망감과 모멸감에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자살의 순간에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서 강일은 허우적거리며 살려고 했지만 한강의 물살은 강일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더욱이 겁에 질려 있기에 더욱더 물살에 빨려 들어가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일은 한참을 바둥거리다가 결국 힘이 빠져서는 강물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괴로웠다.
너무나도 미치도록 괴로웠다.
숨을 못 쉰다는 것이 이토록 괴로운 일인지 몰랐다.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과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들어가는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괴로워서 발버둥을 치는 꼴사나운 모습뿐이었다.
‘살고 싶어! 제발! 살고 싶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제발! 한 번만 더!’
강일은 죽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어서 또다시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이미 한 차례 기회를 걷어차 버리고서는 도망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강일은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비한다면 시골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었지만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다.
그다지 풍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만큼 그렇게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평범이라는 것이 그리 이루기 어려운 일인지는 몰랐다.
그냥 남들처럼 같이 걷다보면 남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강일은 몰랐다.
남들은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력을 다해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그 뜀박질에 뒤쳐지면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이었다.
굴러떨어진 나락에서 기어 올라가는 일은 뜀박질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손발톱이 다 뽑히도록 발버둥을 쳐야만 다시 출발선 위에 설 수 있었다.
“꼭 그런 건 아니야. 길은 여러 개가 있는 법이거든.”
“…….”
강일은 보았다.
한복 같은 옷에 길고 긴 하늘색 머리카락을 하고서는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였다.
“살고 싶다고 했어? 기회를 달라고?”
남자의 목소리는 오만했지만 강일은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예.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강일은 그 남자에 대답을 했다.
왠지 그렇게 대답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기회 따위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래. 다들 그러더라. 살고 싶다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그런데 어쩌냐. 그 기회를 얻었는데도 결국 가서는 다들 똑같아지더라.”
그러지 않을 것이었다.
강일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격렬하게 가로 저으며 외쳤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발!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큭큭큭큭!”
강일의 다급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기회. 나는 줄 수 있다. 암! 줄 수 있고말고.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 개소리지. 내가 대가가 필요 없다고 말을 한다면 사실 대가 없는 호의도 있을 수 있는 것이거든.”
“……·.”
강일은 남자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사는 것이 중요했다.
그냥 말없이 그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난 하백이라고 한다. 강의 신이지.”
“하백?”
강의 신이라는 말에 강일은 이해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리고 그런 강일의 모습에 마음이 든 것인지 하백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네놈같이 죽으려고 강에 뛰어드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리고 다들 마지막에는 살고 싶다고 발악을 하지.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살지도 못하는 놈들이 왜 그리도 강으로 뛰어드는지, 난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거든. 내 집에 누군가가 들어와서는 시체가 된다고 해 봐. 그렇지 않겠어?”
정말로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하백의 말에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하백이 이 한강의 신이고 한강이 그의 집이라고 한다면 자살을 하는 인간들이 꽤나 귀찮기는 할 터였다.
생각 이상으로 한강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강일도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래. 너도 이해를 하니 한 마디만 하지.”
하백은 강일의 귀에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 대고서는 나지막이 말했다.
“정신 차려.”
강일은 그 말이 왜 그리도 소름이 돋는지 알 수 없었다.
온몸의 털이란 털은 전부 곤두섰다.
“좋아, 나도 너의 시체를 처리하는 귀찮은 일은 하고 싶지 않으니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대신 나도 손해를 볼 수는 없는 법 아니겠어?”
“손해요?”
강일은 하백이 왠지 모르게 자신에게 어떤 조건을 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강일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 내가 자선사업 하는 존재도 아니니 나도 너를 살려 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뭐든지 하겠습니다.”
사채업자들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강일은 하백의 요구에 무조건 승낙을 했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한 것일 수도 있음에도 너무나도 절박하게 외쳤다.
하백은 그런 강일에 자신의 제안을 꺼내놓았다.
“좋아! 일주일에 세 가지의 임무가 주어진다. 다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은 없지만 무조건 하나는 완수를 해야만 해. 그것이 나의 요구다.”
일주일에 하나씩 임무가 주어진다는 것에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면 무조건 하백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상대는 신이었다.
물론 신이 자신에게 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었다.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돌아가거라! 하지만 분명 명심해라.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차라리 죽고 싶다고 나에게 발버둥을 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가라. 도움이 될 테니. 신의 선물 상자다.”
“신의 선물 상자?”
강일은 하백으로부터 낡은 궤짝과 허름한 구리 열쇠를 받았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일은 품 안에 꼬옥 안은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물론 그것보다 일단은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강일은 더 기뻤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강일의 감사 인사에 하백은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단지 손의 휘저음뿐이었지만 그것은 거대한 물결이 되어 강일의 몸을 밀어내었다.
“으윽!”
강일은 마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것처럼 몸이 도는 느낌과 함께 다시 숨이 쉬어지지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강일은 한강의 수면 위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강일이 사라지고 난 뒤 하백은 조금은 근심스러운 듯이 강일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겨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다.”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남기고 하백은 거품이 되어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일이 한강 속으로 사라진 지도 일주일이 넘게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누군가 죽었다고 해서 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세상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흘러갈 뿐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강일을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을 찾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쿨럭! 쿨럭! 커억!”
한강의 물은 그다지 깨끗한 편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제법 더러운 편이었다.
그런 한강 물속에서 한 남자가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남자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도와줄 만한 사람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은 점점 남을 도와주면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세태였다.
“하아! 하아! 하아!”
한강에서 밖으로 빠져나온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힘겨워했다.
“살았다. 살았어.”
남자는 다름 아닌 강일이었다.
강일이 한강으로 뛰어든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지만 강일은 그 사실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단지 몇 시간 정도의 시간만이 흐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강일은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자신이 겪은 믿기 어려운 일을 떠올렸다.
“정말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니.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아.”
강일은 한강 속에서 신을 보았다.
물론 강일이 평소 알고 있던 종교의 그런 신은 아니었다.
강일이 본 신은 구원을 해 주지도 않을 것 같았고 전지전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하백? 하백. 아! 궤짝.”
강일은 자신이 하나의 선물을 받아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선물이 자신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하백이라는 신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강일은 낡은 궤짝 하나가 한강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강일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신이 자신에게 준 마지막 기회였기에 결국 한강 물속으로 뛰어들어서는 낡은 궤짝을 꺼내왔다.
“하아! 하아! 열쇠! 열쇠가!”
궤짝에는 튼튼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그 자물쇠를 풀기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했고, 그 열쇠도 하백에게 받아왔다.
강일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적이며 열쇠를 찾았다.
낡은 궤짝은 망치 같은 것으로 부수고자 하면 얼마든지 부술 수 있어 보였지만, 열쇠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부술 수 없다는 것을 하백으로부터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열고자 한다면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들었다.
“열쇠다. 뭐가 들어 있다는 거지?”
무척이나 낡은 구리 열쇠였다.
그 열쇠는 강일은 아직은 알지 못했지만 바로 신의 선물 상자를 열 수 있는 신의 열쇠였다.
강일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행여 누군가가 자신의 열쇠와 선물 상자를 빼앗아 갈지 몰랐다.
다행히 그 누구도 없는 것을 확인한 강일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서는 옷 속으로 낡은 궤짝을 숨기고서는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서 강일은 하백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눈빛을 반짝였다.
점점 삶의 의지가 강하게 살아나고 있는 강일이었다.
“마지막 기회다. 정말 마지막 기회야.”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