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5. 태백산(2)
“으으! 추워!”
해가 떨어진 산속은 여름이라고 해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일교차가 컸다.
더욱이 계곡의 바람이 불어오는 장소의 커다란 바위는 마치 얼음장같이 차가울 정도였다.
당연히 잘못하면 온몸의 열을 빼앗겨서는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강일은 추위에 잠이 깨서는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일어났다.
“허! 벌써 밤이야?”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완전히 해가 넘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강일은 자신의 옆에 있던 가방에서 이불로 사용하려고 했던 담요를 꺼내어서는 몸에 둘렀다.
일단 떨어진 체온을 최대한 회복을 해야만 했다.
“하아! 하아!”
하얀 입김마저 나올 정도로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 있었다.
등산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강일이기도 했고 설령 등산에 익숙하다고 해도 산속에서 잠을 자는 비박에 익숙한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게 강일은 최대한 담요를 몸에 두르고서는 밤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곳으로 기어갔다.
다행히 물에 젖은 옷은 마른 것인지 더는 축축하지 않았지만 신발과 양말은 여전히 물에 젖어 있었다.
결국 나무들 사이로 기어들어간 강일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 버리고서는 옷과 담요로 몸을 감쌌다.
“후우! 죽을 뻔했다.”
강일은 자신이 정말로 죽을 뻔했다는 것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살기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했는데 어이없게도 죽을 뻔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몸을 웅크리고 있자 조금씩 체온이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꼬르륵!
이제 조금 몸이 따뜻해지자 강일은 배 속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아침에 먹은 순두부찌개 이외에 먹은 것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방에 먹을 걸 사 왔지. 상하면 안 되는데.”
등반을 하기 전에 가방에 넣어 둔 도시락을 꺼내는 강일이었다.
대충 시간 되면 꺼내서 먹으려고 했던 것이 잠이 들어 먹지 못한 것이었다.
강일은 도시락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 다행히 상하지는 않았나 보네.”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이자 강일은 몸을 웅크린 채로 도시락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시락도 다 먹고 나자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강일이었다.
“뭐 어차피 첫날에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문제는 문제네.”
랜턴을 챙겨오기는 했지만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에 들어갔다가는 딱 사고 나기 좋다는 것을 강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잠을 자고 난 뒤에 다음 날 아침 일찍 계속 석상을 찾는 것이 나았다.
“후우! 어디서 잠을 가야 하려나?”
강일의 처지에 텐트 같은 것을 챙겨 오기란 어려웠다.
결국 TV에서 본 비박이라는 것을 해보려고 나름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잠자리는 해가 지기 전부터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겨울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에 강일은 가방에서 준비해 온 것을 끄집어냈다.
“일단 비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옷가지를 놓은 다음에 담요로 몸을 감싸고 그 위에 다시 비닐을 쳐서 바람을 막으면 완성.”
정말이지 간단하게 잘 준비를 마친 강일은 눈을 감았지만 너무 오래 잔 것 때문인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 것에 다시 눈을 떠야 했다.
“후우!”
천연화의 도움으로 인해 쉽게 피로를 느끼지 못하면서 강일은 최소한의 수면만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기에 강일이 나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별이다.”
강일은 땅바닥에 누운 상태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은하수를 바라보았다.
어둠뿐인 산속이어서인지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질 듯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저 별들 하나하나가 지구의 수십, 수백 배 이상의 크기를 가진 별들이라는 생각은 강일에게도 와 닿지는 않았다.
다만 저 별들 어딘가 지금의 강일처럼 다른 별들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일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크고 우주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세상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상은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었기에 강일은 하루하루를 만족할 수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하늘의 별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 무슨 소리지?”
순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소리는 끝이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강일은 의아해하면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서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발걸음 소리 같은데. 이 시간에 누가 지나가나?’
야생동물일 것이라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강일의 생각처럼 달빛과 별빛에 비춰진 것은 사람이 맞았다.
문제는 사람은 사람인데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한복? 거기다가 하얀 소복? 뭐 하는 여자야?’
처음에는 처녀 귀신인 줄 알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모습은 하얀 소복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저벅저벅.
그렇게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은 한밤중에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소복을 입은 여인이 강일이 누워 있는 수풀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 뭐지? 설마 나한테로 오는 건가?’
강일이야 이상한 여인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녀가 강일을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위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정확하게 강일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다가오는 여인은 강일이 누워 있는 수풀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따라오시지요.”
“에?”
처음부터 이곳에 강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하는 여인에 강일은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강일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저기 누구시죠?”
강일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에게 누구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미소만을 지을 뿐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오직 따라오라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에 강일은 어쩔 수 없이 땅바닥에 깔아 놓은 것들을 가방 속으로 우겨넣고서는 등에 매었다.
그러고서는 여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뭐지? 귀신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전설에 나오는 구미호나 뭐 그런 건가?’
하백이라는 신을 만나고 산신의 사당을 청소했던 강일이었기에 남들은 겪지 못할 신비한 일들을 겪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강일은 자신도 참으로 대책도 없이 정체도 모르는 이상한 여인을 따라 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잠시 후에 강일은 산속에 그리 작지 않은 집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현대식 집이네. 도립공원이라 이런 집 지을 수 있나?’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맥이 빠지게도 양옥집이 나오자 허탈한 강일이었다.
그나마 그 양옥집의 대문 옆으로 깃발과 울긋불긋한 천들이 들어져 있었다.
‘점집인가?’
흡사 점집들이나 무당들이 사는 집들처럼 보이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예? 아! 예! 감사합니다.”
강일은 여인이 들어오라는 말에 긴장한 채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거실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상과 두 눈이 부리부리한 장군의 그림이었다.
강일은 이 집이 무당집임을 알아보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몇 번 가 보았던 그런 집들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여인은 그 장군 그림을 향해 인사를 하며 다녀왔다는 말했다.
그런 그녀에 강일도 두 순을 모아서는 기도를 하듯이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일이라고 합니다.”
강일이 장군에게 자기소개를 하며 기도를 하자 여인은 조금은 놀란 듯이 강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은 채로 강일에게 말했다.
“식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예? 식사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느닷없이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식사까지 대접을 받기가 민망했다.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괜찮은데.”
여인은 부엌으로 가서는 달그락 거리며 강일의 식사를 준비했다.
강일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엉거주춤 서 있어야만 했다.
식사를 준비한다지만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별다른 식재료가 없어서 그런지 금방 준비를 해서는 내어오는 여인이었다.
“앉으세요. 귀인이 계신다고 급하게 전해 들어 마땅찮게 준비가 된 것이 없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무당인 것 같기는 한데 딱히 무당 같지는 않은 느낌의 여인이었다.
사실 당골 계곡의 당골이란 명칭은 수많은 무속 당집들이 모여 있기에 만들어진 명칭이었다.
태백산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무속인들에게 있어서 성지와 같았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샤머니즘과 같이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존재할 때부터 무속 신앙이 존재했다.
그런 신에 대한 기원과 믿음은 때로는 신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인간이 신선이나 신이 되기도 했다.
강일은 정체불명의 여인이 차려 준 밥을 먹으면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이토록 잘해 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강일의 그런 의문은 여인의 입에서 풀렸다.
“제가 모시는 신께서 큰일을 하시게 될 귀인을 모시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예? 저 장군님께서요?”
강일은 족자에 그려져 있는 장군을 가리켰다.
“예! 그렇습니다.”
하백이라는 신도 만났으니 무당이 모시는 장군 신이 없다고는 못할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뭔가 큰일인 건가?’
강일은 하백의 임무가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강일은 그렇게 밥을 떠먹다가 여인을 향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혹시 이곳에서 오래 사셨나요?”
“어느 정도 오래 살았냐는 의미를 모르겠지만 햇수로는 5년 정도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였기에 무척이나 젊은 나이 때부터 홀로 이런 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듯했다.
물론 동안의 외모지만 실제 나이는 30대일 수도 있는 법이었다.
아무래도 여자의 외모만으로는 나이를 쉽게 알 수 없기도 했고 왠지 모를 여인의 신비한 분위기에 감을 잡기는 어려웠다.
하여튼 5년 정도를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니 강일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질문을 했다.
“혹시 이 당골 계곡에 석상을 보신 적 있으세요?”
“석상이요?”
강일의 질문에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장군이 그려진 족자를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도 아무런 말씀을 해 주시지 않네요. 아무래도 직접 찾으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 아닙니다.”
강일은 여인이 죄송하다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방에 강일의 잠자리를 봐 주었다.
강일은 꼭 자신이 저 여인의 서방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장군 신이 보고 있는 곳에서 수작을 부릴 만큼 간이 큰 것은 아니었다.
‘천벌을 받을 거야. 천벌을.’
강일은 한숨을 내쉬고서는 들어가 쉬라는 여인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서는 방에 들어가서 이불 위에 누웠다.
“후우!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도 안 잡히네.”
꼭 도깨비 노름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일은 배도 부르고 긴장도 조금씩은 풀리는 것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서 찾으려면 빨리 자야지.”
그렇게 강일은 오래지 않아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샤워를 한 여인이 강일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오다가 강일이 잠이 든 것을 보고서는 잠시 강일을 바라보다가 피식 미소를 짓고서는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