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5. 태백산(4)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강일은 자신의 옆에서 새근거리며 잠이 들어 있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허억!”
당연히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강일은 이내 자신의 놀란 목소리에 잠이 깬 것인지 눈을 부비며 일어나는 여인을 보았다.
“일어나셨어요?”
“아! 저기 저…….”
강일은 아직도 이름을 모른다는 것에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그런 강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무당인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혜령이라고 해요. 뭐 본명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걸 이름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아! 예! 혜령 씨. 그런데…….”
강일은 분명 물에 빠진 기억이 났다.
그러고서는 웬 아름다운 미녀가 자신을 구해주는 것을 꿈속인 듯한 느낌으로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강일은 혜령의 얼굴을 다시 유심히 바라보았다.
‘예쁘시기는 한데…….’
혜령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강일은 자신이 쳐다보자 얼굴을 붉히는 혜령에 자신도 얼굴이 붉어졌다.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아! 저기.”
강일은 혜령을 향해 어제 밤의 일을 물어보려고 했다.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돌아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물에 빠지신 강일 님을 이곳으로 모셔 왔어요.”
혜령은 강일을 구한 여인에 대해서 강일에게 알려주기 싫었다.
그래서 대충 그렇게 못을 박으려고 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강일은 자신이 본 아름다운 여인은 자신의 착각이었고 혜령이 자신을 구해 준 것으로 여겼다.
워낙에 정신도 없었고 기억도 흐릿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강일은 물속에서 보았던 시체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물속에…….”
분명 시체였다.
강일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물속의 시체를 건져 내야만 했다.
물론 건져내서 강일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체의 주인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백단사 주지 스님께서 건져 가셨어요.”
“예?”
강일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혜령을 바라보았다.
“석상 찾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 석상의 주인은 백단사 맞지요?”
“어떻게?”
강일은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혜령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녀가 신을 모시는 무당임은 알고 있었다.
“그분은 백단사 전대 주지스님이셨어요. 승명은 석상 스님. 유명하신 분은 아니시지만 꽤나 도력이 높으셨던 분이신데 불행한 일을 겪으셨지요.”
“…….”
강일은 하백의 임무의 석상이 자신이 알던 그 석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 해결된 건가요?”
“주지 스님께서 한번 뵙자고 하셨어요.”
강일은 혜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강일 덕분에 석상 스님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한번 찾아뵙고 일을 마무리해야 할 터였다.
“식사하시고 올라가시면 되실 거예요.”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거죠?”
강일의 질문에 혜령의 몸이 움찔 떨렸다.
강일의 맑고 깨끗한 눈이 혜령의 눈동자 속으로 들어왔다.
혜령도 자신이 강일에게 왜 이리 잘해 주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혜령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좋으니까요.”
“……?”
그 말과 함께 얼굴을 붉히며 혜령은 방을 나가 버렸다.
강일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기 어렵다는 듯했다.
아니, 강일도 얼굴을 붉히며 혜령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뭐? 뭐지? 고…… 고백 받은 거야?’
혜령이 무당이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에게 먼저 고백을 받았다는 것을 강일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강일은 식사를 하라는 혜령의 말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할 정도로 먹고서는 백단사로 향했다.
태백산의 백단사는 강일이 올라왔던 당골 계곡 매표소 쪽이 아닌 백단사 매표소 쪽의 다른 등산로 방향이었다.
혜령의 당집에서 걸어서 두어 시간 정도 가야 나오는 곳이었지만 등산로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나오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강일은 오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백단사도 많은 등산객들이 돌아다니며 경내를 구경하고 있어서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과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는 곳이 분리가 되어 있었다.
“주지 스님한테 찾아가라고 했지?”
강일은 자신이 임무를 제대로 한 것인지 아닌지를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일은 백단사 경내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걷고 있는 스님 한 분에게 다가가서는 말을 걸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강일이 말을 거는 것에 조금은 의아한 듯한 표정의 스님에 강일은 말했다.
“저기 혜령 씨가 주지 스님께서 뵙고 싶다는 말했다고 해서…….”
“아! 감사합니다!”
대뜸 감사하다는 말에 강일은 놀랬지만 스님의 표정에서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안 그래도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저를 따라 와 주십시오.”
“아! 예! 예!”
강일은 젊은 스님을 따라 관람객들은 들어갈 수 없는 백단사 안쪽 길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한 순간에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으로 변하면서 정말로 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주지 스님! 귀인 분께서 오셨습니다.”
“아!”
젊은 스님의 말에 방 안 쪽에서 탄식 소리와 함께 한 노스님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노스님은 강일을 보고서는 곧장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석상 스님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저도 우연찮게 발견한 것이라.”
강일의 겸양에 노스님은 미소를 짓고서는 몸소 강일을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정말이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강일은 백단사 주지 스님으로부터 그윽한 차 한잔을 대접 받으면서 석상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큰 스님께서 백단사를 나서신 것이요. 그러고서는 1년 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습니다.”
“그렇군요.”
강일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묵념을 했다.
“그런데 그 쪽은 꽤나 외진 곳이라 사람들이 출입을 하지 않는 곳인데 어찌하여 그리로 가신 것입니까?”
강일은 노스님의 질문에 난감해졌다.
우연히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 야밤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분명 의심을 받을만한 행동이었다.
‘아! 하백님의 임무 때문이라고 말을 하기도 그렇고…….’
강일은 잘못하면 석상 스님을 죽인 자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때문인지 노스님의 눈초리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정말로 석상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냥 석상이었다면 별 문제 없이 해결이 되었겠지만 사람이 죽은 것이었다.
정말로 실족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살해를 당한 것인지 조사가 들어가야 할 터였다.
그리고 강일은 용의점에 올라가는 최우선 순위가 될 터였다.
그렇게 강일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릴 때 노스님은 한숨과 함께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석상 스님께서 서의 사형이 되시다 보니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경찰 조사로 몸의 별다른 상처는 없는 것으로 보였고 스님께서 평소 지병을 앓고 있어서 그때문에 낙상을 당하신 것 같습니다.”
“아! 예!”
강일은 의문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노스님의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좋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게 된 것이었다.
물론 비현실적인 하백과의 임무 때문에 설명을 할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석상 스님이 더는 외롭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되자 강일은 오래지 않아 자리에 일어났다.
“그럼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노스님의 인사를 받은 강일은 그렇게 몸을 돌려 백단사를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강일은 노스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주님!”
“예?”
자신을 부른 소리에 강일은 고개를 돌렸고 노스님의 손에 들린 구리 열쇠를 볼 수 있었다.
“이걸 떨어뜨리고 가신 것 같습니다.”
노스님은 강일이 앉았던 자리에 자신도 모르는 구리 열쇠가 있는 것에 강일이 빠뜨리고 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급히 강일을 불러 구리 열쇠를 내민 것이었다.
강일로서는 자신이 임무를 완수했고 그 임무의 보상이 구리 열쇠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어. 하백님의 임무를 완수하면 구리 열쇠를 받을 수 있는 거였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구리 열쇠를 받아든 강일은 자신의 고시원에 있는 신의 선물 상자를 마침내 열 수 있다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강일은 노스님의 인사를 받으며 백단사를 나와 혜령의 당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에게 왠지 인사를 하고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이었다.
“혜령 씨!”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혜령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외출 하셨나?”
물론 사람이 항상 집에만 붙어 있을 수는 없었기에 강일은 혜령이 잠시 어디 외출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혜령의 집에서 잠시 기다렸다.
떠나기 전에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다.
“늦으시네.”
하지만 제법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혜령에 강일은 왠지 서운하면서도 미안해졌다.
그녀의 이름을 아침에서야 알았으니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알리도 없었기에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결국 강일은 돌아오지 않는 혜령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는 혜령의 집에 놓아두고서는 집을 나섰다.
“그래. 내 주제에 연애는 무슨!”
강일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으며 산길을 내려갔다.
당장 일주일 앞의 삶도 예상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설령 연애를 하더라도 가진 것은 빚 밖에 없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만한 여유를 가지기란 어려웠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일은 태백산을 내려갔다.
“…….”
그리고 그런 강일의 뒷모습을 혜령은 말없이 바라보며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나는 듯했지만 미래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