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6. 두 번째 상자(2)
툭! 툭!
강일은 자신의 몸을 뭔가가 건드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몸이 너무나도 편안하고 나른한 느낌에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잘게요.”
그렇게 어린아이 투정 부리듯이 말을 하고서는 미소를 지은 채로 잠이 들려고 했다.
툭! 툭! 툭!
점점 더 자극은 강해졌다.
퍽! 퍽!
이제는 아주 때리는 듯한 느낌에 강일은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뭐야?”
그러고서는 볼 수 있었다.
“어? 누구?”
웬 여자가 얼굴을 붉힌 채로 강일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내 고시원 방 맞는데.’
여자가 자신의 방에 있을 리는 없었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야!”
“응? 누군데 내 방에 있는 거지?”
강일은 자신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여인에 인상을 찡그리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서는 어지선가 익숙한 듯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너 이거!”
강일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여인은 공청석유가 들어 있던 도자기를 강일에게 내밀었다.
“아!”
강일은 어제 밤의 일을 떠올리고서는 천연화를 바라보았다.
분명 도자기 속에 있던 액체를 시들어 버린 천연화가 담긴 물 컵에 부어 버린 것을 떠올렸다.
“뭐야? 분명 어제는 시들었었는데?”
화사하게 만개를 하고 있는 천연화의 모습에 강일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는 천연화에게 가다갔다.
아니, 오히려 천연화보다 더한 화려함이 느껴졌다.
다만 별다른 향기는 나지 않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천연화의 향기가 지속적으로 퍼져 나갔을 터였지만 만연화로 진화하면서 자신이 향기를 내고 싶을 때만 향기를 풍기는 것이었다.
“이! 이!”
그렇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만연화를 둘러보고 있을 때 강일로부터 무시를 당한 여인은 이를 악물다가 도자기 속에 한 방울의 공청석유가 있음을 보았다.
두근두근.
단 한 방울이라고 해도 백 년의 공력을 가진 공청석유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영약이었기에 여인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지?’
그녀는 너무나도 공청석유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 아닌 상태에서 그것을 훔쳐 낼 수는 없었다.
정신이 없어 보이는 강일을 보건대 훔쳐 내는 것이야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었기에 훔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대가를 주고 강일에게서 넘겨받아야만 했다.
물론 그녀는 강일에게서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고작 공청석유 한 방울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다.
‘좀 더 지켜봐야겠어.’
그녀는 강일을 불렀다.
“이봐!”
“어? 누구? 아!”
강일은 마침내 기억이 난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당신 그때 그 스포츠카의 건방진 여자!”
“뭐? 건방진!”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강일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난처해했다.
강일 자신의 말에 화가 난 것인지 얼굴을 붉히는 여인에 강일은 미안한 듯이 사과를 했다.
“아! 미안해요. 말이 헛 나왔네요.”
“정말 미안한 거예요.”
그녀는 강일의 사과에 화를 내려다가 좋은 기회라는 듯이 물었다.
그녀는 공청석유가 든 도자기 병을 들어올려서는 외쳤다.
“이거 내가 살게!”
“에?”
강일은 저번에도 자신에게 나무 상자를 사더니 이번에는 도자기 병을 산다는 말에 기가 막혔다.
‘뭐야? 설마 그거 살려고 날 찾아 온 거야? 아니…….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내가 신의 선물 상자를 가진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강일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도무지 눈앞의 여인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일의 눈빛이 변하는 것에 여인은 표정이 굳어지며 안절부절못했다.
“이거!”
여인은 급히 강일의 눈앞에 오만 원권 지폐 더미를 내밀었다.
“지금 뭐하는…….”
강일은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여인에 화가 나려고 했다.
자신의 방을 무단 침입을 했고 자신의 비밀을 알아 버린 여인이었다.
“이거 두 배!”
그녀는 두 배를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강일의 표정이 굳어져 있는 것에 다급히 외쳤다.
“세 배?”
“…….”
여인은 세 배를 불렀음에도 냉랭한 강일의 표정에 울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다섯 배!”
“상자도 드릴까요? 헤헤!”
돈에는 장사 없는 법이었다.
특히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강일로서는 눈앞의 500만 원의 다섯 배를 준다고 하니 영혼마저도 팔 기세였다.
“하아!”
여인은 강일이 손바닥을 비비며 상자까지 드릴까요 하는 말에 긴장이 풀리며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정말 누구세요?”
“흥! 아리. 내 이름은 아리라고. 그리고 분명 판다고 했다! 두 말 하면 안 돼!”
“아! 예! 아리 씨.”
도자기가 제법 값이 나갈 것 같기는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용을 써도 그 정도 가격을 다른 곳에서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2,500만 원이라면 자신의 학자금은 물론이고 빚도 전부 갚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게 웬 떡이지? 혹시 꿈은 아니지?’
강일은 얼떨떨한 것에 아리를 바라보았다.
아리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라는 듯이 도자기를 자신의 품에 안고 있었다.
“흐음! 자! 일단 이거 하고 나머지 돈은 혹시 계좌 번호 있어? 지금 현금 없으니까 조금 있다가 쏴 줄 테니까.”
계좌 이체를 해 주겠다는 말에 강일은 돈 못 받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자신의 눈앞에 있는 500만 원 지폐더미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주는 강일이었다.
“흐음!”
아리는 강일의 책상 위에 있는 만연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조차 말로만 들었던 천계의 보물이 눈앞에 있었지만 자신이건드릴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주인 정한 만연화를 건드렸다가는 내 명에 못 살지.’
깨끗하게 포기해 버린 아리는 강일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아리의 눈에는 강일의 신체가 엄청나게 변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더럽게 운이 좋다니까.’
아리는 강일이 적어 준 계좌번호를 호주머니에 넣고서는 강일이 가져가라고 내민 신의 선물 상자를 바라보았다.
“아! 잠시만요.”
강일은 아리에게 내민 신의 선물 상자에서 열쇠를 빼려고 했다.
다음에 또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리는 그런 강일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비웃으며 말했다.
“소용없어. 한 번 사용한 것은 두 번 다시 사용 못해. 이제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평범한 상자와 열쇠일 뿐이야.”
움찔!
강일은 아리의 말에 몸을 움찔 떨고서는 아리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여인이었다.
“궁금해? 후훗!”
“아리의 미소가 고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강일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온 카페에 앉아 파르페를 맛나게 먹고 있는 아리를 바라보았다.
“하앙! 난 달달한 게 그렇게 좋더라.”
귀염 터지게 애교를 부리는 듯한 아리에 강일은 정말로 그 도도한 여인이 맞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정체가 뭐예요?”
강일은 더는 기다려 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물었다.
본래대로였다면 벌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리에게서 돈도 받았고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같기에 이러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보채지 말라고.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잖아. 그렇게 급하면 여자가 안 따르는 법이라고.”
아리의 말에 강일은 울컥했지만 일단은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기에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흐음! 너 신의 열쇠를 내가 아는 것이 궁금한 거지?”
“예! 어떻게 아는 겁니까? 혹시…….”
강일은 하백도 그렇고 산신도 그렇고 혹시나 눈앞의 아리도 신이나 아니면 그에 준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신이세요?”
“풋!”
아리는 강일의 말에 입 속의 파르페를 뿜어내었다.
급히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서는 멍청한 놈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강일을 바라보았다.
“너 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여간! 에이! 몰라. 아무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는 아니야.”
강일은 아리가 신이 아니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영 미심쩍었다.
더욱이 자신이 묻는다고 해도 대답을 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남자가 너무 궁금해하면 인기가 없는 법이라고. 그냥 어떻게 알게 된 것이니까. 세상에 알 수 없는 비밀들이 의외로 많은 법이거든.”
“아! 예! 예!”
강일은 아리의 말에 대충 대답을 해주면서도 보통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신이 아니면 요괴일까? 엄청 예쁘게 생긴 것이 사람 홀리는 요괴 같기도 하고 말이야.’
강일은 어쩌면 아리가 요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괜히 정말로 사람의 간을 파먹는 요괴라고 한다면 자신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하백도 봤는데 인간 아닌 인간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도 사실 이해해 줄 만했다.
“뭐야? 그 반응은? 하여간 나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있어.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도 찾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 문제지.”
“그러니까 그게 이 신의 선물 상자에 나오는 것이라는 거죠?”
강일은 눈앞의 아리라는 신과 같은 존재가 자신의 주위를 돌면서 신의 선물 상자의 내용물에 탐을 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자신에게서 산 도자기에 아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아까 그게 원하던 거였어요? 그럼 이제 더 이상 저하고 볼 일은 없겠네요.”
“끄응! 그건 아니야. 내가 원하던 것은……. 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꽤나 값진 것이기에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고 산 것이지.”
아리의 말에 강일은 과연 그녀가 뭘 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신의 선물 상자는 그 내용물이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상자 안에서 뭐가 나올지는 신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신의 상자는 오직 선택받은 이밖에는 열 수 없어.”
“하백이라는 강의 신이 저를 선택한 것인가요?”
강일은 하백에 대해서 밝혔다.
그래도 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을 해야 자신도 답답한 의문들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아리는 정말 모든 것이 의문이라는 듯한 눈빛의 강일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하백이 대단한 신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신의 상자를 열 수 있는 능력을 부여 할 수는 없어. 그냥 기회를 줄 수만 있을 뿐이지. 그것을 온전히 열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능력이야.”
강일 자신의 능력이라는 것에 강일은 놀라야만 했다.
하백이 준 임무를 완수했기에 할 수 있는 것으로만 안 것이었다.
“하백의 임무를 완수해서 신의 열쇠를 얻었다고 해도 신의 상자를 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래. 뭐 그 애들로서는 억울하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신의 상자가 항상 이로운 것만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예?”
강일은 아리의 눈빛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고 했지? 신조차도 말이야.”
아리의 말에 강일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설마 괴물?”
“큭! 그것도 몰라. 난 열 수 없거든. 뭐가 나올지는 말이야.”
아리는 몸을 일으켰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식이었다.
‘결국 넌 겁을 내겠지만 열 수밖에 없는 운명일 거야. 너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있을 테니까.’
아리는 그 말을 강일에게 전해 주지 않은 채로 카페 밖으로 나갔다.
그런 아리의 뒷모습을 강일은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