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취업(1)
강일은 정장을 빼입은 채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서는 아리가 오라고 한 곳을 향했다.
그러고서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커다란 호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호텔이라고 써 있었구나.”
강일은 그제야 봤다며 자신의 손글씨로 적혀 있는 주소의 끝에 호텔이라는 글씨를 보았다.
취직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어서 자신이 듣고 받아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것이었다.
임페리얼 호텔.
서울에서도 상당히 큰 호텔이었다.
비록 5성 호텔은 아니었지만 4성 호텔로 꽤나 고급 호텔이었다.
4성 호텔이라고 해서 급이 낮은 것은 아니었다.
당장 대한민국에 5성급 호텔은 여섯개 밖에 없을 정도였다.
더욱이 호텔과 카지노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의 293개의 호텔 중에 5성급 호텔은 고작 11개에 불과했다.
사실상 서울의 호텔들도 제대로 기준을 잡고 구분한다면 상당 숫자가 5성급 호텔에서 탈락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수백개의 객실을 가진 거대한 건물을 보며 강일은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혹시 아리 씨 재벌 집 딸내미야?”
하는 것으로 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비싼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온갖 명품으로 몸을 두르고 거기에 강일의 기준으로는 별 것 아닌 일에 돈을 뿌려댄다.
거기에 강일 정도는 그냥 고용 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 것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후우! 일단 들어가 보자.”
강일은 호텔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면서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호텔에서 자는 느낌은 어떨까?’
TV에서 꽤나 유명한 호텔의 하루 숙박료가 수십 수백만원을 넘어가는 것을 들었지만 사실 실감은 나지 않았다.
1층 호텔 로비로 들어오자 정장 차림의 남녀 직원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어서 오십시오!”
“아! 예!”
강일은 당황한 나머지 같이 인사를 하고서는 얼굴을 붉히며 카운터로 향했다.
“아! 저기 물어 볼 것이 있는데요.”
“예! 손님. 무슨 일이신가요?”
일단 오라고만 했지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은 아리였기에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할 터였다.
“아리 씨가. 이력서 들고 이곳으로 오라고 했는데요.”
“예? 아리 씨라니요?”
강일은 황당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여직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리 씨라고 혹시 모르시나요?”
“그……글쎄요.”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의 여직원에 강일은 얼굴을 붉히고서는 강일은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강일은 곧장 아리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전화를 받지 않던 아리는 잠시 후에 전화를 받더니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왜 해?”
“응? 아니! 나보고 이력서 가지고 임페리얼 호텔로 오라면서요.”
강일은 가기 막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가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목소리를 낮췄다.
“아? 맞다. 너 오라고 했지? 흐음! 잠시만 김실장 내려 보낼게. 거기 1층 로비지?”
“예.”
강일은 그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에 1층 로비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이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이었지만 다행히 오래지 않아 호텔 유니폼 복장의 중년 남자가 두리번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서는 강일을 발견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물었다.
“혹시 이사님께서 말씀하신 강일 씨 되십니까?”
“예! 제가 강일입니다. 아리 씨 맞지요?”
강일은 혹시나 또 잘못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리라는 이름을 밝혔다.
그런 강일에 중년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아가씨의 이름은 저희는 모릅니다. 하지만 참조하겠습니다.”
아리라는 본명을 모른다고 하니 카운터의 여직원의 반응이 이해가 가는 강일이었다.
‘무슨 자기 이름도 안 알려 주나.’
강일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김실장이라는 남자를 따라 호텔 객실 건물이 아닌 비즈니스 건물로 향했다.
호텔 객실과는 조금 느낌이 다른 비즈니스 건물은 그다지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에 중심을 둔 듯이 깔끔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리로 오시지요.”
“예!”
강일은 김실장의 안내로 다른 비즈니스 룸의 문과는 조금 다른 문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다른 방들과는 달리 입구에 두 명의 여직원들이 서서는 이 방안에는 꽤나 중요한 사람이 있다는 듯이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인 듯한 예쁜 여직원의 말에 김실장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안에 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아! 예! 감사합니다.”
강일은 안의 문 안까지는 자신도 들어갈 수 없다는 듯한 김실장에 숨을 들이마시고서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냥 들어 와.”
강일의 노크 소리에 아리의 목소리가 들리자 강일은 문을 열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커다란 창문에 비치는 전망과 햇빛에 눈을 찡그린 강일은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책상에 앉아 안경을 쓴 채로 서류를 들여다 보고 있는 아리를 볼 수 있었다.
“지금 바쁘니까 저기 앉아 있어. 그리고 커피 한 잔 타 와.”
“예! 알겠습니다.”
아리는 강일을 쳐다보지 않은 채로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서류를 확인하며 서명을 하거나 한 쪽 구석으로 밀어 버리고 있었다.
‘일하는 건가? 조금 어울리지 않은 느낌인데.’
강일은 아리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왠지 집 안 좋은 배경의 조금은 날라리 같은 철부지 여인으로만 안 것이었다.
‘우와!’
하지만 아리가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계속 보면서 조금씩 무척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TV의 드라마에서와 같이 재벌 2세나 3세처럼 일은 안하고 놀러 다니거나 사랑 타령하는 모습은 실제로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들도 그 자리에서 버텨내기 위해서는 생각 이상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만 했다.
그렇게 강일은 한 시간이 넘도록 서류와 씨름을 하는 아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봐야 했다.
“후우! 이 서류들 전부 가져가요!”
“예! 알겠습니다.”
마침내 끝났는지 아리의 목소리에 여비서가 들어오더니 서류를 챙겨서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조금 피곤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안경을 벗는 아리는 소파에 앉아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강일을 보았다.
“…….”
뭔가 고민을 하는 듯하던 아리는 몸을 일으키더니 종종 걸음으로 자신의 집무실에 딸린 다용도 실로 들어갔다.
그러고서는 이내 천으로 싸여진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쿵!
제법 무게가 나가는 듯한 천에 싸인 물건에 의아해 하는 강일에 아리는 천을 벗겨내었다.
그러자 강일은 그것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신의 선물 상자?”
“그래. 너 지금 열쇠 없지?”
놀랍게도 신의 선물 상자가 나타나 있었다.
이번에는 열쇠가 하나짜리 상자로 아리의 질문에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는 열쇠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쇠가 없다는 말에 아리는 실망을 하기는 했지만 이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후우! 하긴 어제 열었으니 당연히 열쇠가 없겠지. 혹시 임무 받았어? 아직 그것도 시간이 안 되었나?”
“받았는데요.”
“뭐? 정말? 뭔데? 뭔데?”
강일이 임무를 받았다는 말에 아리는 두 눈을 반짝이며 강일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강일이 당황할 정도였지만 아리의 눈빛과 함께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녀에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리고 아마 이것 때문에 자신을 고용하는 것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말을 해야 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아리도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묻는 것에 강일은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전에는 하급 임무로 해야 할 일이 적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백지로 왔더라고요.”
“백지란 말이지?”
아리는 강일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민을 하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그건 알아서 하고 일단 이력서 내 놔 봐!”
“아! 예!”
강일은 자신의 이력서를 아리에게 주었다.
설마 아리가 직접 면접을 진행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리는 강일의 이력서를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읽고서는 힐끔 강일을 쳐다보며 말했다.
“흐음! 그동안 뭐했어? 아무것도 없네.”
“그……그게.”
아리는 철부지 아가씨가 아니었다.
꽤나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강일의 이력서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빚도 꽤나 있었던 걸로 아는데 정말 취직 하고 싶었던 거예요? 별다른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잘하는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노력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기분 나쁘게 들리더라도 누구나 그 정도의 노력은 하는 거니까요. 지금 강일 씨가 가져 온 이력서는 그냥 강일 씨 이름 밖에 없는 백지예요. 백지.”
“…….”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었다.
아니,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기에 결과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강일의 기구한 사연은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고려할 이유가 없는 일들이었다.
“강일 씨도 알다시피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에요. 결국 직원도 기업에 얼마만큼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느냐가 취업을 결정하는 최우선 조건이에요. 그렇기에 남들과 똑같거나 못하다면 기업은 그 사람을 채용할 이유가 없어요. 제가 강일 씨를 고용하려는 이유 뭔지 알지요?”
“예.”
강일은 신의 선물 상자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저것을 열 수 있는 자가 강일 밖에 없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요. 아는 듯하니 다행이네요. 하지만 그 뿐이라면 강일 씨는 한계에 도달하고 말거예요. 본래대로라면 임무가 끝나는 순간 강일 씨와 나는 다시 볼 일이 없어요.”
강일도 그렇게 생각을 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그렇게 날려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강일은 눈앞의 여인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닌 정말로 기업의 인사담당자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왠지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아리 앞에서 신의 선물 상자만 열다가 끝이 나 버릴 것 같았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요. 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허우적거리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가치가 그것 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강일의 말에 아리는 물끄러미 강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좋아요.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이예요. 당신의 가치를 증명해 봐요. 대신 임무 때는 업무에서 빼드릴 테니까 그건 걱정 하지 마시고요. 김실장님!”
아리의 외침에 곧 문이 열리고서는 강일을 안내해 온 김실장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사님.”
“강일 씨. 흐음!”
아리는 순간 강일을 어디로 보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강일의 몸을 보고서는 지시를 내렸다.
“자재과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강일은 아리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단지 자신을 상자 여는 용도로만 여기지 않고 한 번의 기회를 줄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일도 그런 아리의 생각에 안도를 했다.
하백의 임무가 언제까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임무가 끝나면 자신의 소용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 자리를 확실히 잡게 된다면 강일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런 평범함조차도 힘든 현실에서 이런 기회라면 강일이 마다할 일은 아니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