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은 부모 잘 만나 글공부만 하던 젊은 유생이 유람을 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외모는 백면서생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하얀 얼굴에 툭하고 살짝만 건드려도 쓰러질 것 같이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20대 초반이었고 입고 있는 옷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학창의였으며, 손에는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 묵 빛의 부채가 들려 있었다. 또한, 이야기를 파는 매설자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진지한 얼굴로 그 지역에서 가장 강한 무림단체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유생이 무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무림에 대한 환상과 그 단체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를 해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사흘 후…….
그 단체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원체 무림이라는 곳의 생리가 강자존, 강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돌아가기에 그보다 더 강한 어떤 문파에 당해서 사라진 것으로만 생각했지. 자신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던 유생에 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얼마 후 그렇게 수십 개의 문파가 봉문했다.
유생은 사천의 성도 땅에 나타났다. 그는 객잔 앞에서 작게 읊조렸다.
“놈들의 지부라고 부를 수 있는 문파들을 쳐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들뿐인가. 지금까지는 아무도 모르게 행동한다고 했지만 개방을 통해서 어느 정도 나에 대한 정보가 퍼졌을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부터는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혼잣말을 마친 유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객잔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옆으로 점소이가 다가와 그 객잔의 자랑과 주력 음식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점소이의 말을 잘라먹고 간단한 소면을 하나 주문했고 점소이는 투덜거리며 주방에 그의 주문을 말했다.
잠시 후, 주문한 소면이 나왔고 그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소면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점소이에게 은전 하나를 쥐어주며 물었다.
“내가 알기로 이 근처에 사천 당가라는 가문이 있는 걸로 아는데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돈을 바지춤에 챙기며 헤벌쭉하던 점소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성도 땅에서 지배자라고 불리는 당가의 위치를 물어보다니… 그것만으로 점소이는 이 유생이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알려줄 수 있었지만 점소이는 이 외지인의 주머니를 털어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알려주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그곳은 왜 찾으시는지요?”
“내 비록 유생이지만 강호를 동경하여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소이다. 사천 당가가 정도 무림에서 알아주는 곳이라기에 한번 둘러보고 싶어서 그러오.”
사천 당가는 정도 무림 오대세가에서 독과 암기로 유명한 곳이다. 솔직히 따지면 정사 중간 내지는 사도로 봐도 무방하지만 정도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 모두들 정파로 분류를 시킨다.
당가의 구조를 좀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당 씨 성에는 내성과 외성이 있으며, 내성은 당문을 세운 당 씨들이 주축이 되는 씨족들이고, 외성은 데릴사위나 당문에 지대한 공을 세운 자에게 주어지는 당 씨 성을 말한다.
아무튼 강한 문파이며 사천 땅에서는 정도 삼대문파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이다.
“손님께서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당가는 철저한 혈족 구조입니다. 외인, 그것도 유명한 무림인이 아닌 이상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요.”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이오.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그냥 알려주시오. 몰라서 그런 거라면 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겠소이다. 여기에 당신 말고 다른 점소이가 더 있는 것 같으니…….”
유생은 점소이가 돈을 노리고 바로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은전 세 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점소이는 그 은전을 놓칠 수 없었다. 솔직히 그의 월급이 그렇게 센 편은 아니다. 그가 일하는 이 객잔이 성도 땅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의 월급은 그냥 평범한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와 똑같았기에 이렇게 부수입이 들어오는 것을 놓칠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요. 제가 모르긴 왜 모릅니까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요. 일단 저희 객잔을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쭉 가십시오. 그럼 대로가 나옵지요. 그 대로에서 왼쪽으로 다시 쭉 가시면 거대한 저택이 하나 나올 겁니다요. 거기가 손님께서 찾으시는 사천 당가입지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점소이는 헤헤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유생은 그를 보고 살며시 미소 지으며 은전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역시 황금만능주의,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소이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소이다. 내 당가에서 볼일이 끝나면 이곳에 꼭 들르겠소.”
유생이 사라지고 점소이인 봉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은전 두 닢에 희희낙락했다. 자신이 만났던 그 유생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고 단지, 돈 많고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골빈 유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유생이 다녀간 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봉구는 자신의 귀가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소문을 듣고 말았다.
정도 무림의 열다섯 개의 기둥인 정천십오주(正天十五柱) 중 하나인 사천당가 봉문을 선언하다.
봉구뿐만이 아니라 무림은 물론 무림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에게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운 소문이었다. 사도나 마도의 대대적인 공세로 인해서 봉문을 한 것이라면 몰라도 두 세력 다 미동도 없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봉구는 객잔의 손님들에게 아무래도 자신과 그날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유생이 벌인 일 같다고 이야기했다. 모두들 아니라고 말도 안 된다고 치부했지만, 그 이야기는 알게 모르게 무림에 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그 유생의 존재감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거에 있었던 지방의 중소문파를 봉문시킨 것도 증거는 없지만 그 유생이라고 결론 내렸고 그로 인해 조용하던 무림에 가장 중요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유생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었다.
사천 당가가 봉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천에 있는 구파일방의 두 개 문파인 아미파와 청성파까지 봉문을 당하고 말았고 무림은 개미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난리가 났다.
사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도에 원한이 깊은 마도도 아닌 이가 명문 정파들을 봉문시키고 다니니 혹시 오래전에 은거한 마두의 제자가 스승들의 복수를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하고 바짝 긴장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봐, 자네 들었어? 사천의 정파를 모조리 봉문시킨 이가 약관(20세)을 조금 넘긴 청년이라더군.”
“허어, 이 친구 보게. 자네 술이 덜 깼나보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린가? 나도 봉문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네. 그런데 당가와 청성파, 아미파가 그렇게 녹록한 문파인가. 정도 무림의 하늘이며 열다섯 개의 기둥, 통칭 정천십오주라고 불리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일원들일세. 그들이 고작 20살 조금 넘긴 청년에게 봉문을 당하는 것이 말이 되느냔 말이야. 자네나 나나 들은 것이 엄청난데 고작 그 나이에 그런 엄청난 짓을 할 수 있겠나?”
“허어, 이 친구 보게. 지금 무림에서 모두들 쉬쉬하고 있어서 제대로 안 알려진 거야. 자네도 기억할 거야. 우리 옆집에 사는 덕배 놈 아들…….”
“기골이 장대하고 무재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청성파의 장로에게 직접 발탁된 그 아이 말인가?”
“그래, 그놈이 요 며칠 전 집에 왔다갔어. 잠시 휴가가 주어졌다나? 아무튼 그렇게 왔다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하고 갔다더군. 그 녀석의 말에 따르면 유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청성파에 찾아와서는 정중하게 대련을 요청했다는 거야. 청성파에서는 그를 얕잡아보고 이제 막 수련 제자를 탈피한 제자를 내보냈다가 낭패를 봤지. 장로들은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더 실력이 뛰어난 제자를 보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는군. 그렇게 가다가 자네도 들어서 알 거야. 청송에서 자랑하는 건곤칠검수로 시작해서 문주까지 가뿐하게 패배시키고 봉문을 명했다는 거야. 특히 어쩌면 유림의 숨겨진 비밀무기일지도 모른다더군.”
객잔에는 몇몇 사람들이 보여 최근에 가장 중요한 화제로 떠오르는 유생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는 중에 객잔 한구석에서 간단한 안주에 술을 들이키던 남자가 참견을 했다.
“이보슈. 비밀무기일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비밀무기라는 소리가 있다우. 내 아버님이 청성파의 한 장로님과 죽마고우신데 그분이 어느 날 오셔서 말씀하셨다우. 뭐 나도 그 자리에 있어서 들었지만… 아무튼 그분 하시는 말씀이 그 유생이 부채를 무기로 쓰는 무공을 썼다고 하셨수. 현 무림에서는 부채를 무공으로 쓰는 문파가 없지만 우리보다 서너 세대 전에는 유림에서 부채를 무기로 사용하는 무공을 썼다는 소리가 있다우. 하지만 사장되어 사라진 무공이기에 그분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책을 통해서 보셨다고 하우. 아직 유림에 확인을 안 해봤지만 유림의 무공이라고 하니 비밀무기라는 소리가 맞을 거유.”
모두들 그에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유생으로 보인다는 것만 알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만큼 지금 무림에는 그 유생에 대한 이야기 외에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주제가 없었다.
이야기가 점점 심화되어 갈 때쯤 객잔 안으로 한 노인과 손녀로 보이는 소녀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이 부근에서 알아주는 매설자라는 것을 알고 이것저것 주문하며 그를 자리에 앉히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 정파들은 휘하 문파들이 당했기에 자신들에게 감정이 있는 적대 문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당가가 봉문을 당한 것을 필두로 연달아 아미파와 청성파가 당하자 사파나 마도 놈들의 소행일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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