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태민이 분노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도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얼굴 가득히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신의 지위가 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저놈만 처리하면 휴양기간이 끝나고 용계로 복귀했을 때 더 이상 내 앞을 막을 놈이 없다!’
자신의 아버지도 자신이 하는 일에 뭐라고 안 했다. 그렇기에 방해하는 이 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겉으로는 내색 안 했지만 속은 희열로 가득 찼다.
이런 도정의 속을 예측한 태민은 놈에게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싶었지만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네놈의 그 X 씹은 표정을 보니 상당히 통쾌하군. 솔직히 네놈의 목청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를 들어야만 통쾌한 기분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금제가 걸린 상대를 데리고 그렇게 노니까 재미있나보군.”
“재미있다마다. 네놈의 몸에 금제가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너를 압박하지 못하거든.”
그 말에 태민은 금제를 억지로 풀어볼까 생각했다. 과거에도 너무 답답한 나머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몇 번 시도를 했다. 하지만 풀리기는커녕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또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금제를 억지로 풀 시도를 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저 재수 없는 도정을 상대하려면 조금이라도 금제가 풀려줘야 했다.
다행히도 그동안 도정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태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하수가 먼저 공격해오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태민은 몸에 있는 기운들 중 자신이 쓸 수 있는 최대의 양을 모아서 금제를 향해 움직였다.
‘이 짜증나는 금제가 다 풀릴 턱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풀려서 내가 쓸 수 있는 기운이 좀 더 많아지게 해야 해. 그래야만 저 새끼에게 한 방 먹일 수가 있지.’
도정의 얼굴에 주먹이든 발이든 한 방이라도 먹이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태민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몸 안의 기운들을 억압하고 있는 금제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이 그의 기운들을 받아치고 있었다.
‘젠장, 이번에도 헛수고인가?’
태민은 더 이상 해봐야 기운만 빠진다고 판단했다. 가뜩이나 도정을 상대하기 힘든데 이런 일에 기운 소모를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금제를 향해 공격하던 기운들을 원래 있던 곳으로 거의 다 돌려놓고 약간의 기운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기운들이 금제를 파고든 것이다.
그 결과 미약하지만 금제에서 틈이 발생했고 태민은 회수하던 기운들의 방향을 바꿔 그 틈을 향해 밀어 넣었다.
‘원체 굳건하게 만들어진 금제라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기운들로는 이것을 해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막힌 기운들을 끌어온다면 능히 깰 수 있을 것이다. 좋아, 해보자! 아!’
기운을 몰아넣으려는 순간 태민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당부가 떠올랐다. 무계로 귀양을 오기 직전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당부였다.
그 당부의 내용은 ‘무계에서 지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금제를 깨지 말거라. 금제에 틈이 만들어져서 그 틈을 이용하는 것은 내 용서하겠다. 어차피 그 틈은 어떻게 만들어지든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하지만 금제를 깰 시에는…….’ 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만드신 금제니 아마 이게 깨지면 아버지께서 직접 눈치를 채실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우겨넣고 끌어내는 것을 멈추고 기운 중 약간을 살짝 틈으로 넣고 길을 만들자.’
태민은 생각한 바를 바로 실행했다. 성공할 거라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상황에서 택한 방법이 효과가 나타났다. 미약하지만 금제의 틈을 통해서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태민은 이렇게 계속 흘러나와 준다면 도정의 얼굴에 한 방 먹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기운들을 가지고 놈을 상대하자. 그러다가 쓸 만큼 모이면 그때 바로 남은 기운과 그것들을 합쳐서 한 방 제대로 먹이자! 금제야, 제발 내가 필요한 만큼 모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복구되지 마라.’
그렇게 결심을 하는 순간 태민은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용계에 있을 때,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우습게 처리할 수 있는 도정을 상대로 그런 다짐을 한다는 것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심해도 어쩔 수 없지. 지금 내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어이, 도정! 그렇게 재수 없게 웃고 있지 말고 얼른 덤비지 그래? 솔직히 내가 너보다 약한 상황이 됐지만 여전히 네 얼굴 보는 거 정말 짜증난다.”
태민은 도정에게 어린애에게 써도 먹히지 않을 도발을 썼다. 아린은 물론 관중석에 있는 은자림의 무인들 모두도 그런 도발은 어린애에게 써도 먹히지 않을 도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물론 태민의 생각과 달리 그 도발은 제대로 먹혔다.
모두들 어처구니 없어하며 도정을 보았다.
도정은 주위에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도 모르는지 잔뜩 인상을 쓰며 태민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이에 태민은 ‘치사한 집구석은 어쩔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싸울 의욕이 살짝 꺾였다. 어떻게 저렇게 단순할 수가 있는 것인지 보는 필자도 참 어이가 없다.
분노한 효과인 것일까?
도정의 공세가 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 태민으로서는 그 전에도 가까스로 피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니 더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간발의 차이로 겨우겨우 피해내며 공격의 기회를 엿봤다.
‘놈이 지금 흥분한 상황이라 그런지 아까와 달리 공격이 강하긴 하지만 동작이 상당히 커. 일단 이렇게 피해보자. 피하다 보면 틈이 보일 것이다. 그 틈을 노려서 모인 기운들을 모아 한 방을 먹이자.’
그렇게 한참을 피하다가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도정이 지금 쓰는 공격은 무림에서 쓰는 무공으로 용들이 쓰는 공격계 기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뭐, 그도 그럴 것이 무계나 환계로 넘어온 용들은 그들의 고유권능과 기술은 쓰지 못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다.
아무튼 태민이 보기에 도정이 쓰는 무공은 상당한 수준에 있는 무공이다.
그가 아는 도정이 아무리 용이라고 하지만 무공을 창안할 수 있을 정도의 머리가 없으며 설사 만든다고 하더라도 번거로운 것을 정말 싫어하기에 많이 쳐줘야 일류의 수준일 것이다.
‘이 권장법, 아무래도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가 만든 무공일 거야. 저놈이 이걸 만들 주변머리는 없고, 저 녀석 외형으로 보아 나하고 비슷한 시기에 이곳으로 온 것 같고, 그럼 혹시?!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무림의 노고수들 중 마음에 맞는 이들이나 서로 앙숙이 힘을 합쳐 새로운 무공을 만들었다고. 아무래도 저놈이 쓰고 있는 저 무공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군. 그렇다면…….’
태민이 자신의 생각에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도정의 일장이 맹렬한 속도를 내며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결론이 나올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태민은 몸을 뒤로 젖히는 동작으로 그것을 피해내고 도정의 턱을 향해 다리를 올렸다. 하지만 이미 예측하고 있었는지 그는 가뿐하게 피해냈다.
태민은 도정에게 달려들어 재차 공격을 가했지만 그것 역시 가뿐하게 피해내며 오히려 역공을 가했다.
“젠장!”
태민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원하는 만큼의 기운이 모이질 않았다.
하지만 금제의 틈은 언제 뚫렸냐는 듯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같은 방법을 다시금 써볼까 했지만 우연히 만들어진 틈이라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모였으면 원하는 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거에 준하는 정도는 될 수 있었는데…….’
도정은 갑작스런 태민의 욕지거리에 왜 그러나 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니 낭패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인가 일이 꼬였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태민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기 위해 도정은 양손에 기를 모아 날렸다. 그 무공의 특성인지 붉은 장기(掌氣)가 뿜어지며 사방을 붉게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 장기에서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어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태민의 몸을 얽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저놈이 장기를 날리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태민은 더 이상 있다간 도정의 손에 놀아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몸 안의 기운 중 일부를 검에 집중시켜 자신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장기를 베어버리고, 천룡운중행(天龍雲中行) 제천신보(濟天神步)의 부신진의약영(浮身進懿躍影)을 써서 도정과의 거리를 좁혔다.
내공 소모가 심하기는 하지만 그가 쓸 수 있는 경공 중에서 제일 빠른 속도를 내는 경공이기에 속전속결에 쓰기에는 제일 적격이었다.
부신진의약영의 효과로 태민은 찰나의 시간에 도정과의 거리를 코앞까지 좁힐 수 있었다. 태민이 이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도정의 얼굴에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며 태민은 도정의 복부에 무릎을 꽂았다.
퍼억!
루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