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들어갔는지 명쾌한 타격음이 들려왔고 이것도 예상을 못했는지 도정의 입에서는 ‘허억!’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몸이 ‘ㄱ’자처럼 앞으로 숙여졌다.
정말 잡기 힘든 공격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태민으로서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도정이 회복하기 전에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정은 그 와중에도 태민의 검을 피해내며 복부의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쉬익!
태민은 자신의 공격속도를 뛰어넘는 도정의 회피속도를 막기 위해 자신이 쓸 수 있는 제일 빠른 검인 섬섬을 사용하며 그의 얼굴을 노렸다.
도정은 복부의 충격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것을 가뿐하게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섬섬을 피하기 위해 그가 얼굴을 살짝 트는 순간 섬섬 역시 그거에 맞춰서 방향을 튼 것이다.
도정의 얼굴에는 다시금 당혹감이 어렸지만 재차 피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섬섬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고 자신의 얼굴에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검상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천천히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네 녀석이 피할 것이라는 것은 예측하고 있었어. 솔직히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네 신체적 능력과 가진 기운이 더 뛰어나거든. 그래서 조금 방법을 바꿔야했지. 네놈이 섬섬을 피한 순간 같이 방향을 틀고 기운을 집중시켜 섬섬보다 더 빠른 검을 썼지. 효과는 네 얼굴에 있는 그것이고…….”
“…….”
도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태민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아는 동정은 저렇게 당했으면 어떻게든 되갚아주겠다며 지금쯤 난리를 피우며 마구잡이 공격을 했을 텐데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 움직임을 보이기는커녕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서 태민의 검에 배인 자신의 뺨을 만져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도정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태민은 그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린에게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준비해.’ 라고 전음을 보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도정의 엄지에서 빛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검상이 난 자리를 한번 싹 쓸자 놀랍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검상이 사라졌다.
“이런 미친! 야 이 새끼야!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용계의 규율을 잊은 거냐! 귀양을 온 자든 휴양을 온 자든 용의 권…….”
태민은 그런 도정의 행동에 소리쳤지만 도정은 그의 말을 잘라먹었다.
“시끄러! 금제로 인해 능력도 봉인된 주제에 감히 내 얼굴에 상처를 내? 황궁에서도 내놓은 개망나니가? 가만두지 않겠어!”
도정의 양손에 엄청난 양의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태민은 또 그 붉은 장기를 날리는 건가 생각하고 경공으로 피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까는 분명히 붉은색이었는데 지금 도정의 손에 모이는 기운의 색은 붉은색이 아니라 무색에 가까울 정도의 흰색이었다. 게다가 그 기운들도 장기라고 하기에는 양이 엄청났다.
“설마! 그걸 쓰려는 건가?! 이런 미친! 대체 어디까지 금기를 어기려고 그러는 거야!”
순간 태민은 도정이 쓰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도정이 쓰려는 것은 용들의 고유권능 중 하나인 브레스였다. 용의 모습으로 현신할 수 없기에 저런 식으로 쓰는 것이었다.
브레스는 어떠한 형태로 쓰든 범위가 상당히 넓다. 태민이 느끼기에 도정의 양손에 모인 기운은 현신해서 쓰는 브레스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래도 상당한 위력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피한다고 해도 제대로 피할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냥 차라리 부딪혀볼까? 예전에 그런 사례도 있었으니 잘하면 이걸로 금제가 깨질지도 몰라.’
용계의 용들 사이에 퍼진 이야기다. 과거 용계에서 무계로 휴양 차 넘어온 용이 하나 있었다.
그는 태민과 마찬가지로 금제 때문에 가진 능력과 기운을 전부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자신이 쓸 수 있는 기운으로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적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는지 죽음을 목전에 두자 그를 억압하고 있던 금제가 완전히 깨진 것이었다. 그 덕택에 그는 거기서 죽지 않을 수 있었으며 무사히 휴양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었다.
태민은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몸 안의 기운을 최대한 짜내어 도정이 날릴 브레스에 대응할 준비를 했다.
이윽고 도정은 양손을 힘껏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브레스가 굉음을 내며 맹렬한 속도로 태민을 향해 날아갔다.
쿠과과과과과!
브레스를 보며 태민은 이거 여차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도정이 마음먹은 순간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태민은 그것에 희망을 걸고 브레스에 대항하려고 했다.
“비켜! 죽으려고 그래! 저게 어떤 건지 알고 이러는 거야?!”
갑자기 아린이 태민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마치 자신이 브레스를 막아 태민을 지키겠다는 듯이… 그의 호통에도 아린은 요지부동이었다.
도정의 손에 엄청난 양의 기운이 모이는 순간 아린은 직감했다. 그것이 태민에게 작렬될 것이며 태민은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기운을 짜내어 그것에 대응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도정이 출수하는 순간 비무대로 올라와 태민의 앞에 선 것이다.
“이런, 젠장!”
모 아니면 도인 계획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기에 실행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저렇게 나와 버리니 그로서는 정말 난감했다.
‘전혀 상관없는 싸움에 아린을 죽게 할 수는 없다. 저걸 막으려면 방어술법을 펼쳐야 하는데 지금 내 이 기운들로 그것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 그럴 확률인 너무 낮은데… 이거 이렇게 도정의 손에 죽으면 용계에 있는 친구 놈들이 비웃겠군.’
태민은 아린을 끌어안음과 동시에 감쌌다. 그리고 모든 기운과 진원이라고 불리는 기운까지 짜내어 방어술법을 펼쳤다.
도정의 브레스는 태민이 만든 방어술법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태민의 입 틈을 통해 미약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쩡! 콰과과과광!
방어술법은 당연하다는 듯이 브레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깨져버렸고 그대로 태민과 아린을 덮쳤다.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는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은자림의 무인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태민이 뭔가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성공해서 저 강맹한 공격 속에서 살아남았는지도 궁금했다.
잠시 후, 도정은 브레스를 멈추었다. 현신하지 않은 상태에서 쓴 거라 몸에 많은 부담이 되었는지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지친 얼굴의 한편에는 낭패와 아까움의 기색이 엿보였다.
“어떻게 용케 그런 것을 얻어서 내 브레스에서 벗어났는지 모르지만 네놈이 어디에 있든 꼭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너에게 제대로 복수를 할 것이다! 크아아아아악!”
도정은 보았다. 자신의 브레스가 태민에게 적중되자마자 나온 미약한 빛을… 그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 태민이 브레스에서 벗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chapter 3 여기는
휘이잉.
“으음…….”
불어오는 바람의 서늘함에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마치 난도질을 당한 것처럼 전신이 아팠다. 어떻게 손을 쓰고 싶어도 너무 아파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통증은 가라앉았고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생겼다.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동굴의 천장으로 추측되는 것이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나는 도정의 브레스에… 엇!’
그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가슴, 정확히는 명치부근을 만져보았고 그 결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가슴에 자리 잡고 있던 금제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거지? 금제는 휴양 내지는 귀양의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거라고 들었는데…….’
하나의 의문을 품기 시작하자 대체 여기가 어디며 어떻게 이곳으로 온 것인지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생겨 나기 시작했다. 분명 모든 힘을 끌어올려 도정의 브레스를 막으며 아린을 보호했다. 그런데 브레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방어술법이 깨지며 그대로 적중하고 말았다.
아무리 건장한 용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의 브레스에 맞으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하물며 자신은 금제로 인해 능력의 상당수가 봉인이 된 상태에서 맞았으니 그대로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이렇게 말짱했으니…….
“아!”
루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