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한테 해줄 말이 있긴 한데 지금 그게 정리가 안 되서 해줄 수가 없어. 그래서 저기 있는 저 사람(?)이 나 대신 설명을 해줄 거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마. 네가 이 환계에서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거야. 아! 그렇다고 나는 어디 가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옆에서 너하고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볼 거니까. 알았지?”
“예… 알았어요.”
아린의 대답에 태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고 그 자리에 루비에드가 들어왔다. 그녀는 태민에게 걸었던 마법과 똑같은 것을 아린에게 걸어주었다. 그리고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후 태민이 부탁한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린은 내심 태민이 설명해주길 바랐는데 루비에드라는 이름의 이 이상한 생물이 설명을 해주는 것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태민과 이 이상한 생물 사이에 싸움 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잠시 후 루비에드의 모든 설명이 끝났다.
“그러니까 그쪽 말을 간단하게 축약하면 이곳은 제가 본래 살던 곳과 다른 곳이며, 저와 오라버니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오라버니의 목에 걸린 저 목걸이 때문이고, 그 목걸이를 준 이가 당신의 아버지 겸 오라버니가 아는 이다. 이건가요?”
아린이 들은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말했다. 그에 루비에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거죠. 이렇게 설명하면 될 걸 가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다고 저한테 부탁하더라고요. 내심 저 사람이 말해주길 바라셨죠?”
“그런데 두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분명히 당신하고 오라버니하고 말이 안 통했어요. 그리고 저 역시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었고요. 대체 어떻게 했기에 말을 알아듣게 된 거죠? 혹시 처음에 저에게 보낸 그 작은 빛하고 연관이 있는 건가요? 그리고 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나가더니 다정하게 들어오는 것이 좀 이상하네요.”
두 번째 질문에 루비에드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이 인간 여자가 태민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하긴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할 정도지. 내가 태민과 같이 들어올 때부터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으니… 게다가 두 번째 질문을 할 때 미약하지만 살기와 함께 경계심 비슷한 것이 보였으니까.’
루비에드는 그런 아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게요. 태민에게 기본적인 것을 들어서 아실 거예요. 당신이 있던 곳에서는 무공이라는 것이 보편화 된 것처럼 여기는 마법이 보편화가 되어 있어요. 제가 당신에게 보낸 그 빛은 상대에게 제노글로시아라는 마법을 걸 때 나오는 빛이죠. 제노글로시아가 뭐냐. 이언능력을 부여하는 걸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언어를 딱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읽고 쓰고 말하는 게 가능하게 되는 거죠. 태민에게도 똑같은 마법을 걸어놨어요. 효과는 영구하게 해놨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좀 듣기 기분이 나쁘시겠지만 끝까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그러면 말씀 드릴게요.”
아린은 그냥 말하면 될 걸 가지고 이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쉬운 쪽은 자신이기에 어쩔 수없이 그 요구를 승낙했다.
“알겠어요. 끝까지 들을게요.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도 이야기가 끝난 후에 질문하겠어요.”
아린의 대답을 듣자마자 루비에드는 자신과 태민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태민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루비에드를 보았다. 자신이 아는 한 용이든 드래곤이든 상당히 오만하다. 오만하기에 자신보다 아래로 보이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존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루비에드는 자신보다 아래인 아린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존대를 쓰는 것이었다.
‘법민 아저씨의 가르침인가? 만일 그런 거라면 이거 진짜 대박일 정도로 잘 가르치신 것 같은데? 그런데 저렇게까지는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 아저씨도 인간이었을 시에 한 나라의 왕이라서 눈높이가 꽤나 높았을 텐데… 그건 그렇고 정말 잘 설명해주는구만. 내가 설명하면 내가 설명을 해놓고 무슨 소리를 했나 싶을 정도인데…….’
루비에드가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해주는 동안 태민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루비에드가 열변을 토하는 가운데 아린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게다가 미약하지만 간간히 살기도 보였고 그 와중에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 이따가 두고 보자는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잠시 후 설명이 끝이 나고 아린은 태민을 잠깐 노려본 후 루비에드에게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그 질문을 다 생각하고 있었는지 대답이 나오기 무섭게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태민은 혀를 내두르는 반면 루비에드는 여유 있게 대답해주었다.
‘아린이 저 녀석도 대단하지만 루비에드도 장난 아니네. 저 엄청난 질문 공세를 아무렇지 않게 답을 해주다니… 나라면 질려서 엄청나게 짜증을 냈을 텐데…….’
엄청난 질문공세가 끝나고 태민은 아린의 표정과 눈빛이 상당히 누그러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린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자신은 상관없지만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가능하면 너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 그러니까 솔직히 대답해줘. 나는 이제 귀양기간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있을 거야.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만약 네가 무계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든 무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
그 말에 아린과 루비에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태민이 한심하다는 듯이…….
태민은 왜 그런가 싶어 둘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들의 한심하다는 눈빛이었다.
왜 그런 눈빛으로 보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루비에드의 입이 태민의 입보다 먼저 열렸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어요. 어떻게 용이 이렇게 둔할 수가 있는지…….”
“알아주시니 고맙네요. 그런데 제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는지 이상하게 저 모습도… 그리고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저렇게 둔한데도 다른 일에는 왜 그렇게 눈치가 빠른지 모르겠어요.”
“후자의 말은 이해가 안 되지만 전자의 말은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태민을 가운데 두고 루비에드와 아린은 열심히 씹기 시작했다. 태민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제대로 까일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chapter 5 쫓겨나다
그날을 시작으로 셋은 루비에드의 레어에서 동거 아닌 동거를 했다.
태민과 아린은 아침에는 환계에 대해 배웠다. 이제 앞으로 여기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없으면 생활하기가 곤란하기에 자진해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 교육이 끝나면 둘은 각자의 수련으로 들어갔다. 아린은 아직도 자신의 검법을 극성까지 익히지 못했기에 성취도를 올리는데 집중했다. 그녀가 익히고 있는 검법은 마궁에 있을시 교육기관이던 복천관에서 배운 것이었다.
복천관은 마궁의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10살이 되었을 때 입관하여 10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 기초수련이 끝나고 서고에 있는 무공들 중에서 앞으로 익힐 무공을 고르라며 며칠간 선택의 시간을 준다. 그때 아린이 고른 것이 지금 익히고 있는 천류검(天流劍)이라는 무공이었다.
분명 교관들은 그 서고에 있는 무공들이 기본무공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고른 무공은 기본무공이 아닌 것인지 동기들은 모두 극성까지 익혔을 때 그녀는 겨우 4성의 성취였다.
‘이게 기본무공이 아니라면 완성된 무공 중 하나가 실수로 복천관의 서고에 들어간 걸 내가 챙겨서 익힌 게 된 걸 거야. 오라버니께서 언제 여기서 나가실지는 모르지만 나가신 후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그 전까지 이 검을 극성으로 익혀야 한다!’
그녀는 다짐을 하고 또 하며 천류검의 수련에 집중했다.
한편, 태민은 루비에드에게 마법을 배웠다. 술법과 다르게 투박하지 않은 점과 숙련이 되면 간단한 시동어만으로도 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용도가 다양하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대체 마나가 뭐냐? 네가 자꾸 마나, 마나 하는데 마나가 뭔지 알아야 설명을 이해하든지 말든지 하지.”
“너 설마 마나가 뭔지 모르는 거야?”
“마나가 뭔지 알면 내가 너한테 물어봤겠니?”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솔직히 우리 드래곤들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마나를 쓸 수 있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이 자연에 널리 퍼져 있는 것들이고 사람의 몸에 있는 힘이라고 하면 되려나?”
“무슨 소리냐? 좀 알아듣게 설명해봐라. 뭐 설명이 그래?”
“그러니까 말했잖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 저기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아린을 봐봐. 너도 느낄 수 있겠지만 아린의 아랫배 쪽에 상당한 양의 힘이 모여 있잖아. 그게 마나야.”
“뭐야, 그럼. 마나가 기라는 소리네? 자연 만물에 깃들어 있는 거고…….”
“기? 저걸 기라고 하는 거야? 저거는 마나야. 특성이 좀 다르긴 하지만…….”
루비에드의 말투에서 언쟁을 해보자는 뉘앙스가 풍겼다.
루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