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민은 그녀하고 말싸움을 하면 이길 자신은 있다. 하지만 싸우게 되면 아린이 루비에드를 거들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필패이기에 두루뭉술하게 넘겨버렸다.
“결국에 마나나 기나 같은 거라는 소리지 뭐. 자, 궁금한 거 해결했으니까 오늘 가르쳐줄 마법이나 알려줘.”
루비에드는 가르치는 재미가 없었다. 태민 역시 용이라서 그런지 특정마법의 원리와 배열식만 알려주면 그것을 너무 쉽게 해내는 것이었다.
마법을 가르쳐달라는 태민의 말에 그녀는 어제 배운 마법의 복습을 시켜볼까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 몇 번 당한 전례가 있기에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솔직히 루비에드도 태민이 그렇게 마법을 빨리 익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마법을 배우기 전 태민이 술법이라는 것을 익혔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술법의 체계는 마법과 다르기에 마법을 익히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설사 익힌다고 하여도 그냥 인간들 사이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인간보다 조금 빠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익히는 속도는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날 원리와 배열식을 알려줬는데 알려준 지 2시간, 아니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해당 마법을 구현해낸 것이다.
혹시 운으로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에 확인 삼아 다음날에 전날에 익힌 마법을 구현시켜 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과 달리 태민은 완벽하게 해낸 것은 물론이요. 거기에 자기식대로 더해서 마법을 만든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4서클까지만 마스터해도 대단하다고 불린다. 그 이유는 5서클부터는 마법의 위력부터 달라지고 배열식도 복잡해지기 때문이지. 이번에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나 보겠어.’
순간 그녀는 욱하는 감정을 느꼈다. 가르치는 보람을 느껴 보려고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태민의 부탁을 승낙한 것인데 그것도 못 느끼게 하다니…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빨리 배우는 게 좋지만 자신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만사는 뜻대로 안 된다고…….
태민이 고생하며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바라고 가르친 5서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스터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마법, 이거 술법보다 더 쉽네? 네가 쉽게 가르쳐서 그런가? 뭐 아무튼 앞으로도 이렇게만 부탁할게.”
태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린이 수련하는 곳으로 향해갔다.
그런 태민의 뒷모습을 보며 루비에드는 어떻게든 그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참 치사한 드래곤이 아닐 수 없다.
* * *
“수련이 잘 안 되나 보네?”
태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린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그녀는 무거운 표정을 지워버리고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오라버니 오늘 마법 수업은 다 끝나신 거예요? 루비에드 언니 또 노발대발하고 있겠네요. 오라버니께서 너무 쉽게 배우셨다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빨리 배우시는 거예요? 저는 그 배열식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던데…….”
“내가 익힌 술법보다 원리가 더 간단하더라고. 그래서 빨리 익힌 것 같아. 솔직히 너무 쉽더라. 그건 그렇고 너 수련이 잘 안되나 보다. 요 며칠 새에 표정이 상당히 무겁네.”
“헤헤, 들켰네요. 오라버니가 보신 게 맞아요. 생각보다 수련이 잘 안 돼요. 제 생각대로라면 천류검을 이미 극성까지 익혔어야 하는데 계속 부족한 느낌이 들어요.”
“한번 내가 볼 수 있을까? 내가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태민의 제안에 아린은 흔쾌히 승낙했고 그 앞에서 천류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검술을 심각하게 바라보다가 원인이 무엇인지 찾았는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잠시 후, 아린은 천류검을 끝내고 숨을 고른 다음 태민에게 다가갔다.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의 미소가 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어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고 아쉬운 쪽은 자신이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
“뭐가 문제인지 아시겠어요? 그렇게 웃지만 마시고 문제점을 보셨으면 말씀을 해주세요.”
하지만 태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책을 하나 꺼내어 아린에게 건네주었다.
“뭐가 문제냐 그랬지? 네 천류검에 문제는 없어. 각 검초들이 연동이 잘 되더라. 검이 물 흐르듯이 움직였어. 게다가 변초를 시도해도 흐름에 깨지는 것이 없었고. 다만 문제가 있다면 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네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제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요?”
아린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태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민이 지금까지 자신에게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 내 기억이 맞는다면 너는 천류검을 골랐고 그것을 수련했어. 그런데 다른 무공을 고른 동기들에 비해 성취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무공의 위력이 강해지고 또 극성까지 익힌 동기들을 보며 속에서 뭐가 치미는 것을 느꼈을 거야. 그들에 비해 익히기도 힘들었을 테니… 그래서 더욱 열심히 수련을 했을 거고. 성취가 올라가는 것 같기는 한데 위력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고 뭔가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을 거야. 맞지?”
“예, 맞아요.”
“그 이유는 별거 아냐. 그 천류검이 사실 어떤 무공의 기본무공이라는 거야. 그래서 이래저래 빠진 느낌이 든 거고 위력에 변화가 없는 거지.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복천관에서 교관들이 한 말을……”
아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태민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때 교관들이 일정 수준이 되면 자신에게 말하라고 했잖아. 상위무공의 서적을 구해준다고. 너도 알다시피 너하고 같이 수련한 애들은 그 복천관 내의 다섯 개 조직에서 내 밑의 애들이잖아. 나는 너를 포함한 녀석들한테 기본무공을 극성까지 익힌 후 상위무공을 받으라고 했지. 기억해?”
“예, 기억해요. 그것 때문에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수련했지만 성취도가 오르지 않아서 결국에는 상위무공도 못 받고 퇴관했어요.”
“다른 조직은 일정 성취 이상이 되었을 때 모두 상위무공을 받았어. 뭐 그 덕에 니들 수련시킬 때 부러워하는 통에 죽는 줄 알았지만… 아무튼 네가 천류검을 극성까지 익혔어도 상위무공을 받았을 수는 없었을 거야.”
“에?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아마 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천류검은 교관들의 실수로 완성된 무공 중의 하나가 들어간 것이라고. 맞지?”
“예, 맞아요. 그런데 극성으로 익혀도 상위무공을 받을 수 없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천류검은 어떤 무공의 기본무공이야. 그 무공은 원래 궁에서 장로급 내지는 후계자급이 익힐 수 있는 거지. 아마 교관들도 천류검이 복천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모를 거야. 나도 거기서 지금 내가 익힌 무공을 찾았거든.”
태민이 익힌 무공은 과거 마궁의 궁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무공이 상당히 난해하여 어디에 처박아두었다가 그 처박아둔 궁주가 죽어서 분실되었던 무공이다. 그러다가 복천관을 만들 때 같이 흘러들어간 것이다.
“그럼 오라버니 말씀은 천류검이 제대로 된 위력을 내려면 상위무공을 익혀야 한다는 소린데 그걸 어디서 구해요? 여기는 무계가 아니라서 마궁도 없는데…….”
“어이 천아린 씨. 나 지금 팔 겁나게 아프거든? 내 손에 들린 책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린은 그것을 가로채다시피 받아들었다. 그리고 책을 펼쳐 훑어보았다. 이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태민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이것은?!”
“천비류검(天飛流劍)이라는 거야. 천류검의 상위무공이지. 뭐 상위무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천비류검에서 핵심요소를 빼고 무리하지 않으며 익힐 수 있게 만든 게 천류검이거든. 나도 그것 보고 너처럼 깜짝 놀랐다. 근데 왜 천류검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더라. 무공이 상당히 난해하더라고. 뭐 난해한 만큼 위력도 상당한 것 같더라. 아무튼 천류검을 익힌 후에 그것을 익히면 바로 익히는 것보다는 손쉽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아.”
아린은 희망찬 눈빛으로 책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대체 이 책을 어디서 나신 거예요?!”
“그것? 내 방에 있더라.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한동안 안 들어가니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정리를 하다보니까 나오더라. 처음 보는 책이라 무슨 책인가 싶어 훑어보는데 네가 익힌 검하고 상당히 비슷한 것이 많기에 나중에 너 주려고 챙겨놨었지.”
아린은 감격한 눈빛으로 태민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자신만의 짝사랑으로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챙겨주다니…….
‘설마 오라버니도 나한테 마음이 있으신 건가?’
필요한 책을 하나 줬다고 제대로 착각에 빠지신 천아린 양이었다. 태민은 그런 그녀의 상황을 모르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대충 보고 내용을 외워는 놨거든? 수련하다가 막히는 게 있으면 물어봐.”
“예!”
아린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태민은 루비에드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루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