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크어어!”
“거참 시끄럽네.”
자신보다 훨씬 우월한 신체 조건을 지닌 상대를 만났음에도 재희는 전혀 주눅이 드는 기색이 없었다.
이제 둘의 거리는 불과 3미터.
서로 손을 뻗으면 닿을 간격이다.
“캬악!”
돌진한 괴물이 얼굴부터 들이밀었다. 당장에라도 그를 뜯어먹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딜!”
재희는 상체를 슬쩍 틀어 피했다. 괴물이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스쳐 지나갈 무렵,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야구 배트처럼 쥐고 있던 몽둥이를 힘껏 휘둘렀다.
빡.
명쾌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미간에 제대로 몽둥이를 얻어맞은 괴물의 얼굴이 움푹 파였다.
“꾸엑!”
녀석이 거꾸로 나자빠졌다. 보통의 생명체라면 이 정도만 해도 즉사다. 그러나 재희의 몽둥이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죽일 수 없다.
이 괴물이 정말 지구에서 나타났던 놈들과 동일한 종류의 괴물이라면 말이다.
퍽. 퍽. 퍽.
다른 이가 봤다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무자비한 몽둥이질이 이어졌다. 놈의 머리통을 완전히 부숴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재희의 손이 멈췄다.
“그르르…….”
나자빠진 녀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것도 없이 날카로운 무기로 목을 잘라 내 버리면 일이 훨씬 간편했겠지만, 이런 뭉툭한 몽둥이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대화로 풀자고 했잖아.”
재희는 쯧쯧 혀를 찼다. 방금 쓰러뜨린 괴물은 짐승 같은 놈이었다. 본능적인 살의로 가득했으며 힘이 세고 날랬다.
반면 지능이 낮고 단순하다.
지능이 떨어지는 만큼 놈의 행동은 읽기 쉬웠다.
힘만 무식하게 세니, 그 힘을 이용해 역으로 카운터를 먹였을 뿐.
과거엔 두려움에 벌벌 떨며 그저 달아나기 바빴는데 지금은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덕분에 경험치가 꽤 많이 올랐네.’
전신에 활력이 돌았다.
성장 효과다.
레벨이 단번에 아홉 계단이나 상승했다.
능력치만으로 따지면 재희 쪽이 한참은 열세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녀석을 사냥한 셈이었으니까.
짧은 전투로 얻은 건 레벨뿐만이 아니다.
[블런트 마스터리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둔기로 공격 시, 10% 추가 피해.]
[보너스 : 힘 +5 체력 +5]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면서 대성공을 알리는 문구가 추가로 떴다.
모든 스킬은 사용할 때마다 실패, 성공, 대성공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대성공은 스킬 효과와 획득 경험치가 두 배로 적용된다.
공격 스킬일 경우 추가 피해가 곱절로 들어가고, 채집 스킬일 경우 품질이 높은 재료를 채집할 가능성이 올라가는 식이다.
그만큼 대성공이 뜰 확률은 굉장히 낮다. 그러나 재희에겐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스킬들의 본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에겐 일상과도 같은 일이다.
스킬을 습득할 경우, 보다시피 스킬의 고유효과는 물론, 보너스 스텟을 획득할 수 있었다.
스킬의 랭크가 오를수록 추가로 위력이 상승하고 보너스 수치 또한 추가로 오른다.
오랜 세월 행성을 떠돌아다니면서, 그가 터득해 왔던 스킬은 수백 가지가 넘었다.
스킬들이 제공하는 보너스 스텟만 적용되어도 재희와 보통 사람들과의 격차는 아득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킬이 중요한 거지.’
재희는 괴물이 걸친 옷을 제 몸에 둘렀다.
“푸. 냄새.”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악취였다.
여기저기 찢기고 지저분한 얼룩이 묻어 있어, 옷이라기 보단 누더기에 가까웠다.
‘별수 없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알몸보다야 훨씬 낫다. 그렇잖아도 비가 내리는 탓에 체온을 잘 관리해 줘야만 했다.
‘실마리를 찾았다.’
다른 차원으로 내던져진 이후로 지구에 출몰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괴물과 조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희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차차 알아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괜한 기대감으로 들뜨기엔 지나 온 시간이 너무나 험하고 길었다.
무려 수백 년 동안 차원을 헤매며 방황해 왔던 그였으니까.
재희는 쓰러진 괴물의 주검에 손을 대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차원문은 강력한 소환물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창조물.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작품인 만큼 그에 합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새로운 차원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지금부터 차곡차곡 영력을 축적해 놓아야 했다.
그건 지난 수백 년 동안 차원을 떠돌아다닌 재희의 본능 같은 행동이었다.
밥을 먹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목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다른 생명체의 영력, 다시 말해 영혼을 앗아가는 행위는 옳은 행동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 재희는 그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놓았다.
지극히 악한 대상만을 목표로 삼는다.
까다로울 것 같은 기준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꼭 지성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몬스터들에게도 영력은 존재하니까.
도니골처럼 강력한 영력을 지닌 존재라면 모르나, 이 행성에 그런 절대적인 존재의 유무조차 모르는 지금은 자잘한 영력 한 움큼조차 아쉬운 상황이다.
‘음?’
괴물의 체내를 탐색하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영력이 없다.’
설마 하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재차 영력을 탐지해 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녀석에게선 어떠한 영력도 감지되지 않는다.
“흠…….”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흉측하게 변이되긴 했지만, 이들은 본디 인간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지만, 정말 영혼조차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로 변질하였을 줄이야.
과거에도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해결법을 찾지 못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이런 시체들만이 득실거리는 행성이라면 차원문을 만들어 낼 재간이 없다.
여기가 지구이길 바라는 수밖에…….
최악에는 평생 이 빌어먹을 행성에서 시체들과 한솥밥을 먹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재희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까지 무수한 위기를 겪어 왔다.
개중에서는 절대로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던 거대한 절망에 부딪힌 적도 있었지만 보란 듯이 극복해 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난제들도 나름의 해결 방법이 존재하곤 했다.
그때였다.
‘무슨 소리지?’
그는 깊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저 멀리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그의 청각을 자극하는 타격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이건 쇠붙이 소린데?’
재희는 눈을 감고 스스로 시야를 차단했다.
시각을 배제하면 자연히 그 외의 감각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챙챙.
날카로운 소리가 빗속에 섞였다.
지극히 미약한 소리.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그는 분명히 들었다.
‘적어도 철제 무기가 존재한다는 소리!’
지금껏 수많은 행성을 방문해 봤다.
첨단 기계화 문명으로 무장된 행성에 떨어지기도 했고, 문명조차 존재하지 않는 원시행성에서 50년 이상을 머물렀던 경험도 있었다.
둘 중 어떤 곳이 마음에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것 없이 문명이 발달한 행성을 선택했을 거다.
너무 당연해서 이유를 물을 가치조차 없다.
문명의 유무는 삶의 질을 완전히 뒤바꿔 버리니까.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면 새로운 차원문을 소환해 내기 전까지 꼼짝없이 이 행성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다.
그 시간이 절대 적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행성의 발전 상태는 재희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저쪽이다.’
재희는 북쪽을 향해 달려갔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과 함성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고작 한두 명이 자아내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백 단위 이상.
“더럽게 힘드네…….”
오래 달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숨이 가빠왔다. 예전에 비하면 형편없는 지구력이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짙은 숲도 점차 옅어져 가는 중이었다.
빽빽했던 나무들이 듬성듬성해진 걸 보니 말이다.
순간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생전 처음 듣는 언어.
무척이나 다급하다는 것 이외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통역!’
재희가 속으로 명령어를 읊조리자, 즉시 각막 너머로 퍼센트 게이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언어 분석 중…… 98%, 99%……100%.]
[분석 완료.]
[자동 통역 기능을 실행합니다.]
[해석 : 평원을 사수하라!]
[통역 기능을 유지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재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뒤 속도를 줄였다.
패시브에 가까운 통역 스킬.
까마득히 오래전에 얻은 것이라 정확히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스킬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차원 이동으로 신체가 초기화되는 이 시기에 지성체와 의사소통을 한다는 건 수많은 목숨을 여벌로 지닌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재희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주시했다.
숲의 끝에 다다르자 끝없는 평원이 죽 이어졌다.
키 작은 잡초들이 칼바람에 휘날려 성난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인간?’
재희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일그러졌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지구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군인들.
아니, 병사들이라 불러야 할 그들의 복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극히 구시대적인 낡고 조잡한 무장. 저런 복장을 갖춘 이들이 지구에 존재할 턱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벌써 수백 년이다 되풀이 해 온 일이다.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지구와는 다른 세계이나, 자신과 같은 생김새를 지닌 인간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뭐든 익숙한 게 좋은 거다.
같은 인간과 마주한 건 실로 오랜만이다.
수많은 행성이 존재하는 만큼, 이 우주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존재한다.
팔다리가 네 개인 종족이 있는가 하면, 난쟁이나 거인들의 행성에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
그런 해괴망측한 녀석들 사이에서 별종 취급받는 기분이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중세시대쯤으로 보면 되나?’
중세 유럽을 연상시키는 갑옷과 창이며 검 따위를 든 병사들이 보였다. 군마에 올라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중세의 기사와 몹시 흡사한 복장이다. 인간 부대가 맞서는 상대는 다름 아닌 괴물들이다.
조금 전 쓰러뜨렸던 그 괴물들.
하울링.
이 끔찍한 몰골의 괴물들은 밤낮으로 끔찍한 괴성을 지르고 다니는 빌어먹을 습성이 존재한다.
하울링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도 놈들이 질러대는 괴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인간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것과, 흉측한 외형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척이나 적합한 명칭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아까 그 녀석처럼 시체 같은 피부를 지닌 괴물들이 인간들을 향해 떼로 달려들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인간 측이 불리했다. 괴물들의 숫자가 곱절은 많았다.
인간이 약 삼백.
정민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