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꼬마야. 원하는 무기를 집어라. 특별히 맨손으로 상대해 줄 테니.”
“브록! 너무 얕보는 것 아냐?”
“그러다 큰코 다친다고!”
지나치게 여유만만한 그의 자세에 동료들이 한가득 야유를 보냈다.
그 야유조차도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말이 그렇지, 정말로 브록이 질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맨손으로 날 상대하겠다고?”
재희는 난감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야 압도적으로 짓밟아 주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전 손을 사용하지 않겠어. 그리고 그쪽이 열 번 공격하기 전까진 반격도 안 한다고 약속하지.”
“뭐?”
어이가 없는 건 브록뿐만이 아니었다.
재희의 파격적인 제안에 시끌벅적했던 병사들조차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되도 않는 허세 부리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어서 무기 집으라고, 신참! 이번 주급을 몽땅 너한테 걸었단 말이야!”
브록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 가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진짜……!”
브록이 이를 갈았다.
저 조그만 녀석이 뭘 믿고 저리도 까부는 건지.
그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엔 재희가 죽고 싶어 안날이 난 걸로 보였다.
“그렇게 뒈지는 게 소원이라면 네 뜻대로 해 주마!”
브록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쇼맨십은 여기까지다.
더는 시간을 끌고 자시고 필요 없었다.
당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녀석을 묵사발 내버리고 싶은 마음뿐.
브록은 재희의 눈앞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산만 한 덩치치고는 제법 날쌘 몸놀림이다.
“뒈져라!”
투박한 주먹이 거칠게 날아왔다.
부웅.
턱을 노려오는 어퍼컷.
보통 사람이 저런 돌주먹에 얻어맞았다간 턱뼈가 으스러지고 말 거다.
“오오!”
그 위협적인 일격에 흥분한 병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저 어퍼컷을 맞고도 기절하지 않았던 녀석은 없었으니까.
본래대로였다면 지금쯤 턱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부웅.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브록의 주먹은 맥없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회피술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적의 공격을 회피할 확률 +10%.]
[보너스 : 민첩 +5 감각 +5]
“느리잖아.”
새로운 스킬 정보를 읽어 내려가며 재희는 지루한 기색을 내보였다.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성난 황소를 유인하는 투우사 같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 내걸었던 공약대로 그는 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보란 듯이 팔짱을 낀 채였다.
“크윽!”
발끈한 브록이 속도를 살려서 재차 덤벼들었다. 상체를 틀어 주먹을 회피한 재희의 정강이를 향해 곧장 로우킥을 날려보지만, 거기까지도 예상했다는 듯 재희는 가볍게 점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남자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헉! 헉!”
브록은 거친 숨소리를 몰아 내쉬었다.
이 일대에 있는 공기란 공기는 모조리 빨아들일 기세였다.
반면 재희에게선 여유가 보였다. 처음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태도. 그는 아직 브록에게 단 한 번의 공격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망할!”
브록은 바짝 약이 올랐는지 연신 씩씩거렸다.
마치 원숭이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갖가지 방법으로 허점을 노려보지만, 재희는 번번이 약을 올리듯 요리조리 피해 버렸다.
“헉, 헉!”
“두 번 남았다.”
재희가 선언했다.
브록의 공격이 무위에 그칠 때마다 재희의 손가락이 어김없이 하나씩 접혔다.
브록은 지금까지 여덟 번의 공격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중 단 한 번도 재희의 몸에 닿지 못했다.
“뭐야. 전혀 상대가 안 되잖아……?”
처음엔 시끌벅적했던 관중들도 점점 분위기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의 상황만 봐도 누가 명백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확연히 구분되었으니까.
“비, 비겁한 놈!”
결국 제 분을 억누르지 못한 브록이 재희를 향해 울분을 토해 냈다.
“비겁하다?”
재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빈정거림이 아닌 순수한 의문이었다.
그의 목적은 브록을 꺾는 것.
정확히는 브록이 완전히 굴복할 정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다.
다시 말해, 저 녀석이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하게 만들기 위해선 상대방의 반발을 잠재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저런 식의 불만은 곤란하다.
“뭐가 비겁하다는 거지?”
“계속 공격을 피하고만 있지 않냐!”
“그럼 공격을 피하지, 일부러 맞아 주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듣고 보니 재희의 논리가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분한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어디까지 장단을 맞춰 줘야 하는 건지.”
재희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이겨봐야 쉬이 패배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데?”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붙자는 거다! 네가 정말로 사내라면 말이다!”
“사내라면 주먹을 피하지도 못한다는 거야? 네가 곰처럼 둔하다는 사실을 잘도 그런 식으로 포장하는군.”
재희의 일침에 구경하던 병사들이 피식 웃기 시작했다.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네. 신참!”
“저 녀석 말이 맞잖아. 브록. 뭐가 비겁하다는 거냐?”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브록은 새빨개진 얼굴로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좋아.”
재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피하지 않겠어.”
“뭐?”
“지금부터는 네 공격을 피하지 않겠다고 했어.”
“신참, 제정신이야?”
그 말에 뜨악한 건 브록이 아니라 오히려 지켜보던 병사들이었다.
저런 여유는 실력을 갖추지 않고선 내보일 수 없다. 지금까지 재희는 브록의 몸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맞아 주겠단다.
브록의 억지에 또다시 장단을 맞춰 주겠다고 하니 기가 막힐 수밖에.
브록이 재희에 비해 현저히 느리긴 해도, 그 괴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평범한 체격의 재희가 날래지만 않았어도 브록의 주먹에 진작 나가떨어졌을 거라는 게 병사들의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재희의 말은 미친 소리로밖엔 들리지 않았으리라.
“김빠진다. 적당히 해라, 브록!”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냐?”
브록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건넸던 여론도 이젠 급격하게 반대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에잇, 시끄러워!”
처음엔 동료들의 반발에 초조해했던 브록이었으나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앞의 조그만 녀석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들어와 보시지.”
재희는 브록을 향해 도발하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오냐! 거기 얌전히 있어라!”
그런 꼴을 넋 놓고 지켜보고 있을 브록이 아니었다.
“이야압!”
그는 전력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필요 이상으로 큰 동작이었다. 허수아비가 아닌 이상 맞아 줄 턱이 없을 허술한 일격.
어차피 빗나갈 일은 없으니, 온 힘을 다한 일격을 때려 넣겠다는 심보다.
지금의 재희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제 입으로 공격을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까.
자존심 때문에라도 제 말을 번복하진 않을 거라는 게 브록의 예상이었다.
그의 주먹이 재희의 얼굴을 가격하려는 바로 그 순간.
‘어?’
브록은 제 눈을 의심했다.
평범했던 재희의 검은 눈동자가 일순간 옅은 회색으로 물들었던 것 같았다.
뻑!
엄청난 타격음이 울렸다.
“으아. 차마 못 보겠다.”
온갖 잔인한 광경들을 일상처럼 보아왔던 병사들마저도,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하나같이 시선을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재희는 안면으로 주먹을 받았다. 저런 걸 무사할 턱이 없다.
코뼈가 완전히 뭉개졌을 거다.
“다 끝났어?”
이변이 벌어졌다.
재희는 제 코에 닿은 브록의 주먹을 툭 쳐 냈다.
“어? 멀쩡하잖아?”
“저, 저 녀석. 대체 정체가 뭐야?”
관중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희의 상태는 지극히 멀쩡했다.
뼈가 부러지기는커녕 어디 한 군데 긁힌 자국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죽고 싶은 건 브록이었다.
“크윽!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뭔 놈의 얼굴이 이렇게 단단해?’
오른손이 시큰거렸다.
아무래도 손목을 삔 것 같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이질적인 느낌이 피부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바위를 때린 것 같다.
“한 번 남았네.”
그런 브록을 향해, 재희는 나지막이 선고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하나씩 접히는 그의 손가락은 브록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선사했다.
“이 자식······!”
주먹은 무리다.
브록은 다친 손대신 멀쩡한 발로 재희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퍽.
여전히 재희는 미동도 않았다.
막는 동작조차 취하지 않은 채, 선 자세로 우직하게 브록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 냈다.
“아오······!”
이번에도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린 건 재희가 아닌 브록이었다.
“빌어먹을!”
그는 욱신거리는 제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떻게 저걸 맞고도 멀쩡할 수가 있지?”
구경꾼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내심 재희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카일의 인정을 받았을 때부터 한 가닥 하는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브록을 일방적으로 가지고 놀 정도의 실력자일 줄이야.
“자. 이제 내 차례 같은데.”
재희는 주저앉은 브록의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그와 시선을 맞췄다.
“준비됐으면 때려도 될까?”
“헉·····.”
재희를 마주 보는 브록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극심한 무기력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투지도 분노도 모조리 시들었다.
눈앞의 녀석을 이기고 싶다?
그런 무모한 생각은 지금까지의 공격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렸을 때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이 녀석은 진짜 괴물이다······.’
막심한 후회가 들었다.
브록은 일전의 불안감이 결코 착각이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
그는 떨리는 눈으로 재희를 올려다봤다.
시야에 보이는 재희의 외형은 여전하다.
조금 전과 다를 것 없는 애송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브록의 눈에는 재희가 끝없이 높은 벽처럼 아득하게만 여겨졌다.
“자. 그럼 어떻게 요리해 드릴까.”
재희는 씩 웃으며 손목 관절을 풀었다.
어딜 때려야 잘 때렸다고 소문이 날까, 즐거이 고민을 하는 재희의 모습이 브록에겐 악마처럼 느껴졌다.
“음. 손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이게 좋겠다.”
잠시 고심하던 재희는 브록의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은 뒤 그대로 머리를 들이받았다.
쿵.
눈앞에서 별이 반짝이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브록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컴뱃 마스터리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맨손 격투 시, 10% 추가 피해.]
[보너스 : 민첩 +5 체력 +5]
***
무릇 인간이란 생물은 저들과 뚜렷한 차이점을 가진 이를 보면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를 따르거나, 혹은 배척하거나.
브록을 무자비하게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속은 후련할지언정 병사들의 따돌림을 피할 수는 없었을 거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병사들은 재희가 저들과 아예 레벨부터가 다른,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다.
정민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