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장이 신임하는 자이긴 하나, 재희는 엄연히 일개 병사에 불과하다.
그런 녀석이 멋대로 전열을 이탈한 것도 모자라, 부대장의 앞길을 가로막아 버리니 건방지다고 느낄 수밖에.
“괜찮다.”
카일이 손을 들어 멘델을 제지했다.
“무슨 일이지?”
‘늦지 않아 다행이군.’
지면 어딘가를 응시하는 재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테니까.
“전방에 하울링들이 있습니다.”
“뭐?”
동굴은 무척이나 넓었다.
원래 동굴이라면 무척이나 어두컴컴했을 테지만, 야생화들 덕분에 횃불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환했다.
카일을 비롯한 부관들은 하나같이 전방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어디를 둘러봐도 하울링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고요하기까지 했다.
“이놈! 대체 어디에 하울링이 있다는 거냐?”
멘델이 재희를 노려보며 따졌다.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울링들은 땅속 깊은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니까.
“땅속입니다.”
재희는 지면에 발을 구르며 아래를 가리켰다.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지.’
그것을 증명하듯 숨어 있는 하울링들의 정보가 각막에 나열되었다.
‘이 괴물들이 무덤 속에서 기어 나올 수도 있는 녀석들이라는 걸 잠시 잊었다.’
그런 습성 때문에 하울링들에게 쫓기듯이 숨어들어간 지하세계에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천장은 물론, 밑바닥까지 단단한 벽으로 둘러막고 나서야 비로소 인류는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면에 뿌리를 박은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놈들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을 거다.
보통 주변을 경계할 땐 지면 위를 주시하지, 땅속에 관심을 두진 않으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지?”
카일은 의문이 담긴 눈초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으니까.
“땅이 묘하게 들썩거리더군요. 두더지라고 보기엔 진동이 지나치게 컸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 겨우 그 정도로 하울링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 네 섣부른 판단이 부대의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겠지?”
멘델은 여전히 재희를 못미더워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이유도 이해는 갔다. 병사 따위가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제 멋대로 곧장 부대장에게 보고를 올려버리니 무시 받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하지만 하울링들이 바로 지척에 있는 마당에, 한가로이 순차적인 보고를 올릴 여유 따위 있을 턱이 없다.
“확인을 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멘델 녀석이 널 고깝게 여기고 있는 것 같더라. 저 녀석은 다 좋은데,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주목받는 걸 유독 못 견뎌하더란 말이지.”
그렇잖아도 아까 전부터 멘델의 노골적인 눈총이 재희의 얼굴을 찌르던 차였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지 않습니까? 차차 나아질 겁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니까요.”
“그, 그렇긴 한데…… 멘델보다도 한참 어린 너에게 그런 소릴 들을 줄은 몰랐네.”
라미로는 어색하게 웃었다.
성인식이나 치렀을까 싶은 녀석에게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들으니 영 기분이 이상하다.
“그런데 정말 이런다고 하울링들이 뛰쳐나올까?”
라미로는 잠시 뒤에 벌어질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분명 미끼를 물 겁니다. 놈들은 본능에 충실한 짐승들이니까요. 앞뒤를 잴 이성 따윈 존재하지 않지요.”
그리 대꾸하는 재희는 확신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이상하게 믿음이 간단 말이지.’
분명 외모는 새파랗게 젊은 청년인데, 어째 반평생 전쟁터를 누벼 온 노장에게서나 풍기는 노련미가 느껴진다.
카일은 다행히도 재희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재희에게선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마치 그 의견을 무시했다간 정말 큰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희의 조언은 철저히 부대의 안위를 바라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설령 그의 예상이 어긋나서, 하울링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의도만큼은 충분히 치하해 줄 만했다.
그를 향한 신뢰도는 다소 격하될지도 모르겠지만.
더군다나 하울링들이 없다면 없는 대로 안심하고 가던 길을 가면 그만이다. 속는 셈치고 재희의 제안을 따르는 편이 여러모로 좋으리라 사료되었다.
중갑으로 무장한 방패병들이 숨죽은 채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 뒤로 창병들이 쥔 창들이 대나무 숲처럼 빽빽이 우거졌다.
끝으로 최후방엔 산개한 궁병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하울링들의 머리를 꿰뚫기 위해 시위를 당기는 중이었다.
하울링들의 위치는 약 50미터 가량 떨어진 지점.
놈들의 대다수는 노멀이었다.
숫자는 약 30마리. 충분히 대비가 된 클로버 보병대의 전력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저들을 상대하지 않고 피해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긴 하다만.’
놈들이 있는 지점은 공교롭게도 협곡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경로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협곡을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즉 피할 수 없는 싸움인 셈.
‘한 마리가 좀 걸리긴 한지만…….’
다만 그중 한 놈은 노멀들보다 훨씬 높은 능력치를 보유 중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하울링 중에 가장 강하다.
카일의 능력치를 상회할 정도. 평균 능력치가 100을 훌쩍 넘어가는 놈이다.
‘더군다나 민첩은 무려 200 이상.’
노멀보다 상위개체의 하울링임에는 틀림없다. 심지어 지난번에 죽였던 머슬보다도 한 단계 위다.
‘벌써 여기까지 진화를 마친 건가.’
재희는 마른 침을 삼켰다. 고작 반 년 만에 이 정도라니.
마법이 존재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세계는 현대의 지구에 비하면 미개한 수준의 문명이었다.
다시 말해 하울링들이 활개를 치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먹어치운 거냐.’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괴력을 자랑하지만 상대적으로 둔했던 머슬과는 달리, 이 녀석은 모든 능력치가 수준급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재희의 손엔 큼직한 고깃덩이가 들린 채였다. 부대의 식량으로 쓰이던 고기다.
카일은 말없이 끄덕이며 작전 개시를 허락했다. 그는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휙휙.
재희는 고깃덩이를 단단히 묶은 노끈을 몇 차례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고는 곧 전방을 향해 그것을 힘껏 던졌다.
날아간 고깃덩이는 정확히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이 저 멀리 날아가 지면 위로 떨어지는 순간.
“쿠와악!”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마리의 하울링들이 일제히 땅을 파헤치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말 저 괴물 새끼들이 있었잖아?”
“그대로 지나갔으면 저놈들의 한 끼 식사가 되었겠는데…… 끔찍하군.”
병사들의 얼굴이 일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노멀들은 미친개처럼 고깃덩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서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피 튀기는 난투극을 벌이기까지 했다.
‘역시 예상했던 바다.’
이 유인책은 지구에서도 군인들이 재앙 초기에 매복한 하울링들을 끌어내기 위해 주로 사용했던 방법이다.
진화를 거듭한 하울링들에겐 통하지 않지만, 미개한 지능의 노멀이라면 문제없다.
놈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인간의 고기지만, 기본적으로 육류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러나 놈들 중 가운데, 유독 고깃덩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저놈이군.’
광기의 물든 눈동자를 마주보며 재희는 천천히 검을 빼어 들었다.
“윽!”
그 살기에 짓눌린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저놈은……!”
라미로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놈의 체격은 예상외로 인간과 흡사했다. 덩치가 압도적이었던 머슬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다만 상체를 지탱한 두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고 튼튼해 보였다.
“러너(Runner)다!”
확실히 상위등급의 하울링은 노멀들과는 발산하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단순히 전투력만 강화된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진화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미끼로 던진 고깃덩이에 달라붙지 않고, 병사들부터 주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름대로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낌새가 보였다.
7년 차쯤에 이르러서는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수준까지 진화하게 된다.
‘그렇게 놔두진 않겠다.’
재희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가만히 놈을 관찰했다.
러너는 고기에 이성을 잃은 노멀들을 쓱 돌아보았다. 놈의 오른발이 가장 근접해있던 노멀을 힘껏 걷어찼다.
퍼억!
러너에게 얻어맞은 노멀의 옆구리가 파열됐다.
발길질에 얻어맞고 날아가거나 한 게 아니라, 아예 몸뚱이가 찢겨나가 버렸다.
“…….”
그 광경을 본 카일의 안색이 굳었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이다.
‘제길.’
2등급까진 그럭저럭 상대가 가능할지 몰라도 이 전력으로 3등급 하울링은 무리다. 더군다나 러너는 3등급 중에서도 무척이나 까다로운 놈이다.
죽음이라는 글자가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과연 저놈을 죽이고 살아나갈 수 있을까? 냉정하게 판단하면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크르르…….”
노멀 한 마리가 무자비하게 죽자, 그제야 고깃덩이에 매달려있던 노멀들이 행동을 멈췄다. 놈들은 두려운 낯빛으로 러너의 뒤를 따랐다.
이제 놈들의 관심은 오롯이 클로버 보병대를 향해 있었다.
‘이제 와서 후퇴할 순 없다.’
카일은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러너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놈의 스피드는 살인적.
전력으로 달리는 말조차도 우습게 앞질러 버리는,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하는 놈이니까.
여기서 달아나는 건 자살 행위다. 그건 러너에게 날 죽여 줍쇼, 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선택지는 없었다.
“크아악!”
러너를 필두로 노멀들이 병사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궁수, 사격 개시!”
카일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최대한 빨리 러너를 쓰러뜨린다. 그 희박한 가능성에 사활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설령 놈을 쓰러뜨린다고 해도, 이 자리에 있는 7할 이상은 목숨을 잃고 말겠지만.
러너의 존재에 병사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하울링들과의 전쟁에서 닳고 닳은 만큼, 러너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노멀들을 향해 쏟아지는 화살비를 시작으로, 거대 동굴에서의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되었다.
“꾸억!”
눈먼 화살에 머리를 맞은 노멀 몇 마리가 즉사했지만, 나머지는 팔다리, 혹은 가슴팍에 화살을 꽂은 채로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머리통에 화살을 박아 넣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워낙 움직임이 기민한 놈들이었으니까.
그중에서도 러너의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놈은 비약적으로 발달한 두 다리의 탄력을 이용해, 폭발적인 스피드로 동굴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크윽!”
전속력으로 달려온 러너의 몸통박치기에 방패를 겹겹이 두르며 아군을 보호하고 있던 방패병들이 우르르 나가떨어졌다.
잘 갖춰져 있던 방어선이 그 일격에 무너져 내렸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전열의 틈으로 뒤따라오던 노멀들이 연이어 뛰어들면서 난전이 시작되었다.
‘어디냐?’
카일은 병사들을 도륙하는 러너를 눈으로 쫓았다.
정민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