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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위저드 3화

샤이닝위저드 3화
[데일리게임]

호수처럼 깊은 눈동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런 눈을 보면 두 번 다시 잊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분한 목소리도 몇 년 후에 들어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그리고 그 미소! 그것은 정말 살인미소라고 할 수 있었다. 맑은 미소란 표현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도리스는 오늘 알았다.

하지만 상대는 미녀가 아니라 미남이다.

여자라면 몰라도 남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오후의 졸음을 쫓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 머릿속에 남은 앙금 같은 것이 그를 괴롭혔다.

‘뭐지?’

도리스는 결국 자는 것을 관두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라크라는 남자가 왜 이렇게 인상에 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수한 차림, 그에 비해 상당히 잘 생긴 외모, 약간은 신비할 정도의 분위기, 사정이 있어 보이는 의뢰.

“뭐야? 인상에 남을 만도 하잖아?”

도리스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그는 전혀 졸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새로운 고민에 신경이 긴장된 듯 했다.

그러던 중,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는 듯 손바닥을 탁 하고 치며 중얼거렸다.

“맞아! 그는 그림자가 없었어!”

분명히 라크라는 남자의 몸에는 그림자가 붙어있지 않았다. 도리스의 기억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생각해보니 말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도리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졸리긴 졸린 모양이다. 에효, 운동이나 해야지.”

그는 멍청하게 환상이나 본 스스로의 정신 상태를 반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운동으로 졸음을 극복하리라 결심하면서.

* * *

라크는 용병길드에 일을 의뢰한 후, 정처 없이 걸었다. 딱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의 걸음걸이에는 여유가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하지?’

라크는 품속에 손을 넣어 자신의 지갑을 만져보았다. 잘그락거리는 몇 개의 동전이 느껴졌다. 세 개였다.

‘3실버로 할 수 있는 일이 뭐였지?’

방금 전 용병길드에 착수금 10실버를 주었기 때문에 남은 돈은 이것이 전부였다.

아껴 쓰면 한 달은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정보가 들어오면 잔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라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또 산으로 들어가서 마물을 잡아야 하나?”

한 달 정도 산을 헤매며 마물을 잡으면 그 가죽이나 뼈, 혹은 뿔을 팔아서 몇 십 실버는 모을 수 있다.

그것들 중 대부분은 마법사 길드에서 사가고, 가끔씩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하는 곳에서도 구입한다. 지금까지 사용한 돈도 그렇게 얻은 것이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산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도시를 벗어나 일주일은 걸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 라크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더니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슈슈슉. 파파팍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무엇인가가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건너편 벽에 나란히 박혔다. 작은 석궁의 화살, 군용이나 사냥용이 아닌 암살자들을 위해 제작된 것이 틀림없다.

라크는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나타났음을 알았다. 전력으로 달리면서 힐끗 하늘을 보았다.

태양이 높이 떠 있는 것이 밤이 되려면 아직 3.4시간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좋지 않아. 젠장.’

그는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옆으로 몸을 날렸다. 다시 몇 개의 화살이 그가 있던 곳을 지나갔다.

‘몇 놈이나 있는 거지?’

전에 자신을 쫒던 자들과는 다른 무리인 것 같았다. 훨씬 조직적이고 솜씨가 좋았다. 아까와는 다른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그렇다는 것은 이미 포위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럴 때 넓은 곳에 있다가는 집중공격을 받아 벌집이 되고 만다.

라크는 이미 경험으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좁은 골목길을 택했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좁고 은밀한 곳인 만큼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

-휘익, 팍

정면에서 갑자기 누군가 창으로 라크의 가슴을 찔렀다. 라크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로브의 일부가 창에 의해 찢겼다.

동시에 옆에 있던 자가 양손에 각각 하나의 작은 소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2인 1조의 암습에 익숙한 전문 암살자가 틀림없었다.

라크는 창을 피한 자세에서 그대로 몸을 바닥으로 날리며 품속에서 작은 채찍을 꺼냈다. 그리고 달려드는 자의 발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크윽!”

발목이 부러졌으리라. 하지만 상대는 앞으로 쓰러지면서도 짧은 신음소리만을 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듯 소검중 하나를 던졌다.

-팍

땅에 몸을 굴려 피하려 했지만 역시 늦었다. 검은 그대로 허벅지에 박혔다.

피가 튀었다. 라크는 전신을 전기처럼 흐르는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달려드는 창을 채찍으로 후려쳐 감았다.

“이익!”

-퍽

기합을 지르려 했지만 반쯤은 비명이 나왔다. 그래도 좋았다. 몸이 명령을 내린 대로 움직여주었다.

소검이 박힌 다리를 들어 창을 든 자의 배를 찼다. 그는 훅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마 죽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동시에 라크는 자유로운 손으로 소검을 든 자의 머리를 때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헬멧이 찌그러지며 그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상대는 그대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겨우 앞을 가로막은 자들을 처리한 라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급속도로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다리에 박힌 소검을 뽑고 비상용으로 준비한 붕대를 상처 위에 감아 출혈을 최소한도로 막았다. 이미 수개월에 걸쳐 시시때때로 경험한 일이다.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익숙했다.

-타타타탁

그는 다시 뛰었다.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기는 했어도 결코 느려지지는 않았다.

잠시 후, 두 명의 암살자가 쓰러진 곳에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중 한명은 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중년 남자였는데, 그는 쓰러진 자들 앞으로 가서 자신이 든 작은 비수로 쿡쿡 찔렀다. 그러자 쓰러진 자들의 몸이 움찔하고 움직였다.

“죽지는 않았군.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전투력을 상실시켰어.”

옆에 서 있던 작은 키의 남자가 말했다. 말을 할 때마다 짧게 웃는 것이 그의 버릇인 것 같았다.

“크큭, 상처가 많지 않습니다. 9호는 발목이 부러지고 머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8호는 배에 공격을 받은 모양이군요. 상대의 무기는 헤비메이스나 워해머 같은 중둔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체격으로 봐서는 절대 그런 무식한 무기를 쓰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하얀 머리카락의 남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다시 비수로 쓰러진 8호와 9호의 몸에 작은 상처를 내었다. 피가 흘렀지만 8호와 9호는 그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으윽! 주인님.”

“그대로 있어라.”

남자는 8호와 9호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손으로 저지하며 물었다. 조직에서도 일급으로 분류되는 암살자들이니만큼 쓸 수 있을 때까지 써야 한다. 다행히도 부상은 당했어도 치료를 하면 충분히 완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는 냉정한 시선으로 8호와 9호에게 물었다.

“상대의 솜씨는 어떤가? 무기는?”

“작은 채찍입니다. 그리고 체술에 익숙합니다. 배를 차였는데, 그대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8호는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작은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확인하듯 물었다.

“크큭, 배를 차였다고? 발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크큭, 괴물인가? 그 놈은.”

작은 남자는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다. 주인님이라고 불린 남도 역시 안색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9호, 네 머리도 맨손에 당한 것인가?”

“크큭, 그런 것 같습니다.”

“으음.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확실히 돈값은 하는 놈이군.”

그는 좋다 말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마법이 봉인된 마법사라고 했다. 가장 쉬운 표적 중에 하나다.

거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보수가 좋았다.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이 붙긴 했어도 충분히 감수할 정도의 보수였다.

하지만 막상 표적을 찾아내어 그물을 쳤는데, 표적이 거세게 버둥거린다. 이 정도라면 일급 전사에 버금갈 정도다.

결국 저쪽에서는 정직하게 표적의 실력에 맞춘 보수를 지불한 셈이다.

하얀 머리카락의 남자는 생각을 끝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작은 남자에게 명했다.

“뭐, 상관없겠지. 다들 확실하게 조이라고 전해라. 밤이 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

“크큭, 알겠습니다. 표적의 실력을 모두에게 알리겠습니다.”

작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는 곧 등에 매고 있던 작은 상자에 달린 끈을 당겼다. 그러자 상자 안에서 수십 마리의 쥐가 뛰어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얀 머리카락의 남자가 웃으며 물었다.

“수가 더 많아졌군. 번식을 한 건가?”

“쥐들의 수는 금방 불어납니다. 하지만 저하고 뜻이 통하는 놈은 100마리중 하나뿐이라서 말입니다.”

“그렇겠지. 그럼 우리도 가 보도록 하자.”

“크큭, 아마 그놈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작은 남자는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주인을 따랐다.

최대한 몸을 숨겼지만, 상대는 그물을 치고 철저하게 조여오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바로 라크의 허점을 찔렀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이렇게 실전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라크는 벌써 네 번에 걸쳐 공격을 받았다. 그때마다 몸의 상처는 늘어났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뛰지 못했다. 옆구리에 단검을 박고 뛸 수는 없었다.

-흐으으, 흐으으

숨을 들이쉴 때마다 쇳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몸을 숨겨야 한다는 의지가 그의 몸을 움직일 뿐, 다시 상대가 나타나면 제대로 상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해가 지려면 멀었나?’

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태양이었지만 그래도 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한 시간? 늦어도 두 시간이면 해가 완전히 질 것 같았다.

“좋아!”

라크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그는 그나마 성한 손으로 기대고 있는 벽을 잡았다.

-콰직

손가락이 벽을 파고들며 벽의 한 부분이 통째로 뜯겨 나왔다. 흙으로 만든 벽이기는 해도 말린 후에 불로 그을려 칠을 했기 때문에 상당히 단단한 벽이다. 손으로 뜯어낼 정도의 것은 아니지만 라크는 계속해서 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구멍을 뚫었다.

일단 구멍이 뚫리자 라크는 안쪽의 기척을 살폈다. 다행히도 아무도 없는 방인 것 같았다. 그는 서둘러 구멍을 넓혀 몸이 들어갈 정도로 만들고,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빈 방이었다. 가구 몇 개가 눈에 띨 뿐,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집주인은 일을 하러 나간 것이리라. 라크는 가구 중 하나를 들어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몇 개의 가구를 움직여 그 앞에 쌓았다.

일단 구멍을 막아버렸으니 암살자들은 따로 벽을 부수거나 문을 통해 들어와야 한다. 라크처럼 조용히 벽에 구멍을 낼 수는 없기 때문에 소란을 피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라크는 다시 문 쪽에 지지대를 대어 열리지 않도록 했다. 이것으로 당분간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크윽, 된 건가?”

일시적이나마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자 라크는 다리에 힘이 빠진 듯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몇 개의 약초를 꺼내 으깨었다. 준비가 끝나자 대충 묶었던 붕대를 풀고 상처에 그것을 바른 후, 정성스럽게 다시 묶었다.

그 다음에는 남은 약초들을 그대로 씹어 먹었다. 생나뭇잎을 씹은 것 같은 쓴 맛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후에는 뱃속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많이 사라졌다.

약초의 효능이 상처 속에 스며들어 고통을 약화시켰다. 지혈이나 회복보다는 진통을 목적으로 한 약초들이기에 일종의 마취제와 같았다. 당장 몸을 움직일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타탁, 탁

벽을 누군가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이다! 라는 식으로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바로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다.

“조금만 더 여유를 주었으면 하지만...”

라크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움직여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2층 쪽으로 들어오려는 자가 있었다.

김운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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