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 지났다. 정찰을 나간 마을 젊은이의 말에 의하면 산적들의 수가 또 늘어 이제는 23명이라고 했다.
“3명이 늘어난 건가?”
무크는 상당히 초조한 듯 중얼거렸다.
젊은 사냥꾼들은 사냥을 나가지 못하고 마을에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이 길어지면 좋지 못하다. 그들 대부분은 사냥을 안 하면 굶어야 하는 처지이다. 굶주림이 산적보다 덜 위협적이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라크도 그 사실을 알기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마을 입구 쪽을 보았다. 용병을 구하러 간 사람들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가 없었다.
촌장은 말했다.
“만약 일주일동안 적당한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면 그냥 돌아오라고 말했네.”
“그럼 4일 후엔 어떻게 할지 정해야겠군요.”
“그런 셈이네. 후우.”
“너무 심려 마십시오.”
라크는 촌장을 위로했다. 그러나 역시 촌장도 조바심이 극에 달했는지 별로 안심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라크는 잠시 그런 촌장을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불안한 얼굴들, 아이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없었다.
‘안 되겠군.’
라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싸우기도 전에 진이 빠질 것 같았다.
-짝, 짝
생각을 하자마자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듯 했다. 라크는 손을 들어 손뼉을 크게 두 번 쳤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라크를 보았다.
“뭐야? 라크, 할 말이 있어?”
마을 사람들 중 한명이 물었다. 라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손뼉을 쳤지요.”
“뭔데? 어젯밤 또 멧돼지라도 잡아 왔나?”
“하하하, 전 마물 사냥꾼이지 멧돼지 사냥꾼이 아니라고요.”
“그럼 무슨 얘긴데?”
“그러니까요.”
라크는 그렇게 말을 흐리며 주변 사람들을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라크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초조함보다는 호기심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라크는 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탁자로 갔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곱게 접은 부드러운 가죽 속에 두개의 긴 뿔이 놓여 있었다.
“앗, 저것은!”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사냥꾼 샌더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외쳤다. 다른 몇몇의 사냥꾼들도 크게 놀랐다.
“미노타우르스의 뿔입니다. 절대로 짝퉁 소뿔이 아니라고요.”
“으아! 너 미노타우르스도 잡았었어?”
어느 샌가 무크가 와서 물었다. 라크는 약간 힘이 들어간 어깨를 쭈욱 펴고는 말했다.
“핫, 핫, 핫, 이 라크 님은 마음만 먹으면 오우거도 잡거든.”
“우와!”
아이들이 일제히 외쳤다. 마을 사람들도 감탄한 눈으로 라크를 보았다. 오우거를 잡는다는 것은 허풍인 것 같기도 한데, 미노타우르스의 뿔이라는 현물이 있는 이상 그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때, 라크가 못을 박듯 당당하게 외쳤다.
“정말이라고요! 전 사실 오우거보다 힘이 세거든요.”
“에이, 라크, 그건 오버야.”
“오버지?”
“오버 맞아.”
오버란 너무 허풍이 지나치다는 뜻의 속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식거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라크는 웃기지 말라는 듯 자신의 오른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험해 볼래요?”
“어떻게?”
“팔씨름.”
“푸하! 이봐, 자네가 힘센 건 다 알아. 우리하고 팔씨름을 해서 이겼다고 해도 오우거보다 센 건 아니잖아?”
“아앗, 한센, 언제부터 그렇게 똑똑해진 거에요?”
“우하하하하하.”
라크의 절망한 표정에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그러나 라크는 곧 불사조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그는 그러면서 허리에 맨 가죽 끈으로 자신의 손목을 칭칭 감았다. 그리고는 탁자 앞에 앉아 팔씨름을 하는 자세를 취하고, 손목에 감긴 밧줄을 손등 쪽으로 늘어뜨렸다.
“어때요? 이건?”
“그게 뭔데?”
“제가 팔씨름을 할 때, 다른 한 사람이 밧줄을 당기는 거에요.”
“뭐? 그게 말이 되냐?”
팔목에 묶인 밧줄을 당기면 아무리 팔뚝 힘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라크는 앉아 있고 밧줄을 당기는 사람은 서서 두 손으로 체중을 실어 당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크는 그걸 버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다시 팔씨름을 할 수 있다고!
“오우거라면 버틸 수 있지요. 안 그래요?”
“오오!”
마을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함성이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저절로 튀어 나왔다. 확실히 오우거라면 그게 가능할 것이다. 라크는 정말로 자신의 팔뚝 힘이 오우거보다 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크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저를 이기시는 분께는 이 뿔을 드리지요. 상금입니다!”
“우왓, 정말?”
“그래요, 처크 아저씨. 요즘 몸이 허하죠? 옛날에는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힘을 쓰셨잖아요. 오세요.”
라크는 도발하듯 말했다. 그러자 이제는 한물 간 처크의 눈이 더욱 강렬하게 빛냈다. 그는 의욕이 샘솟는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미노타우르스의 뿔은 푸욱 고아서 먹으면 정말로 몸에 좋다. 특히 정력에도 좋기 때문에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식재 중 하나이다.
마물의 고기는 대부분 인간이 먹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독하고 독성도 강하지만 가끔씩 예외가 있는데 미노타우르스의 뿔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좋아! 무크, 도와라.”
“좋아요. 아저씨. 우리 힘을 합쳐 라크 괴수를 몰아내죠.”
무크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앞으로 나와 밧줄을 잡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라크를 제외하고는 그가 현재 마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다. 그리고 처크도 지금은 한 물 갔지만 5년 전만 해도 최고 소리를 듣던 장사였다.
처음부터 챔피언전이 시작된 셈이다.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흥분도는 급격히 높아졌고, 그들은 모두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 산적이란 단어는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 시작한다.”
한쪽에 있던 촌장이 갑자기 부채를 꺼내 들고 나와 라크와 처크 사이에 섰다. 그 역시 흥분해 있었다. 스스로 자청해서 심판이 된 것이다.
“흥, 네 녀석의 팔목을 분질러 주겠다.”
처크는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듯 거칠게 말했다. 사냥꾼 특유의 날카로운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노타우르스의 뿔! 그것만 있으면 청춘을 되찾을 수 있다! 처크는 그렇게 믿었다. 사실 그는 절실했다.
“언제든지.”
라크는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챔피언의 표정이었다.
“그럼, 시작!”
-와아아아아아
촌장이 부채를 들어 올리며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함성도 같이 터졌다.
그리고 무크는 온힘을 다해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팔뚝이 아니라 몸 전체가 딸려 와야 할 정도의 힘이었다.
동시에 처크는 자신의 오른손에 힘을 주어 라크의 팔목을 비틀려 했다. 단순히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팔씨름의 고급 기술을 쓰는 것이다. 무크가 밧줄을 당기고 있는 이상, 힘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라크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흥, 나도 왕년에는 한가락 하던 몸이지. 라크, 죽어랏!’
처크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그에게 있어 이것은 남자의 인생을 건 생사대전과도 같았다.
“으윽!”
과연 라크는 상당히 무리가 가는지 인상을 쓰며 신음성을 흘렸다. 그러면서 그의 팔이 서서히 뒤로 젖혀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은 더욱 거세어졌다. 그래도 라크는 단번에 넘어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라크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지며 점점 기울어지는 팔뚝이 그들에게 더한 흥분을 선사해 주었다.
“으하하하, 라크,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렇게는 안 된다!”
무크가 크게 웃으며 외쳤다. 모든 사람들의 귀에 그것은 승리의 선언같이 들렸다.
하지만 그때, 라크가 탁상 위에 대고 있던 왼손을 살짝 들어 주먹을 주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오오옷!”
기울어가던 팔뚝이 멈췄다. 밧줄이 끊어질 것 같이 부르르 떨렸다.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라크의 입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괴성소리와 함께 그의 팔뚝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크가 필사적으로 버티려 했지만 그의 몸 전체가 질질 끌려 나왔다.
“저럴 수가!”
“라크는 정말 오우거였던가?”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라크의 팔뚝은 처음 시작한 곳을 지나 앞으로 기울고 있었다.
처크가 젖 먹던 힘까지 쓰는지 이마에 핏줄이 툭툭 튀어 나오고, 무크의 얼굴과 목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렀지만 라크의 팔뚝은 그걸 모두 감당해 내고 있었다.
그러나 무크도 그냥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쪽 다리를 들어 탁상 옆에 대었다. 이렇게 하면 땅에 발이 미끄러질 리가 없기 때문에 훨씬 더 강하게 힘을 쓸 수 있었다.
“와아, 잘한다! 무크!”
아이들이 두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외쳐댔다. 그들에게 있어 이 팔씨름은 그야말로 10년에 한번 보기 힘든 축제와도 같았다.
그리고 무크는 함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땅에 버티고 있던 남은 한발도 들어 탁자에 대었다. 몸 전체가 허공으로 떠서 수평으로 밧줄을 당기는 것이다.
“크으으.”
신음 소리와 함께 다시 라크의 팔이 멈췄다. 무크의 온몸의 무게와 힘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밧줄의 힘은 정말로 대단해 보였다. 도저히 인간의 팔뚝으로는 버틸 수 없는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라크는 버텼다.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뒤로 밀리지도 않았다. 처크는 거의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계속 힘을 썼다. 이미 한계에 달한 그는 욕망과 오기의 힘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충분하겠지?’
라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겉으로는 온갖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지금이라도 포기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산적을 토벌하면 마을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약간 황당한 일을 벌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을사람을 불안의 늪에서 꺼내 흥분의 도가니로 집어넣기 위해 경기를 시작했지만, 져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는 왼손의 주먹을 폈다가 다시 쥐고는 팔꿈치로 버틴 채 들어올렸다. 마치 승리를 위한 경건한 의식과도 같이 왼손의 주먹은 라크의 얼굴 옆에 와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은 기적을 보았다.
“하아아아아!”
기합 소리와 함께 라크의 팔이 앞으로 움직였다. 무크가 고개를 뒤로 제끼며 버텼지만 몸이 움츠려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라크의 팔에 힘이 풀리는 가 싶더니 다시 엄청난 압력이 밧줄을 통해 느껴져 왔다. 무크와 처크는 그만 힘의 중심을 잃고 말았다.
-쿵
“라크 승!”
-와아아아아아!
“정말 라크는 괴수였어!”
“저놈은 인간도 아니야!”
마을 사람들은 흥분해서 함성을 지르며 뛰어 올랐다. 처크는 앉아있었던 의자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바닥에 큰 대자로 뻗어 버렸다. 벌건 얼굴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의 정신을 잃은 듯한 그의 모습은 최선을 다해 모든 힘을 쏟아 부운 남자의 그것이었다.
무크 역시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공중에 떠 있던 그는 라크가 이기는 순간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쿵 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그는 허리를 잡고 뒹굴었다. 안타깝게도 허리부근에 돌이 있었던 모양이다.
라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영광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봤지요? 염려 말라고요. 제가 바로 오우거도 때려잡는 라크 아닙니까?”
“우와! 오우거도 때려잡는 라크!”
“무적이다!”
마을 아이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지금 영웅을 보고 있었다.
김운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