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
“멍청한 놈들, 벌레에게 몇 번 물려도 안 죽는다.”
“그게!”
그래도 산적들은 쉽게 사냥꾼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샬칸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화가 났다.
정말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이다.
샬칸은 속으로 그렇게 욕을 했다.
사실 그는 지금 그물로 용병들을 제압을 한 상황에도 죽이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모두들 몸을 웅크리고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만약 무리를 해서 한 놈을 죽이려고 집중하면 그 사이 다른 놈이 그물을 빠져나올지도 몰랐다.
그러면 정말 피터지게 싸워야 한다. 바보 같은 부하들이지만 지금은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몇 백의 무리를 이룰 때까지는 이들로 버텨야 했다.
그래서 샬칸은 최소한의 부하들과 함께 이들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부하들이 사냥꾼들을 처리하고 돌아오면 천천히 화살로 가지고 놀면서 죽이기로 마음속으로 결심한 상태였다.
그런데 꾸물대다니? 그는 버럭 하고 호통을 질렀다.
“그럼 단검을 던져!”
“아! 그럼 되는군요.”
그때서야 산적들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샬칸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저놈들과 같이 산채를 세워야 한단 말이지?”
스스로가 상당히 처량해지는 샬칸이었다. 하지만 머리야 어떻든 간에 칼질은 잘하는 부하들이다. 그리고 머리가 좋으면 오히려 안 좋다. 겁도 쉽게 먹고, 반역도 잘한다.
샬칸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외쳤다.
“어서 처리해! 빨리 와서 이놈들도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부하들은 샬칸이 화난 것을 알기에 급히 대답을 하며 모두 단검을 던지려 했다. 땅을 구르고 있는 사냥꾼들이 그것을 피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샬칸이 서 있는 쪽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단검을 던지는 자는 죽는다.”
“누구냐?”
샬칸은 자신의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급히 앞으로 몸을 날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아까 암습해서 죽인 라크가 서 있었다.
라크는 샬칸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프더군. 한 번 더 찔릴까봐 죽은 척 하고 있었지.”
“네놈!”
샬칸은 극도로 긴장을 하며 상대에게 검을 겨누었다. 분명히 배를 찔러 죽였는데 지금은 멀쩡해 보였다. 그렇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샬칸은 슬쩍 눈을 돌려 방벽위에 있는 마법사를 보았다. 그러나 마법사도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라크는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넌 세 가지 잘못을 했다. 날 찌른 것, 내 동료들을 괴롭힌 것, 그리고 산적은 무식하다는 내 상식을 파괴한 것.”
“흥, 내가 잘못한 게 세 가지만 되겠냐?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거거든.”
샬칸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널 다시 죽여서 그중 한 가지를 만회하겠다!”
-휘익
샬칸은 크게 외치며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달려들었다. 방벽위의 마법사가 매직미사일을 시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에 라크의 이목이 그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라크는 샬칸의 칼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등 뒤로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도 무시했다.
-파파팍
“커억!”
매직 미사일은 라크의 몸을 통과해 앞에 있는 샬칸의 몸에 박혔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샬칸은 비명을 질렀다.
그때, 라크는 두 손에 든 검을 들어 왼손에 든 붉은 검으로 샬칸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한 삼박사일동안 악몽을 꾸어라. 그 후에는 따로 죄 값을 받을 것이다.”
-팍
샬칸은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힘없이 앞으로 쓰러졌다.
“환상! 아니, 뭐지?”
등 뒤에서 마법사가 놀라 외쳤다. 그러자 라크는 그대로 몸을 날려 허공에서 한 바퀴 비틀어 방벽위에 내려섰다. 인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도약력이었다.
“죽어라! 괴물! 파이어 볼.”
-슈웅, 콰콰쾅
마법사는 발악하듯 외치며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주문을 시전 했다.
어린애 머리만한 불덩어리가 라크를 향해 날아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주변을 휩쓸었다. 마법사는 라크가 어떤 놈이든 간에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 불덩어리 속에서 라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오르는 불꽃 안에서도 옷자락 하나 그을리지 않는 그는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스윽
라크는 소리없이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법사는 기겁을 해서 뒤로 물어나며 외쳤다.
“안 돼! 오지 마!”
-팍
검이 그의 몸을 베고 지나가자 그는 물러나는 힘을 받아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육체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마법사가 당했다!”
산적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샬칸이 그들에게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법사의 존재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정도로 마법사는 산적들에게 있어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라크는 방벽위에 서서 그런 산적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그것이었다. 산적들은 모두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이 굳어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막 모습을 드러낸 두 개의 달이 그의 몸 뒤로 떠올라 있었다.
Chap 4. 그를 찾는 여인과 일행들
대전에는 모두 9개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있는 가장 커다란 마법진에는 하나의 화려한 의자가 있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남자가 입고 있는 적갈색의 로브에는 기묘한 룬어가 빽빽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변에 있는 마법진의 빛을 흡수하고 있었다.
주변들 둘러싼 다른 여덟 개의 마법진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빛이 모두 그곳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았다.
-우우우웅
가끔씩 마법진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대전 전체를 울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을 보고 말했다.
“말 하라.”
그러자 문 뒤쪽에서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새로운 정령의 자매 시르카가 밀림을 벗어났습니다.”
“그녀가? 재미있군.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가?”
“용병길드에서 그녀에게 라크의 행방을 알린 것 같습니다.”
“호, 과연 그런 이유라면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영역에서 나올 만하지.”
남자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부터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던 그였다.
그런 성격 때문에 마법사로써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지만, 다른 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것은 정말로 서툴렀다.
아니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대륙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 중 한명이었고, 지금은 가장 강한 마법사이다.
다른 사람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그가 남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사냥감이 우리에서 나왔으니 사냥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밀림의 새로운 정령 마법사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
‘그래봤자 아직 30도 안된 애송이 마법사지.’
20대에 상급 마법의 계승자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스승이 자연으로 돌아간 이상 새로운 정령 마법사가 정말로 강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써클의 힘만을 믿고 공격마법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하급의 술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어도, 그의 부하들은 그런 하등한 술사가 아니다.
남자는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한쪽 손에 들고 있는 마인의 지팡이를 들어 정식으로 문 밖의 부하에게 명했다.
“계획대로 시행하라. 그리고 남은 네 명의 감시도 소홀히 하지 말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그나타 님.”
그 말과 동시에 문밖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마법사 마그나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라크라...그놈은 정말 대단했지. 모든 고위 마법 중 가장 위에 존재한다는 빛의 마법이라니? 크크크.”
빛의 마법은 자신의 마법과 상극이 된다. 하지만 물이 불의 상극이라고 해도 불의 힘이 강하면 오히려 물을 없앨 수 있듯이 아직 그는 힘이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그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놈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라크란 놈이 강하다고 해도 20년 안에는 자신을 당해낼 수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라크에 대해 최고의 평가를 내렸다고 할 수 있었다.
“큭, 새로운 정령의 자매는 어떨까? 현자의 탑의 젊은 천재 마법사 시르카여. 그대가 세월의 힘을 극복할 수 있을까?”
마그나타는 웃었다.
일단 그녀가 잡혀오면 절대로 배신할 수 없는 종속의 맹약을 하거나 아니면 제물로 써 버리면 된다. 고위 마법의 후계자이자 아름다운 미녀라고 하니 제물로는 극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6명의 고위 마법사가 그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이제 7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는 12명의 고위마법사가 11명으로 줄어들 것인가?
“그것은 그녀가 결정할 일이지. 하하하하하.”
마그나타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의 계산으로는 정령의 자매 시르카는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것과 같았다.
* * *
슈트 사제가 무사하다는 것은 다른 용병들에게 행운이라고 할 만 했다. 전문 의료 교육까지 받은 슈트 사제는 우선 약초로 그들의 상처를 소독, 지혈하고 치유마법으로 상처의 크기를 축소시켰다. 그리고 다시 붕대를 감으니 당장이라도 죽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은 길버트마저도 대충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사냥꾼들은 잠들어 있는 산적들을 밧줄로 묶었다. 그들은 모두 몸에 상처하나 없었다. 그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치료가 끝나자 길버트는 슈트 사제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라크에게 다가가 말했다.
“놀랍군. 그대가 바로 소문으로 듣던 나이트메어였다니. 화이트 나이트가 임무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화이트 나이트는 일급이다. 그들이 총력을 기울였는데 오히려 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라크의 암살을 시도할 자는 대륙을 다 뒤져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뜻이 된다. 길버트는 진심으로 눈앞의 젊은이에게 감탄을 했다.
하지만 라크는 그다지 기쁘지 않은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일은 아닙니다. 거의 죽을 뻔 했고 말입니다.”
“하하하, 저명한 마법사께서 그런 겸양을 떨다니? 아까만 해도 나는 자네가 정말로 칼에 찔려 죽은 줄 알았네. 마법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정말 환상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했었지.”
“뭐, 그쪽이 제 특기이지요.”
라크는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환상이 아닌데요. 그때는 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길버트가 알 리가 없다. 그는 겸손한 라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젊은 마법사는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한다. 환상을 다루고, 순식간에 사람을 잠에 빠뜨린다.
“어떤가? 우리 일행과 같이 지내는 것이. 용병업계는 마법사라면 무조건 대환영일세. 특히 자네처럼 이름이 알려진 마법사라면 일반 용병 10명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지.”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 있는데, 만약의 경우 길버트님께 폐가 될 것 같습니다.”
“아니,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네. 자네는 이미 우리들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는가? 목숨 빚은 꼭 갚지 않으면 안 되거든.”
“맞다. 그대는, 파라나의 목숨을, 구했다.”
옆에서 파라나도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는 산적들을 발로 한 번씩 차준 후였다.
샬칸을 비롯한 몇몇 산적들은 뼈에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을 받았지만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았다. 마법으로 인해 잠들었기 때문에 마력이 소멸될 때까지 절대로 깨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모험에서 라크 경과 같은 마법사를 만난 것은 어쩌면 천신의 가호일지도 모르겠소.”
김운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