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로스트 파렐
한 걸음 내디딘 수현의 발아래 땅바닥이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콰앙!!!
“······!”
거짓말 같은 순간이었다.
소리가 먼저 울려 퍼지고 수현이 이십 미터 거리를 단숨에 좁혀들며 거대한 몬스터의 턱밑까지 파고든 건.
눈으로 쫓을 수 없는 빠르기로,
철컥.
검을 든 수현의 어깨가 격렬한 움직임으로 급격히 반등했다.
순간 몬스터의 커다란 눈동자가 새하얀 섬광으로 물들었다.
후웅!!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순간.
무게가 실린 검은 바닥을 울리며 위에서 아래로 깨끗하게 내려꽂혔다.
쓰아아악.
몬스터의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피처럼 선명한 실선이 그려졌다.
쩌어억―!
사람들은 수현보다 두 배는 더 큰 몬스터가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져 쓰러지는 걸 비명도 못 지르고 쳐다봤다.
캬아아아!!!!!”
하늘 위를 날고 있던 두 마리의 몬스터중 하나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선회한 후 방향을 틀어 달아났다.
하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흉폭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수현에게 날아왔다.
펄럭. 펄럭. 후―앙.
칼날보다 날카롭고 기다란 손톱과 발톱이 수현을 잡아채려는 찰나.
순간 수현이 칼을 들어 올린 각도가 햇빛에 반사되면서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움츠렸다.
쿵.
“……?”
데구르르르.
“우, 우……와?”
누군가가 공처럼 땅 위를 구르는 괴물의 머리에 탄성을 터뜨렸다.
하늘을 날아와 현성을 찢어버릴 것 같던 몬스터는 이미 목이 달아나 현성의 발치에 널브러져 있었다.
“꺄아악!”
“엄마야?”
여자애들이 괴물의 잘린 머리를 보고 비명을 질러댔다.
칼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 수현이 고개를 흔들며 자기가 목을 친 괴물의 머리 쪽으로 걸어왔다.
“에잇.”
뻐―엉!
“……!”
운동장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괴물의 머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학교 밖으로 날아가는 걸 바보처럼 쳐다봤다.
“수, 수현아!”
현성은 자신이 아는 수현이 아닌 것 같았다.
친구를 죽인 괴물도 무서웠지만 괴물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발로 차버린 수현도 무서웠다.
그때 수현이 현성을 돌아봤다.
히죽.
“…….”
가벼운 미소.
이런 상황에서 그런 표정을 짓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현성은 그 모습에 긴장이 풀린 듯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 입꼬리를 피식 올리고 말았다.
“자.”
수현이 손을 내밀어 현성을 일으켰다.
그 순간,
에에엥 ― ―.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제야 출동한 경찰과 구급차가 학교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엄마!!”
구급대원을 본 순간 겁에 질렸던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엉켜 사이렌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예상보다 적은 희생자의 수에 놀라기보단 안도했다.
다 차치하더라도 아이들이니까.
그들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수현아···?”
그제야 현성도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잡고 있었던 손에 허전함을 느꼈다.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손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이미 그 자리엔 결과를 만들어 낸 주인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
《로스트 파렐 사건》
이 사건은 알벤 로스차일드의 죽음과 함께 최초의 몬스터 침공의 날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시아는 극심한 피해를 입고 만다.
바로 헌터의 부재.
현재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이미 수백 명의 헌터를 보유한 헌터보유국들과 달리 아시아에서만은 단 한 명의 헌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금만 먼저 이 상황을 알렸어도 그렇게 되진 않았겠지.’
그렇기에 로스트 파렐의 발생 이후에도 아시아와는 달리 미국, 유럽, 러시아 등은 그다지 큰 피해를 받지 않았다.
‘뭐, 낙후되었던 아프리카는 침공 피해에 대하여 그 어떤 보고된 것이 없었지만···.’
그것을 떠나,
단지 헌터가 있었기 때문에 피해가 작았다고 보기엔 뭔가 이상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들은 마치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대비했다.
파렐에서의 사냥 실패.
그것이 그 안에 갇혀 있던 몬스터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어. 분명.’
하지만 그들은 어떠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정보는 곧 돈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딜을 한 빌어먹을 녀석들···.’
게다가 헌터를 파견해 주는 대가로 막대한 금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막대한 부가 고작 십 년 뒤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겠지.
‘네 녀석들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아.’
수현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2시 반.
“아직 30분이나 남았어.”
시간은 충분했다.
“완전히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수현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몬스터는 게이트를 통해서 나온다. 파렐이 만들어낸 현실과 이어지는 문.
아무런 준비도 없던 인간은 쏟아지는 몬스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세계는 파렐에서 열리는 게이트의 입구조차도 찾지 못했다.
적어도 16차 침공이 될 때까지.
그러던 중 우연히 시체를 회수하던 도중에 헌터들은 파렐과 이어진 게이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게이트는 마치 IP 주소처럼 매번 유동적으로 생성되었다.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은 그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수현은 다르다.
열여섯 개의 게이트가 열렸던 위치와 거기에 더해 게이트가 생성되는 패턴까지 알고 있으니까.
“최초의 게이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달리는 그곳.
바로,
여의도다.
“······!!!”
그 순간,
지붕을 밟고 달리던 수현의 눈에 뭔가 들어왔다.
체크색 교복 치마가 여기저기 찢어진 채로 골목길을 달리는 여학생.
“아아아아악!”
이미 블라우스는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검붉게 변한 지 오래였다.
여유롭던 수현은 피가 얼어붙고 심장을 강타당한 것처럼 놀랐다.
‘뭐야? 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아직은 집에 있어야 했다.
아직은···.
“야!! 최미나――!!!!”
수현이 동생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이형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