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슬레이브(Slave)
쉬이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역시.”
수현은 아슬아슬하게 슬레이브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검의 움직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수현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좌측 상단으로 비스듬하게 베어진 검이 틈도 없이 궤도를 바꾸었다.
뼈가 없는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꺾이는 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공격이다.
파악할 수 없는 사각으로 치솟는 검.
차앙 - !! 탕! 탕!!
공격을 막으며 물러서며 수현은 슬레이브를 바라봤다.
촤르륵.
잘려나간 어깨 부위에 기묘한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살덩이들이 솟아나며 새로 돋아났다.
끈끈한 점액질이 뚝뚝 떨어지는 새 팔에 다시 낡은 붕대가 휘감겼다.
“역시··· 골치 아파.”
슬레이브의 가장 큰 문제인 재생능력.
순식간에 잘려나간 팔을 복원한 슬레이브는 짐승 같은 울음을 지르며 떨어진 검을 쥐었다.
콰앙!!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슬레이브가 밟고 있던 바닥이 움푹 들어가며 커다란 원형으로 금이 갈라졌다.
바닥의 돌이 튀어 올랐다.
곧게 그어져 있던 차선들이 이리저리 갈라졌다.
그 순간 엄청난 가속도로 달려온 슬레이브는 양 검을 가로로 베었다.
“크윽?!”
조금 전과는 다른 묵직한 공격에 수현의 몸이 휘청거렸다.
재생을 거듭할수록 슬레이브는 더욱 강해진다.
스피드.
힘.
그리고 기술까지.
어설픈 공격으론 오히려 몬스터를 강하게 만드는 꼴이 될 뿐이었다.
비약적으로 강해진 공격을 막아내며 수현이 이를 꽉 물었다.
키아아아아―!!!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검무 사이로 수현의 눈빛이 빛났다.
가볍게 내디딘 발걸음으로 안쪽으로 파고들며 수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콰드득!!
대검을 든 손으로 슬레이브의 공격을 방어한 뒤.
수현이 그 옆구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
하지만 수현은 기합을 내지르며 손을 뻗었다.
허리가 꺾인 몬스터의 머리를 움켜쥐자 중심을 잃고 두 발이 하늘을 향해 붕 떠올랐다.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단 한 방으로 깨끗하게 끝내야 했다.
콰앙 ―!!!
수현의 공격에 슬레이브의 몸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포탄이 날아가듯 건물의 벽을 뚫고 슬레이브의 몸이 튕겨져나갔다.
“크르르르······!!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슬레이브.
순간 수현의 몸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남아있던 흐릿한 잔상이 사라진 순간,
이미 그는 슬레이브의 뒤에서 그의 뒷덜미를 발로 내려쳤다.
푸악!!
슬레이브의 머리가 도로 바닥에 처박혔다.
가루들이 튀며 슬레이브의 머리가 반쯤 바닥 아래로 박혔다.
“잡았다.”
수현은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로 가 많이 좀 있어라. 날뛰지 말고. 어?”
얼굴이 완전히 뭉개진 몬스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제대로 베 줄 테니까!”
머리가 반쯤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슬레이브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두 팔을 휘저으며 수현을 공격하려 움직였다.
“흐아아아!!”
하지만 슬레이브의 공격 따윈 수현에게 닿지 못했다.
외침.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가슴 속 깊은 곳에까지 담겨 있던 분노였다.
수현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슬레이브의 목을 찍어 눌렀다.
콰앙!
둔기로 바닥을 내려친 것 같은 육중한 소리.
수현의 주위에 커다란 원이 그려지며 그 결을 따라 바닥에 균열이 갔다.
심장과 같은 붉은색의 코어가 수현의 발아래로 굴러왔다.
콰드득.
“케에에에에에!!!!”
코어를 밟아 부숴버리자 잘려나간 슬레이브의 머리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울부짖었다.
끔찍한 그 광경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스으으으···.
온몸을 칭칭 감고 있던 붕대가 화르륵 불타올랐다.
몬스터의 육신이 순식간에 재가 흩날렸다.
잿빛의 가루들이 마치 포자처럼 공중으로 떠오르며 산화되었다.
그르르···.
슬레이브가 죽자 마치 거울이 깨지듯 게이트의 금이 가며 부서졌다.
게이트를 통과하려던 몬스터들은 입구가 닫혀버리자 안쪽에서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후···하.”
수현이 고개를 돌렸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아직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빌딩 사이사이 엉금엉금 기어 나오며 수현을 향해 소리쳤다.
그 순간,
에에에에엥―!!!
환호성과 함께 싸이렌 소리와 함께 요란한 전차의 체인 소리가 들렸다.
“머, 멈춰!!”
하지만 이미 상황 종료.
뒤늦게 출동한 경찰과 군부대가 떨리는 목소리로 수현에게 소리쳤다.
피식 웃으며 수현은 바닥에 검을 꽂았다.
매뉴얼이기 때문에 총을 겨누었지만 자신들의 적이 아님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수현은 대검을 그들에게 내보인 뒤 날을 거꾸로 세워 땅에 힘껏 내리쳤다.
쿵―.
단단한 아스팔트가 마치 두부처럼 갈라지며 대검의 반 이상이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수현은 천천히 머리 뒤로 두 손을 가져갔다.
저항할 의지가 없다는 제스쳐의 의미로.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 * *
“허허···. 이게 그 검이로군?”
아무런 장식도 없는 볼품없는 검을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날도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검.
투박하기 짝이 없는 그것으로 몬스터들을 날려버렸다는 사실이 그들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정말 대단하구만.”
“별말씀을요.”
“무슨 소린가. 전차의 포탄도 먹히지 않는 몬스터를 단칼에 베어버렸는걸.”
벗겨진 이마를 쓰윽 손수건으로 닦으며 그가 말했다. 그의 가슴에 달린 온갖 훈장만이 그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합참의장 김요섭.
최초, 현장에 있던 대위가 보내준 보고를 받았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말로 헌터였다.
아시아 국가에선 단 한 명도 보유하지도 나타난 적도 없다는 헌터가 이 나라 한복판에 떡 하니 나타났으니.
“몬스터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 최소 두 개 연대의 병력이 필요했네. 하지만 자네는 혼자서 무려 여섯 마리나 처치하지 않았나.”
김요섭은 말을 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하루 동안 받은 육군의 타격은 심각했다.
만약 수현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피해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건 인접한 중국과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저기. 일곱인데요.”
수현이 손을 들며 그의 말을 정정했다.
“그, 그런가? 이것 참 미안하네.”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총장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사과했다.
“에이. 장난이에요. 장난. 여섯이나 일곱이나 뭔 상관이요. 그렇죠?”
“어허허···. 그렇지?”
수현이 웃자 그 역시 따라 웃었다.
그러나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입꼬리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말이 일곱이지 엄청난 괴물들이다.
군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수현의 전력은 상상도 잘 가지 않았다.
그런 무시무시한 전력의 주인이 지금 자기 앞에 있으니 아무리 그라도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 이렇게 대단한 크리거가 나올 줄이야. 도대체 여태 어디에 있다 온 겐가?”
“하하···.”
수현은 총장의 말에 대답 대신 가볍게 웃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퍼스트 드림 이후, 각성된 헌터는 제각기의 특질을 가진다.
그중에 7인의 패스파인더 중 한 명인 앤섬은 헌터를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크리거(Krieger),
마첸(Machen),
그리고 가이스터(Geister).
크리거는 말 그대로 육체파 헌터이다.
니파온과 같이 선두에서 몬스터를 때려잡는 사냥꾼.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전투력.
노력 여하에 따라 일정 수준 도달하기가 쉬워 대다수의 헌터들이 이 길을 선택한다.
반면, 마법력을 사용하는 마첸과 염동력과 같은 정신력이 특화된 가이스터는 조금 다르다.
위의 두 직업은 재능이라는 타고난 기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크리거에 비한다면 극소수의 직업.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영입 대상 1순위였다.
“감사합니다.”
수현이 보여준 압도적인 힘을 생각하면 당연히 크리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질 수 있는 특질은 오직 하나.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화 된 이야기였으니까.
알벤 로스차일드.
비교 대상이 없는 그조차도 그 규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그 역시 S랭크의 엄청난 육체를 가진 크리거였을 뿐 그가 마법이나 정신력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죠?”
“으응?”
수현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수다나 떨자고 절 부르신 건 아니실 것 같은데···.”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았다.
그다지 수다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얼굴들.
참모총장을 비롯해 고위 관계자들이 신기한 동물을 보는 것 마냥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곳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었으니까.
치이이익 ―.
그 순간 자동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모든 사람들이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음?”
수현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긴장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중후한 목소리가 홀 안으로 퍼졌다.
수현이 소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지만 수현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눈길이 갔다.
“반갑네. 수현 군.”
단정한 가르마를 넘기고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
한눈에 봐도 냉철해 보이는 눈빛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수현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이 남자. 그리고 그가 기다린 남자이기도 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잡으며 수현이 나직하게 그를 불렀다.
“대통령님.”
이형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