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두 번째 게이트
[들리십니까?]
“네. 잘 들립니다.”
수현은 귀에 꽂고 있는 블루투스 마이크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군경까지 동원해서 통제를 하려다 보니 그게 오히려 비밀 유지를 할 수 없는 빌미를 주게 되는군요.]
광화문 광장.
평상시대로라면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해야 할 주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을 찍는 관광객도,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도 없었다.
텅 빈 광장 한가운데 수현이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이순신 동상만이 외로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죠. 막아도 어떻게든 찍으려고 할 테니까. 차라리 그냥 둬요. 말로 해서 들을 사람들도 아니고···. 대신 절대로 가까이 오지 않게 해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사실 텅 빈 광장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곳곳에서 수현을 주시하고 있는 눈들이 있었다.
저 멀리 있는 빌딩 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방송국 헬기들까지.
수현은 그 시선들을 느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쓰읍···. 리얼리티쇼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인걸.”
광화문 광장 반경 5Km는 1차 침공 이후 파괴된 도시 정비 명목으로 통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쉽사리 속아 넘어갈 매스컴이 아니다.
이 정도 너비의 도심을 통제라니. 그것도 경찰뿐만 아니라 기계화 사단의 군대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을 믿지 않을 소리다.
수현이 광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미 대놓고 기다리고 있던 매스컴에선 헬기까지 동원해 일제히 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카메라맨과 리포터를 태운 헬기는 국내 방송국 소유보다 오히려 외신들이 더 많이 하늘을 점령한 상태였다.
부웅.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수현은 가볍게 검을 돌렸다.
풍차가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우연히 앞에 서게 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쳐다봤다.
“…….”
폐허가 된 광장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순신 장군 동상과 머리가 날아가고 흉물로 남아버린 세종대왕 동상의 기억이 겹쳐졌다.
오늘 이후 대한민국의 수도는 없다.
두 번째 게이트 오픈의 여파로 인해 수도가 옮겨지고 서울은 대 파렐 게이트 몬스터와의 전쟁 수행을 위한 최전선 전진기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게 이제 곧 나타날 녀석의 짓이다.
“바리언트···.”
두 번째 게이트의 파수꾼이자,
역사상 가장 많은 헌터를 죽인 괴물.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회색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변했다.
쿠르르르르르.
천둥인지 벼락인지 으르렁대는 소리가 마치 하늘이 소리를 치는 것 같다.
‘온다.’
수현은 직감했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세상이 아닌 것과 조우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차가움.
꽈악―.
수현은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가죽 장갑이 빠득 거리는 소리를 냈다.
헌터 보유국 들은 A랭크 헌터 1조, B랭커 3개조를 잃는 피해를 입었다.
헌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은 대한민국처럼 해당 도시를 버려야 했다.
쿠으으으으으으으으으···!!
먹구름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용트림이 하늘에서 울렸다.
1차 게이트의 2배는 될 것 같은 크기.
아직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 하니 막힐 것 같은 위압감이었다.
[정말···. 수현 군 말이 사실이었군요.]
본부에서 들려오는 오퍼레이터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틀리길 바랐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웜홀이 수현의 눈 앞에 나타났다.
수현조차도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죠?”
파직―.
파지지지직!!
낙뢰가 떨어졌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벼락의 색은 기묘하게도 붉은색이었다.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번개 다발.
광장 주위에 있던 가로등과 전신주가 순식간에 그 전격을 이기지 못하고 시커먼 연기를 내며 부서졌다.
순식간에 주변의 전력이 나가버리며 건물의 불빛이 사라졌다.
[괜찮으십니까?]
“네. 걱정마세요.”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몬스터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20m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크기.
온몸엔 두터운 갑주를 두른 거신병.
녀석은 몬스터라기보다는 흡사 기사와 같은 모습.
손에는 거대한 할버드가 들려있었고 가슴에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코어는 단단한 갑주 사이로 빛을 띠며 위풍당당하게 박혀있었다.
마치 자신이 있으면 부숴보라는 듯한 모습.
짜증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코어를 둘러싼 저 갑주를 부수는 일에 거의 모든 헌터들이 희생했다고 하지?’
그것도 50명의 헌터가 겨우 해낸 일이다.
찰칵.
“음?”
저 멀리 뒤편의 빌딩 안에서 카메라 셔터가 번쩍였다.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그 방향을 바라봤다.
안전 범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수현은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하아, 우리나라 기자들도 대단해. 이런 와중까지···. 무섭지도 않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야? 참···.”
수현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줌 카메라로 수현을 보고 있던 기자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수현의 눈에 보였다.
“분명히 통제를 부탁렸을텐데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들어온건지···.]
“후우···.”
수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순간 그의 주변의 흐르는 기류가 달라졌다.
“진짜 쇼는 지금부터.”
콰앙 ―!!
바닥이 움푹 들어갔다.
마치 대포를 쏜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수현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주위의 군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울리는 것 같은 진동을 느꼈다.
펑! 펑! 펑!!
수현이 날아가는 포물선의 궤도를 따라 먹구름이 구멍이 뚫렸다.
소닉붐과 같은 굉음과 함께 흩어지는 구름의 궤적만이 그의 움직임을 뒤늦게 보여주었다.
새하얀 연기와 같은 구름을 안고서 수현이 검을 쥐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부서져라!!!!”
캉!!
카강!! 카가가가가각―!!
공중에서 다시 한 번 한 바퀴 돌며 수현은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반원을 그리며 내려쳤다.
바닥을 긁는 것 같은 마찰음과 함께 수현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주르륵 갑주를 베었다.
낙뢰의 소리를 뚫고 검격이 울려 퍼졌다.
혼신을 다한 일격.
그러나 검풍으로 소용돌이치던 먹구름이 사라진 뒤에 드러난 거신병의 갑주는 금도 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칫···.”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쿠으으···.]
마치 귀찮은 파리를 치우려는 것처럼 바리언트가 자신의 거대한 팔을 휘저었다.
“크윽!”
그저 팔을 한 번 휘두른 것뿐인데 풍압으로 몸이 짓이겨질 것 같은 기분.
수현은 바리언트의 갑주를 밟고 뛰어올랐다.
콰앙―!!
바리언트의 팔이 만들어 낸 충격파가 고스란히 빌딩 외벽에 직격했다.
“크윽?!”
수백 장의 창문이 한순간에 와장창 깨졌다.
마치 사과를 베어 문 것처럼 빌딩의 귀퉁이가 반파되며 사라졌다.
“제길···.”
조금 전 수현을 찍던 기자가 있던 빌딩이다.
위태위태하게 기울어진 건물은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전거리 따윈 없다.
이미 거리 모든 곳이 다 전장이었다.
탁.
지상으로 내려온 수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반파되어버린 빌딩과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이 뒤집힌 도로들.
한순간 판단의 실수가 수십 명을 죽게 만들었다.
영웅이라는 허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수현이 헤드셋을 통해 말했다.
“모두에게 전하세요.”
[네?]
“당장 모두 물러나요.”
상상을 초월하는 힘.
바리언트의 공격은 전차나 탱크의 장갑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숨어 있는 기자들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모조리 끌어내요!! 헬기도 그리고 군대까지 모조리 다!”
[하지만···!]
뭔가 반박을 하려는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어왔지만 그런 투정을 일일이 들어 여유는 없었다.
수현은 상공에서 떨어지는 바리언트를 보며 말했다.
“지금부턴 저 혼자 싸웁니다.”
이형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