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피할 수 없다
DIVA의 영향력은 이미 그 어떤 세계 연합보다도 대단했다.
어쩔 수 없다.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몬스터들에게 유린당한 현실의 그 끔찍한 광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DIVA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의 눈에 DIVA는 마치 구세주들의 집단 같았을 테니까.
DIVA가 하는 일은 모두 옳다.
DIVA만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DIVA의 헌터들만이 모든 사태를 끝낼 수 있다.
그러니···.
믿어라.
대중이 결정 내린 생각이었다.
어리석고 무지하지만 그만큼 겁도 많아 연약한 것이 바로 다수라는 존재다.
한 번의 믿음은 마치 불꽃처럼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그들의 생각을 잠식해버렸다.
“앞으로 석 달 안에 모든 아시아 국가에 가든을 설립할 예정이라더군. DIVA를 통해서 아시아도 각성자들을 발견, 양성한다는 목적이겠지.”
헌터양성센터라는 말이 자꾸만 귀에 거슬린다.
아니, 그럴 수밖에.
‘양성이라니. 훗···.’
웃기는 소리.
수현은 대통령 앞만 아니었더라면 코웃음을 치고 욕지거리를 했을지 모른다.
가든의 설립 목적과 시기, 주모자들.
그 모든 것의 이면에 도사린 음모.
그리고 아시아에서 태어날 미래의 헌터들에게 비극의 싹을 틔우게 한 초석.
그게 가든(Garden)이다.
아시아의 헌터들은 가든에 의해 만들어진다.
마치 달콤한 초콜릿을 건네는 군인처럼 DIVA는 우리에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한다.
우리도 희망이 될 수 있다.
DIVA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희망의 말로가 이용당함일 줄은···.
아시아의 헌터들은 결코 재능이 뒤떨어지지 않았다.
‘단지 조금 늦었을 뿐.’
오히려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영입 1순위인 마첸이나 가이스터는 아시아에서 더 많이 배출되었다.
하지만 모두 죽었다.
이유?
간단하다.
모두 파렐에서 방패막이로 이용당하고 죽었으니까.
겨우 걸음마를 하게 되자 달리라고 떠밀렸다.
제대로 된 각성도 없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전쟁터로 보내졌다.
그들은 우리를 소모품으로써 적당히 쓸만한 정도로만 양성시켰을 뿐이다.
DIVA 자신들의 헌터 대신 죽을 도구로.
“······.”
파렐에서의 비명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것 같았다.
수현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숨을 내뱉었다.
“후우.”
인간은 어리석다.
인류 멸망의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순간에도 탐욕과 질시, 견제는 쉬지 않고 자행됐다.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가 그리하듯.
뛰어난 전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한국도 포함되어있습니까?”
“일단은 그러네. 한 명의 헌터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DIVA의 입장이니까.”
“받아드릴 생각이신가요?”
“난 한 나라의 수장일세. 하지만 수현 군의 동의를 얻고 싶군.”
수현은 잠시 생각했다.
확실히 헌터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가든의 아래에 모이기 시작한다.
‘그들을 살려야 해. 그러기 위해선···.’
혼자서 찾아다니는 것보다 정부의 손을 빌리는 것이, 아니 DIVA의 힘을 빌리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고,
“전 괜찮습니다. 외교적 문제로 비화되어선 안되니까요. 하지만 저라는 카드를 비싸게 쓰세요. 지금의 대한민국은 며칠 전과 다르니까요. 두 번째를 피해 없이 막은 유일한 나라니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낌없이 사용한다.
“허허…….”
대통령은 기가 찬 표정으로 수현을 쳐다봤다.
‘정말 놀랄 노자로군. 저게 고등학생의 머리에서 나올 소린가?’
수현의 말은 다소 수단이 낮을 뿐이지, 조금 전까지도 열변을 토했던 외교부와 보좌진들의 조언과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수현의 다음 말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DIVA에서 아시아를 대변하십시오. 헌터를 보유한 나라들이 없으니 중국 일본 등의 강국들이 모두 힘을 모아줄 겁니다.”
“……!”
“아무리 헌터 보유국들이 힘을 합쳐도 아시아 전체를 상대하는 데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힘겨루기가 헌터만으로 저울질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맙소사?’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한다.
대통령은 열아홉 살의 최수현을 자신의 보좌진으로 곁에 둘까 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럼 파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아, 그래. 파렐 공략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렐 공략을 실패하면 게이트가 열린다는 것이 두 번째 게이트 이후 확실해졌으니 말이지. 자네 말대로야.”
“그렇군요.”
“DIVA의 반대가 있었지만 이번 일은 패스파인더들이 직접 미 정부에 알렸다더군. 그들 정도면 충분히 발언권이 있지.”
“으음.”
“게다가 우리나라는 자네 덕분에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니까. 그래서 중단을 환영하는 국가들도 있고 말야.”
일단은 복구에 전념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무리하게 공략대를 꾸려 도전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 부담이 큰일이었으니까.
“파렐 안에 있던 헌터들은요?”
“모두 철수했네. 다행히 12층까지는 출입이 자유로우니 말이야.”
“헌터의 전력이 전부 파렐 밖에 있다는 말이 되겠군요.”
“맞네. 거기 쓰여 있는 대로···. DIVA는 당분간 헌터들에게도 각 국가의 복구를 지원하라고 했네. 어차피 13층은 닫혔고 이번 일로 함부로 공략을 강행할 헌터들도 없을 테니.”
그렇다.
이제 다시 12층이 최고층이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생각과는 달리 앞으로 13층의 마스터키를 얻기 위해 수많은 클랜들이 12층의 공략대를 꾸린다.
그리고 실패, 실패, 실패···.
인류? 평화?
거창하게 대의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헌터들의 목적은 하나.
13층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와 그 열쇠가 가진 특수한 힘이었다.
‘지금부터인가.’
15층의 문을 열기까지 9년.
고작 2개의 층을 정복하는 데 걸린 시간.
그 오랜 시간만큼 사라져 간 헌터들은 수없이 많았다.
앞으로 일어날 사투의 시작을 수현은 떠올려본다.
“그렇군요.”
현재로써 파렐의 출입금지 명령은 당연한 것이다.
괜히 벌집을 들쑤셔서 벌에 쏘인다면 들쑤시지 않으면 그만. 실패의 대가가 크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으면 피해도 없을 것이다.
확실히 상식에 맞는 대처.
‘너무나도 상식적이지.’
상대는 비상식적인 존재인데 말이다.
“후우, 당분간은 큰 탈 없이 지나가는 건가.”
“글쎄요.”
“음?”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겁니다”
수현은 대통령의 말을 부정했다.
‘헌터는 파렐에 다시 투입된다.’
이제 곧,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게 되니까.
원치 않아도 싸울 수밖에 없는 헌터의 숙명.
자신들의 운명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전투가 곧 벌어질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될 재앙.
“정말로 파렐이 가만히 우릴 놔둘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들쑤시지만 않으면 벌집의 벌들이 꼼짝 않고 기다려 줄 것이라고 생각한 인류를 비웃듯.
그 누구도 공략하지 않은,
건들지조차 않았던 파렐은 몬스터를 현실로 뱉어냈다.
수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대통령에게 보였다,
“······!!”
그것의 의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대통령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번째 게이트.”
그 날이 떠오른다.
아직도 오싹한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안일한 믿음에 대한 배신은 너무나도 잔혹하게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수현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이번엔 못 막을 겁니다.”
이형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