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의혹
국정원 국장 강찬은 호성의 보고를 듣다가 하던 일을 멈추고 말았다.
“…뭐?”
“…….”
놀랐다가 보다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300만?”
“네.”
“미쳤군.”
호성은 이 미쳤다고 하는 가리키는 대상이 최수현인지 예견한 미래의 사태인지 알 수 없었다.
“부산을 포함한 남해와 도서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리자는 사안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총리가 쌍으로 돌았냐는 소릴 듣고 있는데 뭐? 아예 부산을 포기하자고?”
두 번의 몬스터 침공을 막아낸 대한민국의 헌터 최수현의 등장과 그의 예견으로 사전에 충분히 대비한 계획으로 재앙급 참사를 겪어 비통함에 빠진 세계 유수의 나라들과 달리 대한민국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보통의 국민들과 달리 정부는 지금 하나의 결정을 두고 초유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몬스터의 2차 침공을 막아낸 헌터 최수현의 세 번째 게이트 오픈에 따른 3차 침공에 대한 대처 예견 때문이었다.
최수현이 대통령을 통해 정부에 전한 요지는 대략 이러하다.
거제와 부산과 울산을 잇는 선상 지역의 국민 모두에게 긴급 대피령을 지시.
남해상의 게이트 오픈과 동시에 몬스터 침공 발발 시, 전군 교전 불가.
지상군은 부산으로부터 20Km 후방에 저지선을 만들고 전진기지를 배치할 것.
“그것도 모자라 300만이 죽는다니. 나 참.”
“최수현은 서둘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정을 지체할수록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대피는 무슨 놈의 대피?”
“……!”
강찬의 말에 김호성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그 말씀은?”
반문하는 그를 오히려 강찬이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자네? 애도 아니고 무슨 순진한 생각을 품고 있던 건가? 설마 최수현의 그 황당한 예측을 정부가 그대로 수용할 줄 알았던 건 아니겠지?”
맙소사.
김호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장 가까이서 직접 최수현을 지켜보고 수행한 그였다.
최수현은 진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찬의 말은, 아니 정부의 생각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대피시킨다는 것도 모자라 부산이란 도시를 전장으로 삼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게다가 육해공 삼군을 움직이는 건…….”
정부의 본심이라고 봐도 무방할 강찬의 말은 김호성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전술에 있어서 안방을 먼저 내주는 게 어딨나? 게다가 적의 침공을 먼저 알고 있다면 당연히 선제 타격이 우선이지! 최수현이 헌터이긴 해도 확실히 애는 애야.”
“…….”
“…그보다 최수현이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어. 1,2국 애들도 그렇게들 얘기하고.”
김호성이 그 말에 눈썹을 꿈틀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최수현이 헌터라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아직 고등학생이야.”
“……?”
“그런데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의 정보부 애들도 모르는 파렐과 몬스터 침공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어.”
“······.”
“물론, 우리 조국으로선 좋은 일이지. 첫 번째 게이트 때도 그랬고, 심지어 두 번째 게이트는 삼일 뒤에 생성될 것이란 사실도 알아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으니까.”
강찬이 지적해온 부분은 김호성도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을 가장 미스터리하게 여기고 있다고 봐야 했다.
“안 그래도 오늘 불러서 얘기하려던 참이야. 최수현을 24시간 살펴봐.”
“……!”
“누굴 만나는지, 뭘 하는지. 2개 팀을 보내 놨으니까 가면 바로 보고받을 수 있을 거야.”
팀을 보냈다면 이미 CCTV와 도청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표정이 조금 굳어졌을 뿐 김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호성 또한 본질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이다.
최수현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라를 위한 임무 수행에 생각이나 의견 따윈 필요치 않다.
김호성은 그 부분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완벽히 분리해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강찬이 말했다.
“조력자가 있든, 숨기는 것이 있든 최수현에 대해서 최소한 알 건 알아 둬야지.”
* * *
“······.”
호성은 경호 겸 수행을 명분으로 티 나지 않게 조금은 멀찍이 떨어져서 수현을 응시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헌터 맞지?”
“맞다니까. 봐? 최수현이잖아?”
백화점 안의 그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즐겨야 할 눈을 한 곳을 집중해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맞지?”
“그렇다니까? 쩐다···. 완전 대박.”
“진짜? 어디? 어디?”
“야, 야, 좀 비켜봐! 나도 보자!”
벌써 최수현을 지켜본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다.
며칠 동안 수현을 지켜보고 난 호성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특이사항 없음.
수현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여전히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방과 후엔 가끔 친구인 현성을 만났다.
PC방을 가기도 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기자들과 팬들이 몰려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했지만 이미 가족까지 모두 공개가 된 상황에서 변장은 무의미했다.
물론, 이런 모습이 평범하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은 상식선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들.
이렇다 할 이상한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상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호성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그가 명령을 받고 난 뒤 수현의 행동들을 지켜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헌터라는 신분으로 대통령에게 부산 시민을 전부 대피시키라 권고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300만이란 사망자 수가 나올 것이란 끔찍한 예언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고는 잘도 저런 한가한 일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을 넘어 화가 나고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다.
“오빠···.”
“괜찮아. 그보다 이거 잘 어울리는데?”
수군거리는 소리가 불편한 듯 미나는 자꾸만 주위를 힐끔거리며 보았다.
그러나 수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태연하게 미나의 옷을 골랐다.
“으응, 얼른 보고 돌아가자.”
“왜? 오랜만에 나왔는데 천천히 구경해야지.”
호성은 다른 매장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수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도청도 CCTV에서도 이렇다 할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딱 한 곳 빼고는.
‘거기뿐이긴 한데….’
김호성의 얼굴이 풀리지 않는 퍼즐과 맞닥뜨린 것마냥 곤혹스럽게 변했다.
도청도 CCTV도 잡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기에 단순한 실수로 치부될 수도 있는 몇 분이지만 가끔 최수현의 움직임을 제1팀과 2팀이 동시에 놓칠 때가 있다는 것.
그곳은 외부가 아니었다.
또 특별한 곳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수현의 움직임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순간은 CCTV를 비롯해 온갖 장치로 도배한 최수현의 집 안이었다.
처음 그 사실을 인지한 후 몇 번이나 후속 조치를 했지만 수현이 어느 순간 집 안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기를 반복하자 팀과 2팀 요원들은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걸 지켜보던 호성까지.
다른 곳도 아니고 집 안에서, 최수현의 동선을 놓친단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러한 사실도 감시 장비를 설치하게 돼서 알게 된 일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최수현에 대한 윗선의 의구심은 김호성에게도 전염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요 며칠 사이 대화가 뚝 끊어진 수현과의 관계도 한몫했다.
수현의 충고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고사하고 입장조차 차일피일 미루며 논의 중이란 대답만 호성의 입을 빌려 도돌이표를 찍고 있어서다.
이것 때문인지 요즘 최수현은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호성이 말을 걸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표정이나 목소리까지 냉랭했다.
[…쇼핑 끝나고 나면 맛집 가자.]
[진짜?]
[야, 여긴 부담스럽고 맛집 가는 건 또 괜찮은가 보네?]
이어폰을 통해 들어오는 수현과 가족들의 대화를 들으며 호성은 발길을 돌렸다.
‘좀 더 밖에 있겠군.’
최수현과 가족들이 집을 모두 비우는 일은 좀처럼 없는 기회.
최수현의 집에, 특히 방에 뭔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며칠간 지켜본 그나마 얻은 결론이다.
호성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최수현 집으로 복귀하겠다. 1팀 중의 한 명이 나와 교대하고 나머진 무리하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도록.”
[예]
짧은 대답을 끝으로 교신을 끝낸 호성은 이어폰을 귀에서 빼버리곤 발길을 돌렸다.
이형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