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OVERTURE
[이상으로 오늘의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핏.
리모콘의 전원을 눌러 TV를 껐다.
심야 뉴스까지 모두가 끝난 새벽. 최수현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젖혔다.
결국, 수현이 상정하고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임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날짜까지 정부는 끝내 아무런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다.
눈에 들어온 달력은 4월 21일을 가리키고 있다.
“·····.”
딱히 원망이나 울분이 느껴지진 않는다.
이미 겪었던 예정된 미래라서일까.
아니면 육체의 나이는 거꾸로 시간을 돌렸더라도 상처 입은 기억은 무뎌졌을지언정 잊히지 않아서일까.
그저 그들에게 조금 실망스럽다는 것일 뿐.
수현은 커튼으로 가려진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TV도 끄고 방의 불도 꺼져 컴컴하니 바깥은 대낮처럼 환한 빛이 커튼을 빛의 장막처럼 물들였다.
한밤중에 햇빛일 리가 있나.
수현이 헌터라는 것을 세상에 밝힌 이후 이제는 얼굴과 이름까지 외워버린 방송 언론사들의 기자들 탓이다.
시끄럽고 귀찮게 하니 쫓아내거나 접근을 막게 하려면 예전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알아서 호성이 적당한 선에서 통제해 주기도 하고 있지만 수현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려는지 어느 정도는 기자들의 취재를 정부도 눈감아 주는 눈치였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예정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지난 시간을 단순히 피지컬 능력을 키우고 싸우며 죽이는 기술만 닦은 게 아니니까.
변하기 위해선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싸워야 할 상대가…
…파렐만이기를. 몬스터뿐이기를.
수현은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굳어진 표정 뒤로 그의 두 눈이 빛났다.
‘이제부턴 아니지만.’
[기범입니다.]
“말해.”
호성은 최수현이 가족들과 아침 식사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무전으로 관심을 돌렸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
‘그래, 있을 리가 없지.’
보고를 받으면서 최수현의 집이나 방에서 뭔가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최수현에 대해 미스터리한 점이 있긴 하지만 의심은 하지 않았으니까.
있다손 치더라도 아무리 최수현이 고등학생이라지만 뭔가를 숨긴다면 집 안에 숨겨둘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 테니까.
그때, 다른 교신이 끼어들었다.
[2팀장입니다.]
“……?”
나이가 십 년은 더 위인 2팀의 팀장이 아침부터 직접 연락하자 호성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우편물에서 하나 건졌습니다.]
“우편물이요?”
성호가 눈썹을 모았다.
난데없이 우편물이라니.
저 낡고 꽉 막힌 북한이나 테러리스트도 쓰지 않는 아날로그 통신 수단에서 뭘 발견했다?
[저희도 미처 생각 못 했는데 최수현에 대한 통신 감청 허가가 떨어지면서 영업 4팀이 절차를 따르다가 발견한 모양입니다.]
저절로 수긍이 갔다.
최수현을 감시와 감청까지 하는 허가가 떨어지니 자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게 되는 절차가 있다. 거기엔 기본적으로 우편 통신물도 해당되고.
다만 이제는 죽어버린 낡은 수단이라 말 그대로 일종의 관행이 되어버린 절차라 호성도 1팀, 2팀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뿐이다.
“…말씀하십시오.”
호성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팀장이 직접 연락했단 건 확실한 결과물이 있단 뜻이다.
[수신 주소가 최수현의 집으로 된 세 통의 우편물이 관할 우체국에 들어왔었답니다.]
“들어 왔었다?”
호성이 반문하는 게 무슨 뜻인지 바로 캐치한 2팀장이 바로 덧붙였다.
[두 통은 이미 최수현의 집으로 발송됐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 우체국에 있습니다]
“발신자가 누굽니까.”
[그게 이상합니다.]
“……?”
[발신자가 최수현입니다.]
“예?”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호성이 바보처럼 반문했다.
[최수현이 자기 집에 붙인 겁니다. 방금 한 명을 보내 CCTV를 확인했는데 최수현이 직접 우편물을 붙이는 걸 확인했습니다]
순간 무전을 듣던 김호성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최수현의 집 안으로 향했다.
창 너머로 식사를 마치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최수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보낸 날짜가 아무래도 걸립니다.]
“무슨 말입니까.”
[최초로 발송된 우편물의 수신날짜가 3월 16일. 그리고 두 번째 수신 날짜는 3월 19일입니다.]
“……!”
[두 개 다 수신 날짜 이틀에서 사흘 전에 발송해 해당 날짜에 가도록 예약한 겁니다.]
무전을 통해 들리는 2팀장의 목소리가 더없이 심각해졌다.
덩달아 김호성의 표정까지.
생각하고 의심할 필요도 없는 날짜다.
그 날을 무슨 날인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각각의 최수현의 집으로 배달된 우편물이 수신된 날짜는…
[게이트가 열렸던 바로 다음 날입니다. 몬스터들의 1차, 2차 침공 다음 날짜 말입니다.]
“…….”
게다가 발송일은 당일도 아니고 그보다 며칠 전인 사전에 예약한 것이라는 것.
김호성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요 며칠 전의 기억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혼란한 머릿속을 새치기하듯 끼어들었다.
‘뭘 하십니까?’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를 몇 번이나 끄적거리는 모습이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구하는 헌터가 숙제라도 하나? 아님 연애편지?
그런 우스운 생각도 한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힐끔 끄적이는 것에 시선을 주니 최수현이 서둘러 감추듯 치웠다.
그땐 그게 쑥스러워서라고 느꼈다.
‘사생활이니 적당히 관심 가지세요.’
‘연애편지라도 씁니까? 요즘엔 수현 군 세대엔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이 어필되나 보죠?’
수현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뿔싸!’
김호성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실책이다.
나태한 것이다.
헌터임에도 최수현이 고등학생이란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방심한 것.
“세 번째 편지의 예약 수신일이 언젭니까.”
김호성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스며 나왔다.
잠시 대답을 머뭇거림이 느껴지는 몇 초의 간격 후에 대답이 들려왔다.
[4월 27일입니다]
“……!”
김호성은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26일. 부산에서 세 번째 게이트가 열립니다.’
몇 번이나 말했던 수현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학교 다녀올게요!”
교신 중이던 호성이 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나오는 수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수현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한 후 그를 지나쳤다.
호성이 집 밖으로 나가는 수현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조용히 말했다.
“발송 예정인 우편물 확보하십시오.”
[이미 그리로 가져가는 중입니다.]
문밖이 순식간에 떠들썩한 시장통처럼 변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제는 통과의례처럼 최수현의 등굣길은 기자들의 벌떼 같은 취재로 시작되기에.
평상시대로라면 수현의 뒤를 따랐어야 했다.
하지만 김호성은 이번만큼은 반대로 최수현의 집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선은 이미 이 층 최수현의 방에 있을 책상 서랍을 그리고 있었다.
이형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