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4.15 총선으로 큰 소용돌이가 휘몰아쳤습니다. 미국 또한 최고 지도자를 뽑는 일로 51개 주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대격변을 겪는 시국에 또 하나의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게임업계입니다. 매일 새로운 콘솔 정보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MS와 소니, 양 진영의 열혈 팬들은 우열을 판정하며 격렬하게 키보드 전쟁을 벌입니다. 30년차 게이머인 필자가 올해 펼쳐질 9세대 콘솔 전쟁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몬스터급 게임머신으로 무장한 MS의 대반격
전쟁에 화려한 서막을 연 쪽은 지난 승부에서 더블 스코어(판매량 기준)로 패한 MS였습니다.
'테라플롭스'는 대체적으로 그래픽카드의 수준을 따지는 데 가장 많이 활용되는 수치인데,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이하 XSX)는 무려 12테라 수치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는 최고 사양의 그래픽카드(RTX 2080S)와 비슷한 등급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콘솔'이라는 MS의 슬로건은 결코 과장이 아니죠. 무뚝뚝하게 서있는 타워형의 검은 박스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물론 효율적인 쿨링을 위한 의도도 깔려 있죠.
그리고 이용자에게 풍족한 혜택을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 게임패스는 확실한 장점입니다. 이전 세대의 거의 모든 게임을 단순 호환에 그치지 않고, 그래픽 퀄리티(해상도, 프레임) 향상을 위한 검수도 거친다고 합니다. MS는 더 나아가 전문 리뷰어에 XSX 기기를 맡기기도 하고, 플레이 영상도 공개했습니다. 이러한 MS의 충실한 준비성과 자신감 있는 행보는 많은 게이머들에게 큰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마크교수님의 썰렁한 PS5 강의
MS의 선제공격에 플레이스테이션 팬들은 많이 당황했지만 마크 서니의 발표를 믿었습니다. 이윽고 PS5 스펙이 발표됐는데 XSX보다 약 20프로 떨어지는 그래픽 성능이 나와버렸습니다. 게다가 성능의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가변'이라는 딱지까지 붙어 있었죠.
발표의 상당시간은 저장장치(SSD)에 대한 지루한 설명으로 채워졌습니다(초고속 SSD에 대한 설명은 뒷부분에). 일반 스테레오 헤드셋으로도 입체 오디오를 즐길 수 있다는 옵션은 좋았지만, PS5 외관이나 게임 실기 영상은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성격의 발표라는 건 이해가 가지만, 결과적으로 앞선 MS에 비해 매우 초라한 발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별 감흥이 없는 발표에 플스 팬들은 낙담했고, 이번 1차전 승자는 엑스박스 팬들과 소니의 발표 날 일찍 잠든 사람들로 확정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후 소니는 신작 컨트롤러를 하나 공개했습니다. 디테일한 진동 피드백 기능이 탑재된 듀얼센스는 꽤 괜찮았습니다. 뜬금없는 투톤 컬러지만 예쁜 디자인이라는 호평이 따라붙었고, 본체 디자인의 힌트를 찾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니는 PS5 소식을 학수고대하는 게임 팬들을 바라보며 다시 긴 침묵을 이어갔습니다.
◆먹을 게 없었던 MS의 잔치 vs 혁신적인 테크데모 on PS5
화끈한 사양 공개로 기선제압을 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던 MS는 '인사이드 엑스박스'에서 다양한 타이틀 라인업을 예고하면서 굳히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팬들이 바라던 차세대 타이틀의 플레이 영상 대신, 대부분 짜집기한 시네마틱 영상밖에 없어 적지 않은 실망을 줬습니다.
이후 언리얼 엔진의 새 버전인 언리얼 엔진5의 데모 영상이 공개되며 소니의 PS5에 탑재된 SSD가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영상은 엄청난 비주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효율적으로 빛을 계산해서 뿌려주는 기술(루멘)과 영화에서나 쓰일 법한 고화질 텍스쳐(8K)와 수천만 폴리곤의 모델링이 즉각적으로 뿌려지는 장면은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PS5에서 완전하게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언리얼 엔진5의 핵심 기능들은 XSX나 다른 기기도 원활히 돌아갈 거라는 개발사의 언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엔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가 바로 저장장치의 속도라는 겁니다. 엔진 개발팀은 물론 전문기술 리뷰어와 게임개발자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이번 언리얼 엔진5 데모의 비결은 PS5의 초고속 저장장치라고 칭찬했습니다. 게임팬들은 SSD 주제로 술렁였고, 스펙 공개 후 불리한 평가를 받았던 소니는 다시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소니의 결전병기, 초고속 SSD
이제 아까 생략한 PS5의 특별한 SSD에 대해 설명을 할 타이밍입니다. 게이머에게 가장 달갑지 않은 것이 바로 로딩화면일 겁니다. 로딩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게임의 디자인 소스가 담긴 보조기억장치(HDD, SDD)에서, 속도가 매우 빠른 주기억장치인 램(RAM)에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죠. 메인장치(CPU, GPU)는 램에 담겨진 디자인 소스를 가지고 게임 그래픽을 그립니다. 램은 비싼 부품이기 때문에 무한정 늘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늘 제한된 램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별별 꼼수를 고안해냈습니다.
게이머라면 대부분 게임 플레이 중, 엘리베이터 안에서 긴 시간 멍때리거나 좁은 통로를 게걸음으로 느리게 통과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것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새로운 배경과 관련된 디자인 소스(배경 텍스쳐, 환경요소 모델링 등)의 로딩 시간을 벌기 위한 개발사의 트릭이죠. 장소 전환이 그런 꼼수로도 커버가 안될 때는 아예 중간에 게임 플레이를 끊고 정적인 로딩화면을 끼워 넣습니다. '바이오해저드' 1편에서 방을 출입할 때 마다 연출되는 '문 로딩 신'이 다 그런 원리이죠.
HDD보다 훨씬 빠른 SSD를 쓰면 로딩시간을 단축할 뿐만 아니라, 게임 플레이 중에 필요한 디자인 소스를 즉각적으로 불러 연출하는 것이 더욱 수월해집니다. 위에 언급한 꼼수나 개발사의 불필요한 작업이 줄어들게 되겠죠.
PS5의 핵심 설계자, 마크서니는 그래픽 성능을 높이기 보다 저장장치의 속도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SSD를 개량까지 하며 엄청난 속도(5.5GB/sec)를 이끌어낸 거죠. 전작인 PS4의 HDD보다 100배는 빠른 수준입니다. 그래서 에픽게임즈는 PS5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혁신적인 비주얼이 담긴 언리얼 엔진5 데모 영상을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PS5의 아키텍쳐는 마크서니의 진보적인 게임개발 철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언리얼 엔진5 데모 덕분에 마크서니 주장의 절반은 입증된 셈이죠. 그 나머지는 이후 공개 될 PS5의 독점작이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게임의 미래'를 증명한 소니
6월12일, 긴 침묵을 지켰던 소니는 '게임의 미래'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했던 킬러 타이틀, '호라이즌 제로' 후속편을 중심으로 다양한 게임들이 공개됐습니다. 약간 기괴하면서 거대한 본체의 디자인도 큰 화제였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공돌이 짐승이었죠.
'라챗앤클랭크' 주인공은 포탈을 타고 정신없이 여러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무대 전환이 빠르게 이어집니다. 게다가 게이머 눈앞에 소환되는 모든 스테이지가 각기 다른 컨셉트로, 매우 충실하고 화려하게 그려졌습니다. 이 점은 PS5 SSD의 마법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 게임 영상은 마치 마크서니의 PS5 설계 철학을 웅변하는 느낌까지 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레이 트레이싱 기법도 사용해 PS5의 빛 처리 능력까지 보여줬습니다. 필자는 이번 쇼의 MVP로, PS5의 혁신성을 온전하게 증명한 '라쳇앤클랭크' 후속작을 꼽고 싶습니다.
물론 PS5 SSD의 장점은 소니의 퍼스트파티 타이틀에 국한된 것입니다. 서드파티의 게임들은 다른 기기의 호환성을 위해서 PS5 SSD의 속도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멀티플랫폼으로 발매되는 게임들은 결국, 테라플롭스가 가장 뛰어난 XSX에서 제일 좋은 퍼포먼스를 낼 겁니다. 그리고 XSX의 SSD 또한, 충분히 좋은 속도(2.4 GB/sec)라 전 세대에 비해 엄청난 연출력을 뽐낼 수 있을 겁니다.
이제 턴은 MS로 넘어갔습니다. 7월에 있을 MS의 발표 또한 '헤일로 인피니티' 같은 대작들로 꾸며져 타이틀 라인업의 파워를 자랑할 가능성이 큽니다. MS는 이미 XSX의 킬러 타이틀 역할을 할 10여개의 개발사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아직 소니의 독점작들에 비해 인지도가 달리는 상황이죠. 이 점은 전 세대 콘솔 전쟁에서 MS가 참패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MS는 다음 발표회에서 그 약점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양 진영의 희망회로 & 절망회로
이제 각 회사의 속내를 들춰 볼 시간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예상해봤습니다.
◆2020 콘솔전쟁의 숨은 승자는?
파워풀한 XSX로 반격을 노리는 MS와 혁신적인 SSD가 탑재된 PS5로 왕좌를 지키려는 소니. 둘 다 역대급으로 멋진 기기를 가지고 치열한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제 남은 건 가격과 하반기 론칭입니다. 두 회사는 늦여름 경 사전예약 판매일 직전까지 가격공개를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한 점은 예정된 두 그룹의 승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두 회사의 가격 경쟁 '치킨게임'으로 인해 덕을 볼 가능성이 높은 게이머들이고, 다른 하나는 MS와 소니에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AMD일 겁니다. 이제 게이머들은 즐겁게 팝콘을 준비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충성도 높은 두 회사의 열혈팬들은 여전히 목숨을 걸고 온라인상에서 혈투를 벌이겠지만요.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l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