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게임 업계에 여성 작가 배제 관행을 개선하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업계에서 일부 성우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사실상 퇴출됐으며 기업들에게는 이를 바로잡아야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또 인권위는 게임산업은 종사자 성별 비율에서 남성이 월등히 높은 남초산업이고, 게임 문화 속에서는 성별 고정관념, 여성 신체의 성적 도구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남성 이용자들이 전체 이용자를 대표하는 듯 돼 성희롱이나 성차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인권위의 발표만 보면 한국 게임판이 여성을 혐오하는 몰염치하고 미성숙한 집단처럼 느껴집니다. 페미니즘은 선, 게임업계와 이용자는 사회적 정의를 탄압하는 악당(빌런)같죠. 선과 악의 이분법이라면 편리하겠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복잡했습니다.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와 가치평가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이념이 아닌 생존의 투쟁, 즉 '먹고사니즘'의 문제입니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논쟁의 시작
인권위의 권고는 한 장의 티셔츠 사진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2016년 한 게임의 캐릭터 음성을 녹음했던 성우가 자신의 SNS에 구매 인증한 메갈리아 티셔츠 사진입니다. 이 티셔츠는 당시 메갈리아4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여성단체가 모금운동을 위해 제작한 것입니다.
일부 이용자들은 해당 성우가 남성 혐오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며 게임 불매운동을 전개했고, 결국 게임사는 다른 성우를 고용해 캐릭터 목소리를 덮어씌웁니다. 프리랜서였기에 일각에서 주장했던 '해고'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녹음을 한 금전적인 대가도 지불했습니다.
메시지 자체로 보면 문제될 게 별로 없습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여성이 되자는 게 바로 '걸스 두 낫 니드 어 프린스' 아닙니까. 문제를 촉발시킨 건 메시지가 아니라 맥락이었습니다. 메갈리아, 즉 우리나라의 레디컬 패미니스트를 자칭하는 단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남성 소비자들의 반발이 사태의 본질이었습니다.
이후 4년간 비슷한 논란이 수십 번 반복됐습니다. 래디컬 패미니스트임을 인증하는(또는 그런 기미가 있는) 성우 또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게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에 반발하는 이용자들이 커뮤니티와 공식 카페에 몰려가 게임사가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논란은 성난 이용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즉 문제의 창작자들을 게임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잠재웠습니다.
◆혐오VS선호, 볼드모트가 된 이름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다르다고 했던가요. 사태는 하나지만 시선은 여러 개였습니다. 페미니즘 단체와 게임 이용자들, 그리고 수많은 논객들은 사태의 본질이 '혐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사들은 '선호'의 문제라는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항변입니다.
페미니즘 지지자들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나라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수의 게임 이용자들은 래디컬 페미니즘의 내포하고 있는 '남성혐오'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성이 우위인 한국에서 '남성혐오'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죠. 이념전쟁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게임사 입장에선 어땠을까요. 온도차는 분명했습니다. 어떤 진영의 손을 들어주는 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기업의 제 1목적은 사회정의 실현이 아니라 생존과 수익추구입니다. 이념과 정의는 상대적이지만 매출은 절대적인 까닭입니다.
통계는 말해줬습니다. 페미니즘 이슈가 터지면 매출이 떨어진다고. 경험은 입증했습니다. 특정한 이념을 지지하거나 배척한다고 해서, 즉 한쪽 편을 든다고 매출이 상승하지 않는다고. 문제 해결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마라(Don't Ask, Don't Tell). 페미니즘이란 게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굴기로 맘먹은 겁니다. 이념적 진공상태만이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걸 게임사들은 학습했습니다.
이후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자신의 작품을 말하기 어려운 존재가 됐습니다. 어떤 일러스트레이터가 게임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게 금기시 됐습니다. 이념성을 내비치는 성우들은 좀처럼 게임 내에 출연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특정 이념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소비층 이탈을 유발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슈일지라도 게임사는 이를 막으려 동분서주했을 겁니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경영상의 '리스크 헤지' 기법인거죠.
사상의 다양성 좋죠. 업계에서도 논쟁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매출 떨어지면 누가 책임질래'라는 먹고사니즘앞에 이념은 무력했습니다.
◆남초문화 개선, 말만으로는 해결 안된다
지난 4년간을 돌아봅니다. 이념투쟁의 중심지에 있던 성우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분명 게임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말들의 포화 속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은 이념투쟁의 피해자입니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군가요. 인권위는 게임사들을 지목하는 듯합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게임사들도 피해자에 가깝죠. 페미니즘을 배척한다는 성명을 낸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의도를 담아 게임을 만들지도 않았지만 경제적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인권위가 지적했듯 게임업계는 남초산업입니다. 종사자 뿐 아니라 이용자들도 남성 중심적이죠. 혹자는 여성들도 요즘엔 게임을 많이 한다고 반박하겠지만 이는 장르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주요 매출원인 MMMOPRG(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나 수집형 RPG(역할수행게임)의 이용자층은 남성층이 절대다수입니다. 돈을 좇는 기업의 특성을 무시한 인권위의 권고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경제와 이념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인권이란 개념을 탄생시킨 프랑스 혁명, 이를 추동한 건 중간층인 부르주아 계급이었습니다. 소수 귀족의 특권만 인정하는 통제경제에 반발한 이들이 주축이었죠. 사회주의 혁명도 유물론 없이는 촉발될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관계가 그렇고, 미국의 흑인해방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의로 포장돼 있지만 역사의 속살은 발언권은 자본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성성 위주의 게임문화를 전복하고 싶다면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여성 게임 소비자들이 힘을 얻으려면 여성향 게임 시장의 파이가 더 커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성이 돈이 된다면 이에 부응하기 위해 기업도 변화할 겁니다. 여성향 게임 전문 업체나 개발진도 탄생할 수 있습니다. 여성 종사자수도 자연스레 늘수 있죠. 영화나 웹툰, 웹소설, 출판 등 타 대중문화에선 이미 현실화된 얘기입니다. 논란 속에서도 영화 '82년 김지영'이 370만 명을 모았고, 여성이 주인공인 공감툰이 쏟아져 나옵니다. 디즈니의 캐릭터들이 왕자의 선택을 기다리던 공주에서 왕자를 간택하는 주도적인 여성으로 변신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기만 합니다. 육성보다는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게임 콘텐츠를 반여성적, 반가족적이라고 보는 듯합니다. 인권위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게임 제작 지원 예산을 편성할 때 여성혐오 및 차별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친여성을 표방하는 몇 개의 인디게임은 탄생하겠지만 주류문화를 전복하기에는 미약해 보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켜야 한다. 듣기 좋은 소리지만 공허하기 그지없는 말잔치처럼 들립니다. 억지로 하라고 등을 떠민다고 여성친화적인 게임 생태계가 조성될까요. 문제적 인물들의 복귀로 매출이 빠진다면 인권위가 벌충해주나요. 한국 게임판은 여성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파산과 부도, 주가 하락을 혐오할 뿐입니다.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