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지난 6월, 평단에서 극찬을 받으며 야심차게 출시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이하 라오어2)'는 이용자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필자는 절망으로 가득 찬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밀수업자 조엘과 기적의 면역자 엘리가 끈끈한 유대감으로 얽혀진 전작의 스토리에서 큰 감동을 받은 바 있는데요. 몇 주 동안 2편의 감상을 끝낸 후에야 비로소 이 게임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부터 다섯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라오어2'의 핵심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캐릭터 연기
필자가 이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핏빛 조명 아래 무력화된 적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엘리의 일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시종일관 펼쳐지는 페이셜 모션의 향연에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30년 게임 인생 동안 이런 수준은 처음 접해봅니다.
대개 3D게임의 스토리 텔링은 성우의 연기나 상황연출에 의존했지 3D 캐릭터의 어설픈 얼굴 따위는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사는 그런 한계를 멋지게 극복하고, 이용자로 하여금 온전히 캐릭터의 연기에 흠뻑 빠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캐릭터 연기의 일부는 일일이 모션 캡쳐에 의해 이루어진 게 아니고 개발단에서 시스템적으로 구현했다고 합니다. 캐릭터별로 고유한 애니메이션 리스트를 가진 채 적절한 상황에 맞춰 자동으로 재생을 합니다. 이런 개발진들의 노고 덕분에 우아한 연출이 가능했습니다.
◆영리한 오픈월드의 활용과 너티독표 미장센이 된 레벨 디자인
전작이 일자로 구성된 스테이지를 여행을 하는 느낌이라면, 후속작은 광활한 시가지를 자유롭게 누비는 컨셉트로 꾸며졌습니다. 열린 스테이지 컨셉트의 시애틀은 정처없이 유랑하며 탐험하는 주인공을 위한 훌륭한 무대가 됐습니다. 자연에 동화된 채 영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를 천천히 살펴보는 일도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개발의 효율을 위해 스테이지 디자인의 템플릿화는 필수입니다. 간혹 비슷한 배경요소가 나란히 붙여넣기(Ctr+lC, Ctrl+V)가 돼, 플레이어에게 지루함을 주기 십상입니다. 개발사는 스토리 전개와 조화를 이루는 정교한 레벨 디자인을 일궈내 이런 단점을 뛰어 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 고유의 미장센으로 승화시켰습니다.
◆1석 3조의 성취를 이룬 2인 교차 플레이
줄거리의 두 중심축은 엘리와 애비입니다. 조엘과 중첩된 악연을 축으로 두 인물은 동시간대 같은 도시에서 돌고 돌다가, 결국엔 필연적으로 만나 감정이 폭발하게 됩니다. 여러 캐릭터들의 시점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은 흔한 일이지만 이 게임처럼 극단적인 대립구도의 두 캐릭터를 직접 플레이하는 건 흔치 않은 시도입니다. 그것은 둘 다 비슷한 운명에 얽혀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고뇌하는 인간상을 연출하려는 개발사의 의도였죠.
하나의 주인공(애비)의 서사가 더해지면서 게임의 세계관과 게임성이 더 확장되는 이점을 가져왔습니다. 레브와 고락을 함께 하며 천천히 유대감을 쌓는 전개도 엘리&디나 커플의 훈훈한 여정 못지않게 괜찮은 부분이었습니다. 잘 단련된 군인이라는 설정이기에 가능했던 박진감 넘치는 전투도 흥미로운 요소였죠. 이렇듯 두 주인공의 교차 플레이로 다채로운 게임성, 입체적인 서사, 풍부한 게임 볼륨 등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불쾌한 골짜기로 내던져진 엘리와 플레이어
조엘의 비참한 최후를 목격한 엘리는 복수로 무장한 킬링머신으로서 전장에 뛰어듭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적군의 피맺힌 단말마만 남습니다. 그것은 통쾌함보다 불쾌하고 섬뜩한 느낌을 갖게 하죠. 보통 액션 게임에서 주인공의 공격에 의해 처치되는 적들은 대개 유쾌하게 그려졌습니다. 악마를 샷건으로 벌집을 만들고 단검으로 마구 베는 게임, '둠'의 액션은 섬뜩함보다 폭력의 미학에 따른 즐거움이 큽니다.
반면 '라오어2'의 액션은 극도로 리얼한 폭력성을 그려 거부감을 유도했습니다. 인간과 너무 닮으면 혐오감을 준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전투 장면에 녹인 결과죠. 그렇게 점점 엘리의 인간성이 희미해지는 연출은 게임의 주제인 '부조리한 복수'와도 정확히 부합됩니다.
◆느낌표보단 물음표를 준 '풍크툼' 엔딩
게임 내내 아슬아슬하게 폭주하던 엘리의 분노는 이미 종착역이 정해졌습니다. 뜻하지 않게 임산부를 살해해 큰 죄책감을 느끼고, 애인과 단란한 가정을 일구며 행복에 안주하고 싶은 욕구까지 거치며, 그렇게 활활 불타던 복수심도 조금씩 사그라들죠. 그러나 매듭짓지 못한, 조엘에 대한 회한의 기억때문에 다시 원수를 갚고자 길을 떠나게 됩니다.
결국 야윈 애비와 재회한 엘리는 난투극을 벌이다가 손가락을 뜯기고 맙니다. 그리고 기타를 치는 조엘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싸움을 멈추게 되고 격한 슬픔에 젖은 채 애비를 놔주게 됩니다. 여기서 기타는 조엘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자, 결말(복수로부터 해방)을 위한 핵심 오브제로 활용됩니다.
'풍크툼'이란 보편적인 생각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경험이나 주관적인 의식이 연결돼 돌발적으로 꽂히는 찰나의 감정을 말합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형사가 천신만고 끝에 용의자를 찾고 진범이 아니라는 DNA판독결과에 분개하다가, 뜬금없이 "밥은 먹고 다니냐?"며 측은지심이 깃든 안부를 건네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스토리에서 꽤 비중 있게 등장한 엘리의 기타연주는 조엘에 대한 그리움 또는 속죄 의식과도 같은 중요한 행위였습니다. 그런 현악기에 대한 고유의 정서가 잠재의식에 깊이 깔려 있다가 '손가락 상실'을 만나게 됨으로써, 격한 슬픔을 동반한 '풍크툼'이 그녀에게 꽂히게 된 거죠. 그것은 감독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연출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엘리의 급변하는 감정선을 따라가긴 버거워 보였습니다. 공감보다는 '주입'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불완전하게 연소된 복수의 씁쓸함도 진하게 따라왔습니다. 차라리 게임의 장점을 발휘해 이용자에게 애비의 생사여탈권을 주거나, 손가락 상실 후 엘리에게 고찰하는 시간을 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절반의 공감을 얻었지만, 도전정신을 발휘한 너티독에 박수를
유아용 약에는 쓴맛 때문에 기피하는 걸 막기 위해서 겉에 얇게 설탕을 바릅니다. 영화 속 완벽한 스펙을 갖춘 히어로가 악인을 단죄해 세계를 구하고, 아리따운 히로인과 포옹을 하며 모두가 흐뭇해할 만한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것 모두, 관객을 위한 작가의 달달한 설정이자 배려입니다. 물론 이런 슈가코팅이 과하면 비현실적이고 상업성에 치중한 팝콘 영화라고 비난을 받기 쉽습니다.
개발사는 어두운 테마를 위해 이런 요소를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동성애자인 주인공의 스토리를 확장하기위해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소재도 거리낌없이 채용했습니다. 팬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분노'와 '상실감'이라는 감정을 살리기 위해 주인공 한 명도 과감히 희생시켰죠. 비호감과 분노의 대상이었던 인물(애비)을 두 번째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격상시킨 것도, 다채로운 플롯과 게임 플레이를 위한 도전적인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가끔 설탕을 뺀 씁쓸한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 게임의 뒷맛은 그리 깔끔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몇몇 논란 때문에 개발사의 노력과 훌륭한 결과물이 가려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레벨 디자인과 우아한 캐릭터 연출은 보다 많은 분들께 직접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모두의 박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너티독의 도전만큼은 게임 역사에서 진보적인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사가 다음 작품에서 보다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더 나은 업적을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언젠간 이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으며 감독과 게이머가 함께 웃을 날이 올 수도 있겠죠.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