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 최근 코로나 이슈로 정부는 비대면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교실의 칠판을 터치스크린으로 대치하거나 태블릿 PC를 보급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점차 비중이 커지는 온라인 강의의 지루함을 극복하고자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의 관심과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게임의 원리를 통해 학습의 성취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기법인 게이미피케이션은 교육뿐만 아니라 운동, 마케팅, 캠페인 등 많은 분야에서 두루 활용되고 있습니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저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인류의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과 발전은 놀이로부터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은 스마트폰과 게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호모 루덴스들을 위해, 게이미피케이션의 원리와 즐길거리를 하나씩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스토리텔링
일단 새로운 것을 배우기 전에 흥미를 유발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썩은 동아줄을 잡다 떨어진 호랑이 이야기를 해 주셨던 할머니의 속내엔 권선징악의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솔방울 수류탄 제작법과 축지법에 능숙한 북쪽 지도자의 전설이나, 붉은 알에서 태어나 신라를 세운 임금님의 신화 모두 집단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리더의 신비화 전략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어떤 목적과 행위를 유도하고자 고안된 스토리텔러들의 지혜이기도 하죠. 어떤 동기와 목적을 부여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은 가장 오래되면서도 탁월함을 인정받은 방법입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아난트 파이는 컴퓨터 게임과 교육을 접목해 효율적으로 아이들의 학습성장을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또한 교육가 이전에 뛰어난 스토리텔러였습니다. 인도의 역사와 신화 속 인물을 다룬 교육용 만화를 만들어서 빅히트도 시켰죠. 그는 인터뷰를 통해 늘 '재미'를 강조했습니다.
▲소금불의 추천 1. '카르멘 샌디에고'
1987년, 최초의 교육용 게임으로 등장한 이 시리즈는 학부모, 선생님, 아이 모두에게 엄지척을 받은 히트작입니다. 주어진 힌트를 토대로 도굴꾼을 쫓는 게임 스토리 덕분에 세계 각국의 역사가 깃든 명소와 보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유익한 간접 체험이 가능했습니다. 최근 애니메이션으로 활발히 제작돼 재조명 받고 있으니, 워밍업 차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감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레벨업
단계별 목표부여와 성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룰을 익히고, 알맞은 난이도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점점 몰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과정을 클리어한 채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게이미피케이션의 핵심입니다.
▲소금불의 추천 2. '링피트'
피트니스와 일절 관계가 없던 필자는 '링피트'를 만난 첫 날, 엉거주춤 링콘을 부여잡으며 동작 하나 따라하기 버거웠습니다. 이후 석 달의 과정을 걸쳐 엔딩까지 보게 된 비결은 바로 개발사의 체계적인 학습과정과 꼼꼼한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수십가지 튜토리얼과 적절한 난이도로 구성된 스테이지 콘텐츠, 그리고 미니게임의 풍성한 재미까지. 충실하게 구성된 콘텐츠들 덕분에 피트니스에 흠뻑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격부담이 다소 있긴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홈트레이닝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꼭 한 번 접해 보시길 권합니다.
◆감각과 몰입
자칫 따분해지기 쉬운 학습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시켜주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시청각을 자극하는 몰입요소는 그 중에 으뜸이면서 기본으로 꼽힙니다. 화면 속 오색 빛깔로 터지는 이펙트와 귓속을 때리는 타격음이 가장 대표적이죠. 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제는 촉각까지 섬세하게 자극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이미 수십년 전 한 예술가의 손에서 이뤄졌습니다.
1995년, 마사키 후지하타의 작품 '책의 미래'는 인터렉티브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자그림책입니다. 스크린 속의 사과 사진을 터치펜으로 '톡' 건드리면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입 베어 무는 연출이 등장합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핸드폰도 없던 시절, 작가는 당대 최신 기술을 접목한 미디어 아트를 통해 유쾌한 상상력을 뽐냈습니다.
▲소금불의 추천 3. '마법천자문AR'
이제는 판타지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몰입감을 극대화시키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대고 손으로 한자를 그려 마법공격을 시전하는 AR 연출은 아이들에게 교육의 수준을 뛰어넘는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옛날, 필자가 부모님 등살에 못 이겨 갱지에 빼곡히 한자를 쓰며 주입식 교육을 받던 시절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부러운 일입니다.
◆보상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 현실은 참 고달픕니다. 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즉각적인 피드백과 보상 덕분이죠. 미션완료 후, 꽃가루가 터지면서 조그맣게 반짝이는 배지의 등장은 이용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줍니다. 필자가 어렸을 적, 12색 색연필 세트를 받으려고 숙제 포도 스티커를 열심히 모은 기억도 비슷한 일입니다. 게임 속 보상은 재미와 몰입의 연속을 유지시키는 강력한 촉진제입니다.
스웨덴의 과속카메라 복권제도는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운전자에게 복권을 줘 안전운전을 장려하고, 스톡홀름 내 차량들 평균 속도를 22% 감소시키는 성과까지 가져왔습니다. 이 또한 게이미피케이션의 보상 메커니즘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금불의 추천 4. 애플워치
이 기법은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채용되고 있습니다. 애플의 스마트워치를 사면 하루 건강과제를 제시하고, 달성하면 세 가지 '링'을 보상으로 줘 운동을 장려합니다. 개발사는 예쁜 전자기기와 헬스케어의 우아한 교차점을 제시했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의 영리한 활용 덕분에 제조회사는 스마트워치 시장의 약 35%를 점유하면서 상업적인 이익도 거뒀습니다.
◆소셜
더불어 함께 하면 즐거움이 배가됩니다. 가상세계의 아바타 캐릭터로서 참여하여 이벤트를 공유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습니다. 지난 어린이날, 정부가 나서서 게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일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줬고, 바이럴 효과도 톡톡히 누렸습니다.
경쟁도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 한 걸인은 종교가 적힌 바구니를 놓고 어느 쪽이 가장 불우한 홈리스를 돕는지 비교했습니다. 다소 도발적인 제안이지만 그 나름대로 센스를 발휘해 경쟁심리를 자극해 참여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소금불의 추천 5. '나이키 플러스'
지인들과 업적과 기록을 겨루며 자신에게 약간의 자극과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나이키 앱은 체계적인 운동 관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셜 기능을 접목시켜 함께 달리는 기쁨도 유도했습니다. 가족들과 주간 달리기 순위를 매기면서 일요일 청소내기를 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마치며
오랜 역사를 걸쳐 인간의 진화에는 유희활동과 학습 욕구의 훌륭한 시너지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한 세계보건기구(WHO)조차도 게임을 권장하면서 셀프격리 된 호모 루덴스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이미 현대인들에게 학습과 재미를 아우르는 문화이자 검증된 수단이 됐습니다. 이 글로써 이 멋진 기법을 바로 알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가꾸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