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미호요가 최근 출시한 오픈월드 어드벤처 RPG(역할수행게임) '원신'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미호요가 지난 2018년 출시된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오픈월드라는 장르도 유사할 뿐더러 게임 내 각종 요소들도 두 게임이 매우 흡사하다는 겁니다.
두 게임이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참조(레퍼런스) 정도로 볼 수 있다는 측과 '원신'이 '야숨'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쪽이 맹렬히 부딪히고 있습니다. '느낌적인 느낌'으론 두 게임이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이것만 가지고 표절로 예단하긴 어렵습니다. 짝퉁 여부를 놓고 다투려면 일단 투쟁의 규칙부터 숙지해야 합니다. 그간의 판례와 사례를 중심으로 짝퉁을 가리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표절은 죄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남의 걸 자기 것처럼 도용해 발표하는 것을 표절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표절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소도둑놈 심보냐고 하시겠지만 법이 그렇습니다. 표절은 법률 용어가 아니라 윤리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저작자의 권리를 규정한 '저작권법'에서도 표절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말인즉슨, 표절을 했다고 손가락질은 할 수 있겠지만 처벌이나 손해배상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 모방이 반드시 표절인 건 아닙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콘텐츠는 과거의 유산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두 콘텐츠간의 유사성이 법의 문제로 발전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합니다. 저작물인지, 독창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저작권이 존재하는지 등을 충족시켜야 하죠. 앞서 나온 창작물의 독점적 권한을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면 이후의 창작자들의 의욕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은 권리보호 뿐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저작물의 범위와 한계를 정해둔 겁니다.
단순한 아이디어는 저작물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사람들끼리 총을 들고 싸우는 게임이나 몬스터를 잡으면서 레벨업하는 방식에 대해서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작물을 인정해줬다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가 '둠'이나 '울펜슈타인' 개발사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또, 저작권법에 따르면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표현을 담았다고 모두가 저작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타 다른 창작물과 비교할 때 남다른 창의성(창작성)이 인정돼야 합니다. 흙장난으로 두꺼비집을 만들어도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죠. 저작권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저작권도 없습니다. 저작재산권은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간만 인정됩니다. 그래서 '캐논변주곡'을 갖다 써도 고소를 당하지 않는 겁니다.
◆원신-야숨,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저작물의 요건을 이번 사례에 적용해볼까요. 두 게임간의 유사성을 짚어봅시다. 만화적인 효과를 내는 셀 셰이딩(카툰 렌더링)이 서로 비슷합니다. 하지만 저작권 침해로 보긴 어렵습니다. 표현의 영역이 아니라 이를 구현해내는 기술, 즉 특허로 다퉈볼 순 있을지언정 표절로 보긴 무리가 있는 거죠.
공중을 날아다니는 활공 시스템은 어떨까요. '야숨'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패러글라이더를, '원신'의 캐릭터는 날개를 달고 납니다. 기구를 타고 공중을 난다는 방식에 대해 저작권이 성립할까요? 현실 비행체를 모방한 것임은 물론이고, '야숨'에서 최초로 게임에 적용한 방식도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 같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맨몸으로 벽을 타고 오르는 이동방식도 '야숨' 개발사에 저작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밖에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몬스터 무리를 사냥하면 보물상자를 획득한다거나, 물약(포션) 대신 요리를 만들어서 체력을 보충한다든가, 아이템 창 UI(유저 인터페이스)가 비슷하다거나 폭발화살의 이펙트가 유사하다든가, 체크 포인트를 통해 워프가 가능하다든지 인스턴트 던전인 사당이 존재하는 것 등이 서로 닮았습니다.
써놓고 보니 비슷한 점이 많긴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단언할 순 없습니다. 누군가는 앞서 말한 유사점은 '야숨' 개발사가 독점적인 권한을 지닐 수 있을 만큼 창의적인 콘텐츠가 아니고 이미 다른 게임에서 반복됐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숨' 또한 앞선 게임들의 장점을 참고해 만들어진 창작물이며 미호요는 여기에 추가로 자신들만의 창의성을 첨가해 '원신'을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이 가능합니다.
다른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야숨'이 링크의 원맨쇼인데 반해 '원신'은 수십 개의 캐릭터를 번갈아서 사용할 수 있는 수집형 RPG입니다. '원신'에선 적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 캐릭터를 바꿔가면서 전투해야 하기에 '야숨'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야숨'의 사당은 퍼즐형과 전투형으로 구분이 뚜렷한데 비해서 '원신'의 그것은 전투를 중심으로 퍼즐 요소를 가미한 수준입니다. '원신'은 일정 레벨을 넘기면 다른 이용자와의 멀티 플레이도 가능해 싱글 플레이만 지원하는 '야숨'과는 차별화됩니다. 공주를 구하기 위한 링크의 모험을 담은 '야숨'과 잃어버린 혈육을 찾기 위한 '원신'의 스토리가 또 다르죠.
1차 결론은 이겁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판단 없이는 누구도 저작권 침해를 속단할 수 없습니다. 무책임한 말 같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콘텐츠의 유사성과 창작성은 계량화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텍스트와 도표로 구성된 논문 같은 경우는 판단하기가 한결 나은 편입니다.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 데이터가 동일하거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경우 등이 논문 표절에 해당됩니다. 텍스트와 데이터, 음악과 규칙의 복합장르 예술인 게임은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기 비교적 어려운 콘텐츠에 해당합니다. 재판에 가도 심급마다 판단이 다른 경우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세 번 뒤집힌 '포레스트매니아' 소송,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라
'팜히어로 사가' 개발사가 '포레스트매니아' 측에 제기한 소송은 1심과 2심, 3심의 판결이 제각각입니다. 게임 저작권 분쟁의 난해함을 엿볼 수 있는 판결입니다.
킹닷컴은 2013년 '팜히어로 사가'라는 3매치 퍼즐게임을 출시했는데 이듬해 나온 '포레스트매니아'가 자신들의 게임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겁니다. '원신'-'야숨' 논란과 양상은 비슷했습니다. 언뜻 보면 굉장히 흡사하지만 분명 차별점도 존재했거든요.
'팜히어로 사가'에는 이름처럼 양파, 태양, 딸기 농장과 관련된 캐릭터들이 퍼즐로 나왔습니다. '포레스트매니아'에는 여우, 토끼 등 숲속 친구들이 대신 등장했죠. 똑같은 퍼즐 3개를 모으면 '팡' 터지는 게임 방식은 동일했습니다. 킹닷컴은 게임 규칙의 조합, 게임 규칙들의 선택과 배열 및 신규 규칙을 소개하는 단계의 선택 등에서 두 게임이 유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요소들도 창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말이죠.
1심 재판부는 게임의 전개방식, 규칙, 단계변화 등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면서 킹닷컴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게임 방식이나 규칙은 특정인에게 독점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해 다양한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포레스트매니아'가 무죄란 얘기는 아니었어요. '팜히어로 사가'의 저작권은 인정할 순 없지만 부정경쟁 방지법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피고에게 있다고 봤습니다. 두 게임간의 유사성을 볼 때 '포레스트매니아'가 '팜히어로 사가'를 참조한 것은 분명해 보이고, 이용자들도 두 게임이 대단히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작권은 인정할 수 없지만 베낀 것은 맞다'는 취지의 판결이죠. 저작권을 침해해야 손해배상 책임이 생긴다는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2심은 '포레스트매니아'의 손을 들어줍니다. 일부 유사해 보이는 게임규칙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규칙의 경우 저작권의 보호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은 1심과 동일합니다. 여기에 두 게임의 표현방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추가로 내놓습니다. 설령 두 회사가 경쟁적 위치에 놓여 있더라도 지식재산권의 대상이 되지 않는 콘텐츠는 원칙적으로 이용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합니다.
3심에서 대법원은 킹닷컴의 손을 들어줍니다. 게임을 구성하는 각각의 구성요소들만 저작물로 볼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구성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조합되는데서 생기는 개성 또한 저작물의 판단 요건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부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유사성 또한 저작권 침해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기념비적 판결이 나온 겁니다. 비유하자면 똑같은 돌로 만들 건축물이라도 피라미드와 고인돌은 엄연히 다른 창작물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이제 문제는 표절이 아닐지도
이 판례가 나왔으니 '원신'-'야숨' 표절 논쟁은 끝이 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심과 3심은 똑같은 게임 내용을 보고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린 겁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도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을 뿐 타 게임의 표절 논란을 종결짓는 전가의 보도로 써먹기는 어렵습니다. 누가 관측하냐에 따라서 생존이 달라지는 양자 세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같은 겁니다.
최근의 표절 논란은 마치 누구도 풀 수 없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떠올리게 합니다. 푸는 자는 왕이 되지만 너무 어려워 누구도 감히 풀지 못했다는 매듭 말입니다. 푸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알렉산드로대왕이 칼로 잘라버렸거든요. 달걀을 세울 수 없자 달걀 끝을 부숴 문제를 해결했다는 콜롬버스의 달걀 사례와도 비슷합니다. 사고의 전환을 이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담은 일화들입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표절 논란은 곧잘 결론이 나곤 했습니다. 인터넷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대놓고 베꼈습니다. 외국의 콘텐츠를 가져다 쓴다고 해서 큰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일부 마니아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을 뿐더러 이마저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공론화되기도 어려웠습니다. 걸리긴 힘들지만 걸렸다 하면 빼도 박도 못하는 수준의 복사 붙여넣기 표절이 적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일반 대중이 글로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표절은 더 교묘하고 애매한 사안이 됐습니다. 과거엔 안 걸리고 넘어가길 바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표절이 아니라 레퍼런스라고 주장하는 흐름입니다. 유사성 논란을 예상하고 콘텐츠를 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로 변화시켜 놓는 거죠. 미리 무슨무슨 '오마쥬(존경)'라고 자락을 깔아놓기도 합니다.
콘텐츠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표절 판단은 더 난해해 집니다. 대중에게 호소하는 황금률, 클리셰가 상당 부분 정립돼 있는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게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좋은 가락이 생각나서 만들고 보니 이미 있던 노래라 든지, 기막힌 아이디어로 시나리오를 쓰려고 보니 이미 누가 다 써먹었더라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볼멘소리만은 아닙니다.
게임 시장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의 독창적인 게임이 나오면 뒤이어 이를 모방한 카피캣들이 시장에 쏟아집니다.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단순한 베끼기에 불과했던 게임은 잠깐 반짝였다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참신성을 인정받은 게임들은 시간의 풍화를 견디고 시금석으로 남습니다.
'울티마', '마이트앤매직', '위저드리' 시리즈가 지금도 RPG의 조상으로 추앙받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수많은 모방작들이 필요했습니다. 무엇이 원류였는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역사가들이 후술하게 되는 겁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시리즈에 불과했던 'Aeon Of Strife(영원한 투쟁)'를 AOS라는 장르로 만든 건 '도타'와 '카오스',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후발주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고난이도의 던전 탐색 RPG을 지칭하는 '로그라이크(Rogue-Like)' 장르는 고전 게임 '로그'에서 시작됐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세상은 빠르게 단일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옛날에야 사람들이 몰라서 표절작이 돈을 벌었다지만 지금은 이런 '노양심' 장사가 통하지 않죠. 원조와 동일한 소비자를 놓고 경쟁하는 건 모방작들에게 숙명이 됐습니다. 선점 효과가 있다 보니 동일하게 복사 붙여넣기만 했다면 표절작의 성공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합니다. 소비자에게 재미, 감동 등 더 많은 효능을 제공하는 소수만 살아남게 되는 구조입니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은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나쁜 시인은 빌린 것에 먹칠을 하고, 좋은 시인은 빌린 것 이상을, 적어도 색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고 말했습니다. '원신'-'야숨' 논쟁에서 표절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인 접근 방식은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야숨' IP(지적재산권) 홀더인 닌텐도가 '원신'을 자신들의 플랫폼에 입점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얼마만큼 비슷한지 판사에게 묻기보다 어느 게임이 더 우월한지 게임 이용자에게 선택받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 볼테면 해보라'는 닌텐도의 자신감도 읽힙니다.
'원신'이 '야숨'의 열화판에 불과하다면 개발비도 회수하지 못하고 쓸쓸히 물러나겠죠. 표절 게임을 만들었다는 꼬리표가 붙어 향후 후속작 개발에도 지장이 생길 겁니다. 만약 개성이 충분하다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시장에서 롱런하게 될 겁니다. '원신'이 표절작인지 계승작인지는 결국 플레이어에 의해 결정될 운명입니다. 법은 멀고 과금은 가까운 것이 요즘 게임 저작권 논쟁의 흐름이 아닌가 합니다.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