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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문학개론] 리니지 최강템 '신화무기', 정말 강남 빌딩 한 채 값인가

2020년 새해를 맞아 데일리게임에서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인문학도의 눈으로 게임과 게임 세상 이야기를 해보는 코너입니다.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찐 게이머' 필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된 게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리니지'에서 가장 비싼 아이템으로 떠오른 '그랑카인의 심판'. 성능보다 가격이 더 관심사다.
'리니지'에서 가장 비싼 아이템으로 떠오른 '그랑카인의 심판'. 성능보다 가격이 더 관심사다.
[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리니지' 최강 아이템으로 알려진 '진명황의 집행검'은 '리니지' 이용자 뿐 아니라 게임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도 유명한 아이템입니다. 무지막지한 성능 못지않게 높은 가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르는 게 값이라며 '집판검'이란 별명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이 '진명황의 집행검'보다 더 비싼 아이템이 탄생했습니다. 신화급 아이템 '그랑카인의 심판'인데요, 무려 10강의 집행검이 재료로 들어가는 무지막지한 아이템입니다. 그럼 '그랑카인의 심판' 가격은 얼마일까요. 빌딩 한 채는 우습고, 두 채까지도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옵니다. '리니지' 20년 서비스 사상 최고가 아이템 탄생한 겁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원칙대로라면 '그랑카인의 심판'은 빌딩은커녕 껌 한 쪽도 살 수 없는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합니다. 아이템은 이용자의 재산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이용자가 아이템을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아이템의 권리는 게임사가 갖고 있습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현실, 왜 그런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집판검 소송, 당신의 판단은

최강의 무기 '집행검'도 벌벌 떠는 공포의 몬스터, 그 이름은 멧돼지.
최강의 무기 '집행검'도 벌벌 떠는 공포의 몬스터, 그 이름은 멧돼지.
'집행검'의 소유자 A씨. 어느 날 누군가가 다가와 A씨에게 '거지 같은 X'이라고 놀려대기 시작했습니다. 격분한 A씨는 땅바닥에 '집행검'을 내려놓고 '이래도 내가 거지냐'고 재산(?)을 뽐냈습니다. 그런데 아차, 옆에 있던 멧돼지 몬스터가 A씨 옆으로 다가오더니 유유히 '집행검'을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변신 아이템을 이용한 '먹튀' 사기에 걸려든 겁니다. A씨는 이 사건이 땅에 떨어진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한다고 멧돼지 일당을 고소했습니다.

실제 발생했던 일명 멧돼지 '먹자' 사건입니다. 만약 본인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 것 같나요? A씨가 일당에게 속아 넘어간 것도, 집행검이 A씨의 소유인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 법원은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인정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게임 아이템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점유이탈물(건)이 성립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템을 해킹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유로 '절도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아이템은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정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조금 더 어렵게 말하면 우리나라 법은 실체가 있고 만져서 관리가 가능한 유체물(有體物)에게만 물권을 인정하는데요. 아이템은 실체가 없어 재산으로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데이터 소유권 논쟁에 있어서 '집행검'은 마치 '투명드래곤' 같다. 절대적이지만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데이터 소유권 논쟁에 있어서 '집행검'은 마치 '투명드래곤' 같다. 절대적이지만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이뿐 만이 아닙니다. 대부분 게임사 약관에 따르면 게임 내 아이템은 물론이고 캐릭터까지 게임사가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합니다. '쪼렙'이건 '만렙'이건 상관없이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게임사의 소유입니다. 어젯밤 수십만 원을 들여서 뽑은 SSR급 한정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용자는 게임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플레이할 권한만 있을 뿐 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템을 '산다', 계정을 '판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아이템 현금 거래가 모두 불법인 것은 아니다.
아이템 현금 거래가 모두 불법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금 거래가 불법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도 있습니다. 김모씨와 이모씨가 게임머니를 현금 거래해서 게임사가 소송을 걸었는데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냈습니다. 사행성이 있는 거래라거나 해킹이나 복사를 통해서 얻은 아이템을 거래하지 않았다면 거래 자체로는 불법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게임 아이템의 현재 상태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물건은 아니지만 게임 바깥에서도 거래는 가능합니다. 권리와 행위를 맞바꾸는 채권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게임사는 아이템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약관에 써놓았지만 개인 간의 현금거래에 대해서 태클을 걸기도 어렵습니다.

◆몬스터 잡아서 아메리카노 사먹는 세상이 올까

지금까지 데이터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안이 수차례 나오고도 입법에는 실패한 이유가 있습니다. 게임과 게임사의 정의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거든요.

일단 게임사는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서 재화를 창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미국 정부가 달러를 찍어내고, 한국은행이 원화를 관리하듯 아덴과 페소를 만들어내는 자격이 게임사에게 부여됩니다. 과연 정부가 기업에 이런 권력을 순순히 허락할까요.

리브라와 미국 정부의 갈등은 작게 보면 규제에 도전하는 IT기업과 이를 막으려는 정부간의 싸움이지만 크게 보면 화폐발행권이 걸려 있는 문제다.
리브라와 미국 정부의 갈등은 작게 보면 규제에 도전하는 IT기업과 이를 막으려는 정부간의 싸움이지만 크게 보면 화폐발행권이 걸려 있는 문제다.
미국 정부는 페이스북의 암호화폐인 리브라를 결사 반대하고 있습니다. 리브라가 도입되면 페이스북이 사실상의 화폐를 발행하게 돼 권한이 막강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화폐를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해서 경제를 조절해 왔는데 일개 IT기업이 여기에 반기를 든다고 여기는 겁니다. 가상화폐의 성격을 두고 첨예한 논쟁이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블록체인의 출현은 데이터의 현실 영향력을 더 막강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상재화의 단점이었던 연결성, 속도, 무결성 등을 블록체인 기술이 보완하게 되면서 실제 재화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게임과 블록체인이 연결된다면 어떨까요? 게임 내 재화를 다른 게임이나 오프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겠죠. 이론적으론 몬스터를 사냥해 얻은 사이버머니를 이용해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사먹을 수 있게 됩니다.

초월이나 각성이나 진화나 본질은 비슷하다. 좀 더 어려운 사냥터가 나오고 이를 클리어하려면 좀 더 질러야 한다는 말이다.
초월이나 각성이나 진화나 본질은 비슷하다. 좀 더 어려운 사냥터가 나오고 이를 클리어하려면 좀 더 질러야 한다는 말이다.
게임사에게 유리한 변화만 생기는 건 아닙니다. 업데이트 한 번 할 때 마다 수많은 소송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현재 한국 RPG(역할수행게임)의 주요 수익모델은 점점 강한 몬스터와 무기를 업데이트해 허들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이용자가 신화급 아이템을 획득하면 신규 초월급 아이템을 내놓아 추가 과금을 유도하는 식이죠. 필연적으로 기존 재화의 가치는 하락합니다.

아이템이 물건으로 인정된다면 이런 허들형 업데이트는 이용자의 재산권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게임 서비스사라면 아마 대부분 유사한 고민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세컨드라이프'. 게임사가 직접 나서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줬다.
'세컨드라이프'. 게임사가 직접 나서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줬다.
게임 내에 회사를 차릴 수도 있습니다. 자동 프로그램과 도용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작업장과는 구분되는 적법한 회사 말입니다. 이미 실제 사례가 존재합니다. 2000년대 유행했던 미국 린든랩사의 가상현실게임 '세컨드라이프'에선 게임 내 행성을 사고 파는 부동산중개업으로 수십억 원을 번 이용자가 탄생했습니다. 게임사가 직접 나서서 게임머니인 '린든달러'를 현금으로 환전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IBM, 아디다스 등 대기업들도 한때 '세컨드라이프' 내에 매장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미래, 데이터는 누구의 것일까

알고리듬 신의 간택을 받기 위해 빅데이터를 축적해서 소비자의 주머니를 노린다. 이것이 4차혁명 시대의 장사법이다.
알고리듬 신의 간택을 받기 위해 빅데이터를 축적해서 소비자의 주머니를 노린다. 이것이 4차혁명 시대의 장사법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지만 여전히 현실성이 희박하게 들리는 얘기일 줄로 압니다. 하지만 좀 더 시선을 넓혀 보면 미래는 생각보다 더 가깝게 와 있습니다.

2020년, 가장 가치 있는 재화는 다이아몬드도 석유도 아닙니다. 다이아몬드 말고도 빛나는 광석은 많고 석유는 가까운 미래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될 것이 확실시됩니다. 가장 각광받는 자원은 다름 아닌 데이터입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동네 슈퍼는 사라지고 아마존, 쿠팡, 네이버 등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이 팽창하고 있습니다. 소비 패턴을 파악해 빅데이터를 쌓는 것이 부의 축적과 직결되는 세상입니다. 4차혁명이란 데이터 소유권을 놓고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입니다. 여러분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과 네이버 검색 내역, 애플워치를 통해 보는 혈압, 심박수는 기업들에게 현금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를 통해 신상품을 개발하고 관심 있을만한 상품을 추천해 매출을 올리죠.

논의는 개인정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선망의 직업으로 떠오른 유튜버를 생각해볼까요. 과거의 방송은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제작해 물리적인 형태의 기록을 주파수를 통해 수상기로 송출하는 작업을 일컬었습니다. 녹화 영상을 저장한 서버가 날아간다고 방송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

유튜브는 다릅니다. 콘텐츠란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본질은 0과 1의 숫자로 구성된 데이터를 판매하는 사업입니다. 이용자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받는 대신, 기업이 지불하는 광고료로 서비스 운영 비용을 충당하기에 데이터 판매 구조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에도 데이터 자산이 가득합니다. 아이튠즈에서 다운로드 받은 수많은 음악들과 넷플릭스, 왓챠 등 OTT 이용권, 아카이브에 저장된 웹툰과 여러분이 나눈 채팅까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론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집행검'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약관을 살펴보면 회사로부터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잠시 빌린 것뿐입니다. 설령 영구적인 다운로드일지라도 특정 서비스를 통하지 않으면 재생할 수 없도록 제한을 걸어 둔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게임 아이템, 공공재인가 소유재인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게임 아이템의 성격은 쾌도난마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띄고 있다(사진=작은형의 공부발전소).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게임 아이템의 성격은 쾌도난마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띄고 있다(사진=작은형의 공부발전소).
혹자는 데이터를 소유해야 한다는 개념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전의 자산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거죠. 무한히 복제 증식되는 데이터의 성격 탓에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 '비경합성', 소비에 기여하지 않는 자를 배제할 수 없는 '비배제성' 등을 들어 데이터에겐 공공재의 성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데이터를 관리하고 여기서 나오는 이익을 분배해야 한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모든 데이터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게임 아이템이 그렇습니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경우 선망하는 고급 아이템의 경우 이용자의 수에 비해 수량이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서로 한정된 재화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경합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고급 아이템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레이드, 인스턴트 던전의 경우 일정 정도의 노력과 재화를 투입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소비에 기여하지 않은 자가 배제되는 배제성의 성격을 띱니다. 공공재라고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방 안의 코끼리. 그냥 모른 척, 이대로 넘어가고 싶지만 현실이 자꾸 부대낀다.
방 안의 코끼리. 그냥 모른 척, 이대로 넘어가고 싶지만 현실이 자꾸 부대낀다.
현재의 게임 아이템, 데이터 소유권을 둘러싼 분위기는 '방 안에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두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섣불리 말을 꺼내면 초래될 혼란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만약 게임 아이템이 하나의 재산으로 인정된다면, 또는 그렇지 않다면 그 파급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기 때문이죠.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우리가 어떤 프레임(관점)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생활의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지금, 데이터 소유권 논쟁을 부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논의는 더 가열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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