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 8년만에 다시 찾아온 소니와 MS의 콘솔전쟁은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양사의 엎치락 뒷치락하는 이벤트 쇼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들 덕분에 게이머들은 흥분과 탄식의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번 달 두 차세대 기기의 발매를 앞두고 한 번쯤 올해의 사건들을 정리하고 주요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우선 1년간 화려하게 펼쳐졌던 콘솔전쟁의 기록들부터 순서대로 살펴보죠.
◆게임 디자인의 한계를 돌파한 PS5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는 독특한 본체 디자인 만큼 하드웨어 설계도 특이합니다. 올 초, 엑스박스 시리즈 X(이하 XSX)보다 다소 떨어지는 PS5 스펙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기대보다 우려가 컸습니다. 그러나 후에 공개된 언리얼 엔진 데모와 '라챗앤클랭크'의 맵전환 영상은 이런 불신을 불식시키고, PS5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언차티드', '라스트오브어스' 등 소니의 킬러 타이틀을 책임지고 있는 개발사 너티독은 소니 퍼스트 게임스튜디오들이 쓰는 게임 엔진 기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너티독의 수장, 닐 드럭만 감독은 PS5의 특별한 SSD 덕분에 게임 디자인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이 개발사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PS5 고유의 성능을 발휘한 게임들은 향후 콘솔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스파이더맨MM', '데몬즈소울' 리메이크 등 PS 론칭 역사상 최고의 라인업을 과시했습니다. 내년에 발매될 '호라이즌 제로'와 '갓오브워'의 후속작도 PS5의 2년차 흥행을 보증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8만 원에 육박하는 타이틀 가격은 소비자로서 망설여지게 됩니다. 물론 제작비 향상으로 AAA 게임의 가격이 오르는 건 소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라이벌 진영의 게임패스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PS5 입문자를 위한 PS 플러스 컬렉션(PS4 명작게임 서비스)이 있지만 MS의 서비스(하위호환, 게임패스)에 비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MS의 추격이 만만치 않으므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게이머들을 포섭하기 위한 새로운 서비스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청각과 촉각을 강화한 인터페이스
진보적인 하드웨어만큼 신규 컨트롤러도 꽤 독창적인 기능으로 꾸며졌습니다. PS5 컨트롤러 듀얼센스는 이미 여러 호기심 많은 개발자들에게 사랑받으며 그 활용가능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속, 모래, 바람, 바닥 등 환경에 따른 진동의 디테일이 다르고, 총알이 바닥나면 방아쇠 버튼(R2)에 저항을 줘서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UX)도 의도할 수 있습니다. 비주얼과 촉감을 일치시키는 인터페이스는 PS5의 매력적인 구매포인트로 작용할 것입니다.
촉각과 더불어 게이머의 청각을 꼼꼼히 배려한 것도 주목할 점입니다. 커스텀 오디오 하드웨어인 템페스트 덕분에 공간감이 느껴지는 사운드를 헤드폰으로도 간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리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하는 VR에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결국 이 기능은 향후 소니의 두 번째 병기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PSVR2와 멋진 조합을 이루며 MS를 공략하는데 유효하게 쓰일 거라 봅니다.
◆'좋은 게임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MS의 모범답안, XSX
심플하고 무뚝뚝한 디자인의 XSX는 공부를 잘하는 단정한 옷차림의 모범생같은 인상을 줍니다. 준수한 가성비에 PS5보다 4K 게이밍에 적합한 퍼포먼스, 그리고 엑스박스 4세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하위호환은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입니다. 할부 서비스인 '올 엑세스'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게이머를 위한 MS의 멋진 배려라 할 수 있겠습니다.
MS는 확실히 이전 세대의 실책을 반성하고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파격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보급형기기인 엑스박스 시리즈 S(XSS)와 게임패스는 매우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4K 같은 고사양 게이밍에 별 미련이 없는 게이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선택지가 되겠죠.
그러나 기기파편화로 인해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개발자는 전세대 기기까지 포함해 총 4개의 기기를 신경써야 됩니다. 이 때문에 최적화에 관련된 체크리스트는 몇 배로 늘어나게 되고, 원활한 레벨디자인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MS의 수장, 필 스펜서는 전세대 엑스박스 지원이 차세대 엑스박스 게임을 하향평준화하지 않고, 전세대 엑스박스 이용자를 차별하지 않기 위한 배려라고 했지만, 그것은 구세대 엑스박스 이용자에게 게임패스를 좀 더 많이 팔기 위한 포장술에 불과합니다.
퀀틱드림이나 id소프트 등 여러 개발사들도 낮은 성능의 엑스박스기기를 지원하는 데 있어서 우려를 토로했습니다. 물론 많은 게임사들은 다양한 사양의 PC게임 개발경험 덕분에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일입니다만, 엑스박스 게임 개발자들이 PS5 개발자들보다 많은 짐을 져야하는 부담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8년이나 뒤쳐진 구형 게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애틋한 추억을 지닌 콘솔 수집가밖에 없을 것입니다. 향후 소니의 일관된 사양의 차세대 콘솔을 제대로 활용한 게임과 어떻게 비교될지도 유심히 지켜볼 문제입니다.
◆'콘솔은 거들뿐!', MS 전략의 중심 게임패스
엑스박스는 PS에 비해 독점작 라인업이 약한 브랜드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혹평을 받고 연기된 '헤일로 인피니트' 때문에 엑스박스는 단 한 개의 매력적인 독점작도 없이 불안한 스타트를 끊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EA 플레이' 편입과 베데스다 인수는 이런 우려를 한방에 날려버리고 게임패스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습니다. 마치 '게임패스'라는 이름의 뷔페를 차린 후, 옆 동네의 3성 미슐랭 요리사들을 몽땅 사들여 가게에 꽂은 형국이죠. 게임업계에 빅뱅을 일으킨 MS의 머니파워는 이토록 무시무시합니다.
게임패스는 지난 6개월간 50% 성장해 1500만 구독자를 기록하며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홍보에 목마른 인디게임 개발자들에게는 기회의 장으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게임을 전환해서 플레이하는 '퀵 리쥼' 기능은 게임패스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관심 가는대로 다양한 컨텐츠를 '찍먹' 할 수 있는 거죠. 이는 스낵 컬쳐에 익숙하고 지갑이 얇은 게이머들에게 사랑 받을만한 요소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킬러 타이틀을 풀어야 지속적인 구독자 유지가 가능할 것입니다. 장인정신으로 수년 이상 긴 호흡으로 게임을 만드는 베네스다에게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인데, 당장 이들에게 매력적인 신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게다가 1~2년 안에 터져 나올 소니의 강력한 독점작들이 이런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XSX 론칭 초기, MS가 다소 열세를 보일 거라 예상됩니다.
◆총평
결국 대진표는 이렇게 완성됐습니다. MS는 게임패스를 중심으로 클라우드게임 시장과 게임구독 서비스 패권을 노리고, 소니는 혁신적인 하드웨어와 막강한 소프트웨어 파워로 어필하는 전략을 짰습니다. PS5와 XSX 둘 다 같은 가격이지만, 하드웨어 설계, 게임 서비스, 디자인까지 거의 모든 것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게 참 재밌는 점입니다.
MS에게는 XSX 판매량보다 게임패스 구독자 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게임기 판매량으로 승패를 매기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은 PS5가 XSX에 비해 2배의 인기(9월12일 IGN 설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MS의 맹추격으로 그 격차가 점점 좁혀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인류 문화 발전의 역사에는 늘 놀이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8년만에 다시 '놀이'에 특화된 최첨단 컴퓨터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또 한 번 우리 호모루덴스들의 문화가 어떻게 바뀔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독자분들 각자 꿈꾸는 게임기를 손에 넣고 행복한 연말을 보내시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