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소니의 새로운 게임기는 불시착한 의문의 미확인 비행물체 같았습니다. 괴이한 형태를 지닌 채 저장장치 속도만을 뽐내며 등장한 이 차세대 게임기는 GPU 성능이 주 관심사였던 게어머들에게 호감보다 의아함을 먼저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 베일에 쌓인 콘솔의 저력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의아함이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필자는 올 초 PS5 핵심 설계자의 기술설명을 보면서 여러 가능성을 점쳤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들이 여러 데모를 통해 차례대로 구체화되는 것을 보며 한가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게임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었죠. PS5의 혁신적인 점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 가능성을 알아보겠습니다.
◆ 컨트롤러계의 새로운 스타, 듀얼 센스
필자는 이십여 년 전 '메탈기어1'에서 날렵하게 생긴 하인드D 헬기가 거친 돌풍과 함께 이륙할 때 손 끝에 전해진 진동의 짜릿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지만 듀얼쇼크의 역할은 '피격 대미지' 같은 단순한 피드백에 머물렀습니다.
이번에 소니는 기존 네이밍을 버리고 '센스'라는 이름 채용해 그야말로 디테일한 촉감을 통한 게임 몰입의 극대화를 지향했습니다. 모래밭과 메탈 재질 바닥의 차이와 머리 위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까지 고스란히 흉내내는 이 투톤 칼라의 장난감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입력저항을 다르게 줄 수 있는 어댑티브 트리거 또한 이 패드의 자랑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 특수한 버튼은 방아쇠가 잘 당겨지지 않는 느낌과 활시위의 팽팽한 장력까지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게이머는 더이상 화면 속 잔탄 숫자 따위로 장전유무를 파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진짜같은 우아한 UX(User Experience)가 가능하게 된 거죠.
여러 리뷰어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등장한 듀얼센스는 이미 게임 컨트롤러계의 떠오르는 별이 됐습니다. 이 신생 컨트롤러는 PS5의 강력한 매력 포인트가 될 뿐만 아니라 창의성 넘치는 여러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가슴 벅찬 비전이 됐습니다.
◆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혁신, 템페스트 엔진
3D 오디오 기술은 이전부터 익숙한 것이었습니다만 CPU 부담이 커 다루기 까다로웠습니다. 소니는 따로 이 역할을 담당하는 장치를 마련해 깊어진 소리의 몰입감도 준비했습니다.
템페스트 엔진은 게임 속 오브젝트를 기반으로 입체적인 사운드를 뽑아냅니다. 동굴 안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 소리는 플레이어의 귓가를 강렬하게 두드리면서 진한 현장감을 선사합니다. 또한 소리의 방향성도 강화해 적의 인기척 소리를 기준으로 총 조준점을 돌리며 전략적인 게임 플레이가 가능해졌습니다.
3D 오디오는 헤드셋과 궁합이 잘 맞기 때문에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인 VR과 적절한 조화를 이룰수 있습니다. PSVR1은 PS4 판매량(1억 대)에 비해 소니에게 큰 재미(500만 대)를 주지 못했습니다만, 최근 오큘러스 퀘스트2의 눈부신 흥행으로 VR시장 전망에 청신호가 켜짐에 따라, PSVR 2탄이 전략으로 추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쯤 되면 템페스트 엔진은 진가를 발휘하며 PS5의 비전을 돋보이게 해줄 것입니다.
◆ 집콕 게임족에게 날개를 달아 줄 '컨트롤센터'
PS5의 핵심 UI인 컨트롤센터는 게이머를 위한 충실한 서비스로 무장했습니다. 주기능이라 할 수 있는 활동카드(Activity Card)는 여러가지 스테이지와 과제로 세분화해 게이머에게 좀더 직관적이고 유연한 놀이방식을 제안합니다. 공식 공략 가이드나 영상을 PIP 모드(picture in picture)로 띄워 참고할 수 있는 점도 꽤 쓰임새가 좋아 보입니다.
또한 게임 커뮤니티의 허브로서도 충실히 그 역할을 잘 할 듯한 인상을 줍니다. 다른 친구의 게임영상(PIP 모드)을 보면서 컨트롤러의 마이크로 조언도 할 수 있고, 초대콜을 받아서 순식간에 친구의 게임에 합류해 함께 즐기는 등 온라인 친구들과 긴밀한 플레이도 즐길 수 있습니다. 언택트 시대를 맞아 사회활동에 목마른 게이머들을 위한 안성맞춤인 기능이라 할 수 있죠.
사실 컨트롤센터의 모든 기능들은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유튜브, 트위치, 디스코드 같은 소셜 어플리케이션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게임 플레이, 게임 공략법, 소셜활동 등 이 모든 것들을 패드의 홈버튼 하나로,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일관되게 이용이 가능한 것은 범상치 않은 편리함을 줄 수 있습니다. 보통 게임 플레이 중 오버레이로 띄워지는 콘솔 메인 UI는 무겁게 돌아가는 게 대부분이라 소극적으로 이용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이런 쾌적한 이용자 인터페이스까지 꼼꼼하게 챙긴 소니 덕분에 게임라이프의 질적 향상은 분명할 겁니다. 또한 이것은 다른 컴퓨터기기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레벨 디자인의 한계를 돌파하는 동력, 초고속 SSD
컴퓨터의 주기억장치인 램(RAM)은 게임의 리소스를 실시간으로 불러오기 위해 임시로 담는 그릇의 역할을 합니다. 비용 문제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용량이 한정(16기가)돼 배경 리소스를 한꺼번에 많이 넣지 못합니다. 보통 일정한 스테이지와 스테이지 사이에 적막감만 흐르는 로딩 화면을 끼워 넣거나, 좁고 긴 통로 혹은 엘리베이터에 오랫동안 주인공을 가둬서 다른 스테이지로 전환(로딩)하는 시간을 버는 게 일반적인 맵제작 방법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PS5의 수석 설계자, 마크 서니는 디자인에셋 로딩속도(SSD)를 비약적으로 올리면 순식간에 맵전환이 이뤄져서 좀더 원활한 레벨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만으론 일반인에게 PS5의 핵심비전을 납득시키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고자 '용과같이7'의 최종 미션에서 등장하는 스테이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화려하고 촘촘한 내부구조를 지닌 타워의 리소스는 매우 커서 첫 진입 시, 긴 로딩을 거쳐야 합니다. 이 것은 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도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떨어진 던전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맨 꼭대기층의 최종 보스를 물리치면 곧 바로 엔딩으로 이어지죠. 만약에 마지막 미션의 무대를 타워에 국한하지 않고, PS5의 특출 난 SSD를 활용해서 스테이지를 확장하면 어떨까요?
핀치에 몰린 최종 보스가 헬기를 타고 달아나며, 주인공과 도심 상공에서 아찔한 추격전을 벌이거나 다른 장소로 불시착해 2차전으로 이어지는 등 더욱 역동적인 스토리 전개가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타워를 벗어나고 다음 무대로 전환할 때 중간에 긴 로딩화면을 껴 넣을 수 있지만, 연출의 흥은 깨지고 맙니다.
PS5라면 게임 시나리오는 이제 기존의 맵 제작 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는 거죠. 레벨 디자인은 게임 플레이의 핵심입니다. 실내에서 하염없이 런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보다 밖에서 조깅하는 게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달리는 액션은 동일하지만 새롭게 바뀌는 풍경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니는 많은 오해를 무릎 쓰고 SSD의 속도에 집중했습니다. 결국 언리얼 엔진5 데모와 '라챗앤클랭크' 신작으로, '게임에 한계가 없다(Play Has No Limits)'는 그들의 슬로건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PS5의 독특한 아키텍쳐는 제약 없는 레벨 디자인을 가능케 해 게임 플레이의 진정한 혁신을 일궜습니다.
◆ '현대의 다 빈치'가 빚은 역작
이런 진보적인 콘솔이 나올 수 있게 된 배경은 마크 서니의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게임 디자이너로서 오랫동안 소니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초창기 인섬니악, 너티독 같은 개발사에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 재능을 뽐냈습니다. 이윽고 2010년, AIAS(인터렉티브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현대의 다 빈치'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8년전 PS3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며 PS의 아버지라 불렸던 켄쿠타라기는 이탈하고, 마크 서니는 PS4 제작의 지휘봉을 잡게 되며 1억 대 판매 흥행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PS5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하게 됐죠. 가전기기의 왕자라는 말은 옛말이 될 정도로 애플이나 삼성에 뒤쳐진 소니는 주력사업이 된 콘솔사업에서 사활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할 법한 소니에서 업계상식(그래픽성능우선)을 깨는 게임기가 등장한 것은 대담한 비전을 지닌 마크 서니에 대한 온전한 신뢰 덕분이라고 봅니다.
걸프전 때 미군병사의 든든한 친구가 돼 줬던 게임보이, 허공에 대고 팔뚝질을 하는 1억 명의 이상한 게이머를 배출한 닌텐도 위(Wii) 리모컨, 그리고 휴대와 거치의 경계를 멋지게 허문 스위치에 이어서, PS5는 다시 한 번 30년차 게이머인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지겨운 성능 먼치킨 싸움을 탈피하고 오로지 게임 플레이의 혁신에 집중한 소니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02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판데믹뿐만 아니라 게임의 역사로서도 특별해질 거라 필자는 확신합니다. 단 하나의 게임기로 말이죠.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