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 공을 날리기 위한 적정 타격점을 뜻하는 '스윗 스팟(Sweet Spot)'은 소비자 호감도의 최고점을 가리키는 마케팅 용어로도 쓰인다. 작년 10월, 오큘러스 퀘스트2(이하 오큘2)의 발매는 VR 시장에서 최고로 빛나는 스윗 스팟이 됐다. 오큘1 대비 5배의 예약구매, 전체 스팀 VR기기 과반의 점유율(오큘러스 제품군 기준), 금년 예상판매량 300만 장(SUPERDATA) 등 여러 청신호를 띄우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번거로운 선, 떨어지는 가성비, 부실한 소프트 라인업 등 여러 단점들과 함께 VR은 그저 얼리 어답터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오큘2는 이런 껄끄러운 허들을 모두 극복하고 우리에게 친근한 기기로 다가왔다.
1000만 명의 오큘 액티브 이용자 확보가 목표라는 마크 주커버그(페이스북CEO)의 바람이 현실이 되면, 과연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까? 몇 달간 오큘2에 흠뻑 빠진 필자가 머릿속에 떠오른 몇 가지 비전을 토대로,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일상의 변화들을 하나씩 그려 보겠다.
◆V 투어
칩의 집적도가 2년에 두 배씩 발전한다는 무어의 법칙대로 VR기기의 성능은 날로 발전해 엄청난 비주얼을 체감하는 시기가 곧 올 것이다. 최근에 나온 게임 엔진은 원본 배경 사진을 그대로 3D 모델 텍스쳐에 입혀, 보다 진짜같은 현실을 제공하는 수준까지 왔다.
120Hz 주사율, 8K 해상도의 CG로 재현된 세계 각국의 관광명소를 마음껏 누비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구글이나 넷플릭스 같이 플랫폼을 쥐고 있는 기업들이 3D 아티스트들을 대거 동원해 의욕적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 것이다. 몇 년 안에 넷플릭스 홈 화면에 'VR투어'라는 카데고리 하나가 추가될 수도 있겠다.
◆V 올림픽
5G 같은 초고속 인터넷 덕분에 영상 스트리밍까지 가능해져서 GPU 장치는 덜어지고 차세대 VR기기의 경량화는 더더욱 큰 폭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롭고 역동적인 VR게임들이 나올 수 있겠다.
탁구나 테니스, 암벽등반 같은 기존의 스포츠를 개량한 VR게임들을 주제로, 주말마다 페이스북 지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온라인 가상 운동회를 갖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국가별로 특출난 선수들이 등장하는 온라인 V 올림픽의 출범도 기대해 볼만하다.
◆V 포르노그래피
VR 하면 누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을 것이다. 스무 해도 지난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주인공이 특수한 헤드셋을 쓰고 성적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미래 가상연애의 아이콘으로 굳어졌다. 이제는 그때의 영화적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딥러닝 기술은 원하는 인물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대로 본따 재탄생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고화질 3D캐릭터에 원하는 인물을 복제시키는 일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VR콘텐츠 시장의 음침한 뒷골목을 중심으로 성상품화와 초상권침해같은 사이버 범죄 논란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랬듯 윤리와 별개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살색 콘텐츠의 폭주는 막기 힘들 것이다.
◆V 러닝
VR의 가장 큰 장점인 현장감을 활용한 교육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운전실습부터 소방훈련까지 이미 여러 교육용 VR게임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가상으로 꾸며진 불타는 집에서 탈출에 실패해 그대로 잿더미가 되더라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안전수칙을 숙지하고 재도전하면 그만이다. 언젠간 교육부장관이 마이크 앞에서 학교 정규과목에 V러닝 편성을 발표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지진대피, 홍수 구조 등 여러 재해대처 VR 퀘스트를 완수하면 동사무소에서 '천재지변 마스터' 스티커를 발급받아 주민등록증 옆에 붙여서 자랑할 수도 있다. 이런 적극적인 유도는 안전수칙에 관한 전 국민의 상식수준을 높이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V러닝 에듀테인먼트의 대중화는 멀지 않았다.
◆V 콘서트
방역 때문에 당분간 뮤지션들의 실황공연을 볼 수 없지만, 팬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아도 친밀감을 공유하는 수단을 찾았다. 이제는 비싼 표값을 치루지 않아도 집에서 VR헤드셋을 쓰고 사랑하는 뮤지션과 가상 콘서트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기후변화와 판데믹을 계기로 언택트 시대에 익숙해짐에 따라 VR은 이른바 ON택트 뮤직 엔테테인먼트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설이 된 가수들을 가상의 3D 캐릭터로 복원해 팬들의 숙원을 성취해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주말에 거실 쇼파에 앉아 씁쓸한 소주 한 잔 들이 키면서, 3차원 CG로 부활한 광석이형의 라이브를 눈 앞에서 즐기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V 테라피
VR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심리 치료기기로 활용됐다. 대인관계 불안증이나 전쟁 트라우마같은 스트레스 장애(PTSD)를 극복하는 치료기법으로 가상현실이 많이 쓰인다. 작년에 방영된 다큐에서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딸과 엄마가 재회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이러한 VR 역할극은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적극적으로 가상현실 콘텐츠를 찾는 사람이 점점 늘 것이다. 마치 감기약을 사러 동네 약국을 찾듯, 고급 프로그램을 갖춘 V테라피 전문점에 들러 심리치료를 받는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V 앨범
3D 앨범사업도 각광을 받으며, 동네 곳곳마다 고급 360도 카메라 장비를 갖춘 사진관을 볼 수 있겠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들과의 기념일, 3D 촬영사를 불러 하이 퀄리티의 3D 영상을 촬영해 소중한 추억을 좀더 적극적으로 보존하려는 수요도 많아질 것이다.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