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개념 잡고 기여할 수 있겠구나 싶은데 퇴임할 때가 됐네요. 이런 느낌일 때 그만두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마음 편하게 게임업계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이사장은 재단 이사장 취임하던 당시를 돌아보며 "처음에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다"고 했다. 게임과는 접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기도 한 김 이사장은 여러 기업 관계자와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며 다양한 업계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지만 유독 게임업계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했다. 그는 "게임과 관계된 건 10년 전 게임확회 강연을 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게임과 접점도 없었고, 스스로 "게임을 잘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김 이사장이지만 그의 '피드백 사이언스' 이론은 게임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경일 이사장은 "바로잡고 싶은 부분이 있다. 많은 게임 관련 연구에서 '리워드'라고 하는데 '피드백'을 바라는 존재가 인간이다. 우리는 '게임 사이언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피드백 사이언스'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은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드백 때문에 하는 거다. 큰 리워드를 바란다면 도박을 하는 게 맞다. 게임은 열심히 해도 보상이 크지는 않다. 대신 피드백을 받는다. '애니팡'을 예로 들자면 랭킹과 스코어라는 피드백이 계속 오는데, 피드백이 빠지면 누가 계속 하겠나. 피드백이 들어가면 게임이고 피드백이 빠지면 그건 일이다. '응답하라 1994'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애니팡'을 왜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소정의 보람'인데 그게 바로 피드백이다"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일 이사장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게임은 좋은 피드백, 성공적인 피드백 시스템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은 리워드를 주는 것이 아닌 피드백을 주는 거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많은 가정 부모들의 고민인 아이들의 게임 시간 관리에도 김 이사장은 '리워드가 아닌 피드백'을 강조했다. 공부에 대한 리워드로 게임을 하게 할 경우 아이들이 더욱 게임에 탐닉할 수 있다는 것. 대신 부모가 원하는 만큼 아이들이 공부를 한 뒤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할 수 있게 하면 아이들이 적당히 즐기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게임을 보상으로 제공하면 즐거울 수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만족하지 못하면 멈추기 어렵죠. 반면 공부에 대한 피드백으로 선택권을 주면 만족할 때가지만 게임을 하고 다른 걸 찾게 됩니다. 2층집에 사는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연구가 있는데 부모들이 2층까지 따라 올라가서 리워드를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재단 활동을 하며 여러 학부모들과 만나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가 바로 피드백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는 "지금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책을 보기를 바라지만 500년 전에는 책만 보면 바보가 된다고 했다"며 "여러 플랫폼을 고르게 접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피드백 사이언스' 이론은 국내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드백보다는 리워드를 어떻게 줄 것인지에 치중한 확률형 과금모델 중심의 게임 위주로 라인업을 꾸린 국내 업체들은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잔뜩 웅크려 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게임업계 스스로 직업의식이나 자부심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더라. 다른 업계는 직원교육부터 철저히 한다. 미사일 등 대량살상 무기를 만드는 회사도 직원들에게 그 당위성에 대해 교육한다. 그러면 직원들은 밖에서 뭐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떳떳하다. 그런데 게임업계는 그런 교육이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약을 만들어도 그 가치를 알면 진통제를 만든다. 3M이 본드를 통해 어떤 가치를 창출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지 않나. 게임업계는 스스로 뭘 만드는지조차 모르는 거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게임업계 종사자 중 자신의 직업을 숨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남에게 해가 되는 걸 만들 때 창조적으로 변한다. 반면 행복한 사람은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만들 때 창조적으로 변한다. 게임업계가 교육용 게임을 만들 때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스스로 불행하기 때문이다. 아마 주요 업체 경영진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일 이사장은 게임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좋은 피드백을 주는 법을 이해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게임을 통해서도 피드백을 이해하고 창조적인 인사이트를 갖출 수 있다는 것. 김 이사장은 "배달 앱을 만들어 성공한 CEO를 보라. 피드백이 남다르기 때문에 성공한 거다. 비슷한 공공 앱을 잘 만들어도 안된다. 겉보기에는 잘 만든 것 같아도 피드백이 다르다. 'FM'이나 '심시티' 같은 게임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아 세상을 바꾸는 이들이 왜 나오지 못하겠나"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타고난 성실성을 성공 원동력으로 삼던 시대는 지났다. 성실한 일은 AI가 더 잘한다. 인간의 노력은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내 노력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야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될까, 그런 고민을 하지 못하면 AI가 잡아먹기 쉬운 사람이 될 것이다. 피드백을 이해하고 고민해야 창조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피드백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강조했다.
"아직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처럼 그는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도 그만의 게임 이론에 대한 열변을 이어갔다. 김 이사장은 "그만둔 뒤에는 게임업계를 신선하게 혼내고 싶다"며 퇴임 후에도 게임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피드백 사이언스' 이론을 바탕으로 한 그의 활동이 국내 게임업계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기대된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