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사원에서 벌어진 식은 땀 나는 혈투
여행을 떠나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지역에 따라 기후 환경이 확연히 다르기에 멀리 가면 갈수록 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이나 식물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자연을 찾아 정처 없이 길을 걷다 갑자기 '두둥'하고 등장하는 야생동물은 여행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는 여러 여행지에서 원숭이를 뜻하지 않게 조우한 바 있는데요. 지능이 높은 원숭이들은 여러 돌발 행동으로 낯선 곳을 찾은 여행객들을 난처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자 또한 외딴 곳에서 원숭이와 일기토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태국 남부 도시 후아힌 인근에는 '원숭이 사원'이라 불리는 카오 따끼얍 사원이 있는데요.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다 도중에 멈춰 앉아 쉬던 기자가 서늘한 한기를 느끼고 돌아봤더니 원숭이가 어디서 다가왔는지 바로 옆에 와 있었습니다. 원숭이가 노린 건 1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긴 먹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는데요. 기자의 손에 들린 컵을 원숭이가 빼앗으려고 붙잡았는데 악력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원숭이는 컵이 담겨져 있던 비닐 캐리어가 찢어지면서 컵이 땅에 떨어지고, 컵 속에 남아있던 얼음과 물이 튀자 놀라서 도망쳤는데요. 이후 기자는 땅바닥에 내려놨던 소지품들(휴대폰과 지갑 등)을 주머니 속에 챙기고 그날의 일정을 이어갔습니다.
베트남 하롱베이에는 '원숭이 섬'이라고 불리는 섬도 있습니다. 올드 게이머라면 과거 PC게임 '원숭이섬의 비밀'이 절로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곳인데요.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겨울철이어서 원숭이를 단 한 마리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름철에 제철 과일로 유혹하면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장관을 이룬다고 하네요.
열대 지방에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원숭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자는 말레이시아 휴양지 페낭에서 페낭 힐로 걸어서 올라가는 길에 원숭이 일가족을 만나기도 했습니다(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함정).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위한 도로 가에 줄을 지어 앉거나 누워있는 원숭이 가족에게서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돌보는 모습에서 진한 모성애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요. 사람이 가까이 지나가도 놀라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어쩌면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시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리 준비한 야채나 과일이 없었던 터라 마시던 생수만 따라주고 길을 옮겼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패왕 코끼리의 슬픈 이야기
최강의 야생동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육식동물 중에서는 사자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가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식동물의 왕인 코끼리는 사자나 호랑이뿐만 아니라 코풀소를 가볍게 물리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성장을 마친 코끼리는 1대1로는 당할 수 있는 적이 없다는 게 정설입니다. 게임에서도 코끼리는 강한 보스급 몬스터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국 어린이들처럼 기자는 노래로 먼저 코끼리를 접하고 동물원에서 처음 만나 신기함을 금치 못했는데요. 태국 치앙마이 인근 지역으로 떠난 트래킹 여행길에서 코끼리를 직접 탈 수 있는, 어린 시절 판타지를 실현할 기회를 만났습니다.
안장도 없이 코끼리의 목에 올라탔습니다. 코끼리는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이기에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요. 사람을 태우는 일이 귀찮았는지 코끼리가 몸을 뒤트는 통해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는데요. 쇠사슬에 묶인 채 채찍을 맞아가며 억지로 걸음을 떼는 코끼리를 보고 있노라니 무서운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관광산업에 활용되는 코끼리들은 어려서부터 학대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여행객들은 코끼리 라이딩 코스는 빼고 관광에 참여한다고 하네요.
코끼리의 슬픈 삶은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각국의 박물관마다 상아로 만들어진 전시품이 있는데요. 코끼리의 슬픈 사연을 듣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문화재 또는 보물 정도로 받아들였겠지만 코끼리의 고달픈 삶을 직접 겪고 난 뒤에 상아를 보노라니 밀렵꾼을 대신해 코끼리에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습니다. 상아가 있는 코끼리를 밀렵꾼들이 집요하게 사냥하면서 이제는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이 더 많아졌다는 뉴스를 최근 접하고 나니 죄스러운 마음이 더 커질 뿐인데요. 게임에서라도 코끼리가 마음껏 지낼 수 있게 몬스터보다는 이용자들의 조력자나 NPC로 코끼리를 더 자주 만나봤으면 하네요.
◆'좀비 모드'의 원조는 각국의 축제?
각 지역마다 유명한 축제가 있습니다. 주요 관광도시의 최대 축제의 경우 각국의 관광객들이 몰리며 성황을 이루는데요. 기자는 운이 좋게도 장기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축제를 접한 경험이 있습니다.
태국의 양대 축제 중 하나인 '송끄란'은 축제 자체도 대단한 볼거리이지만 게임과의 유사성을 느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송끄란'은 물 축제로 유명한데 '송끄란' 기간 동안 태국의 번화가는 각종 물총과 물대포, 바가지로 무장한 이들의 무차별 물 공격 세례가 쏟아집니다.
게임으로 치면 '카스온라인'을 비롯한 다양한 FPS게임에 적용된 '좀비 모드'를 연상케 하는데요. 일단 누구든 물에 젖고 나면 아직 젖지 않은 이들을 상대로 자신이 당했던 공격을 되돌려주는 이들이 많습니다.
기자는 여행자 거리에서 다소 떨어진 주택가 뒷골목 숙소 1층 로비에서 물총 싸움을 구경하다 길 건너 가게 주인 아저씨의 바가지 공격에 물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나서 '좀비' 대열에 합류해 다른 지나가는 행인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날 배운 팁은 '송끄란'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 얼음이라는 사실인데요. 태국의 대낮의 날씨는 무덥기 때문에 상온의 물로는 타격을 주기 어렵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차가운 물로 공격해야 타격감을 느낄 수 있으니 혹시 '송끄란'에 참가할 기회가 있는 분들은 얼음물 확보에 신경을 쓰시기 바랍니다.
필리핀 세부 지역의 유명 축제 '시눌룩'은 낮에는 아기 예수상을 따라 벌어지는 각종 공연 퍼레이드가 핵심이지만, 밤이 되면 '좀비 모드'로 변합니다. 퍼레이드가 끝난 길에 저녁까지 머물다 보면, 쏟아진 인파 속에서 물감 범벅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얼굴이나 팔 등 노출된 피부뿐만 아니라 티셔츠나 바지에도 물감 공격이 이어집니다. 각국의 과일 축제에서도 비슷한 '좀비 모드'를 느낄 수 있는데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여러분들도 오프라인 '좀비 모드'를 느끼러 떠나시기를 추천합니다.
◆게임 배경 단골 손님인 '러이 끄라통'과 '이펭'
'러이 끄라통'은 '송끄란'과 함께 태국의 양대 축제로 꼽힙니다. 한국의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러이 끄라통' 기간 동안 태국 전역의 강은 연꽃 모양의 등불로 가득합니다. 태국인들은 '끄라통'이라는 이름의 연꽃 모양으로 만든 작은 배에 초와 꽃, 동전을 실어 강물에 떠내려 보내며 물의 여신에게 축복을 빈다고 해요.
태국 치앙마이 인근 지역에서는 '러이 끄라통' 기간 동안 '이펭' 축제가 함께 열리는데요. '이펭' 축제는 등불을 강물에 띄우는 대신 하늘에 날려보냅니다. 이 기간 동안 태국인들뿐만 아니라 태국을 찾은 관광객들까지 대거 치앙마이에 모여 풍등을 날리는 통해 일대가 아주 장관을 이룹니다.
중화권에서도 풍등을 날리는 풍습을 지닌 곳들이 적지 않은데요. 대만의 경우 타이베이 인근의 스펀에서 천등을 날리는 코스가 한국 여행객들에게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시아 문화권에서 익숙한 풍습인 탓에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등불은 게임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등불은 특히 중국 개발사가 개발한 무협풍 게임에는 단골로 등장하는데요. 지난해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미호요의 '원신'에도 풍등이 날아가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언제쯤 여행을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실치 않은 상황인데요. 그때까지 다양한 게임을 즐기며 버텨야만 할 것 같습니다. 글로벌 집단 면역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게이머들 모두 힘내요!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