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한국인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ASL'의 흥행에 이어서 스트리머 대회인 '스낳대'의 뜨거운 관심까지 '스타1'의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e스포츠의 본산인 OGN의 몰락 이후 그 존재감도 희미해질 법하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죠. 국민적 인지도, 세월을 타지 않는 고유의 재미, 선수 출신 BJ들의 활약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협동게임의 피로감 탓에 1대1 게임이 재조명 받는다는 문원빈 기자의 분석[1]이 제일 유력해 보입니다.
이쯤 되면 메인 e스포츠의 가능성을 재검토해볼 만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한계 때문에 여전히 그 미래가 불투명하죠. 'ASL'은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지만, 신입 선수가 없는 한 그들만의 리그로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e스포츠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선 새로운 유저는 필수입니다. 고전 게임의 한계, 경쟁 게임의 등장 등 '스타1' 신규 유저를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이 있겠지만, 필자가 눈여겨본 점은 바로 인터페이스입니다.

본진 건물을 일일이 클릭하며 유닛을 뽑다가 '어택땅'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아무런 전술적 컨트롤도 받지 못한 채 전멸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스타2'의 건물 그룹지정은 이런 고질적인 불편함을 해소했죠. 또한 유닛 부대지정수 무제한, 자동 일꾼 광물 캐기 등 모든 면에서 전작의 편의성을 앞섰습니다. 심플함과 직관성을 최고 미덕으로 꼽는 유저 인터페이스(UI)의 설계 원칙을 충실히 따른 거죠.
그러나 '스타2'보다 한참 뒤에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유의 게임성보존'이라는 원칙 아래, 인터페이스 변경을 최소화했습니다. 리마스터 발매 당시, 대체로 이 결정을 따르는 분위기였지만 필자는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업그레이드 항목에 그래픽, 사운드만 넣고 인터페이스를 빼 버린 꼴이었죠. 대체 '고유의 게임성'이란 게 무엇일까요? 이 의문은 e스포츠의 본질을 따지는 일과 비슷합니다.

'임진록'에서의 3연벙, '몽상가'의 할루시네이션 리콜, '대인배' 김준영의 소떼 운영(울트라리스크)까지, 모두가 선수의 기지와 경험에서 나온 전략들입니다. 이 전설같은 명경기들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장르가 무엇인지 온전히 보여주죠. 초반 빌드 싸움과 중반 운영, 그리고 후반에 뺏고 뺏기는 멀티 공략까지 대부분의 승부를 가리는 것은 플레이어의 판단력입니다. 이런 심리적인 면에서 대범한 선수만이 여태껏 e스포츠 영광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또한 20대 중반만 되도 피지컬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직종보다 활동기간이 짧은 프로게이머들의 숙명같은 문제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올드 프로게이머의 컴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생산력 저하 문제가 해결되면서, 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센스를 무기로 현 세대 선수들과 멋진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겠죠.

둔탁하게 울려 퍼지는 발업 질럿의 광선검, 본진 건물들을 찢어발기는 아드레날린 저글링의 발톱, 결전을 위해 아꼈던 스팀팩 하나를 흡입하는 마린의 거친 숨소리, 이 모두가 오랫동안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애정을 품고 있는 팬들과 과거의 영광을 짊어진 BJ들이 '스타1' 문화의 중심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팬이 있는데 어떻게 스타리그가 끝날 수가 있나?'
-2012년 마지막 스타리그 후일담, 엄재경 해설위원-
십여 년 전, 한탄 섞인 엄재경 해설의 말[2]처럼 많은 팬들이 있는 한,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이유가 없습니다. 지상파 방송이 저물고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플랫폼 전환을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타이밍입니다. 새로운 팬과 선수의 유입이 최대 숙제인 상황에서, UI 2.0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봅니다.
UI 2.0의 패치작업 수준과 양은 블리자드에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UI 2.0으로 재정립된 '스타1' e스포츠에 대한 공감대와 개발사의 재검토가 필요할 뿐이죠. 우리의 '민속놀이'는 구시대의 인터페이스를 버려야 새로운 가능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조2: 해설계 레전드 엄재경편 (21.07.10 YOUTUBE 강민tv)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