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소금불' 김진수] 2008년에 등장한 '레프트4 데드(이하 레포데)'의 글로벌 히트는 또 하나의 액션게임 장르를 확립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랜선 친구들과 함께 목적지까지 살아남기, 그들의 피와 살을 노리는 좀비떼,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플레이어의 숨통을 노리는 돌연변이(엘리트)까지. 이러한 특징들은 장르의 문법이 돼 이후 여러 온라인 액션게임에 영향을 끼쳤다.
◆'레포데'류 팀 액션게임
특히 플레이어 한 명은 거뜬히 무력화시키는 엘리트 몬스터는 이 장르의 꽃이다. 벼를 베듯 느릿한 좀비들을 처리하는 일만 반복하면, 자칫 단조로운 게임플레이가 돼 버리기 쉽다. 여기에 비범한 능력의 엘리트 몬스터 한 둘을 섞어주면 플레이 텐션이 올라가고 유저 간에 협동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 마치 심심한 맛의 산나물, 밥 위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똑 얹는 느낌이랄까. '레포데'류(流) 팀 액션게임의 핵심 재미는 적들을 쓸어버리는 무쌍[1]과 고도의 엘리트 전술이 잘 어우러진, 비빔밥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청출어람! '버민타이드'
이후 '레포데'의 게임 요소를 차용한 많은 팀 액션게임이 등장했다. 좀비떼(swarm) 연출의 극치를 자랑한 '월드워Z'와 우주최악의 피조물, 에이리언을 진압하는 '파이어팀 엘리트'까지, 테마(적)와 장르의 문법을 변주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중에 개발사 팻샤크(fatshark)가 대놓고 오마쥬라 공언하고 만든 '버민타이드'는 선조격인 '레포데'에게 제일 이쁨 받는 후손이다.
'워해머' 세계관에서 악당을 맡고 있는 쥐 인간, 스케이븐이 등장하는 이 게임은 발매초기 '중세 레포데'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게임 구성을 빼 닮았다. 그러나 폭력의 미학을 살린 타격감과 깊이 있는 근접전투 시스템으로 참신한 재미를 선사하며, 단순한 아류작이라는 인상을 날려버렸다. 이어서 등장한 2편은 발매 첫 주 50만 장을 팔아 치우며, 또 하나의 팀 액션게임 장르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염원의 작품 '3탄'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바이러스의 공포를 마치 기념이라도 하듯, 이번 달에 '백4블러드'가 발매된다. '레포데'의 정신적 계승작이란 소식에 한껏 고무된 '레포데' 팬들은, 이미 이 작품에 '레포데 3탄'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개발사는 오픈베타 동접자 10만 명(스팀)이란 축포와 함께 화려하게 스타트를 끊으며, 또 한 번의 흥행 돌풍을 예고했다.
특히 새로 도입된 카드 시스템은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무작위로 부여되는 버프 카드와 페널티(부패 카드)는 리플레이 가치를 높이는 요소이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버민타이드'의 최근 업데이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로그라이트[2])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그 것은 아케이드 게임처럼 짧은 게임 수명을 보강하기 위한 비책으로, 장르를 대표하는 두 개발사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밸트 스크롤 DNA
'백4블러드'의 Swarm 모드는 5분에서 15분 사이의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간식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게임 모드입니다
-터틀락 스튜디오 프로듀서 리앤 팝(Lianne Papp)- (폴리곤 인터뷰)
개발자의 '10분 간식' 얘기를 듣고, 점심시간에 몰래 학교 담장을 넘어 오락실 게임 한 판을 즐겼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담배연기와 뿅뿅 사운드 가득한 그 곳에서, '야구왕'이 방망이 하나로 몬스터 무리를 쓸어버리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케이드 게임장은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가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엄청난 게임들이 거실 TV 속에서 돌아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빈 병을 팔아 마련한 푼돈을 쥐고 허름한 반지하 게임장에 가서, 십여 분짜리 4인용 액션게임을 했던 그 때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외길 진행, 떼 지어 몰려오는 적들, 친구와 전우애를 다지며 보스를 잡는 것까지. 그 옛날 벨트 스크롤 장르[3]는 요즘 온라인 액션게임과 닮은 점이 꽤 있다. 애틋한 추억이 깃든 고전 게임의 미덕을 전승하고 이렇게 팀 액션 장르가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인생을 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인 듯하다. 이제 글 마감이 끝났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온라인 벗들과 함께 '백4블러드' 한 판 하러 가야겠다.
[1] 무쌍: 일본개발사 코에이의 액션게임 '삼국무쌍'의 짧은 호칭. 적 100명은 기본으로 쓸어버리는 호쾌함이 특징
[2] 로그라이트(Roguelite): 1Level 초기화, 랜덤맵, 랜덤 아이템이 특징인 장르 '로그라이크(Roguelike)'의 순한 맛 버전
[3] 벨트 스크롤 장르: 가로로 강제 스크롤 되는 배경 위에서 즐기는 다인용 2D 액션게임. 대표작으로 '파이널 파이트', '던전앤드래곤', '천지를 먹다2', '닌자베이스볼 베트맨' 등이 있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