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핫한 한국 국적의 포커 플레이어는 홍진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풍 저그'로 불리며 e스포츠 초창기 정상급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그는 포커 플레이어 전향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투에이스 앰버서더로 활동하며 포커 예능 '포커 신들의 전쟁'에서 2회 연속 우승하는 등 과거부터 포커 실력을 인정받아 온 홍진호는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커 국제대회 '월드시리즈 오브 포커(이하 WSOP)'에서 우승을 차지, 20만 달러가 넘는 상금과 우승 브레이슬릿을 획득해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전까지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홍진호는 포커 본고장에서 'WSOP' 브레이슬릿 획득을 포함해 굵직한 규모의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전 세계에 알렸다.
올해도 'WSOP' 참가 중인 홍진호를 지난 6월 대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현지에서 만났다. 홍진호는 지난해 대회에서의 'WSOP'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WSOP' 브레이슬릿 획득은 당연히 포커 플레이어로서 큰 목표 중 하나였는데 달성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파이널 테이블에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로 게임에 임했다. 마지막 헤즈업(파이널 테이블에서 최종 2인 생존 상황) 상대가 잘하는 선수(푼낫 푼시리, 누적 상금 800만 달러가 넘는 하이롤러 레귤러)라고 들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내 플레이에 집중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해 우승에 대해 "브레이슬릿 획득이라는 큰 목표를 너무 빨리 달성한 것 같다"며 "'WSOP' 우승을 하고 난 뒤 참가한 올해 대회에서 달라진 점을 피부로 느낀다. 상대들로부터 리스펙트를 많이 받는 느낌이다. 작년까지는 대회 홈페이지나 포커 뉴스 사이트에 내 이름이 나오지 않았는데 올해는 자주 언급되고 있기도 하고"라며 우승자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호는 지난해 브레이슬릿 획득에 이어 올해 'WSOP'서도 20만 달러가 넘는 상금으로 4위 입상에 성공했다. 홍진호는 지난 6월4일부터 6일까지 열린'2023 WSOP 5000 달러 프리즈아웃 노-리미트 홀덤 8핸디드(이하 프리즈아웃)' 종목에서 파이널 테이블까지 진출했으나 아쉽게 4위에 머물렀다.
홍진호는 "지난해 우승에 이어 올해 대회에서 빠르게 브레이슬릿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놓친 것이 상당히 아쉽다. 1일차(Day1)와 2일차(Day2) 모두 숏스택(칩이 낮은 축에 속하는 상황)으로 어렵게 버티다가 마지막 3일차에 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파이널 테이블에서 최종 4인이 남았는데 상대 선수 면면을 살펴봐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충분히 우승을 기대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바로 그때 사고가 발생했다. 4명 중 가장 숏스택이던 일본의 노조무 시미즈의 무리한 Ts9s 블라인드 스틸(올인 공격을 통해 팟을 빼앗으려는 행위) 시도를 홍진호가 AsKd으로 방어하다 불운한 보드를 만나 칩의 대부분을 잃은 뒤 4위로 탈락하고 만 것. 홍진호는 "당시 그 핸드를 이겼으면 3명이 남고 칩 리더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본 선수 때문에..."라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프로게이머 시절 라이벌 임요환과의 경기에서 '3연벙(3경기 연속 벙커링)'에 당하고도 이후 정상급 실력을 유지했던 홍진호지만 이번 'WSOP'에서의 배드 비트(Bad Beat: 유리한 상황에서 역전당해 핸드를 지는 상황)는 견디기 어려웠나보다. 홍진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가볍게 하고 운동을 하면서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4등한 다음날은 운동이고 뭐고 하기 싫더라"고 고백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유리한 상황에서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질 수 있는 것이 포커이고, 그것이 또한 포커의 매력"이라며 "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런 올인에 '스냅 콜(생각하는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결정하는 콜)'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호는 이번 라스베이거스 원정에서 거의 매일 포커 토너먼트에 참여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최근 '피의게임2' 이후 방송 섭외가 정말 많이 왔는데 다 거절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왔다. 남들 다 가는 그랜드캐년에도 가지 않고 포커 대회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한 대회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 다른 곳에서 열리는 참가할 만한 토너먼트를 미리 검색해둔다. 일정만 맞으면 하루에 두 대회 이상 참여하기도 한다"며 포커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홍진호의 열정은 막대한 입상 상금으로 이어졌다. 홍진호는 5월31일 이후 라스베이거스서 'WSOP' 대회 4개 입상 포함 9개 대회서 38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획득했다. 우리 돈으로 5억 원이 넘는 큰 금액이다. 막대한 상금을 추가한 홍진호는 199만164 달러(한화 약 25억8700만 원)의 누적 상금으로 한국인 누적 상금 순위에서도 4위까지 올라섰으며 누적 상금 200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홍진호와 기자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홍진호의 포커 플레이어로서의 첫 우승 대회였던 2019년 '아시아 포커 투어 마닐라 노-리미트 홀덤 몬스터스택' 종목에서 장시간 함께 경기를 치렀던 것. 최종 10명이 남은 상황에서 3명의 칩리더 그룹에 속했던 홍진호는 다른 두 명의 필리핀 레귤러 칩리더를 차례로 탈락시키며 기자를 포함한 다른 숏스택들에게 막대한 페이점프(탈락자가 발생하며 상금이 올라가는 상황)를 안겨준 바 있다.
같은 테이블에서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홍진호는 상당히 공격적이면서도 모든 핸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진지함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웠다(기자가 홍진호를 상대로 '두 번'의 '더블업'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치 프로게이머 시절 '폭풍'이 연상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에 대해 홍진호는 "'스타크래프트' 때는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 생각했다. 공격성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며 "포커에서는 다르다. 스스로 공격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홀덤은 9명이 하는 게임이다. 공격할 때는 확실하게 하지만 팟 참여 비율이나 블러핑 비율 등을 너무 늘리는 스타일이 아니다"고 스스로의 플레이 스타일을 규정했다.
마닐라에서의 첫 우승은 홍진호의 포커 프로 활동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는 "첫 우승을 통해 '내가 하는 홀덤이 틀리지 않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 첫 우승을 기반으로 아시아권에서 성과를 냈고 라스베이거스와 유럽에도 도전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처음 왔을 때 좌절하기도 했지만 다시 와서 좋은 성과를 냈다. 내가 하는 플레이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WSOP'에서도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홍진호는 "사실 남들 다 아는 유명한 선수들을 나는 잘 모른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테이블에서 같이 게임을 해보면 실력은 바로 알 수 있다. 남들을 의식하는 것보다 내 플레이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실력을 인정받은 홍진호이지만 남은 목표가 있다. 바로 모든 포커 플레이어들의 꿈의 무대인 'WSOP 메인 이벤트'에서의 좋은 성적이다. 홍진호는 "작년까지 세 번 'WSOP 메인 이벤트'에 참여했는데 머니인은커녕 한 번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올해는 꼭 데이2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진호는 현재 라스베이거스서 진행 중인 '2023 WSOP 메인 이벤트'서 데이3까지 통과, 머니인을 눈앞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1차 목표를 달성한 홍진호가 세계 최고의 포커 무대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상위 입상에 성공한다면 국내외서 다시 한 번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