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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게이머 오딧세이] 게임이라는 허튼 일이 갖는 가치

모바일과 온라인, 아케이드에 보드게임까지 20년 가까운 게임업계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정희권 필자가 '올드게이머 오딧세이' 코너로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려 합니다. 오랜 기간 지역을 넘나들며 쌓은 필자의 다양한 경험을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달하려 합니다. < 편집자주 >

[글=정희권] 독일의 보드게임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필자가 사는 곳은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이다. 아침에 출근을 위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를 생각하면 우스울 때가 있다. 게임을 만드는 일을 무슨 천직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말한다는 건 우습다. 그런데 딱히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제 곧 이 업계에 입문한지 20년이 된다. 그 세월만큼의 깊이가 있는지 생각하면 항상 부끄럽다.

새로운 일을 누가 제안하면 재미있어 하며 미끼를 덥석 무는 물고기 같은 습성 때문에, 모바일게임, 온라인게임, 아케이드게임을 거쳐 보드게임업계에서 일하는 괴상한 커리어를 갖게 됐다. 잘못 관리한 커리어의 표본 같아 보일 수도 있고, 고생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그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에 딱히 후회는 없다.

유럽의 한 보드게임 전시회 모습. 게임은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유럽의 한 보드게임 전시회 모습. 게임은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며, 다양한 관점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다 보면 그 일의 사회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역할에서 가치를 생각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 덕에 살아간다. 세상 모든 일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고, 그 일을 존중할 이유가 있다. 우리는 농부의 역할에 감사해야 하고, 일찍 일어나 물건을 유통시키는 사람들, 도시의 치안을 지키는 사람들, 다친 사람을 치료해 주는 의료진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존속하고 행복을 누리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가치라는 것은 그 기여에서 나온다.

게임을 만들고 유통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가치와 책임이 있을까? 과연 게임을 만드는 일은 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일까? 오히려 게임이라는 매체의 해악을 지적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갑자기 찾아온 것은 십수년 전, 필자가 일하던 곳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다. 후배의 소개를 받아 일하게 된 보드게임 회사에는 문제가 많았다. 임금은 미지급됐고, 회사에 수상쩍은 일들이 많았다. 대표 역시 수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가족의 돈까지 빌려서 투자를 한 회사였기에 필자가 나가면 그 투자금이 휴지가 될 것 같아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손절의 중요성을 모르던 때다. 노동부에 임금 미지급을 고발한 직원들이 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필자는 그 희망 없는 직장에 더 오래 남았을 것이다.

그곳에 다닐 때 독일 에센이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보드게임 컨벤션에 참가한 일이 있다. 'Spiel Messe'라는 이름의 그 행사는 전 세게 거의 대부분의 주요 퍼블리셔들이 부스 참가를 하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보드게임 컨벤션이다.

그 출장의 목적이었던 몇 개의 미팅을 마치고 필자는 딱히 목표도 없이 구름 같은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아마도 마지막 방문일에 이 행사장을 떠돌고 있었다.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는 꽉 차 있었고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이제 막 사람들이 일어나는 자리를 발견하고 자리에 앉는 찰나, 필자 앞에 덩치가 산만한 독일인 한 명이 앉았다.

보드게임 플레이에 열중하고 있는 전시회 참가자들.
보드게임 플레이에 열중하고 있는 전시회 참가자들.
그는 외양이 정말 특별했다. 팔뚝과 목덜미를 가득 채운 문신이야 그렇다 쳐도, 살이 안 보일 정도로 귀에 꽂혀있는 금속 링 하며, 무엇보다 특이했던 것은 머리를 민 그의 이마였다. 두피 밑에 구슬 같은 것을 박았는지 네 개의 둥근 뿔이 이마를 채우고 있었다.

그가 머리를 민 것이 젊은 나이에 일찍 찾아온 탈모 때문인지, 스킨헤드들이 흔히 그렇듯 인종차별을 포함한 정치적 신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게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같은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눌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필자와 그가 자리에 앉고 나서 두 자리를 독일인 커플이 채웠고, 우리는 그해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Shadow of Chamelot'이라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아서 왕과 함께 카멜롯 성을 지키는 기사들이 돼 우리는 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했다. 문제는 플레이어 중에는 배신자가 있고, 그 배신자는 다른 사람이 실패해야, 즉 성이 함락당해야 이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날 그 테이블의 배신자는 바로 필자였다.

함께 협동해 야만인의 침략을 물리치는 단계에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도왔고, 배신자를 색출하는 단계에서는 서로를 의심하며 낄낄대기도 했다.

독일인 커플 중 남자가 의심을 받았고 그의 여자친구가 가장 강력하게 그를 의심했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 필자가 배신자였다는 사실을 밝히자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1시간 남짓 돌아간 게임이 끝나고 난 후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했다. 머리에 쇠구슬을 박은 스킨헤드 청년은 아헨공대를 다니는 공대생이란 걸 알게 됐다. 험상궂은 외모의 그는 그저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으며, 게임도 하고 구매도 하기 위해 동생과 날을 잡아 놀러 온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기원하며 악수를 나눴다. 두툼한 그의 손은 무척 따뜻했다. 그때 그는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기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우연히 게임을 통해 만나, 짧은 시간을 재미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했다. 그리고 적어도 필자에게, 그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이것이 크리스 크로포드라는 게임학자가 말한 '마법의 원',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공유하는,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함께한 경험이 갖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에게 게임을 만드는 일은, 그저 그것이 좋아서 선택했던 일이고 본질적으로는 허튼 장난이다. 그러나 필자가 하는 일이 때로는 지겨워서, 또는 너무 하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이날의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실제로 이 경험은 필자가 보드게임업을 떠났던 8년 이후 다시 이일을 하게 된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들의 국적이나 외모 재산, 사회적 지위 등등 그 어떤 외적인 배경들을 벗어나 일상과는 다른 경험으로 만나게 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숨기고 있는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게임을 플레이 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무언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허튼 장난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게임이라는 매체를 옹호하며 그것이 산업적으로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는지, 교육 등 다른 맥락에서 얼마나 가치있게 쓰일 수있는지 말할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허튼 장난을 통해 사람들이 갖는 위안과 연대감을 생각하면 게임의 그런 효과가 갖는 가치는 오히려 작다.

대부분의 가치있는 일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애써 옹호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게임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게임이 오히려 본질적으로 허튼 장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통해 우리는 우리는 계산을 내려놓고 갈등을 떠나 함께 즐거워 질 수 있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심지어는 갈등관계인 누군가와 게임 안에서 함께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이 계산과 갈등만으로 해석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필자가 오랫동안 해온 이 일이 가치를 갖는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정희권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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